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열매보다 관계가 중요하다

호세아 이한규 목사............... 조회 수 801 추천 수 0 2016.05.27 13:45:38
.........
성경본문 : 호10:12-15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794) 2016.2.15 

열매보다 관계가 중요하다


<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

 어느 날, A 목사가 결혼식 주례 때 주례사만 55분을 했다. 신부는 현기증으로 쓰러질 뻔했다. 주례 내용도 결혼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영혼구원에 관한 설교였다. 불신자 하객들을 전도하려는 열정으로 주례설교를 55분이나 했지만 그것은 신랑신부 대신 자신을 결혼식의 주인공으로 삼는 것이고 영혼구원의 열정으로 포장된 자기도취다. 열정과 도취는 다른 것이다.

 어떤 B 부흥사는 주일설교를 보통 1시간 이상 하고 부흥회 설교는 3시간 넘게 했다. 그는 설교할 때 끊임없이 청중을 웃겼다. 설교자가 많이 웃기면 설교 내용의 바름과 적절함과 어투와 자세 등은 상관없이 교인들은 대개 은혜를 받았다고 여긴다. 그래서 멀리서 찾아와 교회에 등혹하기도 했지만 그 밑에서 사역자는 물론 교인도 오래 붙어있지 못했다.

 교회를 떠날 때는 대부분 욕하고 떠났다. 왜 떠나느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독선이 심해요. 설교가 말 빨인가요?”라고 했다. 사람을 웃기는 즉석설교를 3시간 넘게 하기에 처음에는 ‘말씀의 종’인 줄 알다가 웃기는 똑같은 예화를 1년에 5번 이상도 하는 것을 보고 ‘3시간 즉석설교’를 ‘영혼구원의 열정’이 아닌 ‘자기도취의 산물’로 여기면서 교인들이 하나둘 떠난 것이다.

 초임 전도사들은 그 부흥사가 즉석설교를 3-4시간 하면서 청중들을 웃기는 모습을 보고 꿈을 품었다. “나도 저분처럼 설교를 잘하고 싶다.” 그러나 목회를 오래 하면 설교 준비가 부족할수록 설교가 길어지고 늘어진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3시간의 즉석설교’를 본받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진다. 성도들도 신앙생활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즉석에서 나오는 화려한 부흥회 설교보다 자기 담임목사의 기도흔적이 배인 소박한 설교가 훨씬 진실한 설교임을 깨닫게 된다.

 즉석설교는 겉으로는 더 은혜롭게 들릴 수 있다. 원고에 매이지 않아 자연스럽고 또한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그대로 표출되면서 청중들에게 카타르시를 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른 설교자는 ‘3시간의 즉석설교’를 ‘30분의 정제된 설교’로 만들어서 같은 내용을 더 짧은 시간에 더 임팩트 있게 전하려고 기도하며 애쓴다. 결국 ‘즉석설교 3시간’은 본받을 것이 아닌 자기도취의 산물이 되기 쉬움을 오래 설교할수록 더 깨닫게 된다.

 자기도취는 자기를 의지하는 삶의 표현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는다. 자기도 의지하지 말고 남도 의지하지 말라. 사람을 의지하려는 것도 일종의 우상숭배로서 결국은 상처와 배반으로 귀결될 때가 많다. 살면서 상처와 한이 많고 배반감을 많이 느끼는 것은 사람을 의지하며 살고 있다는 증거다. 사람을 의지하는 우상숭배적인 삶이 없어야 기쁨과 감사와 행복을 잃지 않는다.

 서울에 사는 C 목사는 여러 유명한 목사들을 강사로 초청해 연합집회를 많이 개최했다. 1990년대까지는 그런 집회가 통했지만 지금은 잘 통하지 않는다. 유명한 목사들은 자기 교인들의 마음이 그쪽으로 향할까봐 그런 집회에 옛날처럼 잘 협조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그는 연합집회를 하면서 상당히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그러자 유명한 목사들이 옛날처럼 협조하지 않고 변했다면서 상처를 토로하다가 최근에 병으로 쓰러졌다.

 사람을 의지하면 상처와 스트레스와 배반으로 인해 암과 뇌졸중 등이 생기기 쉽다. 성도는 사람의 종이나 사람에게 빚진 자가 되면 안 된다. ‘사랑에 빚진 자’는 되어도 ‘사람에 빚진 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돈에 연연하거나 돈을 꾸지 않도록 “죽으면 죽으리라!”는 고백도 잘해야 하지만 “없으면 없으리라!”는 고백도 잘해야 한다.

