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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6: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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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16.4.24 여의도순복음교회 |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던 사회학자 ‘장 지글러’는 <탐욕의 시대>라는 책에서, 매년 1000만 명이 넘는 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는 이유를 가난으로 인한 영양 결핍과 질병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이 지구상에 식량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전 세계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 이 지상에 음식은 넘쳐나는데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는 것은 바로 탐욕 때문에 나누지 않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아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골목골목 다니며 폐휴지를 모아서 기부하는 할아버지도 있고, 구두를 닦아주고 받은 돈 중 동전을 따로 모았다가 기부하는 구두미화원도 있습니다. 또 어떤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매달 얼마씩 내어 꾸준히 모아 그 돈으로 아프리카에 우물을 설치해 많은 사람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힘들고 각박한 세상이지만 이처럼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베푸는 마음이 있기에 세상은 따뜻해지고 살 맛 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우습고 재미가 있어서 제가 인용을 하려고 합니다. ‘10대는 철이 없다. 20대는 답이 없다. 30대는 집이 없다. 40대는 돈이 없다. 50대는 일이 없다. 60대는 낙이 없다. 70대는 이가 없다. 80대는 처가 없다. 90대는 시간이 없다. 100대는 다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보면 이렇게 없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꿈과 믿음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십자가에 죽어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꿈을 갖고 믿음을 갖고 담대하게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1.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게 된다
생각한대로 인생은 이루어집니다. 없다고 생각하면 패배의식에 잡히며, 모든 것이 없는 방향으로 이끌려 갑니다. 모세가 열두 명의 정탐꾼을 택하여 가나안땅을 정탐하라고 보냈을 때, 열 명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의 안경을 끼고 출발했습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40주 40야를 정탐한 곳에서 할 수 없는 것들만 바라본 것입니다. 민수기 13장 31절로 33절에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는 말씀은 부정적인 관찰을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조금만 잘못되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들은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을 항상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호수아 1장 5절로 6절에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용감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면 주님께서 책임지고 같이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열 두 정탐꾼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할 수 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라는 확실한 생각을 가지고 정탐을 나갔습니다. 그들은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안경을 끼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을 보았던 것입니다. 정탐한 땅마다 “이거 이미 하나님이 주신 땅이다”라며, 이미 받은 마음을 가지고 바라봤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 13장 30절에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라고 했으나 백성들이 돌을 들어서 갈렙을 쳐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열 명의 정탐꾼처럼 부정적인 생각으로 사물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면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는 것을 마음속에 늘 느끼고 “주께서 나와 같이 계신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니 감사합니다”라고 느낌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항상 너와 같이 있으리라’는 이 말씀을 의지하고 함께 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뜨겁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8절로 39절에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누가 이 사랑의 줄을 끊을 수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7장 11절에도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우리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 좋다는 것도 하나님 보시기는 좋기 때문에 그것을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나쁜 것은 좋게 만들어 줄 것이니 좋은 것입니다. 좋은 하나님을 따라 가니까 모든 일이 좋게 되는 것입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는 “너의 하나님 야훼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쁨으로 말미암아 이기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보고 즐거이 부르짖으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몸을 찢기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살려고 해야지, 인간적인 생각으로 “할 수 없다. 못한다. 안 된다”고 하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꿈을 마음에 품고 믿음으로 안고 미래를 봐야 되는 것입니다.
