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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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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3장 5절-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자기 몸은 성령님이 거하는 전으로서 그 자기에게는 중생된 영이 있고 몸은 의의 병기로 쓰여져야 할 몸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미혹자들의 가르침에 의해서, 거짓 종들의 비진리적 가르침에 의해서 그 자기 몸이, 그 전들이 전부는 파괴가 된다. 자기 몸을 누가 떼어서 파괴가 되면 속상한 것인데 자기 몸은 주님이 전인데 자기의 생각이 세상성으로 가득 차 있어서 자기 몸이 망가지면 누구에게 하소연을 하겠느냐?
성경구절에 ‘모든 병은 마음에서 난다’고 했다. 마음을 잘못 먹으면 그 다음에 몸은 잘못된 그 마음을 따라간다. 신앙의 이치적으로 본다면 자기의 마음이 누구를 붙들고 있는지, 또는 누가 자기 마음을 붙들고 있는지? 그렇게 되면 자기 몸도 거기에 따라 움직여진다.
일반 이치적으로도 오늘날 그런 일이 많은데, 돈 벌려고 도시로 도시로 가는 건 마음에 의해서 가는 건데 그러는 그 자기의 몸이 건강하냐? 아니다. 이미 그 정신은 병 들었고, 그 다음에 여러 가지 환경에 의해서 자기 몸도 망가진다. 그러니 병원만 돈을 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몸 안에 암이 퍼져서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도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하는 심정으로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 산으로 가서 약초도 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좋은 공기 마시고, 오염이 안 된 식물을 먹고 해서 낫는 사람도 간혹 있다. 여기서 살던 저기서 살던 그 사람의 마음중심이 어디에 가서 있느냐에 따라 자기 몸이 움직여지니 자기가 죽고 살고 하는 게 나온다. 역시 예수 믿는 사람도 어떤 교훈을 받느냐에 따라서 자기의 정신이 병이 들거나 건강하거나 한다. 그 이치를 어기면 안 된다. 이치를 무시하고 살면 그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이리라. 자기는 감염성이 있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예언을 하셨는데, 선지 사도들이 먼저 예언을 한다. 그 다음에 그걸 믿는 자는 그것이 이뤄지는 걸 보게 되고, 안 믿어도 그 사건을 보게 된다. 그런데 예언을 하지 않고 그냥 사건이 오면 잘 모른다. 그래서 먼저 예언을 하고, 그 다음에 그 사건을 만나게 해서 ‘아, 하나님께서 하시는구나’ 이걸 알게 한다.
모세가 바로 왕에게 늘 예언을 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내놓지 않으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난다.’ 또 말을 안 들으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했다. 계속 지적을 해 주는데 안 고친다는 것은 모세의 말을 그냥 인간의 말로 알아듣는 것이다. 이치적인 말은, 예언적인 말은 인간의 말이 아니다. 그런데 바로 왕이 모세의 이런 말을 하나의 인간의 말로 알아들으니까 그 예언을 안 듣는 거다. 내일 일어날 일인데도 안 듣는 거다. 모레 일어날 일을 또 안 듣는 거다. 그렇게 해서 결국 열 가지 재앙에서 장자가 다 죽는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희망 사랑 건설 소망 등 자기의 생애가 다 죽는다는 의미다. 그러니 사는 게 아무 낙이 없다. 그런 계시가 들어있다.
그리고 이룰구원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대로 살면서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한 것처럼 자기에게 구원이 이루어지면 이게 이룰구원의 멋있는 믿음이다. 이것이 자기 안에서 이뤄지고, 그 다음에 자기 생활에서, 그 다음에 자기 전 생애에서 그 예언이 이뤄지게 하는 것이 창조의 목적대로 사는 인간이다. 참 인간이다. 매 주마다 예배당에 들락날락 들렸다 가고 하는 이건 아니다. 자기가 그렇게 되느니만큼, 또는 안 되느니만큼 자기가 살아가는 중에 자기에게 다 나타날 것이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이뤄진 것이고, 또 그것은 계시로써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서 확대하여 예언적으로 말씀을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루살렘 안의 세계 최고의 종교지도자들을 보고, 또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고 그걸 확대해서 보는 거다. 그 망하는 사상들을 확대해서 보는 거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안의 최고의 종교지도자들이 하는 것을 보면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최고라고 하는 사람들의 신앙의 성질 성격이 그냥 보이게 된다.
