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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

요한계시 이한규 목사............... 조회 수 653 추천 수 0 2016.06.15 23: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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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계5:6-10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799) 2016.2.22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 (요한계시록 5장 6-10절)


< 바른 기도를 드리십시오 >

 어느 날, 미국의 A 야구감독이 팀이 연패에 빠지자 경기 전날 밤에 자기 팀 선수들의 야구방망이를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요새 저희가 매번 집니다. 저희 선수들에게 용기와 격려가 필요하니 저희 선수들이 내일 이 방망이로 상대 투수의 공을 잘 때리게 하소서!” 다음날 그의 팀은 안타 19개를 때려 대승을 거뒀습니다.

 간절한 마음의 표현으로 방망이를 붙잡고 기도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한번 그런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물건 붙들고 기도하라고 무속적인 믿음을 조장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바른 성도는 그런 기도가 응답되면 은밀하게 감사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너무 기도제목에 집착해 성숙하지 못한 기도를 드렸어도 이렇게 잠시라도 저희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늘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기도를 드리게 하소서!” 그 기도를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반면에 어떤 신자는 그런 체험을 하면 자기 기도가 무속적인 기도란 인상을 줄 수 있음도 망각한 채 그 체험을 자랑하고 싶어서 참지 못하고 사방에 말하고 다닙니다. “여러분! 얼마 전 제가 야구경기 전날 밤에 선수들의 방망이를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다음날 우리 선수들이 19안타를 때려내 대승을 거뒀습니다. 하나님은 저처럼 부족한 자도 도와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하니까 겸손한 간증 같지만 자랑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 역력합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일부 성도는 장단을 맞춰서 “아멘! 할렐루야!”라고 소리칩니다.

 그런 간증들은 사람을 크게 호도할 수 있기에 바른 신앙과 겸손한 태도를 바탕으로 간증도 잘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따집니다. “목사님! 왜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막습니까? 목사님은 기적을 부인하십니까?” ‘하나님의 기적’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자랑’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 감독의 간증은 자기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존재라는 성급한 자랑으로 들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역사가 늘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런 간증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간증도 아닙니다. 오히려 창조주 하나님을 상대 투수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존재로 격하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그런 저차원의 간증을 이용해 무속적인 종교 리더들이 이렇게 호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A 감독이 연패에 빠져서 고민하다가 어느 날 밤에 선수들의 야구방망이를 붙들고 기도하자 다음 날 신들린 듯이 공을 맞춰 19안타로 대승을 거뒀다고 합니다. 여러분! 구체적으로 기도하십시오. 앞으로 매일 새벽마다 원하는 것을 가지고 교회에 와서 그것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합시다.”

 그 다음부터 그 공동체에 뜨거운 기도열풍이 불었습니다. 부자 되기를 원하는 어떤 신자는 새벽에 통장을 가지고 와서 통장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고 자녀 입시를 앞둔 어떤 신자는 새벽에 원서를 가지고 와서 원서를 붙잡고 기도했고 어떤 신자는 기도 제목을 적은 종이를 붙잡고 새벽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인간의 장단에 맞춰서 하나님이 대박 기적을 탁 터뜨려주실까요? 아쉽게도 저는 그런 믿음으로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를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과거에는 그렇게 가르치는 교회로 사람들이 많이 몰렸습니다. 요새는 성도들의 수준이 크게 높아져서 그런 간증이나 미혹이 잘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성장이 어려우진 측면이 있지만 바른 믿음을 전파하기에 숫자적인 부흥이 지체된다면 그것이 잘못된 현상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만 남겼지만 그들이 지구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바른 소수의 길이 미혹된 다수의 길보다 백번 낫습니다. 미혹에 빠지면 내일의 불행은 필연적입니다.

 방망이를 붙잡고 기도한 후 대승을 체험한 A 감독이 3주 후 중요한 경기를 앞뒀습니다. 상대 B 선발투수는 뛰어난 투수였기에 A 감독은 3주 전처럼 경기 전날 밤에 선수들의 방망이를 붙들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경기에서 자기 팀은 2안타만 치고 상대로부터 21안타를 맞고 19대 0으로 대패했습니다. 패배한 후 그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B 투수는 하나님도 못 당하나봐.”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투수 한 사람만도 못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얼마나 황당한 믿음입니까?

