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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라

누가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879 추천 수 0 2016.05.17 18: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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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2:4-7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777) 2016.1.18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라 (눅12:4-7)


< 주일성수의 위대한 가치 >

 요새 ‘딸 바보’란 말이 유행한다. ‘딸을 바보처럼 사랑하는 아빠’란 애칭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아빠들은 ‘딸 바보’일 것이다. 필자도 유난히 두 딸을 사랑했던 ‘딸 바보’였다. 딸들이 고등학생이 되어도 스킨십이 심해서 아내로부터 “애정표현 좀 그만하라!”는 농담성 핀잔도 종종 들었다. 필자는 수시로 기도한다. “하나님! 부족한 제게 천사와 같은 두 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딸은 부족한 점도 많지만 필자에게는 늘 최고의 딸들이었다.

 두 딸은 약간 소심한 것 빼고는 비교적 큰 문제없이 잘 자라주었다. 그러다가 지금부터 4년 반 전에 첫째 딸 은혜가 주일에 친구들과 노는 행사에 참석하느라고 처음 주일예배를 빠졌다. 그 전부터 예배에 흥미를 잃어버린 조짐은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해오던 성가대 바이올린 봉사를 그만두고 그냥 예배만 참석했고 주일예배에 졸 때도 많았다. 그처럼 형식적으로 예배만 참석하다가 필자가 절대가치로 두고 있는 주일예배까지 빠진 것이다.

 필자가 죽을 때 유언으로 남길 첫 번째 말은 “주일성수를 꼭 하라!”는 말일 것이다. 딸들에게 요구하는 유일한 아빠의 소원도 주일성수다. ‘공부에서 일등하고 주일성수 안 하는 딸’과 ‘공부에서 꼴등하고 주일성수 하는 딸’ 중 누구를 원하느냐고 물으면 필자는 당연히 후자를 원한다. 성도의 삶의 기초이자 축복의 근원인 주일성수만 잘해도 하나님은 그 심령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주일에 하나님을 경배하고 말씀을 통해 바른 믿음과 비전을 제시받고 성도 간의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삶만큼 복된 삶이 어디에 있겠는가?

 은혜가 처음 주일을 범한 날 필자는 굳게 결심했다. 어차피 주일을 범해서 영적인 처녀성은 훼손된 상태니까 앞으로 스스로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올 때까지 딸의 얼굴을 안 보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날 저녁에 필자는 은혜를 집에 들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평소에 겁이 많아서 가정의 보호가 꼭 필요한 은혜를 가출시킬 수는 없어서 할 수 없이 필자가 가출해야 했다.

 그때부터 교회 목양실이 필자의 생활터전이 되었다. 그 정도라면 웬만한 딸은 “아빠! 잘못했어요.”라고 나올 법한데 은혜는 미움이나 반항 때문이 아닌 쑥스러움 때문에 그런 말을 못했다. 그때 필자가 “이제 주일에 나와라!”고 부탁하듯이 하면 나올 수도 있었지만 장래를 위해 그 말을 참았다. 언젠가 스스로 주일예배에 참석하면 그때부터는 천국에 갈 때까지 평생 주일을 지키기를 원했고 아빠가 주일성수에 절대가치를 둔다는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1년 동안에는 은혜가 집에 있으면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2년째는 조금 상황이 완화되어 간혹 집에 들어가도 애써 은혜를 외면했다. 3년째는 조금 더 상황이 완화되어 은혜와 같이 밥상에 마주앉기는 해도 전혀 얼굴은 쳐다보지 않고 말도 안 했다. 그때 은혜는 아빠의 존재를 의식하지도 않고 평소처럼 엄마와 별의별 얘기도 다하고 까불었지만 필자는 말도 없이 거의 투명인간이나 목석처럼 있었다. 그렇게 4년 반 동안 은혜 얼굴을 보지 않았다. 물론 은혜가 잘 때 슬쩍 훔쳐보기는 했지만 눈 감고 자는 모습만 봐서 얼굴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자 남들은 이런 말도 했다. “이 목사님은 첫째 딸보다 둘째 딸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아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모르면 가만이나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때도 여전히 둘 다 똑같이 사랑했다. 다만 사랑의 표현방법이 다를 뿐이었다. 그 기간 동안 은혜에 대해 미운 감정이나 싫은 감정은 전혀 없었다. 오직 주일성수의 가치가 은혜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최근에는 은혜가 부쩍 성숙해진 모습을 많이 보였다. 늦을 때 다급해하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짜증 섞인 표현을 하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재작년 말부터는 맑고 밝은 모습을 거의 회복했다. 그래도 필자는 먼저 손을 벌려 “은혜야! 이제는 주일예배에 참석해야지.”라고 하지 않았다. 이왕 그렇게 된 이상 조금 늦더라도 스스로 나와서 그때부터는 평생 주일을 잘 지키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혜 스스로 교회에 나올 조짐은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약 3달 전쯤 필자는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어르신들이 말수를 잃으면 기억력이 급격히 감퇴하는 현상을 보면서 그때 말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은 다른 동물들에게도 입과 귀와 눈과 코와 피부 등을 주셔서 육신세계를 감지하게 하셨지만 사람에게만은 입이 먹는 기능 외에 말하는 기능을 하도록 만드셨다. 그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의미 있는 말을 하는 삶의 축복과 중요성을 아내에게 도전했다.

