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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378 추천 수 0 2016.07.10 16: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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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2:35-37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2장 35절-37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쌔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그리스도가 다윗이 나기 전에 있었느냐, 다윗이 태어난 후에 다윗의 자손으로 있었느냐? 모르면 혼돈이 된다. 육신의 눈으로 보는 그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안 풀린다. 성령의 감화 감동 즉, 구원의 눈으로 봐야 한다.


다윗이 나기 전에 하늘나라에 계셨던 선재적 그리스도가 구약시대에도 이 땅에서 일을 많이 하셨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으로 태어나기 전에, 그리고 마리아가 세상에 있기 전 구약시대에도, 그리고 창세 이전에도 성령님께서 역사하셨고, 아울러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도 그리스도라고 하는 그 설계가 아니면 안 만들어지는 것이고, 인간도 그리스도로 통하지 않고는 안 만들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놓고 설계다. 그래야 구원이 된다.


서기관들이 족보적으로만 생각을 해서 예수를 다윗의 후손으로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태복음의 족보에 보면 마리아로부터 예수가 나셨다고 했다. 그 위로 ‘다윗의 아비 이새’ 이렇게 죽 올라가는데, 이것을 보면 ‘믿음의 사람의 가정에 그리스도가 태어나는구나.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돼나가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에 나타나 보이는 건 껍데기요, 껍데기는 시간이 지나면 불타고 썩고 없어진다. 그런데 그 속에 썩지 않고 영원히 가는 것이 있다.


사람이 죽어도 남겨놓고 가는 게 뭐냐? ‘그리스도, 구원, 예수’ 이것은 계속 내려간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몰라도 그 가정이 그 시대의 주 된 가정이다. 그 가정으로 구원이 내려간다. 믿는 자들의 가정은 이래야 된다. 그런데 왜 세상으로 자꾸 내려가느냐? 그래서 마태복음에도 보면 믿음의 사람의 족보에 하나님이 끼어있구나. 이걸 뒤집어서 보면 하나님의 족보에 인간이 끼어든 것이다. 이걸 생각해 봐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당신의 신령한 족보에 끼워 넣으려고, 속성적으로 성품적으로 영능의 능력자, 신적 도덕성적으로, 하나님의 도덕성적으로 최고의 고상한자로 만들려고 오신 것이다. 믿는 자들이 사건 환경을 만나면 ‘기도해 보고’ 하는 게 아니라 척 보면 하나님 판단으로 척 나가게 하려고. 그런데 예수 믿어 부자 되자? 참 어리석다. 성경은 행동을 말하는 게 아니라 행동 속의 그 사람의 정신을 말하고 있으니 그 정신을 바로 알면 그 다음은 자기 언행심사가 바로 나가겠금 판단이 나오는 거다.


어린아이는 나이 들기 전에는 먹을 것만 찾는다. 그러나 조금 더 크면 머리 쓰는 것을 찾는다. 일반적으로도 보면 수준이 그런 것을 여실히 볼 수 있는 건데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서,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 공부를 하면서 왜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썩어지고 자빠지고 불타고 변질되고 변동될 먹고 마실 것을 구하느냐? 이것은 이방인들이나 구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이방인들의 지식을 기준으로 가르치면 일반 도덕성의 기준이 된다.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일반지식이 기준이 돼서 그 도덕성으로 말하게 된다. 그러면 ‘착하게 살아라. 선하게 살아라. 남 도와주며 살아라’ 하게 된다. 그렇게 말하면 안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 안 믿는 사람도 다 좋아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자녀들은 행동이 어디서 나와야 하는가 하니 진리 깨달음에서 그 행동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저 사람은 도와주지 않아야 살겠구나’ 하는 것도 있는 거고, 아무리 부자라도 ‘저걸 그대로 놔두면 안 되겠구나. 하나님이 다 뺏어가야 저 사람은 정신을 차리겠구나’ 이런 지혜도 나오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교회에서는 정신이 돌아가는 것, 마음이 돌아가는 것을 보아야 한다.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면 ‘저 사람의 마음이 어디로 돌아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히스기아 왕에게 ‘네 집을 처치하라’ 했다. 말하자면 죽을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히스기야 왕이 어디를 보고 앉았느냐? 벽을 보고 돌아앉아서 ‘내가 그 전에 이렇게 이렇게 좋은 일을 했는데’ 라고 했다. 벽을 보고 돌아앉은 것은 말을 듣지 않겠다는 것이다. 부모가 말을 할 때 아이가 탁 돌아앉는다면 그게 부모의 말을 듣겠다는 거냐, 안 듣겠다는 거냐? 안 듣겠다는 거다. 그런데 그 자세를 모른다.