 비전 성취를 위해 재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람에게는 구걸하지 말라. 사람에게 구걸해서 신세를 지면 사람의 종이 된다. 그때 빚진 것만큼의 신세를 안 갚으면 상대는 배반감을 느끼기에 구걸로 신세를 지면 안 된다. 물론 누군가 자발적으로 돕고 헌신하면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의 빚을 지게 된다. 그러나 ‘사랑의 빚을 진 것’과 ‘신세를 지는 것’은 크게 다르다. 사랑의 빚은 지더라도 가급적이면 신세는 지지 말아야 한다.

< 사람에게 빌지 말라 >

 어느 날, 한 교회가 너무 무리한 교회 건축 비전을 세웠다. 아무리 건축헌금을 독려해도 부족하니까 교인 74명의 집을 담보로 잡히게 해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 교회 건축을 간신히 끝냈다. 그렇게 무리하게 빚을 내어 교회를 건축하면 목회자는 빚 때문에 교인의 종처럼 된다. 잠언 22장 7절을 보면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된다고 했다. 목회자가 상처와 배반이 충분히 예고되는 위험한 일을 벌인 것이다.

 목회자는 ‘섬김의 종’은 되더라도 ‘채무의 종’이 되면 안 된다. 옛날에는 어렵게라도 교회건축을 끝내면 대개 많은 교인들이 몰려왔었다. 그래서 교회가 커지면 빚을 갚을 수 있었지만 그때도 새로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즉 목회자가 자기에게 신세를 져서 교회를 건축했다는 마음이 있는데 교회가 커지고 나니까 목회자가 자기들을 무시한다고 배반감을 느끼면서 목사가 변했다고 하는 문제가 종종 생길 때가 있다.

 시대나 상황에 따라 리더십 스타일이나 생각은 변해도 마음이 교만하게 변하면 안 된다. 목회자는 교만해졌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상처가 된다. 물론 사람을 철저히 이용하고 커진 후에 가볍게 버리는 철면피와 같은 사람은 교만해졌다는 말을 들어도 상처를 받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목회자는 그런 말을 들으면 상처를 받는다. 결국 그런 상처가 없으려면 사람을 의지해서 교회를 건축하거나 비전을 이루려고 하면 안 된다.

 요새는 무리하게 교회건축을 끝내도 옛날처럼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는다. 그래서 빚에 허덕이다가 파산 지경이 된 교회들도 많다. 그러면 목회자와 교인이 다 빚더미에 앉게 된다. 교회에 ‘사랑의 종’이 아닌 ‘채무의 종’이 넘치게 된 셈이다. 그때 생기는 허덕임과 허무함과 상처와 실망과 절망은 엄청나다. 74명 교인들의 집을 담보로 건축한 그 교회도 지금 교회 내부의 상처와 아픔이 상상을 초월해서 목회자와 일부 교인이 칼부림 나기 일보직전이 되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사람의 신세를 지지 말라. 자발적인 도움은 받되 도움을 구걸하지는 말라. 도움을 받은 후 나중에 신세를 갚지 않고 입을 딱 씻어서 배신감을 주는 철면피도 얼마나 많은가? 결혼 전에 결혼해달라고 빌다가 결혼 후에 마음이 돌아서는 남자를 보면 여자는 배신감을 느낀다. 그래서 빌어서 결혼하면 안 된다. 정상적으로는 안 될 것을 사람에게 빌어서 되게 하는 것은 이미 상처를 예고하는 것이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대학편입 실기시험을 보는데 그 학생의 이모부가 그 대학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교수였고 실기 평가 교수들도 그 영향력 밑에 있었다. 도와줄 수 있다는 뉘앙스도 비췄다. 그때 그 학생의 아빠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동서에게 절대 영향력을 행사하지 말고 실기 교수들에게 아이 이름조차 말하지 말아달라고 해주세요. 실력 외에 다른 요소로 붙는다면 차라리 떨어지는 것이 좋소. 꼭 부탁해요.”