처음의 유형적인 성전은, 눈에 보이는 성전은 모세의 장막성전이다. 왜 장막성전이냐? 이 성전은 하나님의 인도대로 자꾸 옮겨야 했기 때문에 장막으로 지었다. 이걸 어떤 면으로 보면 우리의 생활이, 자기 몸이 장막성전이다. 왜냐? 장막은 쉽게 허물어지고, 얼른 얼른 옮길 수 있는 게 장막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진리가 목사님을 붙잡고 교회를 장소적으로 딴 데로 옮기면 교인들은 각 개인들마다 가정마다 장막이니까 그 목사님과 같이 움직이는 거다.
그런 이치를 가지고 자기가 믿음생활을 더 많이 하고 싶고 편리적으로 하고 싶으면 교회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 모세의 장막성전이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면서 자꾸 옮기는데 자기는 편히 살고 싶어서 몸은 애굽에 있으면서 애굽의 수레를 타고 모세가 장막을 옮기는 데로 와지는 거냐? 불가능이다.
교회에서 멀리 있을 때 열심히 섬기는 사람은 교회와 가까이 있으면 더 열심히 섬긴다. 그러나 교회와 가까이 있던 사람이 게으름을 피면 교회와 멀리 떨어지게 되면 더 게을러진다. 그러다가 아예 안 나와진다. 변명이 붙게 된다. 이치가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자리를 잡게 되는데, 자리를 잡은 후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하나님의 설계대로 짓는 거다. 자리를 잡고 성전을 짓게 되면 그게 기준이 된다. 그래서 북쪽에 있던 남쪽에 있던 동쪽에 있던 서쪽에 있던 다 그 성전을 기준으로 모이게 되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솔로몬이 이방여자를 끌어와서 나라가 두 조각이 나서 북조 이스라엘은 열 지파, 남조는 유다를 국호로 하고 두 지파로 나눠졌다. 열두 지파가 북조에는 열 지파, 남조에는 두 지파로.
그런데 남조유다에만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고 북조에는 없다. 그렇게 되니까 북조의 모든 백성이 안식일이 되면 남조유다의 성전으로 예배를 드리러 가는데, 북조의 여로보암 왕이 이걸 못 가게 하기 위해서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웠다. 송아지는 희생제물인데, 이걸 오늘날로 쉽게 말하면 ‘충성봉사하면 복 받는다’ 이걸로 딱 세워놓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못 떠나게 한다. 이게 북조 이스라엘의 우상이다. 성전으로 가야만이 하나님의 기준이 있고 법궤가 있고 율법이 있고, 그곳에 가서 그 정신을 만나서 하나님의 성품화 되는 건데 북조에는 그게 없다.
지금도 교회에서 설교를 들어보면 세상을 기준으로 세워놓고 그걸 이뤄달라고 한다면 그건 우상이다. 금송아지다. 금송아지는 돈이고 부귀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순종을 잘하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산다’ 하는 것은 목적관이 달라진 것이다. 이게 금송아지다. 그런데 지금 이게 금송아지인줄을 누가 아느냐? 이건 예수님의 가르침의 정신도 아니다.
모세의 장막성전도 하나님의 설계에 의해 지어졌다. 똑같이 예루살렘 성전도 하나님의 설계에 의해 지어졌다. 그러니까 성전은 하나님의 설계가 들어있다. 이것을 오늘날 교회의 각자에게 가지고 와서 보면 성전이 하나님의 설계대로 척도대로 지어진 것처럼 자기의 이룰구원도 하나님의 설계대로 척도대로 되어지는 것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대로 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가 생명적인 구원의 삶을 살려면 자기의 인생길을 하나님의 진리이치대로 살아야 한다. 그게 구원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성품으로 닮아지는 거다. 그런데 그게 아닌 세상 넓은 길의 사상을 지니면 자기에게는 이미 성령님은 떠난 것이다. 전이 아니다. 거룩한 몸이 아니다. 구별되고 성별된 몸이 아니다. 세상정신을 집어넣으면 어디를 가도 세상정신으로 살기 때문에 모든 추한 행동이 다 나오게 된다.
오늘날 마지막 시대의 교회가 목사부터 잘못되면 그 예배당은 쓰레기통이 된다. 귀신집이 된다. 그런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봉사를 한다고 해도 말씀의 이치를, 사람 되는 이치를 아느냐? ‘교회를 어느 정도 몇 년 동안 다니면 이 정도는 일어서야 하는 건데’ 하는 게 있는 거다. 초등학교를 3년 정도 다니면 구구단은 외워져야 한다. 그런 것처럼 믿는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다니면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기본상식이 있는 거다.
