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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와 후대가 복 받는 길

신명기 이한규 목사............... 조회 수 624 추천 수 0 2016.05.27 13:4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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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신4:32-40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792) 2016.2.11 

당대와 후대가 복 받는 길 (신명기 4장 32-40절)


< 좋은 멘토의 중요성 >

 분당에서의 교회개척 초기에 저희 교회에 은수(가명)란 아이가 다녔습니다. 둘째 딸 한나와 친구였는데 얼굴이 연예인처럼 예뻤고 키도 초등학생이 160이 넘을 정도로 컸고 성숙했습니다. 가정도 분당의 중형 아파트에 사는 중산층 이상의 가정이었습니다. 게다가 예절도 바르고 얼굴도 밝았습니다. 멀리서 저를 보면 막 달려와서 “목사님! 안녕하세요?” 하고 밝게 인사하니까 더 예쁘게 보였습니다.

 그 아이가 어느 날부터 교회에 안 나왔습니다. 아이는 나오고 싶어 했지만 성당에 다니는 부모가 못 나오게 했습니다. 그렇다고 성당에 다니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계속 교회출석을 권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약 2년 후 그 아이가 학원 건물 5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모는 딸의 정확한 사인을 감추려고 했습니다. 경찰도 사건을 금방 종결시켰습니다. 평소에 워낙 밝은 아이였기에 저는 자살소식이 잘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워낙 외모가 탁월했기에 강제폭행을 피하려다가 생긴 사고사나 자살로 위장한 타살 등등의 여러 의문도 생겼습니다. 그때 가장 안타까웠던 생각은 왜 교회를 잘 다니는 아이를 부모가 막았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엄마는 딸아이의 죽음으로 땅을 치고 통곡했습니다.

 자녀를 학교나 학원에만 맡길 수 없습니다. 이단 교회가 아닌 정상 교회라면 영혼을 살피고 좋은 말씀을 들려주고 기도해주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교회만큼 자녀를 안심하고 맡기기에 좋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십일조 문제로 교회가 싫다고 하지만 자발적인 사랑의 십일조가 뭐가 나쁩니까? 십일조에 마음이 안 열렸으면 안 드리면 되지 남이 드리는 것까지 잘못이라고 할 일은 아닙니다. 한국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십이조나 십삼조도 기꺼이 씁니다. 그처럼 교회를 사랑하면 십일조 이상도 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의 위선에 실망했다고 자녀들의 교회출석을 막습니다. 가끔 목회자의 추문이 언론에 대서특필되거나 평소 행실이 별로인 사람이 갑자기 목사가 되어 나타나면 목회자에 대한 불신과 실망감이 커집니다. 그러나 크게 새삼스러울 것은 없습니다. 인간 사회에는 늘 가식도 있고 가짜도 있습니다. 진실한 사람도 어느 때는 진실하지 못할 수 있고 인격적인 사람도 어느 때는 비인격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 현실이 있다고 그 현실을 보편화시켜 진리를 포기하고 교회출석을 포기한다면 사탄의 작전에 말려드는 셈입니다.

 어떤 사람은 잘못된 교회에서 잘못 배워 바른 길에서 이탈하고 극단주의에 빠질까봐 자녀들의 교회출석을 막습니다. 그런 염려는 충분히 이해됩니다. 가짜 기적과 가짜 치유와 가짜 은사를 내세워 영혼을 망치는 교회도 분명히 있습니다. 가짜 기적과 가짜 치유와 가짜 은사를 내세워 미혹하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을 비판하면 마치 기적과 치유와 은사를 부인한다고 매도하는 것입니다. 가짜 기적과 가짜 치유와 가짜 은사에 속지 말라는 말은 기적과 치유와 은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 외에도 교회와 교인과 목회자의 허물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일반인들에게는 보편적인 허물이 교회와 교인의 경우에는 큰 추문이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도덕적 기준을 달리 두고 위선을 논할 때도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은 다 약한 존재요 늘 넘어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믿지 말되 누구를 쉽게 위선자라고 말하지도 마십시오. 더 나아가 교회와 관련된 추문에 휘둘려 인생과 가정과 자녀의 운명을 걸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교인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교회출석을 포기하지만 그런 사기도 세상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그처럼 도덕적인 수준을 달리 적용해서 위선을 논하고 기독교를 배척하는 것은 불행한 태도입니다. 사실상 도덕 수준을 달리 두는 것 자체가 기독교인들은 더 나아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위선이든 어떻든 더 나아지고자 하는 추구까지 막는다면 그것이 자녀들에게 유익이 될까요? 위선자가 되면 안 되지만 남을 위선자라고 쉽게 정죄해도 안 됩니다. 자기 허물을 생각하면 그런 정죄와 비판이 쉽게 나올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선에 대한 추구가 생길 때부터 동시에 위선의 가능성도 생깁니다. 선을 추구할 마음조차 없다면 위선자란 말을 별로 들을 일도 없습니다. 선의 추구가 있기에 위선자란 말도 더 듣지만 그나마 양심은 덜 죽습니다. 그 양심이 영혼과 가정과 인간관계를 조금이라도 더 지켜주는 내적인 파수꾼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안 믿어도 현명한 부모는 자녀의 믿음생활을 막지 않습니다. 자녀의 믿음생활을 막고 자녀의 축복을 바라는 것은 모순입니다.

