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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345 추천 수 0 2016.07.10 16: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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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2:35-40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2장 35절-40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쌔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 율법사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모세오경 즉, 하나님께서 모세로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성경 액면적 율법준수를 가르쳤는데 예수님은 왜 그들이 가르치는 것을 즉, 누룩을 주의하라고 했을까?


모세오경도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모세오경이 기록된 후에 구약성경에 이 모세오경이 다 담겨졌고, 또 예수님께서 오신 후, 그리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그리고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기록을 마칠 때까지 창세로부터 근 4천여 년 동안에 당신의 뜻을, 사건을 신구약 성경에 함축해서 기록을 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시에 성경을 가르치는 그들의 교훈을 주의하라고 했다. 쉽게 말하면 ‘그거 받지 말아라’ 했다. 그 이유가 뭘까? 그 때 당시의 그들이 모세오경을 가르칠 때나, 오늘날 교회에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가르칠 때나 성경을 액면 그대로 글자적 문자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오늘날 신약시대에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신다면 구약 때 말씀하셨던 ‘바리새인들의 교훈을 받지 말라’는 그 소리를 또 듣게 돼 있다.


그러면 예수님이 가르치는 말씀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성경을 가지고 가르치는 교훈이 뭐가 달라서 그런 거냐? 구약성경 속에, 율법 속에 하나님의 의사와 뜻이 들어있다. 신약성경도 표면적으로 보면 역사요 사건인데 그 속에 뜻이 들어있다.


성경이 성령으로 즉, 하나님의 신으로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예수 믿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고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게 뭐냐?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지식으로, 하나님의 선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거룩으로, 하나님의 의로, 하나님의 주권으로 만들어지라는 것이다. 말씀 속에 들어있는 이 뜻을 잘 알아차리면 속성이 주님처럼 닮아지는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존재적으로는 하나님은 아니나 천국을 상속받고 소유하고, 천국에서 살며 누릴 자이기 때문에 그 하늘나라의, 하나님의 마음을 닮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해타산을 닮아라. 하나님의 결정을 닮아라. 하나님처럼 닮아라. 마5:48에 ‘내가 온전한즉 너희들도 온전하라’ 하는 것도 나처럼 되라는 것이다. 지식적으로 나처럼 되고. 하나님의 지식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나오는 거다. 또 하나님이 지식에서 도덕성도 나오는 거다.


그런데 세상 속화되고 타락된 교회가, 인도자들이, 이단자들이 교회에서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도덕적인 지식을 가지고, 그 생각을 가지고 그 기준을 세워놓고 성경을 가르치니 교인들의 속정신이 세상으로 가게 된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소원하는 선, 세상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게 자꾸 나오는 거다. 하나님의 신령적인 것은 천국 것이고, 오늘날 거짓된 자들이 이단자들이 가르치는 것은 땅의 것이다. 마귀가 그 짓을 하게 한다. 성경을 가지고 땅의 것을 소원하게 한다.


그런데 성경은 시1:에 ‘복 있는 사람은’ 하고 참된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나온다. 성경을 들여다보면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사람 중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래서 그 주님께서 인간 되어 오신 것은 ‘너희들도 나처럼 닮아라’ 하는 의미가, 소원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성경을 가지고 사람이 그렇게 되도록 마음과 정신과 소원과 목적적으로 주님과 밀착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밀착을 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지식을 가져야 밀착이 된다. 내가 아무리 예수 믿고 불 받고 해도 주님과의 인격적인 밀착이 없으면 그거는 이해타산적으로 밀착이 아니다. 그건 마귀 짓이다.


일반적으로도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이 사람을 볼 때는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 하는 세상공부를 많이 한 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높이 본다. 또한 ‘얼마나 돈을 많이 버나?’ 하는 것으로 사람의 가치를 따진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놀아주고 웃겨주고 하는 사람이 돈은 많이 받는다.


