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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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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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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간증에 이런 문제도 있다"
고은교회 황부일 목사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자기 신앙에 대한 간증거리가 있습니다.
보통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간증이란 말에대한 개념을 보면 지은죄를 증명하며 자복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일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이렇게 볼때 신앙인에게 있어 이런 것은 누구나 다 있는 것이고 매우 평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 신문이나 TV방송이나 라디오방송,기독교 잡지, 책 등에서 간증되는 것이나 또는 실제로 여러 교회를 순회 다니면서 초청되어 간증하는 것들을 보면 매우 특별적이고 놀라운 얘기들로 되어 있습니다. 군대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반군대 경험얘기가 아니라 아무나 갈 수 없고 할 수 없는 특수부대 얘기 같은 것들입니다. 보통 신앙인들이 체험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는 아무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들만이 가지고 체험할 수 있는 간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보통 교인들에게는 없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들에게만 베풀어주시고 역사해 주신 그래서 보통 교인과 간증하는 그들과 엄청난 신앙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서로 먼 나라 사람 같은 신앙의 이격을 느끼게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런게 바로 간증거리가 아니냐고 강조하지만 그러나 이런 간증거리가 복음의 합당한 신앙으로 구원을 이루는 보펀적인 은혜로서 일치가 되지 않고 어떤 특이한 신앙의 한 경험이나 그사람만이 기적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주관적 신앙의 독특함으로 보여지고 그들만이 갖는 하나님과의 특별하고 놀랍고 별다른 관계를 가진 것처럼 말합니다.
교회의 특성가운데는 "보편성"이
있습니다.이것은 구원의 은혜의 보편성으로서 그리스도안에서의
놀라우신 구원의 은혜와 능력의
크심은 성도모두에게 차별없이
주어진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3:22에보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이 그렇습니다.
성경에서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이 모두에게 하나님은 부요하시다고 말씀했습니다. (롬10:11~12)
모든 성도가 받은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의 영광과 능력의
크신 역사하심이 모두에게 있음을 교회된 모두가 보편적으로 밝히 보고 알게 해야 하는데 촛점을 두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에베소서 1:17~19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함 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신앙간증들은 신앙을
차별시키고 은혜에 보편성을 깨고 특별성을 부각시켜서 보통 성도들이보고 느끼기에 신앙에 큰차이를 가지게하고 그들은 신앙의 영웅이나 큰믿음의 소유를 남달리 가진 스타처럼 여겨진다면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 된 자로 부르심에는 여러 채널이 있고 경로가 있습니다.또한 부르시고 난 이후 다루어가시는 간섭의 역사가 다를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구원의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의 교회로 한 몸 되어 한은혜로 서감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 하시고 만유가운데 계시도다”라고 증거했습니다. (엡4:4-6)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은혜는 하나고 그 고백도 하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간섭하시는 역사도 동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려지는 간증거리들은 매우 기적적인 부분만 부각되는 경우가 많으며 또한 극적인 고난이나 위험중에서 특별한 의지나 믿음중심으로 벗어나고 놀랍게 회복되고 성공한 체험들인데 그래서 매우 흥미롭고 감동적이고 이적적인 사건이든가 또한 엑스타시적이고 표증적 체험으로 돌출된다는 점입니다.
따로된 혹은 따로 남다르게 되어진 것들뿐인것입니다.
한동안 교계에는 마치 무슨 세상에 유행처럼 간증에도 유형별로 흐름이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전과자 출신들이 많이 간증하러 다니기도 했고 또한 북한에서 귀순한 자들이 전국 각지 교회들을 순회하며 간증하러 다녔고, 신앙을 가졌다는 유명 연예인들도 간증무대에 많이 그리고 자주 오르는 편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성공한 실업인, 천국과 지옥을 두루 보고 왔다는 자들, 죽을병에서 치유 받았다는 자들 등 주로 이런 자들이 간증의 주인공들로 등장합니다. 또한 요즘에 보면 복음송 가수들이 간증을 겸하여 한다며 교계 신문들에 초청해 달라고 광고까지 합니다. 이런 간증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구원을 이루는 보편적인 순전한 신앙이나 복음의 합당한 건전한 신앙은 신앙축에도 못들게 하고
오히려 간증한 신앙만이 하나님특별한 은혜처럼 혼돈케히는 위험성이 다분함을 아십니까?