 물론 자녀가 이단 교회에 빠져서 기복주의와 신비주의에 빠지고 균형감각과 현실성을 상실하면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아빠는 자기는 믿지 않아도 자녀들이 교회에 간다고 하면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최소한 자녀가 바른 교회를 다니게 합니다. 인터넷 검색만 해도 잘못된 교회는 거의 걸러집니다. 그것도 일종의 지혜입니다. 그렇게 해서 바른 교회라고 판단되면 자녀가 교회를 잘 다니도록 배려하는 것이 자녀교육 문제에서 천군만마를 얻는 비결입니다. 그런 교육적인 지혜를 외면했다가 나중에 통곡하는 부모가 얼마나 많습니까?

 혼자 힘으로 자녀를 잘 키울 수 있는 부모는 별로 없습니다. 자녀가 잘 되려면 좋은 멘토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좋은 목회자만큼 좋은 멘토는 없고 좋은 교회만큼 좋은 멘토 공동체는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성적관리만 하지 말고 태도와 인격과 성격관리도 하고 더 나아가 자녀가 잘하는 분야의 스승이나 장인을 만나서 재능이 발휘되도록 스승관리나 장인관리도 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잘해야 할 것은 자녀에게 믿음과 사랑을 전해줄 좋은 멘토를 만날 기회를 만들어주고 좋은 멘토와 연결시켜주는 멘토관리입니다.

 참된 믿음의 유무를 떠나 지혜로운 종교인을 옆에 두는 것은 대통령도 필요하고 정치인도 필요하고 기업인도 필요합니다. 개인 무속인을 두어 수시로 점을 치라는 말이 아니라 종교인의 지혜도 빌리고 기도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종교인이 때로 밀어주기도 하고 때로 브레이크도 걸어주면 실패가 크게 줄어듭니다. 특히 좋은 목회자가 좋은 멘토가 되어준다면 자녀교육 문제에서 천군만마를 얻게 됩니다. 그런 소중한 축복을 교회관련 추문 때문에 포기하거나 막는다면 얼마나 큰 손실입니까?

 대형교회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장점이 많은 편이지만 성경적인 관점에서는 단점이 많은 편입니다. 그 중에 치명적인 단점 중의 하나가 수직관계의 단절입니다. 교회가 크니까 같은 또래로 부서를 나누면서 ‘또래와의 교제’는 얻지만 ‘세대 간의 교훈’은 얻지 못합니다. 요새 가정과 사회도 세대 단절도 신음하는데 교회에서조차 세대 단절이 극복되지 못한다면 자녀들은 통전적인 시각을 가질 기회를 잃습니다.

 또래 친구와 어울리면 ‘재미’는 얻지만 ‘의미’는 별로 얻지 못합니다. 물론 좋은 친구를 사귀면 좋지만 대개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또래 친구와 어울리다가 같이 길을 잃을 때도 많습니다. 반면에 연로하신 어르신들과 어울리면 어르신들의 식탁 봉사 등을 통해 섬김과 충성과 효성을 배우고 어르신들의 아낌없는 기도와 관심과 사랑을 받습니다. 또한 장년의 부모 세대와 어울리면 귀한 멘토도 얻고 지혜도 얻습니다. 또한 손아래 어린이들과 어울리면 순수함도 찾고 어린이들을 돕고 이끌면서 의젓함과 리더십도 배웁니다. 얼마나 복된 세대 소통입니까?

 가정은 작은 교회이고 교회는 큰 가정입니다. 교회는 3대가 어울릴 때 교회답게 됩니다. 또래와만 어울리면 통전적인 사고와 시야를 얻기 힘듭니다. 사회는 세대 단절로 진행되어도 교회는 세대 통합의 역사를 이뤄내야 합니다. 물론 인생에서 또래 친구도 중요하지만 또래 친구는 학교나 다른 사회 공동체에서도 얼마든지 사귈 수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까지 또래 친구와만 어울리려고 하면 또래 친구는 대개 미성숙한 경우가 많은데 그런 친구와 어울리며 지내다가 그 친구와 멀어지면 교회도 멀어지고 신앙도 멀어질 때가 많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또래 친구나 동료 교인보다 좋은 목회자 멘토입니다. 그러나 좋은 인간 멘토보다 더욱 중요한 가장 위대하신 멘토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참된 성공과 축복과 행복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가지게 하고 예배하는 삶과 감사하는 삶을 가르쳐서 자녀의 복된 삶을 예비해야 합니다. 복은 후대까지 지속되어야 진짜 복입니다.