일반적으로 지식이 높아야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면 그 사람에게는 돈을 많이 주어야 하겠는데 세상은 타락된 세상이라서 아무 것도 몰라도 낙하산을 타고 높은 자리에 앉으면 월급이 많다. 세상은 정확한 곳이 아니라서, 마귀가 역사하는 곳이라서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 속에서는 성령님이 역사해야 하는데 왜 교회 안에서 세상정신을 받아서 세상 영이 판을 치고 있느냐?


그러니까 그렇게 된 것은 교인들이 세상 소원 목적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 자꾸 세상 것을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으로 다 주었다. 성경대로 들어가면 하나님 당신이 보고 알아서 주시는 거고, 성령님의 감화 감동이 또 있는 거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도다.’ 예언 방언을 못해서 망한다는 말은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머리 씀씀이가, 마음 씀씀이가 질서정연하고 반듯해야 한다. 어디를 가던 바른 판단, 바른 언행심사가 나와야 한다. 안 믿는 자와 똑같은 차원에서 놀면 사람이 달라진 게 뭐냐?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욕심, 똑같은 마음, 똑같은 이해타산을 가지면 성경을 배운 게 뭐며,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런 거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경고를 했다. 우리교회도 그 경고를 하는 거다. ‘예수 잘 믿어 세상에 부자 되고 병 낫고 뭘 하든지 만사형통되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성경에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 하는 걸 세상에 속한 걸 받는다는 것으로 해석을 하면 안 된다. 사람이 복된 사람으로 만들어지면 나가도 복, 들어가도 복이다. 사람 만들어지는 건 100%다. 가난해도 복, 부자여도 복, 사건을 만나도 복이다. 즉 믿음의 실력이 있어서 이치가 잘 깨달아져서 잘 이용 활용을 하니 믿음이 자라는 면에서 막힘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사람끼리 막혀 있으면 거기는 문제가 들어가 있다. 한 가정에도 손자들도 있고, 손녀도 있고, 형제들도 있고, 자식들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으니 밑에서 배우고 올라오고 끌어주고 밀어주고 하는 게 가족이다. 그런데 한 식구인데도 왜 안 통하느냐? 이건 뭔가가 문제가 있다.


한 식구인데도 왜 안 통할까? 부부끼리인데도 왜 안 통할까? 이건 문제가 가로놓여 있는 거다. 어느 쪽이던 선악과를 따먹은 거다. 양 쪽이 다 따먹었을 수도 있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융통성 있게 안 돼 있으면 막히는 거다. 막히면 누가 답답하고 고통스러우냐?


이걸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모든 정신적인 면에서 병이다. 이 병을 진리이치의 말씀을 가지고 고치지 못하면 못 고친다. 성격 성질이 더러운데다가 사건 환경이 자꾸 파도처럼 몰아붙이면 헤어날 길이 없다. 그 길로 죽는 거다.


우리는 정신과 마음이 자유를 얻어야 한다. 말씀의 실력으로 환경을 뚫어보고 ‘이치가 어떻게 흘러가나, 신앙정신이 어떻게 흘러가나’를 볼 줄 알아야 자유가 되는 거고, 그래야 내가 살 길도 아는 거다. 그러나 말씀에서 못 깨달으면 자기는 이물물이고 이용감이다. 자기는 이용을 안 당한다고 하지만 은연중에 이용을 당하는 것이다. 깨달음에 있어서 ‘저 사람은 저렇구나. 나는 저런 사람이 안 돼야지’ 해야 되는데 그게 없으니 그 사람에게 이용감이다.


우리는 좋은 쪽으로 본이 돼야 하는데 못된 쪽으로 들어가서 이용감이 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나는 똑똑하다고 할 테니 그게 똑똑한 거냐? 구원성장이 안 되는데, 사람성장이 안 되는데 그게 똑똑한 거냐? 성경구절을 달달 외우는 게 믿음이 아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의 속 중심을 보신다.


