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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2964 추천 수 0 2016.05.22 15: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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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1:23-25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1장 23절-25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23절-24절: 사람이 무엇을 구하고 사느냐 따라 하나님 앞에 자기의 존귀 영광성이 정해진다.


가만 보면 구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 있고, 구하기는 구하는데 땅에 속한 것을 구하는 사람이 있고, 하늘에 속한 것을 구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날 현재 자기는 어디에 속한 것을 구하는 사람인가? 예수 믿는 내가 어디에 속한 것을 구하는 사람인가에 따라 자기의 존귀 영광성이 결정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머릿속에 든 대로 입으로 나오는 것인데, 예수 믿는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실수가 나오지 않도록 차원 높은 것을 구하는 사람이 돼야지 예수 믿는 사람이 이방인과 똑같은 것을 구한다면 예수님이 욕을 먹고 교회가 욕을 먹는다.


안 믿는 사람 중에도 이성적인 것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물론 이런 사람도 그 소원 목적이야 세상이지만 그러나 학문을 구하는 사람은 그래도 일반적으로 보면 차원이 높다. 그런데 믿는 나는 무엇을 구하고 있느냐?


25절: ‘서서 기도할 때마다.’ 이 말씀은 ‘앉아서 기도한다. 서서 기도한다. 누워서 기도한다’ 그걸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앞에서도 말했지만 고차원적인 힘 있는 신앙으로 바로 세우고자 말씀하심이다.


‘먼저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으면 용납하라. 용서해 줘라. 그래야만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용서해 주신다’고 그랬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그런 말씀도 하셨다.


용서해주고 용서를 받아야 무엇을 받기가 쉬우냐? 원수 맺어 있으면 얻어맞기 쉽다. 성경에 자기는 많은 죄를 용서를 받았는데 동기간의 죄를 용서해주지 못해서 감옥에 간 자가 있다. 딱 가두어져 버렸다.


우리가 아가페 사랑으로 죄 사함을 받았는데 이런 큰 은혜를 받고서도 인간끼리의 죄 용서가 안 된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 갇혀버린다. 자기 생각 속에 스스로 갇혀져 버린다. 자유가 안 된다. 속 좁은 사람, 약한 사람, 못난 사람, 불쌍하고 처절한 사람은 창살 없는 감옥 속에서 혼자 다투고 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창살 없는 감옥 속에 갇힌 적이 있느냐? 부모님들이 무슨 걱정을 하느라고 밤새도록 한 잠도 못하고 뜬 눈으로 새는 경우가 있느냐? 그게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거다.


우리가 옳은 이치로 마음 갖는 것을 무시하고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가 상달이 되겠느냐? 사람을 보기 싫다고 하는데 어떻게 기도가 상달이 되겠느냐?


23절을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워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앞에서 말씀한 용서하는 그게 믿어지느냐? ‘내가 저 사람을 용서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나의 죄를 용서해준다고 하는 이게 믿어지느냐? 이게 믿어지면 용서가 될 거고, 안 믿어지면 용서가 안 될 것이다.


자기가 남을 용서하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의 죄를 용서해준다는 것을 믿는다면 자기가 남을 용서해주지 않으면 그 자기는 여러 가지 사건 환경적으로 고통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도 믿느냐?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안 믿어지고 자기가 남을 용서하면 자기 죄도 용서받는다는 것만 믿어지느냐?


또 하나는 바늘귀로 약대가 들어간다는 것은 믿어지느냐? 세상 그 어느 인간들에게 물어봐라. 이건 안 믿어지는 거다. 믿음 말고 인간차원에서 그런 말은 없다. 일반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말이다. 그런데 신앙의 세계는 하나님의 주권, 만능자, 창조주, 심판자 앞에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돌아가는 거고, 내가 사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살고 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 돌아가는 거다.


과학자가 아무리 이러쿵저러쿵 해도 그건 이미 창조된 속에서 말하는 거지 자기가 스스로 만물의 법칙을 만들었느냐? 하나님께서 다 하신 거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편으로 건 다 하신 것이다. 그게 안 믿어지느냐? 자기 좁은 머리로 그게 안 믿어지고 그게 이상하다고 하느냐?