그런데 왜 그 기도를 들어준 거냐? 안 들어주면 안 된다. 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어준 것 같으냐? 그걸 보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뭐라고 하느냐? 히스기야처럼 기도해서 응답을 받으라고 한다. 어떻게 그 하나밖에 모르느냐? 만일 히스기야의 그 기도에 응답을 안 해 줬다면 교인들이 그런 기도를 안 할 것이다. 그런데 응답을 해 주었으니까 ‘아,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기도해야 된다’ 하는 것이다.


그런 기도를 하면 그 기도 속에서 므낫세가 나오는 것이다. 악한 왕이 되어서 나오는 거다. 사람만 보지 말고 히스기야의 정신에서 악한 왕 므낫세가 나오는 것임을 알아라. 히스기야의 정신이 행동화 되어 나온 게 므낫세란 말이다. 므낫세라는 사람을 보지 말고 영의 눈으로 그 정신을 보면 그 다음에 하나님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악한 짓이 나온다는 걸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눈으로 보여지느냐? 눈으로 보이는 그것이 다가 아니라 보이지 않은 것을 보라는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알면 안 믿는 사람처럼 껍데기만 보고 가게 되고, 자기 눈이 기준이 되고, 그게 바로 선악과다. 선악과가 뭐냐? 네 눈에 보암직한 게 선악과다. 생명과는 보암직으로 먹는 게 아니라 진리 본질로만 들어가면 자기 실력화 능력화 되는 게 생명과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게 생명과다. 그게 능력자다.


천국에 가면 병자들은 없다. 그러니 안수할 일이 없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진리 지식화, 진리 능력화, 하나님의 생명적으로 성장되고 장성된 것은 신령천국에서도 존귀영광이요, 이 땅에서도 그런 사람이 교회의 일을 하는 거다.


성경을 못 깨닫고 안수하고 돌아가면 무당이 된다. 그러나 이런 자들은 영분별을 못하니까 그게 성령인줄 안다. 성령의 운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일을 하신다. 진리이치를 무시하는 성령은 없다. 성령님은 진리이치와 동반을 하신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상한 소리 하는 거 주의하라. 오늘날 교인들을 얼마나 현혹시키고 미혹시키고 멍텅구리로 만들고 있는지? 그런 가정을 봐라. 옳은 가정이 있나 봐라. 자식이 바로 크나, 남편이 어떻게 돼 있나, 살림살이가 어떻게 돼 있나 봐라. 일반보다도 못하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는 구원. 그 구원은 어떻게 나오느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라고 하셨는데 ‘나는’ 하는 그 분의 이름이 예수다. 그러니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일을 하는 분이다 그 말이다.


교회에서 진리이치, 신적인 도덕이치, 하나님의 생명이치를 바로 깨달으면 구원의 사람이 된다. 주님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니 모든 이해타산 평가성이 그렇게 들어간다. 믿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돼야지 ‘예수 믿어 세상에서 부자로 살자’ 하면 안 된다. 안 믿는 사람도 다 그 생각을 갖고 있는데 예수 믿는 사람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산다면 성경을 배웠다는 게 뭐냐? 믿는다는 게 뭐냐?


하나님은 만능의 능력자이시니 온 천지만물을, 신령계와 물질을 만드신 분이다. 그런 분이 우리를 세상에서 일등부자로 못 만들어 주겠느냐? 그런데 왜 안 만들어 주느냐? 만들어 주면 너는 그 날로 죽는다. 돈 쓸 줄도 모르는 네가 억만금을 가지면 너는 그 날로 죽는다. 어련히 알아서 주님이 하시는 거다. 그러니 불평불만을 말아라.


자기의 환경 처소에서 내가 부족한 게 뭔지? 자기에게 부족한 걸 찾아서 보충하고 깨달아 가면 된다. 예를 들면 남과 싸워서 얻어맞았다면 거기서 깨달을 게 뭐냐? 못 깨달으면 하나님께서 날마다 얻어터지는 사건을 깨달을 때까지 주어야 한다.


쉽게 생각해서 가난한 집 아이가 부잣집 아이에게 얻어맞으면 가난한 집 아이가 뭘 생각해야 하겠는가? ‘아, 나도 소고기 먹고 힘을 길러서 두들겨 패야겠다’ 해야 한다. 이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 다음에 내가 워낙 놀기를 좋아해서 땡땡이를 치니까 공부 잘하는 학생이 날보고 ‘미련퉁이야, 바보야, 너는 공부를 못하니까 맨날 변소청소만 한다’고 하면 땡땡이치는 나는 거기서 뭘 깨달아야 하겠느냐? ‘남 날 때 나도 아았고, 남 밥 먹을 때 나도 밥 먹었는데 왜 내가 게을러서 이런 수모를 당하느냐? 나도 이제 밤잠도 안 자고 실력을 키워야겠다’ 해야 한다. 이건 일반적으로 옳은 생각이다.


