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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12:1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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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772) 2016.1.12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 (잠언 12장 15-22절)
1.
권고를 듣는 자
지혜로운 자는 자기도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고 남의 권고를 들을 줄 압니다(15절). 지혜로운 자는
주관은 있되 너무 주관적이지 말아야 합니다. 축복과 행복의 최대 적은 극단주의입니다. 가나안의 축복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을 때
주어집니다(수 1장). 선한 것도 극단에 치우치면 악한 결과를 낳습니다. 특히 두 가지 극단을 주의하십시오. ‘너무 남에게 의존하려는 것’과
‘너무 독립적으로 살려는 것’입니다. 너무 남을 의지해도 안 되지만 때로는 남의 도움과 조언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말해주는 신실한 조언자의 권고를 기쁘게 들으십시오. 특히 기혼자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배우자의 조언을 구해야 합니다. 어떤 남편은
하나님이 감동하셨다고 은퇴할 때 받은 퇴직금의 일부도 아닌 전부를 아내와 전혀 상의도 없이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요한 일은 아내와
상의해야 합니다. 평생의 비전 동역자인 배우자의 신뢰를 외면하고 하나님의 신뢰와 축복을 구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비전을 이루려면
비전 동역자의 조언을 경청하십시오. 비전 동역자는 자기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장점과 능력들을 깨우쳐주고 격려해주고 그 비전이 잘 유지되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자신의 스타일과 아이디어를 존중하면서 정직한 피드백을 해주고 최대한 헌신하며 도와줍니다. 그런 비전 동역자가 있다면 비전성취의
가능성은 크게 증대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면서 동시에 진실한 사람의 조언도 잘 경청하십시오.
2. 수욕을 참는 자
성급한 것은 미련한 것이고 참는 것은 슬기로운 것입니다(16절). 사람은 완벽하게 나쁜 사람도 없고 완벽하게 좋은 사람도
없습니다. 또한 믿음과 은혜의 수준에 따라 미련하게 행동할 때도 있고 지혜롭게 행동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컨디션과 분위기에 따라 참지 못할
때도 있고 참을 때도 있습니다. 그 말은 인내심도 훈련을 통해 커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훈련으로 더 참는 존재가 되면 더
지혜롭게 됩니다.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을 잘 억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급할 때 사고가 가장 많이 납니다. 행복과 축복을 지키려면 열심히
달리되 성급하면 안 됩니다. 때로는 단호하게 나아갈 줄도 알고 때로는 한 템포 느리게 할 줄도 알아야 하고 때로는 멈추고 설 줄도 알아야
합니다. 결단성과 성급함을 잘 구분하고 조절해야 합니다. 충동적이고 즉각적인 감정 표출은 손해와 사고 유발 가능성을 크게
높입니다.
인간관계를 잘하려면 남의 취향과 스타일도 참아줄 줄 알아야 합니다. 존중과 배려도 일종의 인내 훈련입니다. 가끔 보면
공동체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성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혼자 있는 것이 편하겠지만 때로는 균형 잡힌 삶을 위해 편한 자리를 떠나 마음을
열고 함께 어울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반면에 성급한 사람도 잘 어울리지 못해서 자기 뜻대로 해주지 않으면 답답해하다가 뛰쳐나가버릴 때도
많습니다. 늘어짐도 절제하고 성급함도 절제하면서 늘 한 발 양보하는 인내를 훈련해야 복된 인간관계와 공동체생활을 얻습니다.
3.
진리를 말하는 자
본문 17절에서 ‘진리를 말하는 자’는 문맥에 따르면 ‘거짓 증언을 하지 않는 자’를 뜻합니다. 위증죄는
누군가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기에 무엇보다 큰 죄입니다. 십계명에서도 “거짓말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거짓말은 곧 드러나지만 진실한 말을 하면 자신의 영혼과 위치와 존재가 영원히 보존됩니다(19절).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하면 대개
실패하지만 혹시 성공해도 인생이 허무하게 됩니다. 반면에 진실한 말을 하기를 힘쓰면 대개 성공하지만 혹시 실패해도 인생에 기쁨과 보람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거짓 입술을 가장 싫어하시고 반대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실한 자를 가장
기뻐하십니다(22절). 때로는 진실한 사람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이 나올 수 있기에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떤 훈련이 필요합니까?