대부분 지도자들은 이런 간증들이 교회에 어떤 유익을 주는지 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에 대해 거의 구분치 않고 초청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증은 대체적으로 은혜가 많다고 광고하고 다수가 그렇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 간증은 기적적이고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라는 데에 은혜의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잘 아는 지인이 어떻게 해서 어떤 간증부흥 협회에 잠시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그 간증부흥 협회에는 주로 알려진 간증자들이 많이 속해 있었는데 그분도 그곳에서 소개해 주는 교회로 처음 간증하러 간적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이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된 것과 장애인이 된 것에 대해 그대로 간증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마치고 나자 소개했던 그회 회장되는 분이 부르더니 간증을 그렇게 하면 은혜를 끼칠 수 없고 감동을 줄 수 없으니 재미있게 웃기기도 하고 때론 슬픔도 줄 수 있도록 고치고 극적으로 과장도 하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양심상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더니 그러면 어렵다고 해서 그만 그 협회에서 나오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간증이 이런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간증이 말씀 강단에 종종 불러져 선다는 것이며 대다수의 교인들이 그것을 말씀보다 은혜롭다며 매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증내용이 주는 극적인 감동이나 간증자에게서 풍기는 느낌의 정도를 따라 그것을 큰 은혜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인기 있는 연예인들을 초청 간증집회를 여는 날이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온다는데 인기 연예인의 간증은 엄청난 은혜를 끼치나 봅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까 대부분의 교인들은 정말 들어야할 순전한 복음의 증거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딱딱하고 재미가 없고 은혜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설교들을 보면 주로 간증 같은 예화 투성이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증거하는 복음만이 참된 은혜임을 알고 이 은혜에 굳게 서라고 강조 했는데도 말입니다(벧전5:12)
이렇게 간증은 하나님 말씀의 자리를 차지하고 인기를 끌며 교인들의 귀를 진리에서 돌이키게 합니다. 또한 그런 간증들 가운데 보면 성공한 기업자의 사례나 오병이어 같은 이적의 축복으로 형편과 인생이 확 역전되었다는 내용의 간증들도 많습니다. 이들의 간증의 주 공통점은 어려운 형편에서 베드로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고 나갔더니 엄청난 축복과 성공의 결과를 얻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또 아니면 굉장한 신앙의 주관적 체험이나 신비한 경지에 올랐다는 은근한 자랑의 것들입니다.
이런 간증을 듣는 교인들에게는 나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큰 기대와 부러운 마음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 간증자들이 이렇게 했더니 그렇게 되었더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도 그런 간증자 들처럼 열심히 해보려합니다. 그들처럼 대박의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아니면 어떤 신앙의 영웅이나 영광의 금메달 같은 경지에 도달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보면 간증자들이 말하는 축복의 요인이요 열쇠가 되는 이렇게 저렇게 했다는 내용의 요점의 대개가 표증적이고 공로적 행위에 있습니다. 극적어려움 속에서나 어떤 막바지형편에서도 잘 섬기고 아낌없이 헌금 하고 열심히 충성 봉사하고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하는 특별한 행위의 결과로 증거합니다.
결국 특별한 자기 신앙행위의 공로적 상급으로 역전된 요인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이런 간증의 문제와 위험성은 하나님을 통한 자기 기대 실현과 성공과 주관적 신앙 체험으로 많은 교인들로 하여금 그런 신앙을 본받게 하고 따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는 지도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회에 문제가 되는 다단계 조직에서도 간증을 많이 듣게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것은 다단계 회사에서 사람을 끌어 모으고 수익을 위해 주기적으로 교육 한답시고 모이게 하여 분위기도 잡으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나와 자신의 지난 출신등을 소개하고 지금은 어떻게 하여 연봉이 얼마가 되고 고급단계까지 오르게 되었다는 간증을 하게하여 거기에 모인 많은 무리들이 강한 충동을 느끼게 하고 도전을 받게 하는데 어떤 면에서 이런데 나오는 간증자들은 거기에 모인 많은 자들에게 나도 할 수 있고 역전이 되는것 처럼 열망을 갖는데 바람잡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 간증에 미혹되어 다단계에 빠진자들이 대부분인 것입니다. 신앙의 간증에도 이런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베드로의 인생의 참 역전은 한순간 고기를 많이 잡은 기적같은 사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앞에서 죄인 됨을 알게 하는 주의 은혜의 능력과 보이는 그것만 제일로 바라며 살던 인생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사는 자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며 누린다는 것은 세상 형편적인 것의 극적인 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렵든지 괜찮든지 하나님 한 분으로 감사하며 기뻐하는 은혜의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주관적 자기 체험과 또한 고기를 많이 잡은 성과적 숫자와 세상 성공적 사례만 부각되는 매우 부분적이고 얼마든지 가감될 수 있는 그런 위험성이 다분한 간증들이 교회 강단에 서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간증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보다 주로 하나님을 통한 세상 일시적 한순간 성공사례들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혹 과거에 교계로 초청 다니던 유명한 간증자들의 현재삶이 어떤지 들어본 분이 계십니까?