그러면 이걸 끌고 와서 나는 교회를 수십 년 다녔는데 주일학교 다니는 애들보다도 성경지식이 없으면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느냐? ‘내일 모레 공동묘지에 갈 것이니 되는대로 살다가 죽자’ 해야 하느냐? ‘이 나이를 먹도록 진리를 한 이치도 못 깨닫고, 창조목적도 모르고 이렇게 늙어죽기가 참으로 안타깝구나. 성경을 돋보기로 봐가면서라도 내가 성경을 한 이치라도 더 깨달아서 다른 사람도 알게 해주고 가야지’ 해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만물이 보기에 찬송을 받을만한 일을 남겨놓고 가야겠다’ 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다. 그런데 말씀을 받는 자세부터가 가인처럼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 이런 자세로는 마음 밭을 백 날 갈아도 가시밖에 안 된다. 네 마음 밭에 농사가 안 된다.


인간 자기를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 자기가 자기 속에 지렁이가 몇 마리나 들었는지 아느냐? 모른다. 내가 내 마음을 아느냐? 모른다. 자기 마음인데도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면, 진리이치의 깨달음의 마음을 가지면 의 쪽으로, 선한 쪽으로 자유롭게 한다.


지식이 비뚤어지면 그 사람은 비뚤어진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이다. 중들 속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의 지식이 들어가면 그 사람은 예수를 믿게 된다. 그런데 그 지식을 못 가지니까 맨날 두들기며 중얼거리는 거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받아서 그 이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구원의 사람이다. 쉽게 말하면 예수처럼 모든 인격과 성품이 만들어진다.


그 다음에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부름을 받는다. 그 뜻은 성령님의 역사가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사람으로 구원이 들어가는 거기에는 신의 역사로, 하나님의 성령님의 역사로 된 사람이다 그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지식도 없이 무조건 성령 받으면 만능의 능력자처럼 생각을 한다. 이건 이미 그 사고방식이 마귀의 사고방식이다. 예수는 그렇게 믿는 게 아니다. 무당식이 아니다.


무당을 좋아하면 무당이 된다. 선지자를 대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 즉 너도 선지자처럼 되어가는구나. 가까이 하니까 닮아지는 거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한 자만 갖고도 그 뜻을 알 수 있다.


문제. 


우리를 위한 당신의 구원설계가 당신의 백성으로 하여금 예수 믿게 해서 천국에 가서 하나님 아버지처럼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재미있게 살게 하려는 이 구원설계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된 것이냐, 따먹기 전에 된 것이냐? 전부터다.


우리의 구원은 인간이 타락을 한 후에 나온 것이 아니라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설계가 돼 나온 것이다. 그 다음에 크게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들고 에덴동산에 생명과와 선악과를 만들었고, 그 다음에 선악과를 따먹는 사건이 있었고,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이 있고, 그 다음에 세상 마지막이 되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구원이 선악과 따먹은 후부터라면 이치가 어떻게 되는 것이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생명과와 선악과를 만들어 놓고 ‘이건 먹고 이건 먹지 말아라’ 했는데 하나님께서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을 줄을 모르고 두 가지를 만들어 놓은 것이냐?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했는데도 첫 사람이 따먹어버렸다. 그러니 누구의 잘못이냐? 만들어 놓은 분이 잘못이냐, 따먹은 인간이 잘못이냐? 그러니까 첫째로는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만들어 놓은 책임이 있으니 예수님을 보내야 한다. 그렇게 말이 된다. 이치적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된다.


그러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는 따먹지 않고 생명과부터 따먹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치는 간단하다. 선악과를 따먹으니 영이 즉시 죽었다. 반대로 먼저 생명과를 따먹었다면 죽겠느냐, 안 죽겠느냐? 안 죽는다. 사는 걸 먹으니 안 죽는다.


