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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일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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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종수 목사 |
참고 : | 2016. 7. 31 주일 오전 설교http://cafe.daum.net/st888 |
성경 : 요일1:1-4
제목 : 진리의 사실 확인
요일1:1-4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한 집에 모여서 문을 닫고 있었는데 문도 열지 않으시고 갑자기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며 그들에게 평안하도록 하셨습니다(요20:19). 이렇게 경험을 한 제자들이 그날 자리에 같이 하지 않은 도마에게 부활의 주님을 보았다고 전하니까 그는 철저히 불신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시 요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며 도마를 만나주셨습니다(아직 승천 전이며 땅에서 40일간 계실 때, 행1:3).
왜 이렇게 전에 도마가 없을 때처럼 꼭 같이 나타나시고 같은 말씀을 하셨냐 하면 제자들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도 어떻게 하면 이 진리를 사실적으로 잘 증거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진리의 사실 확인>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성경(하나님 말씀 기록 문헌)
예수께서 하늘에서 친히 보고 들은 바를 말해도 사실을 믿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요3:32 ‘그가(예수님)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전달이 잘못이 아니라 불신적인 사람들의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교 역사적으로 보면 성경을 듣게 하고 보게 하는 가운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을 보게 됩니다. 딤후3:15 ‘..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 전해 듣는 말씀(설교, 전도)
설교는 제 2의 하나님 말씀이라고도 합니다.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지혜롭게 설명해서 진리의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일입니다.
행17:11-12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개역, 신사적이어서, εὐγενής, 고매한 인격)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이렇게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해 성경을 친히 상고하다가 믿게 되더라는 말입니다.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 과연 사실인지를 알고 싶은 마음의 충동은 은혜를 확인하고 얻을 기회를 포착하는 마음이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확실한 태도입니다.
3. 나의 경험된 진리(간증)
일반 사회문화적 사건을 증언하는 일에도 법정에 사건을 확증하기 위해 두 사람 이상 증인 채택을 합니다. 사건의 진실성을 위해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내보내실 때에, 눅10:1 ‘..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막6:7)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던 사도였습니다. 요21:20 ‘..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 하던 자였습니다(요13:23). 그만큼 주님을 느끼며 지내던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주님의 사랑을 많이 느꼈든지 사랑을 많이 강조했고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보고 만지기도 한 예수를 증거하지 않을 수 없다 했습니다.
본문 요일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고 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은 요1:1에도 말한바 하나님의 말씀이요 곧 하나님을 뜻합니다. 2절,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다고 했고, 3절에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라고 했습니다.
이 태초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보고 듣고 손으로 만진 바 된 요한이 증거하는 것은 전해 듣는 것이 아닌 실제 몸으로 체험한 예수를 증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전한다는 말, 아팡겔로(ἀπαγγέλλω)는 공식적으로 소식을 보고하고 선언하고 공포하다는 뜻입니다(announce, declare).
베드로도 요한과 함께 행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표현했습니다.
전도의 가장 큰 힘은 자신이 말씀을 체험한 것을 근거로 증언할 때 자신감이 넘치게 됩니다. 사실적인 경험만큼 확실한 지식이 없습니다.
(1) 요4: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인하게 되어 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확실하게 와서 보라고 증언하게 되었고,
(2) 요9: 날 때부터 맹인으로 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되었는데 바리새인들이 그 연유를 자꾸 물으니까 얼마나 확신에 차서 하는 말인지,
요9:27 ‘..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하고 용감하게 증거하는 것을 봅니다.
(3) 바울 사도는 예수교를 핍박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주님이 나타나셔서 그를 부르시고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로 삼으셨는데 그가 복음을 전할 때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소명을 받은 상황을 힘 있게 증언하였습니다(행9:, 22:6, 26:13).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마음은 영생을 얻었으므로 한량없는 즐거움이 차있습니다.
그래서 그 즐거움을 서로 함께 나누자는 뜻에서, 본문 요일1:3-4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 4. ..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사귐이 단순한 교제의 차원이 아니라 영생의 기쁨을 함께 누리자는 뜻입니다. 전도는 몸으로 그 영생의 기쁨을 채운 사람들이 함께 이 영생이 주는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간절함에서 시작되는 일입니다. 우리들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몸으로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신앙생활로서 확신하며 증거하는 삶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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