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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가!

시편 류공석 목사............... 조회 수 733 추천 수 0 2016.05.13 23: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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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133:1-3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가!"
2011년 5월 14일(토) 텔아비브 욥바교회
본문 : 시편 133:1-3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고 청년의 날과 청소년의 날도 5월에 있습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기억하는 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우리는 교회 창립 4주년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가정의 달 첫째 주에 교회 창립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사회에는 많은 제도와 기관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제도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는 이 둘의 결합을 통해 가정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가정과 교회, 이 둘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셨다는 것이고, 따라서 가정과 교회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이 담겨있고, 그 뜻과 계획이 이루어질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 공동체가 건강할 때 사람이 행복할 수 있고 그 사회가 건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과 교회는 닮은 데가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을 가리켜 가정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집일뿐이지 가정은 아닙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교회 역시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즉 사람이 교회입니다. 집이 없어도 가정인 것처럼 건물이 없어도 교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착각을 합니다. 잘 지어진 건물, 평수 넓은 아파트, 잘 꾸며진 내부 장식이 가정인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것들만 이루어지면 행복할 줄 압니다. 그래서 좋은 집, 넓은 집, 좋은 가구를 마련하는데 힘을 쏟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물이 교회인지 알고, 조직이 교회인줄 알아 건물 크게 짓고 멋있게 짓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고, 수많은 조직과 프로그램을 만들어댑니다. 그러면 그것이 이루어지면 정말 가정이 되고 교회가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요건들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행복한 가정,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건물이 아니고 가족입니다. 교회 역시 건물이 아니고 사람입니다. 맞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사람입니다. 건물이 교회가 아니고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마디로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집, house는 있는데 가정, family는 없는 이들이 있고, 가정은 있는데 집이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집과 가정이 함께 아름답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house와 family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무엇을 택해야할까요? family지요. 확실하게 옳은 선택이고 그래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정이 건강하다면 함께 힘을 모아 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집은 얻었는데 가정이 깨졌다면, 결국 그 집까지 무가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house가 아니라 family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역시 house가 아니라 family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house가 아니라 하나님의 family입니다. 하나님의 가정,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식구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가져야 할 비전은 유형의 건물로서의 교회가 아니고, 무형의 교회로서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건물로서의 교회는 언젠가는 사라지지만,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이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오늘 시편 133편을 통해 어떤 공동체가 꽃처럼 아름다운지 함께 보겠습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하나의 꽃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꽃이 있고 줄기가 있고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을 나누길 원하는데, 특별히 교회를 하나의 꽃나무에 비교해서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꽃나무라면 그 나무의 줄기는 무엇인지, 그리고 아름다운 공동체의 꽃을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피울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의 꽃이 잘 폈을 때, 거기에서 어떤 열매가 열리게 될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교회의 꽃은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공동체로서 아름다울 때 교회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건물이나 외형이 아름답다고 아름다운 교회인 것은 아닙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이것을 히브리어로는 “הנה מה טוב ומה נעים שבת אחים גם יחד”이라고 하고, 그대로 직역을 하면 이렇습니다. “보라!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형제들이 함께 하나 되어 사는 것이!”

  특별히 앞부분의 “הנה מה טוב ומה נעים”은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외치는 감탄사입니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직역은 How good, How pleasant지만, 영어식 표현으로 하면 How wonderful! How beautiful!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보십시오. 지금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선하다, 참 좋다, 참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형제자매들이 하나 되어 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 되어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면서 감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보고 나름대로 판단합니다. 그런데 그 판단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어떤 교회는 건물이 크고 아름답습니다. 어떤 교회는 프로그램이 아름답습니다. 교회의 조직이나 구조 시스템이 뛰어납니다. 어떤 교회는 예배가 아름답습니다. 설교도 좋고 예배도 세련되고 잘 꾸며지고 다듬어진 드라마 같습니다. 어떤 교회는 교인들의 구성이 아름답습니다. 어떤 교회는 주변 환경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러한 기준들은 모두 주관적이며 모두 비본질적입니다. 성경적인 면에서 객관적인 기준, 그리고 본질적인 기준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공동체’입니다. 그 교회가 공동체로서, 형제와 자매가 하나처럼, 한 마음으로 함께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기준입니다. 본질적인 기준이고 객관적인 기준입니다.