< 당대와 후대가 복 받는 길 >

 신명기는 가나안 땅을 앞두고 모세가 죽기 전에 했던 세 편의 고별설교로 이뤄진 책입니다. 본문은 1차 고별설교의 결론 부분인데 본문 마지막 구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 이 구절에서 “한없이 오래 산다.”는 말씀은 “오래 장수한다.”는 뜻보다는 “오래 지속된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해야 당대와 후대가 복을 받고 그 복된 삶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을까요?

1.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십시오

 모세는 지나간 날에 있었던 하나님의 기적적인 일을 상고하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위대성을 강조했습니다(32절).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400여 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특별한 사전 준비나 독립운동이나 변변한 무기도 없이 고대 최강국이었던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또한 출애굽 후 40년 동안 약 200만 명이 광야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파죽지세로 많은 족속들을 몰아내고 가나안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손길과 인도와 보호 때문이었음을 상기시킨 것입니다.

 내일의 복을 예비하려면 과거의 복을 깊이 묵상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씽크(생각하다, think)에서 쌩크(감사하다, thank)는 어원이 같습니다. 씽크(생각하다, think)를 통해 쌩크(감사하다, thank)를 하면 쓰라이브(번영하다, thrive)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즉 지난날을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면 미래와 후대에 복된 역사가 넘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모세는 유일신 사상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도전했습니다(35-36절).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말은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순종은 복된 삶을 위한 필수 전제조건입니다. 공동체 생활에서 요구가 많으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지만 동참하고 순종하면 힘을 많이 얻습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려고 희생하고 순종하면 자기만 손해 같지만 오히려 신뢰를 얻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복된 길이 열립니다. 세상에서도 순종하면 길이 잘 열리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얼마나 길이 잘 열리겠습니까?

 말씀은 실천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실천이 없는 지식은 교만을 나타냅니다. 말씀의 실천을 남에게 요구하면 공동체가 피곤해지지만 말씀을 앞서 실천하면 공동체가 힘을 얻습니다. 남에게 요구하는 인간상을 먼저 갖추고 먼저 십자가의 진리를 실천하십시오. 자신이 죽지 않으면 하나님이 자신 안에 묻혀 계시지만 자신이 죽으면 자신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면서 바로 그때 각종 어둠도 사라지고 복된 앞날도 펼쳐질 것입니다.

3. 사랑받는 부모가 되십시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해 큰 권능으로 출애굽의 은혜를 허락하시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려고 한 이유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은 그들의 조상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37-38절). 이 말씀은 사랑받는 조상이 되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자녀가 하나님의 선택된 존재가 되길 원하면 그냥 기도만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사랑 받는 부모가 되려고 하십시오.

 자녀의 축복은 선대가 씨를 뿌린 것에 의해 크게 좌우됩니다. 농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씨앗을 삶아 먹지 않습니다. 씨를 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주신 물질, 직장, 사업, 자녀, 재능, 자리 등을 자신을 위한 양식으로만 삼지 말고 내일과 후대를 위한 축복의 씨앗으로 삼으십시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당대와 후대에 복을 주시고 그 복을 오래도록 지속시켜주실 것입니다(39절).

< 참된 예배자가 되십시오 >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생기는 가장 뚜렷한 삶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주일에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영광 받으시고 다른 많은 복을 내려주십니다. 죄인과 의인의 차이는 예배하는 삶을 통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죄인은 예배를 통해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죄를 지어야 일시적인 기쁨을 느끼지만 의인은 예배를 통해 기쁨을 느끼고 힘을 얻고 참된 만족을 얻습니다.

 어떤 성도는 형사로 지내면서 30년 동안 죄인만 상대하며 험하게 살았습니다. 그가 예배를 통해 은혜를 체험한 뒤 3년 동안 예배만 드리면 창피할 정도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너무 기쁘고 감격이 되고 은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수많은 복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주어집니다. 예배가 죽으면 다른 것도 점차 다 죽게 되고 예배가 살면 다른 것도 점차 다 살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치유와 축복과 능력을 받습니다.

 너무 삶 자체와 문제를 두려워하지 말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사람을 궁극적으로 살릴 수 없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람의 방법만 가지고는 길이 얽혀집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나라나 모든 축복이 사실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스!”라고 하면 예스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예스를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평생 주일예배의 축복을 놓치지 마십시오.

 삶 자체가 견디기 힘든 것이 아닙니다. 결국 불신이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내일, 내년, 내세까지 복을 지속시킵니다. 예배를 가까이하면 인생과 가정이 다 회복됩니다. 세상의 모든 축복의 원천이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즉 평안, 행복, 풍요, 승리, 영광, 능력의 축복들이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고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삶을 통해 당대와 후대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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