자기가 평소에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말씀의 이치를 들을 때 평소 알지 못했던 그것이 알아졌을 때는 그건 사는 거다. 그런 걸 하나라도 맛보았다면 그 하나는 사는 거다. 산 것이 살아날 수 있도록, 잘되도록 키워야지 그걸 짓밟으면 안 된다. 진리 따르는 신앙앙심을 짓밟으면 그 사람은 평생 살아도 별 볼일 없다.


오늘날 교회들이 성경을 문자적 역사적 또는 혈통적 외부적 표면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많다. 성경이 곧 신학이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사람이 주님으로 만들어지는 철학이 들어있다. 어쨌든 세상성, 세상 물질성, 일에다, 사건에다, 자기 좋도록 가르치고 기도하는 것은 마귀적, 육적, 옛사람 부패성적 가르침들이니 그런 걸 주의하라. 그런 거 듣지 말아라. 들으면 너도 그 사람이 된다. 마귀의 이용물이 된다.


38절-40절: ‘서기관들을 삼가라.’ 서기관들이나 율법사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요 목사요 교회를 가르치는 지도자들이라 할 수 있다. 서기관들은 백성들에게 성경을 해석해주고 가르치는 성경 전문 교사들인데 왜 이들을 삼가라고 할까? 예배 때마다 성경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자들인데 왜 이들을 삼가라고 하는 것이냐?


설교는 성경해석이다. 세상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코미디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풀어놓는 것이다.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서 그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성경해석이다.


하나님의 뜻이란 성경 속에는 나의 온전을 위해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드는 그 이치가 들어있으니 말씀 속에서 그것을 깨달아서 그런 성품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나열을 하자면 하나님의 지식 지혜 선 사랑 거룩 진실 의와 주권 등이 있는데, 이 하나님의 속성을 내가 갖는 게 하나님의 뜻이다.


안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식이 없다. 예수를 믿어도 하나님의 지식을 바로 모르면 안 믿는 이방인들이 아는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안 나온다. 하나님을 닮는 이치는 안 나온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성경에서 우리의 온전의 이치를 발견하여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사건과 환경을 통과하면서 말하자면 바닷가의 돌이 흐르는 물에 자꾸 씻기면 모난 것이 둥글게 되듯이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인격과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고쳐지고 잘 닦여져서 영모의 미모성을 잘 가꿔나가야 한다.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은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들로 하여금 영적 미모성을, 영능의 실력을 닦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좋은 환경이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런 걸 마귀가 준다고 하는데 마귀는 그런 걸 못 준다. 혹 마귀가 준다고 해도 욥기에서처럼 하나님의 허락이 아니면 안 된다.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누가 일으켰느냐? 마귀냐? 마귀가 일으켰다고 하면 이방 신을 믿는 무당적인 정신이 나오는 거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건너가라고 보내놓고 당신이 바닷가로 올라간 사이에 마귀가 풍랑 파도를 보낸 것이라고 한다면 이게 어떻게 되는 거냐? 마귀가 풍랑을 일으킬 것을 예수님께서 미리 알고 무서워서 도망갔다고 하게 된다. 이러면 예수님의 전능성 전지성은 어떻게 되는 거냐? 우리는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사건을 마귀가 일으켰다고 보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무당신앙이 돼버린다.


세상 모든 만물이나 세상의 모든 존재나 각종 역사의 진행이나 안 믿는 사람까지도 모두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 마귀도 우리의 영적 면의 민감성을 위해 영능의 실력을 닦게 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다. 그래서 마귀는 영물이다. 우리는 영과 육의 결합체이다. 세상 모든 사건은 주님의 허락 하에 왔다 가는 것이다.


마귀를 이 세상에 둔 것은 우리의 영적 실력을 닦게 하기 위해서이다. 마귀가 하나님처럼 교인들에게 사건을 주니까 교인들이 ‘나 죽겠다’ 하니 성령님이 일어나서 마귀가 저질러 놓은 일을 수습하러 다니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이런 신앙은 거짓 종에게 이용물밖에 안 된다. 성경을 모르는 목사들은 이치적인 깨달음은 못 주고 공갈협박을 하게 돼 있다.