 왜 번영신학이 욕을 먹습니까? 잘 된다는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까지는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A 감독의 이긴 얘기만 하고 진 얘기는 쏙 빼서 바른 믿음과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급하면 기적적인 치유와 반전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어떤 물건을 붙들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기도응답이 주어졌다고 “물건 붙잡고 기도하면 응답된다!”는 식으로 미혹하면 안 됩니다.

 기적적인 응답을 받았으면 그때는 더 겸손하게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부족한 제게 이런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 이 은혜보다 다른 감춰진 기적적인 은혜가 훨씬 많음을 잘 압니다. 그런 은혜를 늘 잊지 말게 하시고 앞으로도 겸손한 기도생활이 후퇴하지 않게 하소서!” 그렇게 겸손과 감사로 무장하면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또한 사탄이 저의 믿음과 기쁨과 행복을 어떻게 빼앗겠습니까?

 간절한 기도로 기적적인 치유의 역사를 체험하면 자신의 영성과 믿음과 기도와 체험을 자랑하지 말고 건강할 때 병들지 않은 은혜를 주신 수많은 기적적인 세월들을 더 감사하면서 믿음 자랑과 영성 자랑을 그치십시오. 간증에 자랑 냄새가 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게 됩니다. 성도는 기적과 치유를 약속하는 잘못된 기적집회나 치유집회에 가서 예수님의 사랑과 이름을 내세워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남발하는 거짓 선포에 미혹되지 말고 자기가 몸담은 교회와 목사와 교우를 사랑하고 아끼며 기도함으로 참된 기적과 치유를 얻어 누려야 합니다.

 기도는 성도의 가장 위대한 특권 중의 하나이면서 가장 위대한 봉사 중의 하나입니다. 사탄은 사람의 조직과 계획을 우습게 압니다. 또한 사람의 의지와 결단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기도는 무엇보다 두려워합니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움직이시게 만드는 응답 받는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 >

 요한계시록 4-5장에는 사도 요한이 본 천국 환상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 천국 환상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양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6절). 그 어린양은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았습니다(6절). 그것은 예수님이 33세에 일찍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상징합니다. 또한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었습니다(6절). 일곱 뿔이 있다는 것은 큰 권세를 가지셨음을 상징하고 일곱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 즉 성령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 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셨습니다(7절). 그러자 보좌 주위에 있던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예수님 앞에 엎드렸는데 그들의 손에는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이 있었습니다. 거문고는 예수님 찬양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이란 표현에서 향은 ‘성도의 기도들’을 뜻합니다(8절). 그렇게 각각의 손에 거문고와 성도의 기도의 향이 담긴 금 대접을 가지고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새 노래를 부르면서 예수님을 찬양합니다(9-10절). 이 장면을 통해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가 어떤 기도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감사기도

 본문에서 “천국의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각각의 손에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다.”는 말은 성도의 기도에는 ‘감사’와 ‘요청’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을 저 차원의 기도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욕심에 사로잡혀 감사와 찬송도 없이 “하나님! 주세요!”라고 요청만 한다면 잘못이지만 기도에 요청이 있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너무 고고하게 하지 말고 필요한 것은 금 대접에 담아 하나님께 올려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지만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 필요를 채워주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과 조치에 순종하는 기본 마음을 가지고 자녀가 부모에게 필요를 구하듯이 자신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아뢰십시오.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전혀 구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 힘으로 살겠다는 교만한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기도에 탄원과 요청은 많은데 찬송과 감사는 별로 없습니다. 그것은 더 안 좋은 것입니다. 환경과 조건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펼쳐지지 않아도 하나님을 높이는 찬송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넘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그 기도가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됩니다. 현재의 모습은 작아도 감사기도를 앞세워 나가면 큰 응답과 큰 은혜에 역사가 반드시 준비될 것입니다.

2. 중보기도

 본문을 보면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가진 금 대접에는 성도들의 기도를 나타내는 향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네 생물과 장로들이 자기들의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처럼 기도의 향이 담긴 금 대접에 자신의 기도제목은 물론 남의 기도제목도 담겨있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남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기도를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중보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오해는 없어야 합니다.