 그때부터 아내가 은혜와 도란도란 의미 있는 얘기를 의도적으로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좋아지던 은혜가 더 좋아졌고 엄마와는 거의 친구처럼 되었다. 자녀들이 엄마에게는 쉽게 짜증을 내도 친한 친구에게는 잘 짜증을 내지 않듯이 의미 있는 대화로 엄마와 친한 친구처럼 되니까 옛날 같으면 짜증낼 일도 짜증내지 않았고 조급해할 상황에서도 조급함을 절제했다. 그런 변화를 보면서 필자가 2달 전쯤에 말했다. “여보! 은혜가 앞으로 6개월 전에 다시 교회에 나올 것 같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작년 12월 20일 주일 새벽에 꿈을 꿨다. 꿈속에서 은혜가 죽은 상태였다. 왜 죽었는지는 몰랐어도 죽었다는 인식은 분명했다. 그때 은혜를 이 땅에서 다시 볼 수 없어서 슬펐지만 그래도 천국에 간 사실은 분명했기에 아내를 위로했고 슬픔 중에도 평안이 있었다. 그러다가 꿈에서 깨었다. 안도의 탄식이 나왔다. “아! 꿈이었구나! 은혜가 살아있었구나!”

 그날 오후에 시안 추모공원에서 장인어른 추모예배를 인도할 예정이었기에 새벽에 꿨던 꿈을 인용해 추모예배 설교 준비를 간단히 끝냈다. 대략 이런 설교였다. “오늘 은혜가 꿈속에서 죽은 상태였는데 꿈에서 깨니까 은혜가 살아있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이 땅에 살아있는 것도 복이지만 천국은 더욱 복된 곳입니다. 지금 천국에 계신 장인어른은 하나님께서 부활시켜주신다고 해도 세상에 다시 오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열심히 살다가 우리 모두 좋은 천국에 갑시다.”

 그렇게 설교를 준비했는데 무슨 일인지 그 날 오후에 은혜가 할아버지 추모예배에 참석했다. 그때 4년 반 만에 갑자기 예배에 참석한 은혜 때문에 처음에 설교할 때 더듬거렸다. 예배에 참석한 은혜 앞에서 “오늘 새벽에 은혜가 꿈속에서 죽은 상태였었는데...”라는 설교할 수 없어서 더듬거리다가 “오늘 새벽에 제가 아주 사랑했던 사람이 꿈속에서 죽은 상태였었는데...”라고 설교를 시작했고 “앞으로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열심히 살다가 다 천국에 갑시다.”라고 설교를 마쳤다. 그 날 은혜가 저녁까지 다른 가족 및 친지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마침내 작년 12월 31일 송구영신 예배 때 은혜가 4년 반 만에 처음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렸다. 그때는 은혜가 처음 태어날 때만큼 기뻤다. 송구영신 예배 후 은혜를 꼭 안아주고 말을 텄지만 서로 쑥스러워서 얼굴은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여보! 은혜가 다시 예배에 나와서 좋은데 은혜가 계속 주일성수를 잘할까요? 새로운 기도제목이 또 생겼네요.” 느낌상 계속 주일성수를 할 것 같았다. 며칠 후 금년 첫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은혜를 다시 꼭 안아주면서 4년 반 만에 은혜 얼굴을 처음으로 자세히 보았다. 예쁘게 많이 변해 있었다.