 그 학생이 얼마나 마음 편하게 시험을 치르겠는가? 그 학생도 원래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다. 얼마나 떳떳한 삶인가? 그런 원리는 사회의 전 분야에 적용되어야 한다. 청탁해서 붙는 것보다 청탁이 없이 떨어지는 것이 훨씬 교육적이고 훨씬 낫다. 청탁하면 붙어도 신세를 진 것으로 인해 큰 짐이 된다. 요새 정치권에서도 누구 신세로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신세진 사람과 의견을 달리한다고 해서 진실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논란이 생겼다. 국회의원도 누구 신세를 져서 되려고 하지 말고 정당하게 되려고 해야 한다.

 기발한 비즈니스 구상이 있으면 떳떳하고 당당하게 제안하라. 굽실거리듯이 사정하거나 불의하게 청탁하지는 말라. 억지로 인맥을 동원해서 청탁하지 말라. 청탁은 하지도 말고 받지도 말라. 제도권의 제도 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떳떳하게 대가를 지불해서 받고 정당한 시스템도 지혜롭게 활용하되 불의한 청탁은 하지 말라. 떳떳하고 정당하게 제안을 주고받아야 상처와 후유증이 없다.

 좋은 일과 좋은 비전이 있으면 당당하게 제안하라. 기도제목이 있으면 당당하게 내놓되 사정하거나 구걸하지는 말라. 사람에게 빌지 말라. 기도 중에 하나님이 누구에게 찾아가라는 마음을 주셨으면 찾아가더라도 사람을 의지하는 마음은 가지지 말라. 또한 상대가 자기 요청을 들어주지 않아도 결코 낙심하지 말라. 거절도 그 상황의 경험을 통해 성숙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최근에 하나님께서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비전의 지속 및 영어판으로의 확대를 위해 누군가에게 사역 동참 레터를 보내게 하셨다. “사람에게 빌지 말고 하나님께 빌라!”는 말은 사역 제안이나 비즈니스 제안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당당하게 레터를 보내되 수용이 안 되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보내라.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은 동쪽에서 찾고 있을 때 서쪽에서 나타날 때도 많다. 제안은 당당히 하고 비전은 떳떳이 알리되 사람을 의지하거나 사람에게 사정하지 말아야 인간관계는 물론 하나님관계도 왜곡되지 않고 바른 길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라 >

 의학에서 병이 생기는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을 병리학이라고 한다. 병리학은 영어로 퍼쌀러지(pathology)라고 하는데 병의 경로(path)에 관한 학문(logy)으로서 병이 생기고 진행되는 경로와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람이 병드는 경로가 있듯이 사람의 패망에도 병리학적인 경로가 있다.

 패망은 전염성이 크기에 패망한 사람과 어울리면 패망 가능성도 커진다. 그렇다고 성공한 사람과만 어울릴 수는 없다. 특히 리더나 인물은 패망한 사람들을 일으켜서 성공할 사람들로 만들어야 할 강한 책무가 있기에 나쁜 바이러스를 이겨낼 강한 힘과 면역력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패망과 절망의 나쁜 바이러스가 창궐해도 강한 힘과 면역력이 있으면 그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다. 사람을 패망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무엇인가?

 외형주의는 패망의 바이러스다. 소유가 많아서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도 얼마나 많은가? 소유가 많고 번영하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고난만 강조하는 고난신학도 주의해야 하지만 번영만 강조하는 번영신학도 주의해야 한다. 우상숭배도 패망의 바이러스다. 우상숭배란 두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게 한다.

 가장 근원적인 패망의 바이러스는 죄다. 죄가 만연하면 심판을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그 전쟁에서 패배한다. 결국 전쟁과 패망을 막으려면 죄 문제부터 처리해야 한다. 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죄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나 제도나 체계나 교훈은 없다. 죄 문제를 처리하려면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방법밖에 없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퇴치하고 반전의 역사를 이루려면 회개와 더불어 외형주의를 멀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멀리해야 할 것은 우상숭배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가장 싫어하신다. 요즘의 가장 큰 우상은 무엇인가? 돈과 성공이다. 돈과 성공을 우상으로 삼아 의지하면 오히려 멸망의 길이 재촉된다. 그러므로 번영은 성공의 표식이고 고난은 실패의 표식이라는 단순한 도식은 맞지 않는 도식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고 해서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 안에 있어서 고난을 당할 때도 많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지만 십자가를 지셨다. 욥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지만 극심한 시련을 연이어 겪었다. 엄청난 재산을 잃었고 10명의 자녀들을 한꺼번에 잃었고 아내의 마음도 떠났고 친구들도 정죄했다. 그러나 성경은 욥이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가지치기 때는 뭔가를 잃게 되지만 그것은 좋은 열매를 많이 맺게 하시려는 목적 때문이다.

