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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8:28-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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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수도원교회 http://blog.naver.com/malsoom/144935201 |
2011년 12월 4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8장 28절~34절
설교제목 : “악한 영의 독한 기운을 풀지 않으면 …”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사람들의 지역에 가셨을 때에, 귀신 들린 사람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오다가, 예수와 마주쳤다. 그들이 너무나 사나웠으므로, 아무도 그 길을 지나다닐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여, 당신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우리를 괴롭히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마침 거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 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귀신들이 예수께 "우리를 쫓아내시려거든, 우리를 저 돼지들 속으로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가라" 하고 명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 돼지 떼가 모두 바다 쪽으로 비탈을 내리달아서, 물 속에 빠져 죽었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도망 가서, 읍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서 일어난 일을 퍼뜨렸다. 그래서 온 읍내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러 나왔다. 그들은 예수를 보고, 자기네 지역을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 (마태 8:28~34)】
<영화 ‘범죄의 재구성’ 이야기>
오늘 문득 ‘범죄의 재구성’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영화제목이었죠. 그러나 저는 영화 줄거리를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 영화제목에 관한 이야기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범죄의 재구성’. 즉 어떤 어떤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는데, 그 사건 사건들이 의미 있는 메시지를 가지려면 반드시 그 사건사건들을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네 인생에서 사건들이 무슨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기승전결(起承轉結) 혹은 ‘원인과 결과 그리고 반전’ 식으로 발생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우리네 삶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재구성시켜 봐야, 그 사건들에 담겨져 있는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런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외지인으로서 가다라 지방을 여행하셨을 때, 귀신들린 두 사람을 만납니다. 그때 두 사람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직감적으로 알아보고 두려워서 소리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당신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우리를 괴롭히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우리를 쫓아내시려거든, 우리를 저 돼지들 속으로 들여보내 주십시오." 이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가라”고 명하셨고, 그 귀신들은 돼지떼에게로 들어갔습니다. 언덕 위에 몰려 있던 돼지떼들이 비탈길을 내달려 바닷속으로 모두 빠져 죽는 대참사가 일어납니다. 돼지를 키우던 사람들은 놀라서 수군거렸고, 온 동네에 이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외지인들인 예수 일행을 찾아와서, 가다라 지방을 떠나라고 통보했습니다.
저는 오늘 기승전결(起承轉結) 형식으로 잘 구성된 이 성경 이야기를 다시 새롭게 ‘재구성’해보려 합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씀드린 ‘예수와 돼지 이야기’는 예수를 너무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들이 무의식적 충성심으로 ‘구성’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이지는 않겠지만 무의식적 충성심이 빚어낸 오류, 한쪽에 지나치게 몰입되어 있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무의식적 편견이 이 성경 이야기에 짙게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까 일반인의 입장에서 이 성경 이야기를 될 때 황당한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지요.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으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예수와 돼지 이야기’를 재구성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성경 이야기가 포편 타당한 이야기가 되고, 그래서 우리가 이 이야기 속에서 하느님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성서 이야기의 재구성>
외지인이었던 예수 일행이 가다라 지방에 들어갔을 때, 그 지방의 돼지떼들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서 자살하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짐작컨대 멀쩡했던 수백마리 돼지들이 비탈길을 내달려 바다로 뛰어들었고, 이들 전부가 죽고 말았습니다. 즉 돼지떼들의 집단 자살 사건입니다. 온동네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특히 돼지를 키워서 생계를 꾸리던 축산업자들은 울며 불며 난리를 피웠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현재 우리식의 계산법으로 말해보자면, 돼지 한 마리당 50만원이라고 치고 열 마리면 5백 만원이 날라간 것이고, 백 마리라면 5천만원이 날라간 것입니다. 가난한 서민의 입장에서, 수천만원 재산이 한 순간에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으니, 아니 바닷속으로 빠져버렸으니 …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지요, ‘원인’을 찾아야 했습니다. “왜, 누가 그 참사를 일으켰는가.”
가다라 지방의 토박이들은 자연스레 외지인들인 ‘예수 일행’을 범인들로 지목했습니다. “수상하다”이거죠. 낯선 젊은이들이 별다른 목적이나 이유 없이 가다라 지방에 흘러들어 왔고, 그들이 돼지떼가 돌아다니던 바닷가 언덕을 자주 오르내리던 장면들이 목격됐습니다. 지금도 그렇스지만, 2천년 전의 시골사람들은 아주 배타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토박이와 외지인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고, 수십년을 정착해서 산다고 해도 외지인은 결코 토박이가 될 수 없는 한계, 그 엄청난 간극이 존재했었습니다. 둘 사이에는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져 있었죠.
이어 그 즈음에 또 하나의 의미있는 목격담이 추가됐습니다. 그 외지인 일행이 어느 동네에나 있게 마련인 ‘귀신들린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냈다는 증언입니다. 토박이들 입장에서 보면, 외지인이나 마찬가지인 ‘귀신들린 사람들’이 외지인인 ‘예수 일행’과 결탁해서 돼지들의 집단자살이라는 참사를 일으킨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토박이 대표들은 험상궂은 얼굴로 예수 일행을 찾아와서 강력하게 항의했고, 예수 일행이 오늘 안으로 떠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통보하게 됩니다. 사실상 예수 일행은 가다라 지방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재구성된 성서 이야기 속에서>
재구성된 성서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하느님의 진리란 무엇일까요? 제가 보았을 때 그것은 “모든 대 참사의 근본 원인은 인간이 품은 악령(惡靈)에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의 입장은 분명 그랬습니다.
소설 혹은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가다라 지방에서 돼지떼들이 집단 자살하는 대참사가 일어났을 때, 예수는 귀신들린 사람들을 범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그 사람들에게 귀신을 들리게 한 사람들이 ‘진짜 범인’임을 지목하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느 동네에나 귀신들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왜 정신병을 앓고 있을까요? 제가 보았을 때, 그들은 너무 순수하고 순진하고 예민하고 민감해서 정신병을 앓는 것입니다. 즉 그 동네 사람들이 품고 있는 악한 영이 마을 곳곳을 빈틈 없이 꼭꼭 채우게 될 때, 그래서 숨 돌릴 틈도 없어지는 세상이 되었을 때, 몇몇 예민하고 민감한 영혼들이 정신병을 앓는, 즉 귀신에 들리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는 바로 이점을 분명하게 지적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독하게 품고 있는 악한 영들이 귀신에 들리게 되는 사람들을 만들어 놓았고, 그 악한 영의 독기 때문에 돼지떼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대 참사가 일어난 것임을, 예수께서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일행이 그 마을에서 쫓겨난 것이지요.
<우리네 삶 이야기>
우리네 삶 속에서 대참사는 일상화되어 버렸습니다. 새벽길을 과속으로 달리던 차들이 일으키는 끔찍한 교통사고는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고, 공사중이던 터널이나 다리가 무너지기도 하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부모형제를 죽이는 참사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학입시와 관련된 대참사도 매년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수험생의 자살 … 등등등. 또 더 나아가서 자연환경 오염에 따른 생태계 위기도 대참사 수준입니다. 빙하와 만년설이 녹고, 바닷물이 육지로 올라오고, 이상기온으로 겨울철이 여름이 되거나 가끔은 독한 한파가 몰아치거나 …….
예수의 말씀에 입각해서 보았을 때, 이 모든 대참사의 근원은 인간이 품은 악한 영에 있었습니다. 인간이 그 마음 가운데 품고 있는 악한 영의 독기(毒氣)가 온 세상을 구렁텅이로 처박고 있는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악한 영의 독한 기운을 풀지 않으면 …”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하늘의 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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