자기 생애가 어떤 인생이냐? 성경은 분명히 ‘네가 살고 있는 이곳은 잠깐이다. 조만간 너를 데리러 올 터이니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네가 하나님처럼 만들어져서 그 실력대로 나와 천국에서 영원히 살자’ 하고 말씀을 하신다. 주님께서 나를 데리러 오는 것은 ‘너랑 나랑 천국에서 영원히 살자’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너를 데리러 오기 이전에 이 땅에 사는 동안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실력을 많이 닦아 놔라. 꼬리가 되지 않고 큰 자가 되어야 한다. 머리가 되어야 한다’ 라고 하신다.


머리가 되려면 깨우침이 밝아야 한다. 1년을 믿어도 하나님께 ‘밥 줘’, 서른 살이 됐는데도 ‘하나님 나 밥 줘’, 쉰 살이 됐는데도 ‘하나님 아버지, 나 용돈 줘’ 그런 식이 되면 안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치에 밝아야 하고, 사물에 밝아야 하고, 어떤 말을 들어도 판단이 나오고, 내가 있어야 될 곳인지 없어야 될 곳인지를 알아야 한다.


교회 인도자들은 성도들을 신령천국에서 영능의 실력대로 살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교회의 인도자로서 목사들이 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죄가 되는 거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은 좋게 말하면 도덕성도 모범일 테고, 성경 학박사들인데 왜 이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하는 거냐? 그들도 성경을 가르치고, 예수님도 성경을 가르치는데 왜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냐?


한 마디로 하나님의 주권과 독권으로 이뤄놓은 기본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거저 받았다. 사죄 칭의 새생명의 영 중생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공짜로 해 주셨다. 말은 공짜지라고 하는 거지만 공짜라는 이 속에는 예수님의 33년의 흠과 티가 없이 사신 삶의 걸음걸이가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면 33년간의 흠과 티가 없이 사는 게 어려운 건지, 아니면 그 날로 세상에 와서 그 날로 십자가에 죽는 게 어려운 건지? 다시 말하면 33년을 죄를 하나도 안 짓고 사는 게 어려운 건지, 아니면 그 날 와서 그 날 죽는 게 어려운 건지? 어느 게 쉬우냐?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 그 날 와서 그 날 죽는 건 쉽다. 그러나 33년 동안 죄를 한 번도 안 짓고 흠과 티가 없이 사는 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이다.


그러면 33년 동안 죄를 한 번도 안 짓고 흠과 티가 없이 사신 것은 당신을 위해서냐, 아니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렇게 산 것이냐? 후자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으실 때마나 누구를 생각하고 그렇게 걸으셨느냐? 바로 나를 위해서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주님의 그 삶의 심정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그 정신을 헤아려 봐라.


‘바리새인들을 삼가라. 서기관들을 삼가라’ 하는 것은 그들의 교훈은 이질이요 세상적이요 인본주의요, 사랑도 아가페가 아니라 인간 조작배기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교훈으로 나오는 거고, 사람을 깨닫게 해서 올리는 거다. 이게 아가페 사랑이다. 등 두들겨주고 업어주고 하는 게 아가페가 아니다. 사람을 영리하고 똑똑하게 만들고, 영원히 존귀영광자로 만드는 교훈을 줘야 이게 아가페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은 진리다. 사람을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아가페 사랑이다.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의 넓이만큼 만들어야 한다. 말씀의 이치가 아니면 좁다. 왜? 물질 이해타산으로 할 테니까. 좁으면 받을 것도 못 받는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바 하나님의 온전을 떠난 교훈은, 가르침은 천국복음이 아니니, 하늘나라 소식이 아니니 믿는 우리는 그런 가르침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니 그곳에서는 떠나라고 하신다. 세상을 가르쳐 주는 곳은 옛날 바로 왕이 있던 애굽과 같은 정신이니 거기서 탈출하라.