  건물이 좋지 아니할지라도,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이 좋지 아니할지라도, 예배가 그다지 세련되지 않다 할지라도, 교회의 구성원들이 사회적으로 좋지 아니할지라도, 교회의 주변 환경이 좋지 아니할지라도, 그 교회의 교인들이 서로 하나 되어 살고 있을 때, 그 교회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이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아름다운 공동체의 꽃을 피우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함께 שבת해야 하고 , יחד 하나가 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 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공동체에 참여하는 שבת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다락방, 선교회, 삼겹줄 기도 패밀리, 성경공부 모임, 기도 모임 같은 소그룹 공동체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하나가 되고자 하는 יחד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자매가 하나 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는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 되어 지체의식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섬기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갈 때 우리 교회는 꽃처럼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공동체가 되기 위해 서로 노력할 때 우리는 진정한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2. 아름다운 공동체가 교회의 꽃이라면 그 꽃을 어떻게 피울 수 있겠습니까? 줄기가 튼튼하고 건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라는 꽃나무의 줄기는 무엇일까요?

  2-3절상,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시편 133편에는 두 개의 시적 이미지가 있습니다. 첫째 이미지는 기름입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는 “아주 보배로운 기름이 머리로부터 수염으로 흘러내리는데, 아론의 수염에까지 흘러내려 그의 제사장이 입은 옷의 옷깃까지 흘러내리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출애굽기 29장에 나옵니다. 희생제사가 준비되면 아론은 제사장이 입는 옷을 입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시하셨습니다. 29:7,9 “관유를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르고...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

  기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성령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기름을 바르면 반짝반짝 빛이 나며 피부를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향기가 나게 합니다. 이 기름은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울 때 사용합니다.

  형제자매가 함께 살면서 하나처럼 지내면서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은 서로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로에게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서로를 제사장으로 세운다는 것입니다. 나의 형제자매를 나의 제사장으로 여기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여긴다면 우리의 관계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입니다.

  제사장의 첫째 임무는 죄를 속하는 희생 제사를 드려주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를 서로 나의 제사장으로 여긴다는 것은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한다는 것이고, 서로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용서의 제사를 드려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의 첫걸음으로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할 때, 서로를 인정하고 용납하고 용서할 수 있고, 그래서 진정으로 사랑하며 섬기는 관계가 이루어지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DTS, 제자훈련 모임을 참 귀하게 여깁니다. 한국에서부터 많이 했고 이스라엘에서는 지금까지 2번의 DTS를 했는데,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경직되고 마음을 열만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그 과정이 진행되면서 차차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고충과 연약함을 받아주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크게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서로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제사장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 관계를 통해 서로에게 기름을 발라 주는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여러 이미지가 있는데, 학교로서의 교회, 병원으로서의 교회, 훈련소로서의 교회, 수도원으로서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대중목욕탕으로서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면서 때를 묻히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서로의 때를 닦아주며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의 교회입니다. 은혜가 되지 않습니까? 대중목욕탕 같은 교회, 때밀이 목사, 때밀이 성도... 참 은혜가 되는 말입니다. 저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땅에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백 프로 정결한 교회도 없습니다. 단지 각자 죄를 고백하며 서로 죄를 용서해주고 사랑해주고 용납해주는 교회가 아름다울 뿐입니다. 그런 교회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시편 133편에 있는 두 번째 시적 이미지는 이슬입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는 마치‘헐몬 산의 이슬이 시온산까지 흘러내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헐몬 산은 헤르몬산을 말하는데,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높이가 거의 3천 미터가 되고, 레바논부터 이스라엘 북부까지 뻗쳐 있습니다. 높은 산에서 밤을 지새우면 이슬에 흠뻑 젖게 되는데, 헤르몬산의 이슬은 더더욱 많습니다. 그리고 헤르몬산에서부터 내려오는 작은 시냇물, 지류들을 이슬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헤르몬산의 이슬이 시온산까지 흘러내리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건조한 기후에서 이슬은 황량한 땅을 적시고, 식물을 자라게 하고, 동물의 마른 목을 적시게 해 줍니다. 건조지역에 속한 이스라엘 땅에서 이슬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기 때의 비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슬은 비와 함께 축복의 상징으로 성경에 등장합니다. 그러기에 헤르몬산의 이슬은 아침마다 소생케 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슬과 반대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함씬입니다. 동쪽 사막에서 부는 건조하고 더운 열풍입니다. 모래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함씬이 불면 무척 덥고 건조해집니다. 강력한 바람입니다. 홍해를 가른 바람이고, 뿌리가 얕은 식물의 경우 말라 죽게 만듭니다.