자기가 예수 믿어진 게 믿어서 된 거냐, 믿어지니까 믿은 것이냐? 누가 한 거냐?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내가 믿어야지’ 하면 믿어지는 거냐? 안 믿어지는 거다. ‘믿어야지’ 하는 것은 이미 안 믿고 있다는 증거다. 믿어지는 사람은 이미 믿고 있으니까 ‘믿어야지’ 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거다. 속에서 생각이 그렇게 힘이 든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나무를 저주를 해 버리니까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린 것이냐, 열매 없는 나무는 이미 저주로 살고 있다는 표시로써 그 증거로 저주를 하니 마른 것이냐? 이 나무는 주님이 말라지라고 안 해도 이미 말라지게 돼 있다. 왜냐? 이미 말랐으니까.


어떤 면에서 말랐느냐? 이 나무는 무엇이 없는 나무냐? 영적으로 쉽게 말하면 자기 속에 하나님의 속성 성품 성령의 열매가 없이 살았다면 이 사람은 저주 받은 나무처럼 마른 사람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이 없는 것을 말랐다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많이 배웠으면 ‘배움의 옷을 입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나도 못 배웠으면 이 사람은 배움에 있어서 하나도 모른다. 그러니까 헐벗은 사람과 같다. 다시 말하면 부끄러운 사람이라. 아는 면에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니 부끄러운 사람이라. 그럼 뭐가 부끄러운 거냐? 모르면 옷을 안 입은 사람과 같아서 그게 부끄러운 거다. 정신세계를 그렇게 표현하는 거다.


열매가 있는 나무를 저주한 것이 아니라 열매가 없는 나무를 저주한 것이다. 저주를 한 것은 그 나무는 저주하기 이전에 이미 저주의 나무였기 때문에 눈으로 나타나 보여지게 저주를 함으로써 ‘이래도 저주된 나무였던 것을 모르겠느냐’ 하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생명의 말씀을 먹음으로 영능의 성품이 돼야 하는데 그게 없으면 그 사람의 신앙은 말랐다. 열매가 없는 신앙이라.


말씀을 붙잡고 살면 생명의 사람 축복의 사람이 되고, 진리생명의 말씀을 안 붙잡고 있으면 그 교훈을 못 받으면 그 사람은 자동적으로 저주의 사람이 된다. 저주를 안 해도 저주의 사람이 된다. ‘사람이 밥을 안 먹으면 죽는다’ 그 말을 하지 않아도 자기가 밥을 안 먹으면 누가 말을 하나 안 하나 죽는 거다. ‘나는 오늘부터 영원히 밥을 안 먹겠다’ 하면 이 사람의 결과는 죽는 거다.


그러니까 열매가 있는 사람은 말씀을 붙들고 산 사람이요, 이 사람에게는 축복이 들어갔고 이미 축복의 사람이다. 그러나 열매가 없는 사람은 이미 저주의 사람이다. 말씀에 의해서 축복이고 저주가 되는 거다. 말씀대로 순종된 나무는 열매가 얼린다. ‘열매가 열려라’ 안 해도 말씀순종 자체가 열매가 열리는 과정의 삶이다. 그러나 말씀대로 안 한 불순종된 나무는 저주로 그대로 들어가는 거다. 순종이 되면 축복으로 들어가고, 불순종이 되면 저주로 들어가는 거다. 이게 창조주의 말씀대로 된 것이다.


이건 일반인간의 두뇌로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이해가 안 되는 거다. 신앙의 세계는 말씀으로 되는 것이므로 그렇게 되는 거다. 이게 믿어지느냐? 이 생각을 넘어가는 게 왜 이리 힘이 드느냐?