구약에 양의 피로 탈출을 하는 것은 그 이치가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 죄에서 탈출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죽은 지식에서 산 지식을 가지려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죽을 수 없는 그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산 지식이 나오는 거다.


예수님께서 33년 동안 이 땅에 살아계실 동안에 세상의 소원 목적을 가지고 산 것이냐? 그건 아니다. 우리의 구원은 천국의 정신 사상 소원 목적, 하늘의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를 가져야 인간이 구원이 된다. 그래야 우둔한, 무식한 지식에서 구원이 되는 거다. 구원이 된다는 건 하늘나라의 지식으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차원이 높다는 것이다. 땅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독교 안에 구복주의나 신비주의나 사회주의 극기주의 초절주의 은둔주의 현세주의 등 얼마나 많으냐? 이건 다 함정이요 이방신관이다. 이것은 귀신을 섬기는 것과 같은 거다. 그런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천국복음이 아니니 질이 다른 것이다. 그러니 들을 필요가 없다.


서기관들을 삼가라. 왜냐하면 서기관들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 긴 옷이던 짧은 옷이던 하나님을 믿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 예수님께서도 긴 옷을 입으셨고 서기관들도 긴 옷을 입었는데 예수님께서 왜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하느냐? 문제는 그들은 그 옷을 입어야 만이 자기가 훌륭하고 선생이라는 걸 나타낼 수 있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겉의 옷을 어떻게 입어야 훌륭하게 보이지? 박사처럼 보이지? 무슨 배우처럼 보이지?’ 하고 따지는 그 정신이 문제다. 이들은 속사람이 아닌 옷을 가지고 따진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옷을 몸에 맞게 입으라는 뜻인데, 세상은 옷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을 한다. 그러나 사람의 가치는 속에서 나오는 거다. 과일 맛은 속에서 나온다.


옷은 입음으로 해서 자기 몸을 보호한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자기 신체 몸을 보호하고 둘러쓰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자기의 옷이다. 돈 명예 등에 자기가 보호를 입고 있다면 그게 일종의 자기 옷이다.


우리는 입는 옷만 보지 말고 자기를 보호하고 있는 게 뭐냐? 무엇이 자기를 보호하고 있느냐? 자기는 무엇의 보호를 입고 있느냐?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보호를 입고 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기독자들은 누구의 무엇에 보호를 입고 있느냐?


나이 많은 부모는 자식의 물질적인 보호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건 다 지나가고 상황이 달라지면 없어질 수 있다. 그러니 참 보호를 입으려면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라. 하나님께 잘 보여라. 하나님과 원수를 만들고 사람에게 잘 보이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거는 사람과도 원수가 돼버린다. 자기를 인간으로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아라.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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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01 고린도전 성찬에 참여하는 자세 고전11:17-34  이정원 목사  2016-07-09 614
13500 창세기 사람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뜻 창27:1-13  이정원 목사  2016-07-09 509
13499 창세기 예배를 회복하자 창26:23-35  이정원 목사  2016-07-09 807
13498 사무엘상 충성된 신앙의 삶 삼상13:1-15  전원준 목사  2016-07-09 676
13497 누가복음 예수 따름의 위급성 눅9:51-62  정용섭 목사  2016-07-08 361
13496 누가복음 귀신 이야기 눅8:26-39  정용섭 목사  2016-07-08 493
13495 갈라디아 율법과 십자가 갈2:15-21  정용섭 목사  2016-07-08 403
13494 누가복음 울지 말고, 일어나라! 눅7:11-17  정용섭 목사  2016-07-08 615
13493 시편 진정한 가나안 신자 시1:1-3  강승호 목사  2016-07-08 544
13492 아모스 세상을 이기는 믿음 암7:7-17  강승호 목사  2016-07-07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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