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행17:11-12 |
---|---|
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13.10.06 열린교회(평촌) |
말씀을 받는 사람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행17:11-12)
Ⅰ. 본문해설
사도 바울의 제 2차 전도여행 때의 일이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고 싶어 하였지만 성령은 그들의 선교를 마게도냐에서 이루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빌립보로부터 내려와서 데살로니가로 이르렀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매우 포악한 성격의 핍박자였기에 데살로니가를 떠나 베뢰아라는 곳으로 옮겼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과 달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커다란 열매를 맺었다.
Ⅱ. 말씀을 받은 결과
베뢰아 사람들이 말씀을 받은 결과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았다. 그중에는 베뢰아에 사는 유대인이 많았고 또 그곳에 사는 헬라의 귀부인들과 남자들도 믿는 자들이 많았다. 그러면 그들의 태도가 어떠하였기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게 하였는가?
Ⅲ. 말씀을 받은 베뢰아 사람들
A. 너그러운 사람들
첫째는 그들은 너그러운 사람들이었다. 이전 한글개역 성경에는 ??신사적??이라고 표현하였다. 희랍어 성경에는 이 표현이 ??좋다??라는 말과 ??태생의, 천생의??라는 말이 결합한 단어로 나타난다. 베뢰아 사람들은 좋은 태생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좋은 태생의 사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시 로마 사람들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로마인은 인간이란 원래 선한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란 원래 인간의 선한 본성이 충족한 사람이며 최대한 공정하게 다른 사람의 의견을 편견 없이 판단하는 이성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가장 첫 번째 비결은 신사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때 ??그것이 과연 그러한가??라고 자신의 이성을 사용해서 생각을 하며 받아들이고,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은 믿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여기에서 말하는 너그러운 태도이다. 모든 하나님의 은혜는 이해를 통해서 온다. 그렇기에 산란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에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집중된 올바른 태도를 갖아야 한다.
B. 말씀 받는 사람들
둘째는 그들은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말씀 받는다는 것은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내 자신을 붙들고 있는 상태가 말씀을 받은 상태이고 말씀에 사로잡힌 상태이다. 정확한 지식과 지식에 대한 이해, 거룩한 감동이 합쳐져서 우리 마음이 붙들린 상태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이다. 그때에야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명료해지고 그 길로 걸어갈 수 있는 놀라운 힘이 솟구친다. 그러므로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서 정동을 일으켜서 계속 일어나도록 우리는 매일매일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이 일은 성령님이 하신다. 그러나 성령님 혼자 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태도를 사용해서 일하신다. 그래서 한순간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릴 수 없다는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C. 상고하는 사람들
셋째는 그들은 상고하는 사람들이었다. 들은 바 설교를 듣고 마음으로 만족한 게 아니라 이것을 성경에 비추어 보고 더 상세히 알고자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좋은 설교는 듣고 나서 설교자의 독창성에 박수를 치고 싶은 설교가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고 성경을 다시 자세히 살펴 보고 싶게 만들어준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말씀 앞에서 자기가 너무나 부족하기에 하나님을 굳게 의지해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설교가 좋은 설교이다.
여러분은 어떤 태도로 주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사람들인가? 예배에서 은혜를 받으면 일주일 동안 성경을 더 가까이함으로 새로운 의미를 깨닫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예배를 통해서 일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친숙해지는 일이 없이는 여러분의 일생이 견고해지지 못함을 기억하라.
Ⅳ. 결론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죽음은 절망이다. 어떠한 인생의 위기를 만나더라도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사실과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건지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시련의 때일수록 출렁거리며 요동치는 감정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여야 한다. 그때 그 말씀이 우리를 그 구덩이에서 이끌어내는 밧줄이 된다. 우리에게도, 세상에도 희망이 없다. 우리의 참된 희망은 말씀하시는 신실한 하나님께 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