그러면 선악과를 안 따먹고 안 죽고 영원히 에덴동산에 사는 게 좋을 런지, 비록 선악과를 따먹고 죽었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피 공로로 구원을 얻어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게 좋을 런지? 그러니까 예수를 믿은 후에는 처음 인간을 만들 때의 그 영이 아닌 질적으로 천국을 다스리고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영처럼 되는 것인데, 선악과를 따먹고 그렇게 되는 게 좋을 런지? 후자다. 그런데 이렇게 물으면 후자를 선택하는데 마음속에서 하는 저울질은 선악과를 안 따먹는 쪽을 택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타락 이전의 영은 하늘나라에 못 들어간다. 그러나 죽지는 않는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 공로로 중생이 된 영은 그 때처럼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과 똑같은 질로 중생이 된 것이다. 예수님의 구속이 그렇게 들어가 있다. 그래서 중생이 된 영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니까 선악과를 안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안 죽고 영원히 사는 게 좋으냐, 선악과를 따먹고 죽었다가 신령한 것으로 다시 입고 천국에 들어가는 게 좋으냐? 자기가 선택하는 그게 자기 신앙이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우리에게는 잘 된 거냐, 안 따먹었어야 했느냐?


이건 기본구원에 속하는 지식이고, 우리의 이룰구원에 있어서는 학생이 학교에 들어갔으면 그 다음부터는 실력경쟁을 해야 하는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학교에 들어간 것이고, 들어갔으면 하나님 공부를 하는 거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진리이치를 깨달아서 깨닫는 족족 영원히 죽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정신을, 그 소원 목적을 먹어야 되는 거냐, 먹지 말라는 세상정신을 먹어야 되는 거냐?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현재 자기의 신앙이 위로 올라가느냐, 땅으로 내려가느냐가 나오는 거다. 이치를 모르면 거꾸로 믿게 되는 것이다. 이걸 바로 알려니 진리이치, 생명의 말씀, 신적인 하나님의 도덕이치를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귀가 와서 이걸 자꾸 흐려놓는다.


우리가 진리이치의 말씀을 깨달을 때 옆에서 그걸 방해하는 것은 마귀 짓이다. 한 이치를 놓치면 십 년이 갈지 이십 년이 갈지 모르는 거다. 한 이치 깨닫는 데서 자기의 영원한 것이 왔다 갔다 한다.


인간은 지음을 받았을 때는 선악과를 안 따먹었어도 하나님의 본질에 비해 이질이다. 하나님과 같은 본질은 아니다. 이 상태에서 생명과도 선악과도 안 따먹어서 죽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질은 하나님의 것과 다르다. 그런데 그런 차에다 선악과를 따먹어서 ‘먹으면 정령 죽으리라’ 한 대로 영이 죽어버렸다. 그러니 이제는 이질에서 죄악에 오염되어 타락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구속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죽은 그 영을 살리는 건데, 하나님의 질과 똑같이 살려놓는 것이다. 살아난 이 영은 하나님이 죽지 않듯이 절대로 죽지를 않는다. 못 죽는다. 그러니까 설령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다고 해도 그 영은 하나님의 질과는 이질이라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므로 인간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어 하나님의 본질로 돼야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거듭나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구속으로 영이 거듭나서 기본구원을 얻었으면 그 다음에는 옳은 진리이치의 말씀으로 신앙이 올라가야 한다. 신앙의 질이 집을 짓들이 하나님의 설계대로, 하나님의 질과 같이 올라가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 믿음이 올라가는 것은 세상소리를 듣고는 못 올라간다. 그건 다 불탈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영도 이질이고, 이것도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서 보면 천국의 본질로 만들어져야 하고, 선악과 따먹고 죽은 그 영도 이질이요 죄악성이므로 천국의 본질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어쨌든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이질은 통틀어서 죄라고 하는 건데, 이 죄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라야 되는 거다. 그래서 우리의 구세주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거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를 주님처럼 성장시키고 장성시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이치의 말씀밖에 없다. 질이 그것밖에 없다. 이것 하나밖에 없다.


‘우리교회만 진짜다’ 그렇게 보지 말고 옳은 진리본질의 말씀이 부산에도 있을 수 있고, 광주에도 있을 수 있고, 서울에도 있을 수 있는 거다. 본질로 올라가는 데는 정확하게 하나님의 옳은 천국의 말씀뿐이다. 이게 진짜 복음이다. 복음은 천국의 정신 사상 소원 목적이다. 복음은 들을수록 천국의 것으로 이해타산 가치판단이 나오는 거다. 사람이 그렇게 지식화 됐으니, 천국의 사람으로 됐으니 그의 판단은 천국의 것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 당시의 율법사들 서기관들 유대 종교인들의 가르침은 그런 천국복음이 아니라 일반지식의 기준이니, 그 기준에서 성경구절을 붙이니 종교적인 지식이 된다. 종교적인 이 지식으로는 예수님처럼 안 닮아진다.