 사람은 말한 대로 될 때가 많다. 필자가 청소년 때 부모님 속을 많이 썩이다가 20살이 되던 1980년 3월에 이런 결심을 했다. “이제 방황은 끝났다. 앞으로는 평생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 그 후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거의 그 다짐대로 살아왔다. 예전에 아내가 은혜 문제로 힘들어하면 필자가 과거 얘기를 해주면서 가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늦게 철이 들었는데 은혜는 나보다도 3년쯤 더 늦게 철들 것 같아요.” 금년에 은혜가 23살이 되었으니 대략 말한 대로 되는 것 같다.

 주일성수 문제로 딸의 얼굴조차 쳐다볼 수도 없었던 지난 4년 반의 세월이었지만 그 기간에도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비록 직접 말은 안했지만 아내를 통해 딸의 진학문제, 진로문제, 친구문제, 여행문제, 그리고 심리문제까지 세심하게 원격조종을 했다. 주일성수의 위대한 가치를 깊이 마음에 각인시킬 목적으로 침묵은 했지만 침묵 속에도 깊고 세심한 사랑이 바탕으로 깔려 있었다. 가끔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가 있다. 그 침묵에도 하나님의 세심한 사랑의 손길과 선한 목적이 반드시 있고 결국 최종 승리가 있을 것이다.

<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라 >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를 외면하지 않는다. 복잡한 전자회로를 보면 일반인들은 어떤 용도와 기능을 가졌는지 잘 몰라도 그 회로를 설계한 사람은 잘 안다. 그처럼 복잡하게 얽힌 인생길과 상황과 미래를 사람은 잘 몰라도 하나님은 다 아신다. 진리와 사실은 언젠가 드러난다. 감춰진 거짓도 언젠가는 드러나고 감춰진 선행도 언젠가는 드러난다. 혹시 이 땅에서 드러나지 않으면 나중에 천국 보응과 천국 보상으로 연결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 비밀이란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형편을 다 안다는 것은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눅 12:4).” 예수님이 제자들을 ‘내 친구’라고 친밀하게 호칭하면서 몸을 죽일 수는 있지만 영혼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세상 대적이나 사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무 육신의 편안함만 추구하지 말라. 육신이 편해지면 은혜를 잊기 쉽다. 사람은 생각대로 살기보다 사는 대로 생각할 때가 많다. 편안하고 안락해지면 변화를 싫어하게 되고 십자가의 말씀이 불편하게 여겨지게 된다. 그러나 십자가가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전1:18). 십자가를 외면하면 참된 은혜는 멀어진다. 섬 주민들이 준 로터스 열매를 먹고 귀향을 잊은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처럼 세상 것에 취하면 진실한 친구 되신 하나님을 잃는다.

 하나님은 사소한 잘못까지 지적하고 늘 하지 말라고 하는 엄격한 사감이 아니다. 가끔 보면 신실한 성도들도 큰 잘못을 범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나쁜 허물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허물을 깨닫고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은 그 허물을 극복할 은혜를 내려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가혹한 사감이 아닌 다정한 친구와 같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꿈을 품고 사는 친구를 원하신다.

 요새 아내가 딸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딸들은 엄마를 베스트프렌드라고 얘기한다. 대화를 많이 하면서 딸들이 점점 외향적이 되어가고 있고 이해심도 늘어나고 있다. 부모는 투정의 대상이 되지만 좋은 친구는 잃고 싶지 않기에 참고 이해하게 된다. 결국 잔소리하는 ‘사감 부모’가 아닌 대화하는 ‘친구 부모’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셨고 우리도 친구처럼 여겨주신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사실을 알면 자존감과 자신감이 얼마나 커지겠는가?

 예수님의 친구 되어주신다면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할 것이 없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에 대한 경외하는 두려움은 더 있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무서워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라는 반어법적인 말씀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을 가지면 세상의 어떤 것도 두렵지 않게 된다.