  공동체에서 이슬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함씬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치고 상처받고 영적으로 메마른 이들에게 다시 소생케 하는 이슬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 반대로 상처주고 맥 빠지게 하고 영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함씬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원래 함씬과 같은 역할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바뀌고 다른 이슬과 같은 사람들의 사랑으로 바뀐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안에는 함씬과 같은 것들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지도자와 성도들을 향한 자신의 생각과 태도와 말과 행동을 돌아보십시오. 나는 이슬과 같은 사람인지 함씬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슬과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 자체가 함씬이고 우리의 삶 자체가 함씬인데, 우리의 역할은 그 가운데서 지치고 성처 받고 메마른 이들을 다시 소생케 하는 이슬과 같은 모습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슬이 됩시다.

  공동체의 체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서로를 격려하면서 서로를 소생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광야와 같습니다. 광야에서 살다보면 우리의 영적 능력은 금방 고갈됩니다. 고갈된 영적 능력은 형제자매의 사랑을 통해서 다시 소생됩니다. 물론 예배와 말씀을 통해서 소생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예배와 말씀을 통해서 받은 은혜가 형제와 자매의 관계를 통해서 흘러가지 않으면 그 은혜는 금방 소실됩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거쳐 간 성도님들께 종종 연락을 받습니다. 특히 청년들이 많은데, 청년들이 전화나 메일을 통해 하는 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너무 보고 싶고 그립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고맙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동안 많이 힘들었지만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기도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어서 잘 이겨냈다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고 고맙다는 겁니다. 우리 교회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정말 힘들 때 말씀과 찬양으로 힘을 얻고, 삼겹줄 기도패밀리에서 나눔과 기도를 통해 위로를 받고, 맛있는 식사를 통해 몸도 힘을 얻고, 센터에서 청년들과의 나눔의 관계를 통해 위로받아서 잘 보낼 수 있었고 변화되고 성장해서 떠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의 사랑의 관계가 청년들과 교우분들에게 소생케 되는 생명을 주는 이슬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공동체가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헤르몬산의 이슬이 되어야 합니다.

3. 그렇다면 아름다운 공동체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아름다운 공동체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입니다. 그 복은 영생입니다.

  3절 하,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하나님은 ‘거기서’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거기서는 ‘공동체에서’, ‘형제자매의 관계 안에서’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서, 즉 공동체에서, 형제자매의 관계 안에 복을 명령하셨는데, 그 복은 영생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봅니다. 우리가 지금 만나고 교제하는 사람들은 천국에서도 만날 사람들입니다. 서로 다르고 어떤 경우에는 보기 싫어도 다시 만날 사람들입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봐야 하는 사람들인데 할 수만 있으면 천국에서처럼 서로가 용납하고 사랑하고 섬기라는 의미로 봅니다. 천국이 어떤 곳입니까? 천국은 용서와 사랑과 섬김의 자리입니다. 그곳에서는 미움이 없고 다툼도 없고 갈등도 없고 오직 용서와 사랑과 섬김밖에 없습니다. 그것에 영원히 이어집니다.

  3절에서 ‘거기서, 즉 형제자매의 관계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께서 복을 명하셨다는 말은, 장차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사랑과 섬김을 지금 이 땅에서부터 이루라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관계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를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상에서 천국의 기쁨과 축복이 무엇인지를 맛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고 섬기면 우리는 천국의 기쁨과 축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 기쁨과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가정이 천국이 되는 경우가 어떤 경우입니까? 가족들 간의 관계가 서로 사랑하고 섬길 때 그 가정은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 간에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고 위로하고 섬기면 그 관계 안에서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천국의 기쁨과 축복을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과 축복은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다해도 천국에서 영원히 이어집니다. 할렐루야!