 하나님인 뭔가를 잘라내실 때는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계획이 있다. 새로운 일은 옛날 것이 사라져야 이뤄질 때가 많다. 과정(process)을 바라보지 말고 목적(purpose)을 바라보라. 그리고 믿음으로 말하라. “나는 이 상태에서 머물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렸지만 십자가에 머물지 않았다. 예수님은 무덤에 놓였지만 무덤에 머물지 않았다. 현재의 어려움은 하나님의 시간 개념에 따르면 ‘삼일간의 어려운 상황’임을 기억하고 고백하라. “나는 이 상태를 벗어나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리라!”

< 열매보다 관계가 중요하다 >

 요한복음 15장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더 이상 예수님의 종의 위치에 서지 말고 예수님의 친구의 위치에 서라. 종과 친구의 차이는 무엇인가?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지만 친구는 비밀을 알려주는 사이다. 고난 중에도 자기 자리를 고수하고 하나님을 변함없이 바라보고 감사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은 친구 관계를 허락하시고 비밀을 알려주실 것이다.

 사람들은 열매를 중시하지만 하나님은 관계를 중시하신다. 열매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관계에 집중하라. 고난은 성도를 더 현명하고 더 성숙하고 더 지혜롭고 더 강해지고 더 과감하고 더 생산적이고 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로 들어가게 만든다. 만약 고난이 없었다면 그런 놀라운 축복들을 놓쳤을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내 모습만 보고 “저 사람은 저랬지.”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때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 과거의 부족한 모습은 잊어버리고 앞에 놓인 찬란한 비전을 향해 전진하라.

 가지치기를 통해 많은 것을 잃은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더 좋은 열매를 많이 얻는다. 그처럼 과거에 가지치기를 통해 많은 것을 잃었어도 믿음만 잃지 않으면 앞으로는 똑같은 가지치기를 잘 당하지 않고 뭔가를 잘 잃어버리지도 않게 된다. 요셉이 노예로 팔렸다가 감옥에 갔지만 나중에 총리가 된 후에는 다시는 감옥에 가지 않았다. 욥이 처음에는 다 잃어버렸지만 나중에 회복된 후에는 또 다시 잃어버리지 않았다.

 가지치기 훈련을 믿음으로 잘 소화하면 하나님이 주신 열매를 오래 지속시켜주신다. 그처럼 나중에 더 많은 것을 지켜주시려고 열매를 늦게 주실 때도 많다. 때로는 너무 빠른 것 때문에 더 늦게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열매가 늦어져도 너무 초조해하지 말라. 그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포도나무에 꼭 붙어서 자기 사역과 자기 자리에 충실한 것이다. 계속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언젠가는 꿈과 비전에 구체화되는 때가 반드시 온다.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자리로 올라서게 하시려고 계획하시고 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롤러코스트를 타듯이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길이 평탄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평탄함과 편안함 속에서도 교만해지지 않고 믿음이 약해지지 않는 대 평안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시려고 계획하고 계신다. 그런 대 평안은 ‘열매’를 통해서가 아닌 ‘관계’를 통해서 얻는다.

 사람들은 더 많은 열매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더 깊은 관계를 원하신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주종관계가 아닌 친구관계가 될 때 하나님은 “우리들 끼리만의 얘긴데...”라고 하면서 비밀도 알려주신다. 그 비밀을 동네방네 퍼뜨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친구가 아닌 대개 하나님을 사칭한 이단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삶의 목적, 영적인 유산, 고난의 의미, 미래의 비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혜안과 준비와 대처법 등의 은밀한 일들을 알게 된다. 그렇게 하나님의 비밀을 알면 삶의 두려움은 현저히 줄어든다.

 하나님이 알려주신 비밀을 함부로 말하지 말고 때가 될 때까지 그 비밀을 지키라. 때로는 평생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내밀한 친구관계가 유지된다. 친구로부터 비밀 얘기를 듣고 바로 옆 사람에게 말해버리면 그것은 친구를 배반하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비밀한 음성을 받았다고 선전하면서 예언을 남용하면 하나님께서 진짜 비밀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결국 거짓 예언자들이 함부로 하는 헛되고 틀린 예언들은 진짜 예언이 아니고 예언을 빙자한 사탄의 거짓이다.