얼마전 어느 교회장로이면서 성공한 기업인이면서 정치인 까지 되었던 유명한 분이 이런저런 정치 기업적문제 부조리문제등에 연루되어 도피하다가 자살해 죽은 사건이 크게 보도된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바로 교계에 한동안 유명한 간증자였던것입니다.
사실 알아보면 신앙의 영웅같은 간증자들이 형편없는 상태로
전락된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알면 매우 실망될 일들이지요.
때문에 그런 변화무쌍할 수 있고
개인적 체험중심일 수밖에 없는
간증들이 복음만이 증거되야할 교회강단에서 사라지게 해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된 성도들이 그의 나라에 합당한 모습으로 구원을 이루도록 자라게 하는 순전한 복음만이 증거 되고 가르쳐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의 피로 사신 몸된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말씀의 사역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 사역자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겨 주신 말씀의 강단을 오직 그분의 진리말씀만 대언 되도록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진리의 교회로 건전하고 굳게 서 갈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뿐”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고후13:8)
진정한 구원의 은헤를 입은 올바른 간증이라 할지라도 간증은 강단에서 할 것이 아니라 삶에서 그리스도의 증거된 증인으로 나타내며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그러니까 복음에 합당한 간증이라면 그것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증인되는 모습이고 진리의 증거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고은교회 황부일 목사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자기 신앙에 대한 간증거리가 있습니다.
보통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간증이란 말에대한 개념을 보면 지은죄를 증명하며 자복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일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이렇게 볼때 신앙인에게 있어 이런 것은 누구나 다 있는 것이고 매우 평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 신문이나 TV방송이나 라디오방송,기독교 잡지, 책 등에서 간증되는 것이나 또는 실제로 여러 교회를 순회 다니면서 초청되어 간증하는 것들을 보면 매우 특별적이고 놀라운 얘기들로 되어 있습니다. 군대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반군대 경험얘기가 아니라 아무나 갈 수 없고 할 수 없는 특수부대 얘기 같은 것들입니다. 보통 신앙인들이 체험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는 아무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들만이 가지고 체험할 수 있는 간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보통 교인들에게는 없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들에게만 베풀어주시고 역사해 주신 그래서 보통 교인과 간증하는 그들과 엄청난 신앙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서로 먼 나라 사람 같은 신앙의 이격을 느끼게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런게 바로 간증거리가 아니냐고 강조하지만 그러나 이런 간증거리가 복음의 합당한 신앙으로 구원을 이루는 보펀적인 은혜로서 일치가 되지 않고 어떤 특이한 신앙의 한 경험이나 그사람만이 기적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주관적 신앙의 독특함으로 보여지고 그들만이 갖는 하나님과의 특별하고 놀랍고 별다른 관계를 가진 것처럼 말합니다.
교회의 특성가운데는 "보편성"이
있습니다.이것은 구원의 은혜의 보편성으로서 그리스도안에서의
놀라우신 구원의 은혜와 능력의
크심은 성도모두에게 차별없이
주어진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3:22에보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이 그렇습니다.