사소한 약속도 잘 지키려는 훈련입니다. 특히 사소하면서 가장 흔한 약속 중의 하나인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훈련은 약속을 지키는 진실한 사람이
되기 위한 기초 훈련과목 중의 하나입니다. 행복의 근원이 되는 인생 최대의 약속은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을 지킬 때는 예배시간까지
잘 지키려고 하십시오.
예배 시간도 잘 지키려는 것은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의미도 있지만 시간 약속을 지키는 삶의 훈련 의미도
있습니다. 주일예배 시간을 잘 지키려고 토요일에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려는 마음도 이미 예배하는 마음입니다. 그 외에 사소한 시간약속도
잘 지키려고 하십시오. 물론 살다 보면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지만 늘 최소한 5분 정도는 먼저 가 있자는 마음으로 약속을 지키려고
하십시오. 그처럼 언행을 일치시킴으로 “저 사람이 한 말은 틀림없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진실한 사람이 되십시오.
4. 겸손히
말하는 자
칼로 찌르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는 것은 독약차람 남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남의 영혼을 죽이기까지 하지만 사려 깊은
말을 들으면 마음과 영혼이 치유됩니다(18절). 말할 때는 늘 겸손한 마음으로 사려 깊게 말하십시오. 말에 인격과 성품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을 조금만 들어보면 대략 그의 과거도 보이고 현재도 보이고 미래도 보입니다. 면접할 때 면접관은 말하는 내용도 보지만
말하는 태도도 봅니다. 말하는 내용보다 말하는 태도가 사람을 성공시키는 진짜 실력이 될 때가 많습니다.
자녀들 앞에서는 욕이나
반말을 하지 마십시오. 아내에게 “여보!”라고 다정하게 말하면 자녀들이 예의 바르고 정감 있게 크지만 “야!”라고 하면 자녀들이 상처 가운데
큽니다. 자녀들 앞에서 서로 험담도 하지 마십시오. 성격과 스타일과 목표가 다르면 “왜 네 아빠가 저렇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라고까지는 말해도
“야! 너 앞으로 저런 아빠와 결혼하지 말라.”라고 하지는 마십시오. 그것은 남편도 모욕하는 말이지만 자녀도 모욕하는
말입니다.
저런 남편과 결혼해서 자기와 같은 자녀가 생겼으니 자녀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너 같은 아이가 없었으면 좋았겠다.”란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무의식에 상처를 입습니다. 아무리 속상해도 자녀 앞에서는 배우자를 나쁜 사람이나 무책임한 사람으로 비하시키지
마십시오. 언어폭력은 신체폭력 이상의 상처를 남깁니다. 신체폭력은 전치 4주를 가도 언어폭력은 전치 4년 이상을 갈 때도 많습니다. 좋은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는 것은 하나님께도 상처를 남깁니다. 하나님은 바른 말을 하면서도 겸손하게 하는 모습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5.
화평을 만드는 자
거짓말하는 사람은 대개 악을 꾀하는 사람으로서 결국 기쁨과 즐거움을 잃지만 진실한 사람은 대개 화평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결국 기쁨과 즐거움을 얻습니다(20절). 화평을 만들려고 하면 얼굴만 봐도 화평이 느껴지고 언어만 들어도 화평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 화평한 관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또한 화평한 사람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어느 마을 앞산에 인자한 얼굴 모양을 한 바위가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언젠가 그 얼굴 모양을 한 사람이 나타나
마을에 평화를 가져다줄 것을 믿었습니다. 한 소년도 그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그런 얼굴을 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나중에 그
소년이 노인이 되었을 때 사람들이 보니까 그 노인의 얼굴이 큰 바위 얼굴 모습이었습니다. 소년이 큰 바위 얼굴을 계속 바라보면서 나중에 큰 바위
얼굴처럼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계속 바라보면 예수님의 얼굴처럼 됩니다. 성화에 나온 예수님의 얼굴이 진짜 예수님의 얼굴이 아니라
오래도록 잘 믿고 화평을 이루기에 애쓰면서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의 얼굴이 바로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얼굴뿐만이 아니라 말씀을 계속 보고
묵상하면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예수님 소리처럼 됩니다. 사람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인성을 변화시키고 인성이 변화되면 인상이 변화되고 인상이
변화되면 인생도 변화됩니다.
