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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수23: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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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788) 2016.2.2 |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라 (여호수아 23장 1-16절)
<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라 >
여호수아 23장은 여호수아의 1차 고별설교가 기록된 장이다.
여호수아의 1차 고별설교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란 말이다. 몇 단어에 한번씩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이렇게 하셨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의지하라! 가까이 하라! 사랑하라!”고 계속 강조한다. 가나안 정복전쟁의 주인공은 여호수아였지만 정작 여호수아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하셨다”고 강조했다. 그 말은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속히
멸망한다(16절).
은혜의 자리에서 퇴보하면 오히려 더 큰 것을 잃는다(12-13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퇴보하지
말라. 뒤를 돌아보지 말라. 사람들은 간혹 “내가 왕년에는 어땠다”고 하면 왕년을 자랑한다. 그 말은 지금 퇴보하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의 좋은
기억은 큰 힘이 되지만 과거에 믿음 생활을 잘하고 지금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잘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다시 세상을
바라보면 과거의 신앙이 아무리 화려했어도 축복이 끊어진다.
성도가 세상 것을 돌아보면 하나님은 대적을 쫓아내지 않겠다고
하셨다(13절). 세상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사탄에게 당하든, 문제에서 신음하든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무서운 것이다. 부부관계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다. 처음에는 무관심이 편하게 보이지만 사실 무관심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내가 상대방에게 화가 난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다는 말이다. 아직도 애정이 있으니까 화가 나는 것이다.
상대방이 잘못해도 속상한 것도 없고 무관심하면 그
관계는 더 회복하기 힘들다. 상담에서도 서로 무관심하면 도와 줄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세상을 바라보면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결국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세상 것들이 올무와 덫과 채찍과 가시가 되고 결국 축복의 자리에서 끊어진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퇴보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굳게 서라.
< 은혜의 기억을 남기라 >
은혜
받은 기억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 기억은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자양분이 되어 삶을 진지하게 만들고 어려운 고난도 이기게 만든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나중에 예수님께 돌아와 죽도록 충성했다. 예수님과 지냈던 은혜의 세월들에 대한 기억들이 있었기에 베드로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소중한 기억들이 언제 주어지는가?
첫째, 희생과 헌신이 있을 때 주어진다. 희생과 헌신이 없으면
“아무개는 잘 먹고 잘 살다 갔다!”는 것밖에 남는 것이 없게 된다. 그러나 희생하고 헌신했던 삶은 아름다운 기억을 오래 남긴다. 한때
우리나라에 “하면 된다!”는 사상이 크게 유행했다. 그 사상은 성공주의를 자극하며 사람들에게 성공을 향한 열정은 주었지만 바른 방향은 주지
못해서 잠깐의 성공신화들은 만들었지만 사회를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폐단도 낳았다. 그래서 지금은 “하면 된다!”고 해도 그 폐단과 부작용을
알아버린 사람들이 냉소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왜 “하면 된다!”는 사상이 잠깐의 유행으로 끝나게 되었는가? “어떻게 하면
된다!”는 전제가 없는 상태에서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하면 된다!”는 사상으로 악용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룬
성공은 감격과 감동을 주지 못하고 좋은 기억도 남기지 못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마키아벨리즘은 목적도 이루지 못한다. 세상은 “하면
된다!”고 가르쳐도 교회는 “희생하면 된다! 헌신하면 된다! 바로 해야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희생하고 헌신하고 바로 할 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진짜 ‘되는 역사’가 있다.
둘째, 헌신 및 희생과 더불어 감사가 있어야 한다. 감사가 넘치는 사람에게만 은혜 받은 기억이
쌓이게 된다. 아무리 잘해주어도 감사를 모르는 인생에게는 깊은 감격이 없다. 깊은 감격이 없으면 그 일이 깊이 각인되지 않는다. 감사가 있어야
희생과 헌신의 가치도 빛나게 된다. 특히 어려울 때의 감사는 더욱 감격적인 기억을 남긴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을 공휴일로 만든 법 제정 년도는
1863년으로서 남북전쟁이 치열했던 링컨 대통령 때였다. 고통 중에 감사하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다.
지나온 삶을 감사하면 현재의
삶은 물론 미래의 삶도 의미 있게 된다. 기도할 때도 감사하면서 기도하는 기도가 최고로 응답받는 기도가 된다(빌 4:6). 결국 행복하게 살려면
두 가지 문이 열려야 한다. 하나는 ‘희생과 헌신의 문’이고 또 하나는 ‘감격과 감사의 문’이다. 그 두 가지 문이 열리면 삶의 순간들이
은혜로운 기억이 되어 오래 잊히지 않을 것이고 그 아름다운 기억들이 복된 삶으로 인도할 것이고 죽을 때도 행복한 미소를 선사할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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