  결국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관계의 복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관계의 개념입니다. 재물의 복, 장수의 복, 자녀의 복 등에 대한 추구는 모든 사람의 본능입니다. 우리 모두는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많이 받지는 못합니다. 그 이유는 소스를 잘못 택했기 때문이지요. 옷가게에 가서 생선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말씀은 선언합니다. 복은 관계에서 온다고 말입니다. 관계를 떠나서는 그 어떤 복도 복이 아닙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고 출세를 하고 많은 것을 가져도 관계의 복이 없으면 그 복은 복이 아닙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복이고,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복은 관계에서 옵니다. 관계 자체가 복입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면서 하나로 연합되는 그런 관계에서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형제자매가 하나 되어 사는 생활, 서로가 서로에게 아론의 기름을 발라주고, 헤르몬산의 이슬을 뿌려주는 생활, 바로 이것이 가장 본질적인 축복이며 이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무엇보다 공동체 만들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시다. 우리 교회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공동체 만들기입니다. 성도 간에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가운데 하나 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많은 일들을 하고 부흥을 이룬다 해도, 하나 되는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잃은 것입니다.

  둘째, 공동체 만들기에 구체적으로 참여해 주십시오. 공동체 만들기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공동체 만들기는 평가와 비판이 아니라 참여와 용납입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공동체의 이슬이 되어 주시고 아론의 기름이 되어 주십시오.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며 나아갑시다.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는 사람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함부로 판단하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나의 제사장으로 인정하며 관계를 이루어갑시다. 광야 같은 이스라엘에서 서로에게 함씬같은 존재가 아니라 이슬과 같은 존재가 됩시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이슬과 같은 존재, 기름을 부어주는 존재가 되어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갑시다.

  “הנה מה טוב ומה נעים”그렇게 될 때 우리 교회는 하나 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 되어 연합된 공동체가 바로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가 기름과 이슬이 철철 흘러넘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게 하기 위하여 서로 노력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를 칭찬하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너무 좋다고, 예배도 좋고, 성도들도 너무 좋고, 분위기도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선교의 비전과 열정도 있어 좋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거짓은 아닙니다. 이런 말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꿈을 꿉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이,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까지도 우리 교회를 보면서 이렇게 감탄할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저 교회를 보라!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형제자매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 되어 살고 있지 않은가! 저 공동체에는 아론의 기름이 흘러 내리고 헤르몬의 이슬이 흘러 내지고 있지 않은가! 바로 저곳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곳이고 바로 저곳이 천국이 아닌가!”

  저는 이 꿈을 꿉니다. 어떻습니까? 이 꿈이 허황된 꿈일까요, 실현 가능한 꿈일까요? 저는 허황된 꿈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꿈을 가집시다. 우리 교회를 향해서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꿈을 가집시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고, 축복하고, 기도해주고, 하나 되기에 더욱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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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82 마태복음 진리의 낳음 마1:1-10  김부겸 목사  2016-05-16 298
13281 요한일서 사랑의 영성 [3] 요일4:16  김부겸 목사  2016-05-16 433
13280 이사야 새 하늘과 새 땅을 여는 영성 사65:17-25  김부겸 목사  2016-05-16 324
13279 마가복음 나를 지키는 집 막11:15-17  김부겸 목사  2016-05-16 439
13278 마태복음 골방기도의 영성 마6:6  김부겸 목사  2016-05-16 1018
13277 사도행전 오순절 성령 임재의 효력 행2:36-47  강종수 목사  2016-05-15 637
13276 마가복음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막11:17-19  김경형 목사  2016-05-15 480
13275 마가복음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막11:12-19  김경형 목사  2016-05-15 499
13274 누가복음 항상 기뻐하는 삶 [1] 눅10:17-21  한태완 목사  2016-05-14 862
13273 갈라디아 예슈아 안에서 하나되게 하신 뜻 갈3:26-4:7  류공석 목사  2016-05-13 928
13272 갈라디아 예슈아로 말미암은 성령의 약속 갈3:15-25  류공석 목사  2016-05-13 465
13271 갈라디아 예슈아 안에서 이방인에게 미친 복 갈3:6-14  류공석 목사  2016-05-13 604
» 시편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가! 시133:1-3  류공석 목사  2016-05-13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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