<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라 >

 하나님은 때로 고난도 허락하시고 고난 중에 침묵하시기도 한다. 그때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고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않고 자상하게 돌봐주신다.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인생을 지키는 줄 알지만 하나님이 세세하게 그 인생을 지켜주시는 것이다. 역사에는 우연이 없고 모든 것이 필연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재수 없다! 재수가 좋아서!”란 말을 쓰지 말라. 모든 사건과 역사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구약 성경대로라면 메시야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해야 했다. 그 메시야 탄생이 이뤄지도록 당시 로마 황제 아구스도는 즉위 19년 만에 모든 백성이 원적지로 돌아가 호적을 신고하라는 호적령을 내렸다. 그래서 북쪽 갈릴리 나사렛에 살던 요셉과 마리아 부부가 원적지인 베들레헴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때 호적령을 조금만 먼저 내리거나 나중에 내렸어도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은 무산된다. 얼마나 기막힌 하나님의 섭리인가? 하나님은 이방 왕의 정치수단까지 활용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우연히 멋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성도의 고난도 다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이뤄진 것이다. 지금 걷는 모든 발자국과 지금 아파하는 모든 고통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있다. 자신이 선 아픈 자리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여전히 함께하고 있고 지금 이만큼 사는 것도 하나님의 손길이 배후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손길은 한 번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고 하나님은 기억에서 우리를 한 번도 지우신 적이 없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라. 현재 당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에 의해서 펼쳐졌음을 잊지 말고 아무리 환경이 힘들어도 자신을 오발탄처럼 생각하지 말라. 때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있음을 생각하고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어떤 현실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하나님이다(눅 12:7). 사람은 자기 머리털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의 머리털이 어제는 9만 7천 개였는데 어제 200개 빠지고 100개가 새로 나서 오늘은 9만 6천 9백 개라고 세시고 계신다. 그런 세심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성도들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어떤 것이 가진 그만큼의 가치를 나타낼 때 ‘짜리’란 접미사를 쓴다. 성도는 1조 원짜리 가치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의 목숨과 맞바꾼 예수님짜리 가치를 가진 존재다. 물론 성도도 병들고 실패하고 고난도 당하고 죽기도 하고 이별도 겪는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길 하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 어려움 다음에는 하나님의 선한 플랜이 반드시 있다.

 성경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은 세심한 손길로 지켜주신다고 했다. 하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를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겠는가? 요새 경제가 어렵지만 너무 염려하지 말라. 참새를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도 먹여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버리지 않는다. 실패했어도 낙심하지 말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원망하지 말고 기다림이 오래 되어도 불안해하지 말라.  하나님은 성도의 간절한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어느 날, 울새가 참새에게 말했다. “얘! 참 이상한 일이다. 왜 사람들은 저렇게 걱정과 불안이 많을까?” 참새가 대답했다. “아마 저들에게는 나와 너를 돌봐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없나봐.” 새도 돌봐주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는 더욱 자상하게 돌봐주실 것이다. 너무 염려하며 살지 말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이뤄질 것이다.

 월새기(월간 새벽기도)는 선교차원에서 저렴하게 보급하기에 월새기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문서선교의 비전에 동참하려는 성도들의 재헌신이 있어야 사역이 지속될 수 있다. 처음에 1년 정도 지나면 월새기로 은혜 받은 성도들 중에 문서선교의 비전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헌신의 선순환 구조가 이뤄짐으로 월새기 사역이 잘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 선순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아서 지금 월새기 사역이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이 고개를 잘 넘고 헌신의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도록 기도하는 손길이 많이 필요한 시점이다.

 꿈과 비전을 향해 나가다 보면 어려운 순간은 늘 있기 마련이다. 특히 찬란한 꿈과 비전 중에 쉽게 이뤄지는 꿈과 비전은 없다. 꿈과 비전과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쉽지 않은 현실은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다. 그래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얼마든지 현실 극복의 길은 있다. 한 사람의 과거와 현실로 한 사람의 미래를 단정하지 말라. 나 자신도 앞으로 얼마든지 큰 인물이 될 수 있음을 믿고 늘 담대한 믿음의 도전과 발걸음을 통해 꿈과 비전을 멋지게 이뤄내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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