 중보기도란 ‘남을 위해 은밀하게 축복의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지 ‘남이 다 차려놓은 축복의 밥상에 숟가락만 놓으면서 생색내는 것’이 아닙니다. 밥상을 차린 사람은 따로 있는데 밥상에 숟가락만 놓으면서 가장 수고한 것처럼 하면 중보기도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는데...”라고 공개하면 이미 중보기도가 아니고 축복 받은 사람에게 가서 “내가 너를 위해 기도 많이 했어.”라고 하는 것도 중보기도가 아닙니다. 참된 중보기도는 ‘소리 없이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크게 움직입니다.

 중보기도는 남을 위한 기도이기에 기도 중에 최고의 기도입니다. 프랜시스 쉐퍼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원은 개인적으로 받지만 기독교 신앙은 개인주의가 아닙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잘 극복하면 참된 신앙의 최대 걸림돌인 기복주의도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내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남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미처 구하지 못한 자신의 문제까지 아름답게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3. 확신기도

 본문에서 성도들의 기도가 담긴 금대접이 주님 앞에 드려진 것은 성도들의 기도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상달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이 말씀은 응답의 확신도 없이 기도를 위한 기도를 하지 말고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기도는 기도의 현찰을 넣으면 즉시 응답의 상품을 내놓는 자동판매기가 아닙니다. 많은 기도는 응답이 될 때까지 인내의 기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 기간에 믿음과 감사와 찬양이 퇴색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해 인위적으로 그 때를 앞당기려고 하면 수많은 부작용이 생겨납니다. 기다리지 못해 염려하면 응답은 더 늦어지고 넉넉한 믿음으로 기다리려고 하면 응답은 더 빨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응답은 반드시 있다는 확신입니다.

  성도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물론 기도응답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닐 수는 있어도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된다는 사실만은 잊지 마십시오. 바른 기도를 간절히 드렸어도 기도 응답이 없을 때는 하나님이 축복의 기초를 튼튼히 쌓고 계시는 때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에 다른 것을 주시는 방법으로 역사하실 때도 많습니다. 그 다른 것은 자신이 원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입니다.

< 꾸준히 기도하십시오 >

 결국 기도할 때는 기도의 주목적을 잊지 말아야 기도응답 문제로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기도의 주목적은 자기 뜻을 아뢰는 것이나 자기 필요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주목적은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기도내용보다 기도관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을 감동시키려고(impress)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께 상황을 알려드리려고도(inform)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께 지침을 주려고도(instruct) 기도하지 마십시오. 먼저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려고(invite) 기도하십시오.

 그처럼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과 소통을 이룬 후 자기 필요를 구하십시오. 우리의 책임은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책임은 주시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잘 구하면 좋지만 때로는 잘못 구할 때도 있습니다. 욕심에 사로잡힌 기복적인 기도를 상습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기대하면서 원하는 것을 아뢰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복을 구하는 것 자체가 기복주의는 아닙니다. 오히려 구하지 않는 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보다 복에 집착하는 것이 기복주의지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복을 구하는 것은 기복주의가 아닙니다. 아주 다급한 상황이라면 주차자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피곤하고 시간이 없는데 좋은 주차자리가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다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주차자리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구할 책임이 있고 하나님은 가려서 주실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하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성도가 꼭 고상한 기도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급할 때는 고상한 성도도 고상하게 기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신기한 일은 고상하지 못한 생활 속의 사소한 필요에 대한 기도도 하나님이 신기하게 응답해주실 때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생활 속의 기도를 등한시하지도 말고 응답이 늦어진다고 기도를 쉽게 포기하지도 마십시오. 결국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자세 중의 하나는 꾸준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기도응답의 범위까지 정해놓고 그 범위 내에서 응답이 없다고 섣불리 기도를 포기하고 기도에 회의를 가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응답은 다이렉트(direct)로 올 때도 있지만 때로는 자기 요구와 다르게(different) 올 때도 있습니다. 나중에 보면 다르게 기도응답이 온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르게 주시는 것은 그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 때문에 때로는 기도응답을 연기하실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합력하고 선을 이루심을 굳게 믿으십시오.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그 응답이 자신이 원하는 응답을 아닐지라도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고 무엇보다 그 마음을 성령으로 채워주셔서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과 감사와 평안을 잃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통해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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