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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0:2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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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수도원교회 http://blog.naver.com/malsoom/148262094 |
2012년 1월 15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10장 26절~28절
설교제목 : 빙산(氷山)의 일각(一角)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덮어둔 것이라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마태 10:26~28)】
<빙산의 일각 이야기>
‘빙산(氷山)의 일각(一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다 위에 올려진 모습은 일각(一角), 즉 한 조각일지라도 그 아래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얼음덩어리가 숨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참 좋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우리 인생과 역사, 우주의 이치를 제대로 드러내 주는 ‘영성적 어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그래요. 그런 분류 역시 좋은 비유입니다. 그래요.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나뉘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초점은, 육체와 영혼이 일대일의 평등한 무게나 크기로 나뉘어져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나뉨이란 빙산의 일각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육체가 바다위의 한 조각이라면, 영혼은 바다 밑의 거대한 얼음덩어리라는 말씀입니다.
‘빙산의 일각’ 비유는 인간 세계 뿐만 아니라 그 범위를 넓혀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류에게는 ‘역사시대’(歷史時代)가 있지만 그 이전의 선사시대(先史時代)도 있습니다. 즉 문자(언어, 말)로서 삶을 기록했던 시대가 생기기 이전에 문자가 없던 시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의 시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그 이전에 어마어마한 크기와 질량의 선사시대가 존재했습니다.
의식(意識)과 무의식(無意識)의 구분도 빙산의 일각 차원에서 이야기 되곤 합니다. 의식의 세계가 빙산의 일각이라면 무의식의 세계는 물표면 아래 깊이 담겨져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와 질량의 존재이지요. 우주적인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충분히 이야기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구(地球)라는 별에 살고 있습니다만, 지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요. 지구를 품고 있는 우주는 어마어마한 크기로서 또 헤아릴 수 없는 시간으로서 존재해왔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빙산의 일각’은 인생과 역사와 우주를 아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영성의 언어입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덮어둔 것이라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마태 10:26~28)】
예수의 이 말씀을 ‘빙산의 일각’이라는 이해의 틀로서 읽고자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류는 ‘빙산의 일각’에 얽매여서 신음합니다. ‘육체와 역사, 의식’에 얽매여서 노심초사(勞心焦思)합니다. 육체(肉體)의 죽임에 대해서, 역사(歷史)의 매몰참에 대해서, 의식(意識)의 실종에 대해서 크나큰 공포와 절망을 느낍니다. 물론 저도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의 메시지는 “그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체 아래 영혼이, 역사 아래 선사가, 의식 아래 무의식이 거대한 실체로서 영속(永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와 역사, 의식은 그 본질상 찰나(刹那)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순간적인 실체입니다. 그러나 그 밑에는 어마어마한 놈(?)이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안심해도 됩니다. 예수의 메시지는 바로 그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한정(限定)>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하느님에 대해서 자꾸만 한정(限定), 즉 “한계를 정해서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느님” 등등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의 그런저런 한정(限定)에 포함되시면서 또 그 한정을 넘어서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하느님, 역사의 하느님, 의식의 하느님을 부르짖지만, 하느님은 이와 아울러서 영혼의 하느님, 선사의 하느님, 무의식의 하느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수면 아래의 하느님 속성이 더 크고 무거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더 크고 무거운 본질은 수면 아래 있는 것입니다.
<설교의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인생과 역사, 우주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닷물 위로 솟아 있는 빙산의 일각들을 누군가 깨트리고 짓밟았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절망하거나 공포를 갖거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바닷물 아래에는 ‘천각 만각 억각’의 빙산들이 거대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수면 위의 일각을 없애버린다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 언젠가 때가 무르익으면 수면 아래의 거대한 빙산은 또다시 일각의 빙산을 바닷물 위로 솟아오르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빙산(氷山)의 일각(一角)’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하늘의 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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