2. 꿈을 가지고 미래를 품에 안아라
우리가 꿈을 품고 믿음을 안고 미래를 바라보면, 찬란한 미래가 영광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꿈으로 마음에 품고, 믿음으로 끌어안고, 입으로 시인하고 나가면 하나님의 기적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7절로 9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들은 마음에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그 땅을 바라봤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보는 것 마다 “아, 하나님이 주신 것은 아름답구나. 하나님이 주신 것 우리 밥이 이렇게 준비되어 있구나. 이것도 우리 땅이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주신 것을 믿고서 바라보니 모든 것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말하게 되고 행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개인이나 민족은 망하고, 마음에 꿈을 가지고 믿음을 품고 나가는 민족은 흥합니다. 성경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리라”고 말했지 않습니까? 꿈이 없는 개인도 망합니다. 우리가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마음속에 꿈을 품고 믿음으로 끌어안고 입술로 고백하고 나가면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그 그릇에 성령께서 들어와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바라보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이미 본 것처럼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유대 광야에 나가셨을 때, 남자만 5000명,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합치면 수만 명이 따라 나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배가 고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빌립에게 “어디에서 떡을 구하여 이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겠느냐?”고 물으시니 빌립은 매우 당황했습니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먹일 떡을 살 곳은 없습니다. 혹 있더라도 200데나리온이나 되는 돈도 없었습니다. 먹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와서 “어린아이가 가져온 것인데, 이것밖에 드릴게 없습니다”라고 하면서도 주님께 내놓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빌립에게 실망했습니다. 왜냐면 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면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집행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는 것이 꿈이 아닙니까?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바라보는 것이 꿈입니다. 직장에 들어가지 않았어도 직장에 들어간 것처럼 꿈꾸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지 않은 집을 이미 사서 들어가 있는 것처럼 꿈꾸어 보는 것입니다. 몸이 병들어서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이 걸어 다니면서 부지런히 일할 수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꿈꾸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꿈이 있느냐? 믿음이 있느냐?’를 시험해 보신 것이었습니다. 빌립과 안드레에게 시험하신 이유는 주님의 명령을 들었으면 못 먹일 환경이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먹일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먹일 수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계획과 꿈을 꾸고, 계산은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계산을 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꿈을 꾸고, 분명히 마음속에 품은 꿈을 믿고, 주님이 일해주실 것을 알고, 주님께 계산을 맡기면 주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가져오니 주님이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다 먹이고 열 두 바구니가 남는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 모든 것을 맡긴다면, 주님이 계산해 주십니다. 주님의 계산은 우리와 다릅니다. 주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3차원의 감각적인 세계를 뛰어넘어 4차원적 성령의 세계 속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도 꿈과 믿음으로 해결하려고 하시기 바랍니다. 해결되는 좋은 것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몸 찢기고 피를 흘려 죄를 대신 해주셨고, 우리의 허물을 대신 사해 주었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저주를 대신 갚아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망과 음부를 폐하고 부활 영생 천국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나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긍정적인 꿈을 꾸고, 믿음을 가지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냥 종교적인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승리와 성공을 가져오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3.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우리가 잘 되고 성공하기를 원하는 것은 남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 입니다. 성경에는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그릇을 비워서 나누어주고, 빈 그릇을 주님께 가져오면, 주님은 계속해서 그 그릇을 채워주십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을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로 35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힘이 듭니다. 사랑받지 못할 사람을 사랑해야 되고, 용서받지 못할 사람을 용서해야 되니 힘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십자가의 은혜를 부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나누어 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우리에게 더 맡겨주십니다. 하나님은 탐욕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 우리가 탐욕을 버리고 나누어 주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우리가 외롭게 살도록 하나님이 내버려놓지 않았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내려와서 우리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구약 4000년 동안은 아버지의 시대였기에 아버지 뒤에서 예수님과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신약시대는 예수님이 사역하신 33년 동안 아들의 시대였기에 아버지와 성령이 아들 뒤에서 역사하셨습니다. 오순절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성령의 시대로 성령이 보혜사가 되어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아버지와 예수님이 뒤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보혜사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신 이’라는 뜻입니다. 보혜사는 우리와 항상 같이 계십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합니다”라고 말하면 보혜사 성령님이 기쁘고 즐겁게 우리의 손을 잡고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에게 불안을 주지 않습니다. 공포를 주지 않습니다. 불신앙을 주지 않습니다. 마귀가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하는 것으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공포심이 붙잡히게 하고 불신앙하게 만듭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보혜사 성령을 힘입어서 우리는 마귀를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너 이 원수 귀신아, 이 불만의 귀신아 떠나가라! 불안의 귀신아 물러가라! 공포의 마귀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로 명하노니 물러갈지어다! 불신앙의 귀신아 나가라! 내게서 물러가라!”고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개인이나 가정이나 생활에서 불안과 공포와 불신앙이 따라오지 못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평안, 확신, 기쁨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평안을 주시고, 확신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면 성령이 같이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까?”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기도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평안이 확 들어차고 확신이 넘치고 기쁨이 넘쳐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마음속에 불안하고 공포하고 불신앙이 계속 됩니다. 이것은 아직까지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기에 더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뜻을 아는 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확신을 주시고 기쁨을 주실 때 성령이 허가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나누는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고, 예수님은 당신의 피와 살을 나누어서 생명을 나누어 주셨고, 보혜사 성령은 당신이 거할 처소를 우리 속에 만들어서 우리와 함께 평안을 나누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고, 믿고, 긍정적인 선언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늘나라를 왕성하게 하시고, 나누어 주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난 다음에 “계산은 주님이 하신 줄 믿고 감사합니다. 아멘”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크신 기적과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5000명이나 되는 군중이 빌립이나 안드레에게는 많은 숫자였지만 예수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계시는데 우리를 위해서 큰 기적을 베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오늘날도 안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고 평안을 가지고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주신 복을 마음껏 나누게 하옵소서. 빈 그릇에 채워주시는 그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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