6. 회개할 줄 아는 자
본문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 이 구절에서 재앙과 앙화는 같은 말입니다. 이 구절 말씀처럼 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정말
임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실제로 의인에게도 재앙이 임할 때가 있습니다. 결국 이 구절에서 말하는 재앙은 ‘최종적인 파멸’을 뜻합니다. 의인에게도
시험용 고난은 있지만 최종적인 파멸은 없습니다.
누가 의인입니까?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자가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완벽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의인이 아니라 죄를 부끄러워하고 진실하게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물론
진실하게 회개해도 나중에 같은 죄를 또 범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진실한 회개를 포기하지 말고 또 회개하십시오. 죄를 온전히 끊기는 쉽지 않지만
회개하는 마음으로 계속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언젠가 그 죄를 이겨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참된 의인은 자기 죄에 대한 회개는
빠르게 하지만 남의 죄에 대한 정죄는 느리게 합니다. 남을 쉽게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마십시오. 어쩌다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비판이 나오면 손으로
자기 입을 막고 “아차! 내가 또 내 모습을 보지 못하고 교만하게 남을 비판했구나!”라고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그 비판했던 입술로 인해 앞날에
나타날 고통과 아픔을 하나님이 면제해주실 것입니다. 결국 사람에게 회개할 줄 아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회개는 창녀
막달라 마리아를 성녀를 만드는 가장 위대한 수단입니다.
< 비판은 느리게, 회개는 빠르게 >
요새 성형
문제에 대해 어떤 영성주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사람이 맘대로 고치면 됩니까? 성형하면 안 됩니다.” 과연 무엇이든지
원래대로 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어느 날 과학기술이 그 장애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장애를 하나님이 주셨기에 그냥 두어야 합니까? 또한 자연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까 그대로 두고 전혀 개발하지 말아야
합니까?
허무한 영성주의자의 치우친 주장은 자세히 분석하면 모순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런 치우친 사상을 가지고
남을 비판했다가 나중에 보면 자기도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허무한 영성주의자는 위선이 생활화될 수 있습니다. 성형은
하나님이 주신 얼굴을 맘대로 고친다고 하기보다는 과학적인 수단을 활용한 미용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성형중독이나 외모지상주의나 외모로 남을
비하하는 것이 잘못이지 성형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성형이 죄라면 성형 문제보다 더 큰 죄들도 무수히 많습니다.
진짜 잘못된
태도는 다음과 같은 태도입니다. 어떤 영성을 자랑하는 한 여 집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도 성형했고 자기 딸도 성형을 시켰는데 성형하지 않은
사람 앞에서 오히려 “성형하면 안 돼! 하나님이 주신 얼굴을 왜 고쳐?”라고 했습니다. 그런 모순적인 말을 하는 것은 무슨 심리일까요? 자기가
성형한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일까요? 아니면 옛날보다 영성이 깊어져서 성형에 대한 시각이 영적으로 바뀐 것일까요? 그래도 성형을 안 한 사람
앞에서 성형한 사람이 성형을 정죄하는 말을 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사람들의 비판과 정죄를 보면 “나는 빼고!”라는
식의 비판과 정죄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모습은 외면한 채 남만 판단하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비판은 최대한 늦게 하고 회개는 최대한 빨리 하십시오. 그처럼 늘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면서 남을 쉽게 판단하지
마십시오. 재빠른 비판보다 재빠른 회개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의 삶을 살면 스스로 행복해지면서 곧 이어 인물 되는 길도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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