성경에서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이 모두에게 하나님은 부요하시다고 말씀했습니다. (롬10:11~12)
모든 성도가 받은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의 영광과 능력의
크신 역사하심이 모두에게 있음을 교회된 모두가 보편적으로 밝히 보고 알게 해야 하는데 촛점을 두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에베소서 1:17~19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함 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신앙간증들은 신앙을
차별시키고 은혜에 보편성을 깨고 특별성을 부각시켜서 보통 성도들이보고 느끼기에 신앙에 큰차이를 가지게하고 그들은 신앙의 영웅이나 큰믿음의 소유를 남달리 가진 스타처럼 여겨진다면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 된 자로 부르심에는 여러 채널이 있고 경로가 있습니다.또한 부르시고 난 이후 다루어가시는 간섭의 역사가 다를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구원의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의 교회로 한 몸 되어 한은혜로 서감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 하시고 만유가운데 계시도다”라고 증거했습니다. (엡4:4-6)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은혜는 하나고 그 고백도 하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간섭하시는 역사도 동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려지는 간증거리들은 매우 기적적인 부분만 부각되는 경우가 많으며 또한 극적인 고난이나 위험중에서 특별한 의지나 믿음중심으로 벗어나고 놀랍게 회복되고 성공한 체험들인데 그래서 매우 흥미롭고 감동적이고 이적적인 사건이든가 또한 엑스타시적이고 표증적 체험으로 돌출된다는 점입니다.
따로된 혹은 따로 남다르게 되어진 것들뿐인것입니다.
한동안 교계에는 마치 무슨 세상에 유행처럼 간증에도 유형별로 흐름이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전과자 출신들이 많이 간증하러 다니기도 했고 또한 북한에서 귀순한 자들이 전국 각지 교회들을 순회하며 간증하러 다녔고, 신앙을 가졌다는 유명 연예인들도 간증무대에 많이 그리고 자주 오르는 편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성공한 실업인, 천국과 지옥을 두루 보고 왔다는 자들, 죽을병에서 치유 받았다는 자들 등 주로 이런 자들이 간증의 주인공들로 등장합니다. 또한 요즘에 보면 복음송 가수들이 간증을 겸하여 한다며 교계 신문들에 초청해 달라고 광고까지 합니다. 이런 간증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구원을 이루는 보편적인 순전한 신앙이나 복음의 합당한 건전한 신앙은 신앙축에도 못들게 하고
오히려 간증한 신앙만이 하나님특별한 은혜처럼 혼돈케히는 위험성이 다분함을 아십니까?
대부분 지도자들은 이런 간증들이 교회에 어떤 유익을 주는지 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에 대해 거의 구분치 않고 초청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증은 대체적으로 은혜가 많다고 광고하고 다수가 그렇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 간증은 기적적이고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라는 데에 은혜의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잘 아는 지인이 어떻게 해서 어떤 간증부흥 협회에 잠시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그 간증부흥 협회에는 주로 알려진 간증자들이 많이 속해 있었는데 그분도 그곳에서 소개해 주는 교회로 처음 간증하러 간적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이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된 것과 장애인이 된 것에 대해 그대로 간증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마치고 나자 소개했던 그회 회장되는 분이 부르더니 간증을 그렇게 하면 은혜를 끼칠 수 없고 감동을 줄 수 없으니 재미있게 웃기기도 하고 때론 슬픔도 줄 수 있도록 고치고 극적으로 과장도 하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양심상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더니 그러면 어렵다고 해서 그만 그 협회에서 나오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간증이 이런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간증이 말씀 강단에 종종 불러져 선다는 것이며 대다수의 교인들이 그것을 말씀보다 은혜롭다며 매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증내용이 주는 극적인 감동이나 간증자에게서 풍기는 느낌의 정도를 따라 그것을 큰 은혜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인기 있는 연예인들을 초청 간증집회를 여는 날이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온다는데 인기 연예인의 간증은 엄청난 은혜를 끼치나 봅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까 대부분의 교인들은 정말 들어야할 순전한 복음의 증거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딱딱하고 재미가 없고 은혜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설교들을 보면 주로 간증 같은 예화 투성이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증거하는 복음만이 참된 은혜임을 알고 이 은혜에 굳게 서라고 강조 했는데도 말입니다(벧전5:12)
이렇게 간증은 하나님 말씀의 자리를 차지하고 인기를 끌며 교인들의 귀를 진리에서 돌이키게 합니다. 또한 그런 간증들 가운데 보면 성공한 기업자의 사례나 오병이어 같은 이적의 축복으로 형편과 인생이 확 역전되었다는 내용의 간증들도 많습니다. 이들의 간증의 주 공통점은 어려운 형편에서 베드로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고 나갔더니 엄청난 축복과 성공의 결과를 얻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또 아니면 굉장한 신앙의 주관적 체험이나 신비한 경지에 올랐다는 은근한 자랑의 것들입니다.