성경은 예수님이 발견이 되도록 계시가, 알맹이가, 뜻이 들어있는 건데 당시에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은 껍데기로 가르쳤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아, 마귀의 새끼들아, 너희들이 전도를 해서 몇 배나 지옥자식을 만드는구나’ 한 거다. 지옥의 자식이 되면 옳은 진리이치의 말씀이 자기의 양심을 두드리는데 자꾸 제 고집으로만 나가는 거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을 한 명 데려다 놓고, 종교지식을 많이 먹은 사람 한 명을 데려다 놓고 이 두 사람에게 똑같이 옳은 진리로 가르친다면 어느 쪽 사람이 믿음이 빨리 올라가겠느냐? 예수 안 믿는 사람이다. 잘못 배운 지식이 들어있는 사람은 일단은 잘못된 그 지식을 내려놓고 다시 진리지식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잘못된 거기서 안 내려오려고 한다. 그러니 사람이 안 된다. 속에 온갖 잡된 지식이 들어서 사람이 안 된다. 이건 쓸모가 없다. 불속에 넣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차라리 불신자가 더 빠르다.


오늘날 교회들을 보면 말씀을 깨닫는 건 없고 예배당 크게 짓자고 하고, 자꾸 돈 소리 하고, 일을 만들어서 뭘 하자고 한다. 말씀 깨닫는 건 없고 그 위주로 돌아가면 사람 꼴이 어떻게 되겠느냐? 학교 식으로 말하면 이런 자는 차분히 앉아서 공부를 못한다. 돌아다니는 교인치고 깨닫는 사람이 없다. 돌아다니는 아이들치고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있느냐?


예수님께서 ‘나에게 오면 네 짐이 쉽고 가볍다’고 하셨다. 그런데 세상 지식화로 커진 사람은 자기는 안다고, 똑똑하다고 그 짐을 안 내려놓으려고 한다. 그러니 삶이 무겁고 고달픈 것이다. 그러나 옳은 진리지식으로 깨달음이 들어가면 사람의 마음이 평안하고 기쁘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지식이 아니다. 지금도 교회적으로 보면 그런 교회가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예수님의 경고가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했다. 비진리, 세상 종교적인 교훈, ‘사건이나 사역을 크게 만들어서 그걸 이루자’ 하는 건 일종의 바람이다. 사람이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허황돼진다.


세상복음을 받고 있으면 속에서 정신이 마음이 종교적인 세상으로 커진다. 그 쪽으로 부풀어 오른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세상 종교적 바람이 잔뜩 들어간다. 사람이 마음에 바람이 들어가면 그 마음은 정함이 없다.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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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33 마태복음 쓰임 받는 성도의 4대 의식 마21:1-11  이한규 목사  2016-07-25 535
13532 고린도전 한 몸 교회가 되는 길 고전10:14-17  이한규 목사  2016-07-25 490
13531 요한계시 기도와 관련된 3대 교훈 계8:1-5  이한규 목사  2016-07-25 450
13530 시편 고난을 극복하는 길 시119:67-72  이한규 목사  2016-07-25 560
13529 시편 말씀이 주는 4가지 축복 시119:45-66  이한규 목사  2016-07-25 568
13528 마가복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막13:1-4  김경형 목사  2016-07-24 752
13527 마가복음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막12:41-44  김경형 목사  2016-07-24 558
13526 디모데전 목사의 영성 딤전5:17  강종수 목사  2016-07-24 318
13525 사무엘상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삼상15:1-9  전원준 목사  2016-07-23 820
13524 골로새서 무효화된 빛 문서 골2:6-19  강승호 목사  2016-07-23 287
13523 누가복음 교회의 정체성 눅11:1-13  강승호 목사  2016-07-22 454
13522 에배소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5:8-9  한태완 목사  2016-07-22 1266
13521 느헤미야 작은 실천 느7:17, 70-72  최장환 목사  2016-07-19 490
13520 사무엘상 상대의 눈높이에 맞추자 삼상31:1-13  최장환 목사  2016-07-19 343
13519 아모스 힘의 으뜸이신 그리스도 암8:1-12  강승호 목사  2016-07-19 398
13518 마가복음 저희는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막12:38-40  김경형 목사  2016-07-18 217
13517 마가복음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막12:38-40  김경형 목사  2016-07-18 367
13516 창세기 정직한 자아 창32:26-28  강종수 목사  2016-07-17 323
13515 사무엘상 일하시는하나님 삼상14:1-7  전원준 목사  2016-07-16 761
13514 사무엘하 제단을 쌓으소서 삼하24:18-25  강승호 목사  2016-07-15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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