‘이 산더러 들리워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세상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된다’ 한 이게 누구의 말씀이냐? 인간이 하는 말이냐, 만능의 능력을 가지고 그 역사를 일으키시는 그 분의 말씀이냐? 이 말이 산이 날아가고 던져지고 하는 그 분의 만능의 능력을 말하는 거냐, 그 표현을 하는 것은 주님의 만능의 능력이 어떻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거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럴 정도로의 그 분의 능력이 내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냐, 안 이뤄지는 것이냐? 이뤄지는 것이다. 당신의 만능의 능력이 우리 속에서 이뤄지는 것을 표현을 하려니 말도 되지 않는 것 같은 말을 가지고 와서 당신의 능력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산이고 뽕나무고 약대고 자꾸 물질 그 자체를 생각하려니 이 말씀이 안 믿어지는 것이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으면 자기 내장이 다 보인다. 그 속의 그걸 누가 만든 것이냐? 그냥 생긴 거냐? 자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만들었느냐? 그거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그게 믿어지느냐? 그냥 생긴 것이라고 한다면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난 그 목적관이 없어진다.


‘말씀대로 믿고 구하면.’ 말씀대로 되는 것은 믿을 수 있느냐? ‘말씀대로 믿고 구하면 이뤄진다’ 하면 기도할 수 있느냐, ‘말씀대로 되는 걸 믿고 구해도 안 이뤄진다’ 하면 기도할 수 있느냐? 뭘 기도하는 것이냐? 하나님은 ‘네가 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내가 어떤 방법으로 건 그걸 덤으로 주마’ 그러는데 인본주의 사고방식의 신앙을 가진 자들은 그게 안 믿어져서 자기 노력도 안 하고 구해도 쓸데없는 것을 달라고만 하고 있으니 되게 미련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는 걸 구하는 그 신앙이 옳은 이치냐, 자기 생각대로 되는 걸 구하는 게 옳은 이치냐? 하나님의 말씀은 나 잘되게 해 주려고 하느냐, 못되게 해 주려고 그러느냐? 그게 그렇게 안 믿어지느냐? 눈으로 보여지는 건 주실 줄 믿고 구하면서 그것보다 귀한 것은 자기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 하나님의 존귀 영광성의 질이 자기 속에서 이뤄지는 것인데 왜 그건 안 믿고 안 구하느냐?


‘무엇이든 믿고 구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무엇이든지’ 라고 말씀을 하시는 그 분이 수준적 존귀 영광적 모든 능력적 면에서 어떤 분이냐? 내가 그 분을 안다면 나에게 ‘뭐든지 구하라’ 할 때 나는 뭘 구하겠느냐? 내 입에서 구할 게 뭐냐? 그 분에게 만능의 능력이 있고, 신령계와 물질계가 다 있고, 존귀 영광성이 있는데 그 분이 나를 보고 ‘무엇이든지 구하라’ 한다면 내 입에서 구할 게 뭐냐? 그 분은 만능의 능력자시니까 내 차원에서 ‘내가 이것도 있어야 되겠고 저것도 있어야 되겠고’ 그런 거냐? 그러면 그렇게 구할 때 그 분이 내 기도소리를 듣고 내 차원을 어떻게 보실까?


‘무엇이든지’ 하는 그 속에는 당신의 마음속에서 당신의 만능의 능력과 하늘나라를 나에게 주고 싶어서 그렇게 표현을 하시는 건데 내 쪽에서 돈도 구하고 차도 구하고 집도 구하고 있다면 내가 그 분을 어떻게 보는 차원이 되는 것이냐? 내가 그 분을 존귀 영광성으로 취급을 한 거냐, 그 분을 아주 낮게 취급을 한 것이냐? 그 분을 낮게 취급한 것이 된다.


당신은 나를 당신의 자녀라고 취급을 하고 있는데 나는 낮은 것을 구하고 있다면 그 분이 나를 쳐다보면서 ‘네가 돼지냐’ 할 것이다. 대학까지 보내놨더니 입에서 나오는 말이 ‘돈 백 원만 줘. 사탕 하나 사 먹게’ 한다면 부모가 그 자식을 뭐라고 취급을 할까? 그 자식이 머리가 바로 된 거냐? 오늘날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걸 생각을 해 보면 당신이 우리에게 뭘 주고 싶어서 이련 표현으로 말씀하시는 건지 말귀를 알아들어야 한다.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좋겠느냐, 말씀대로 되는 게 좋겠느냐? 뭐든지 열심 충성봉사 그 이전에 나에게 뭘 주고 싶어서 ‘무엇이든지’ 그렇게 말씀하실까? 자기가 얻을 게 뭐냐?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로서 뭘 기도해야 될까?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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