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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1: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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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791) 2016.2.5 |
요한계시록(8) 진실한 삶의 최고 인증표식 (요한계시록 1장 12-13절)
< 진실한 삶의 최고 인증 표식 >
일전에 한 목회자 부부가 필자가 섬기는 교회를 방문했다.
미국에서 큰 이민 교회를 섬기다가 65세 이전에 아무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조기에 은퇴하고 중국 오지로 파송기관도 없이 선교하러
떠나는 목회자 부부였다. 파송기관도 없이 선교를 떠나는 것은 후원받지 않고 조용히 선교하겠다는 뜻이다. 필자가 “목사님!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하세요?”라고 걱정스럽게 묻자 그가 말했다. “이 목사님! 그곳은 생활비가 별로 들지 않아요.”
그는 원로목사 자리도 사양했다.
그가 섬기던 교회는 상당히 큰 이민교회였기에 원로목사로 일정액의 사례를 받아도 노후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지만 원로목사 사례비도 받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영광스런 자리에서 내려와 빈손으로 선교를 떠나면서 오지에서 어르신 몇 분과 어린이 몇 명을 섬기며 노후를 보내겠다고 하니까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그런 목회자가 있기에 아직 한국 교회는 소망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필자의 교회를 방문한 목적은 “내가
이렇게 선교하러 가니까 기도해 달라.”고 알리려고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은퇴하며 받은 사례비의 십일조를 선교지로 떠나기 전에 드리고 가려고
방문한 것이었다. 그 십일조가 선교지에서 얼마나 요긴하게 쓰이겠는가? 그래도 그것까지 놓고 가려는 모습을 통해 후배 목사를 격려하려는 마음을
읽고 며칠 동안 감동적인 영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선교는 ‘조용한 헌신’이다. 영광의 자리를 내놓고 조기 은퇴한 목회자가
모든 물질적인 혜택을 거부하고 어르신 6명과 어린이 6명을 섬기며 조용히 여생을 바치겠다는 마음이 바로 참된 선교다. 그래서 욕심과 외형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참된 선교가 가능하다. 요새 불신자들이 진짜 불신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교회’다. 그들은 교회로부터 성육신의 사랑을
기대한다. 그 기대가 깨지지 않도록 아름다운 퇴장 등으로 그들을 감동시켜야 한다. ‘아름다운 퇴장’은 진실한 인생을 살았다는 최고의 인증
표식이다.
< 아름다운 퇴장을 꿈꾸라 >
순리를 따른 아름다운 퇴장은 큰 감동과 선한 영향력을 낳는다.
인생은 처음도 중요하지만 나중은 더 중요하다. 순명을 외면하면 강제퇴장을 당하지만 순명을 따라 스스로 퇴장하면 더 아름답고 빛나는 인생이 된다.
어떤 화장실 변기 앞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입장 때보다 퇴장 때 진가가
나타난다. 왜 사람들은 퇴장을 두려워하는가? 퇴장을 자기 존재의 절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일전에 필자가 속한 ‘기독교
선교연맹(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이 필리핀에서 철수할 때였다. 수십 년 간의 필리핀 선교로 필리핀에서
제일 큰 교단이 되자 선교사들을 철수시키고 다른 미전도 지역으로 재배치하게 되었다. 그때 수천 만 불에 달하는 모든 재산권을 필리핀 교회에
넘겨주면서 상징적인 의미로 단 1불을 받고 넘겨주었다. 얼마나 멋진 퇴장인가?
자기를 깎아내야 진짜 선교는 가능하다.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은 남에게 퍼주고 선교하느라 130년이 넘는 역사에 비해서 미국 내에 큰 교회가 적은 편이다. 미국 내의 2200교회 중에서 제일 큰
교회가 성인 2천 명 정도다. 분립과 선교에 힘쓰면 외형은 커지지 않겠지만 그 영향력은 점차 커지고 있다. 결국 분립과 선교는 내적인 영향력을
키우는 가장 멋지고 복된 일이다. 그런 멋지고 복된 일을 미루면 기다리는 것은 ‘강제퇴장’이 된다.
이제 교회들은 여력이 있다면
힘써 분립 교회 개척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한국교회 전체가 사는 길이다. 교회가 스스로 멋지게 퇴장하며 수많은 ‘딸 교회’의 거름이 되어주면
그 모 교회는 존경 받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고 영향력도 더욱 커지게 된다. 그런 축복을 외면하고 스스로 분립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강제로 교회를
흩으시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스스로 죽으면 계속 살지만 스스로 죽지 않으면 강제로 죽는다.
20세기 초, 북한에 엄청난
복음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 지역은 유교가 성행했던 조선시대에 오랫동안 소외된 곳이었기에 그 지역민들의 신앙심이 남달랐다. 그때 큰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 당시 평양 인구의 3분의 2가 신자였고 심지어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란 소리도 들었다. 그때 부흥을 선교로 연결시키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공산주의를 통해 강제로 북한 교회를 쳐서 흩으셨고 그 북한 성도들이 남쪽에 내려와 남한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한국 교회가 힘을 과시하며 분립에 힘쓰지 않으면 북한 교회처럼 될 수 있다. 지금 교회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가벼운
잽(jab)을 맞고 있다. 이때 분립과 선교에 나서지 않으면 더욱 큰 환난의 주먹으로 맞을 수 있다. 요한의 환상에서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있었다는 말은 교회를 주님이 붙들어주시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 환상이다. 교회는 ‘사람의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다. 그 사실을
깨닫고 미래 세대를 위해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면 한국교회는 다시 새롭게 일어설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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