 하나님의 비밀을 들었으면 은밀한 실행에 나서야 계속 비밀을 알려주신다. 그처럼 하나님과의 비밀한 관계가 점점 깊어지는 성도가 되라. 하나님이 알려주신 비밀과 지혜를 함부로 발설하지 말고 그 비밀스런 교훈과 명령을 은밀하게 수행하면 열매는 저절로 따라온다. 영향력이 오래 지속되는 참된 열매는 하나님과의 비밀한 깊은 관계를 통해서 맺어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13336 예레미야 사명을 위해 일하는 행복 렘38:1-16  최장환 목사  2016-05-31 558
13335 이사야 주님은 진정한 빛이시다 사38:1-22  최장환 목사  2016-05-31 408
13334 마가복음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막11:27-30  김경형 목사  2016-05-29 339
13333 마가복음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막11:25  김경형 목사  2016-05-29 897
13332 잠언 도망가지 마라 잠28:1  강종수 목사  2016-05-29 427
13331 사무엘상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삼상8:4-10  전원준 목사  2016-05-28 732
13330 누가복음 항상 기뻐하는 삶 눅10:17-21  강승호 목사  2016-05-28 934
13329 시편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시117:1-2  이한규 목사  2016-05-27 594
13328 시편 기도응답의 6대 비결 시116:1-19  이한규 목사  2016-05-27 681
13327 요한계시 자기 재능을 최대한 살리라 계2:24-29  이한규 목사  2016-05-27 289
» 호세아 열매보다 관계가 중요하다 호10:12-15  이한규 목사  2016-05-27 801
13325 시편 믿음이 주는 3대 축복 시115:1-18  이한규 목사  2016-05-27 682
13324 신명기 당대와 후대가 복 받는 길 신4:32-40  이한규 목사  2016-05-27 624
13323 요한계시 진실한 삶의 최고 인증표식 계1:12-13  이한규 목사  2016-05-27 284
13322 요한계시 종말을 준비하는 기초 자세 계1:7  이한규 목사  2016-05-27 451
13321 누가복음 복음의 경계선 눅7:1-10  강승호 목사  2016-05-25 469
13320 잠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지혜 잠8:1-4,22-31  강승호 목사  2016-05-24 380
13319 사무엘상 에벤에셀의 축복 삼상7:3-12  전원준 목사  2016-05-23 1587
13318 욥기 역사의 거울 앞에 서야 왕하12:1-16  최장환 목사  2016-05-23 579
13317 로마서 잘남보다 부족함으로 롬2:1-16  최장환 목사  2016-05-23 585
13316 누가복음 안식일 문제 [1] 눅6:1-11  신윤식 목사  2016-05-22 458
13315 누가복음 복음에 어울리는 것 눅5:33-39  신윤식 목사  2016-05-22 391
13314 누가복음 의인과 죄인 눅5:27-32  신윤식 목사  2016-05-22 447
13313 누가복음 하나님께 영광 눅5:17-26  신윤식 목사  2016-05-22 410
13312 누가복음 나병 환자와 예수님 눅5:12-16  신윤식 목사  2016-05-22 855
13311 누가복음 베드로의 경험 [1] 눅5:1-11  신윤식 목사  2016-05-22 767
13310 누가복음 열병과 귀신 눅4:38-44  신윤식 목사  2016-05-22 463
13309 누가복음 예수님의 권위 눅4:31-37  신윤식 목사  2016-05-22 509
13308 마가복음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막11:23-25  김경형 목사  2016-05-22 2960
13307 마가복음 그 말하는 것이 이룬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막11:19-25  김경형 목사  2016-05-22 444
13306 로마서 성령의 생각 롬8:26-27  강종수 목사  2016-05-22 593
13305 시편 형제가 연합함이 시133:1-3  강승호 목사  2016-05-20 1234
13304 로마서 소망에 관한 이야기들 롬5:1-5  강승호 목사  2016-05-19 873
13303 요한계시 복 있는 자의 3대 정의 계1:3  이한규 목사  2016-05-18 561
13302 여호수아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라 수23:1-16  이한규 목사  2016-05-18 874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