이런 간증을 듣는 교인들에게는 나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큰 기대와 부러운 마음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 간증자들이 이렇게 했더니 그렇게 되었더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도 그런 간증자 들처럼 열심히 해보려합니다. 그들처럼 대박의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아니면 어떤 신앙의 영웅이나 영광의 금메달 같은 경지에 도달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보면 간증자들이 말하는 축복의 요인이요 열쇠가 되는 이렇게 저렇게 했다는 내용의 요점의 대개가 표증적이고 공로적 행위에 있습니다. 극적어려움 속에서나 어떤 막바지형편에서도 잘 섬기고 아낌없이 헌금 하고 열심히 충성 봉사하고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하는 특별한 행위의 결과로 증거합니다.
결국 특별한 자기 신앙행위의 공로적 상급으로 역전된 요인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이런 간증의 문제와 위험성은 하나님을 통한 자기 기대 실현과 성공과 주관적 신앙 체험으로 많은 교인들로 하여금 그런 신앙을 본받게 하고 따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는 지도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회에 문제가 되는 다단계 조직에서도 간증을 많이 듣게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것은 다단계 회사에서 사람을 끌어 모으고 수익을 위해 주기적으로 교육 한답시고 모이게 하여 분위기도 잡으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나와 자신의 지난 출신등을 소개하고 지금은 어떻게 하여 연봉이 얼마가 되고 고급단계까지 오르게 되었다는 간증을 하게하여 거기에 모인 많은 무리들이 강한 충동을 느끼게 하고 도전을 받게 하는데 어떤 면에서 이런데 나오는 간증자들은 거기에 모인 많은 자들에게 나도 할 수 있고 역전이 되는것 처럼 열망을 갖는데 바람잡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 간증에 미혹되어 다단계에 빠진자들이 대부분인 것입니다. 신앙의 간증에도 이런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베드로의 인생의 참 역전은 한순간 고기를 많이 잡은 기적같은 사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앞에서 죄인 됨을 알게 하는 주의 은혜의 능력과 보이는 그것만 제일로 바라며 살던 인생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사는 자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며 누린다는 것은 세상 형편적인 것의 극적인 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렵든지 괜찮든지 하나님 한 분으로 감사하며 기뻐하는 은혜의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주관적 자기 체험과 또한 고기를 많이 잡은 성과적 숫자와 세상 성공적 사례만 부각되는 매우 부분적이고 얼마든지 가감될 수 있는 그런 위험성이 다분한 간증들이 교회 강단에 서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간증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보다 주로 하나님을 통한 세상 일시적 한순간 성공사례들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혹 과거에 교계로 초청 다니던 유명한 간증자들의 현재삶이 어떤지 들어본 분이 계십니까?
얼마전 어느 교회장로이면서 성공한 기업인이면서 정치인 까지 되었던 유명한 분이 이런저런 정치 기업적문제 부조리문제등에 연루되어 도피하다가 자살해 죽은 사건이 크게 보도된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바로 교계에 한동안 유명한 간증자였던것입니다.
사실 알아보면 신앙의 영웅같은 간증자들이 형편없는 상태로
전락된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알면 매우 실망될 일들이지요.
때문에 그런 변화무쌍할 수 있고
개인적 체험중심일 수밖에 없는
간증들이 복음만이 증거되야할 교회강단에서 사라지게 해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된 성도들이 그의 나라에 합당한 모습으로 구원을 이루도록 자라게 하는 순전한 복음만이 증거 되고 가르쳐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의 피로 사신 몸된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말씀의 사역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 사역자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겨 주신 말씀의 강단을 오직 그분의 진리말씀만 대언 되도록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진리의 교회로 건전하고 굳게 서 갈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뿐”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고후13:8)
진정한 구원의 은헤를 입은 올바른 간증이라 할지라도 간증은 강단에서 할 것이 아니라 삶에서 그리스도의 증거된 증인으로 나타내며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그러니까 복음에 합당한 간증이라면 그것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증인되는 모습이고 진리의 증거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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