오늘날 자기의 몸은 성령님이 계시는 전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영인성장이 되면서 자기의 몸은 의의 병기로 쓰여지는 몸이다. 이게 전이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은 술도 담배도 끊는 거다. 그런 걸 하게 되면 몸이 망가진다. 거룩하게 쓰여져야 할 자기 몸이 망가진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이유는 없다. 자기 몸이 망가질 정도로 일을 하거나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하거나 하면 안 된다. 사람은 정신에 의해서 되는 것이니까 정신이 멀쩡해야 되겠는데 흐리멍텅하면 안 된다. 자기 몸은 성령님이 거하는 전, 하나님이 거하는 전이니까 자기의 인격 면을 자기가 갉고 닦아서 인격 면에서 주님의 인격으로 성장하도록 노력을 해야지 누가 그걸 해 주겠느냐?
대형 대행 사죄 칭의 새 생명, 이 영 중생까지는 기본구원으로 이건 하나님의 독권적이고 주권적인 역사로 된 것이다. 가시나무로 지어진 법궤 안에 두 돌판과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있는데 이건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된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의 몸이 전으로 돼 있으면, 성도라면 자기 속에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즉, 생명이 있는 지팡이, 그리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양식인 만나,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의 심비에 새겨진 게 기본적으로 들어있는 거다.
이런 자기는 이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영적인 성전이 지어져 가는 거다. 하나님께서 즉, 주님께서 기본적으로 주신 그 이치를 터를 삼고 기준으로 삼고 척도로 삼고 말씀의 이치에 의한 교훈에 의해서 올라가는 거다. 그래서 이룰구원은 성도 자기가 세상성적인 말을 들으면, 그런 곳에서 예배를 하면 자기는 깨달음적으로 부요치 못하고 올라가지 못한다. 성장은 멈춘다.
자기의 중생된 영을 키우려면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를 먹어야 한다. 육체를 키우려면 세상성적 사고방식을 소원 목적적으로 많이 먹으면 된다. 자기의 육성 육에 속한 것을 키우려면 그렇다. 성령님의 감화 감동에 의해 가르치는 신실한 종들의 교훈에 의해 자기가 성장되고 장성이 되는 거다.
그런데 말세에는 거짓 종 미혹의 영을 가진 사역자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거짓된 목사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간사한 목사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한다. 성경에는 말세에는 미혹자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은 예수이름을 갖고 온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부터 눈으로 보여지는 것을 기준해서, 이게 선악과인데 이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나게 했다. 마귀가 그렇게 사람을 넘어뜨렸다. 하나님께서 생명과를 먹으라고 한 것은 말씀의 이치를 먹으면 순종이 나오고 지혜도 나오고 자기 다스림도 나오고 영능의 능력도 나오고 하는 건데 마귀의 꾀임에 빠져서 그렇게 하지를 않고 눈으로 보여지는 걸 기준을 삼고 하려고 하니, 눈으로 보여지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큰 것이라도 해도 다 옮겨지고 시들고 썩는 건데 그런 것을 기준해서 자기가 살려고 하니 그런 것이 언젠가 넘어지면 자기도 같이 넘어지는 거다. 넘어질 것에 자기가 소원 목적을 하고 사니 그 사람은 넘어질 사람이요 불탈 사람이요 부끄러운 사람이요 수치를 당할 사람이다.
생명과를 먹으라고 하는 것은 그 말씀을 순종으로 먹으면 지키고 다스리고 통치하고 지배하고 땅에 편만하라는 사명을 우리에게 준 것이다. 그런데 미혹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해서 먹으라고 한다. ‘그 정신을 네가 가져라. 그리고 겪어라.’ 그 일을 하면 그것을 겪게 된다.
예수님 당시에 율법자들도 보이는 것에 기준을 하고 의식을 하고 그랬다. 그러니 그들은 예수님의 영적인 말씀을 안 받아들인다. 역시 오늘날도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자들은 세상적 종교적인 눈에 보이는 기준은 받아지고, 영적 진리이치 살아계신 말씀으로 자기의 영인성장이 되고 이룰구원이 되는 것은 안 믿어진다.
미혹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 즉, 예배당 건물이나 사람 많고 헌금 많고 하는 이런 걸 교회부흥으로 안다. 이 사람은 이미 미혹에 빠져 있는 거다. 미혹에 빠지면 그런 데 따라가게 돼 있다.
오늘날 교회에 미혹의 영이 많다. 자칫 잘못하면 그런 데 빠진다. 그렇게 되면 노골적인 사기꾼이 목사가 돼서 교인들 눈물 닦아주고 불어주고 먹여주고 하면 그게 그만 자기 구세주인줄 알고 있다가 부작용이 나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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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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