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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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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836) 2016. 4.27 |
시편(198) 세상을 이기는 4대 무기 (시편 120편 1-7절)
1.
교회
이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5편(120-134편) 중 첫째 시편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순례자들이 절기 때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가며 부른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1년에 세 번, 즉 유월절과 오순절과
새해 첫날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을 예배했는데 그때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예배하는 마음의 준비를 위해 이 시편들을 노래하며 올라갔습니다.
그 노래들을 부르고 성전을 향해 가면서 얼마나 큰 힘과 용기가 생겼겠습니까?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당시 성도들의 큰 영향력을
실감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큰 영향력은 분명한 정체성 인식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순례자란 사실을 인식했기에 겁날 것도 없었고
잃을 것도 없었습니다. 그처럼 순례자 의식을 가지고 용기 있게 살면 영향력 있는 작품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천국행 순례자의 삶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낸 것이 성전으로 올라가는 삶입니다. 그처럼 천국을 사모하고 교회를 사모하는 삶은 세상을 이기는 놀라운 능력과 영향력의
원천입니다.
2. 기도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이
시인의 고백은 모든 신실한 성도의 공통적인 고백입니다. 성도에게도 환난은 있지만 환난 중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을 체험합니다. 결국
환난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환난으로 인해 더욱 하나님과 교회에 가까워질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 사람 붙들고
얘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형편과 사실을 아뢰십시오. 하나님은 가장 훌륭한 상담자십니다.
사람마다 환경과
처지와 성품과 태도가 다르듯이 기도제목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이 기도제목이고 어떤 사람은 건강이 기도제목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가
기도제목이고 어떤 사람은 사업이 기도제목이고 어떤 사람은 자녀가 기도제목입니다. 그런 각자의 기도제목을 통해 성도는 하나님과 교회를 사모하게
되고 겸손해지고 사람답게 되고 성도답게 되고 기도하게 됩니다. 아무리 기도제목이 커도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면서 겸손하게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의
역사를 체험할 것입니다.
3. 정직
세상에는 거짓과 속임수가 난무합니다. 그런 거짓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2절).
특히 영혼에 치명상을 입히는 이단교주의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사업할 때 거짓말에 속으면 돈만 잃지만 이단교주의 거짓말에 속으면 영혼을
잃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자신이 화를 당합니다. 본문 3절에 나오는 속이는 혀에
날카로운 화살이 주어진다는 말은 속이는 말은 날카로운 화살처럼 상대를 향해 나가다가 결국 자신에게 돌아와 자신이 그 화살에 맞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속이는 혀에 로뎀나무 숯불이 더해진다는 말은 속이는 혀를 가지면 무서운 불 심판에 처한다는 뜻입니다. 로뎀나무의
뿌리는 불을 붙이면 오랜 열기가 유지되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결국 로뎀나무 숯불은 엄중한 심판이 지속됨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속지도 말아야 하지만 거짓말을 하지 말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남을 속이려고 하면 안 됩니다. 현실적으로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회의에 빠지거나 낙심함으로 정직한 삶에서 후퇴하지 마십시오. 정직이 세상을 이기는 최상의 무기입니다.
4.
화평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메섹은 노아의 셋째 아들인 야벳의
아들로서(창 10:2) 그 메섹의 후손이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북방지역입니다. 게달은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인 게달(창 25:13)의 후손이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남방지역입니다. 시인은 환난을 피해 잠깐 두 족속 중에 머물렀었는데 그것이 결코 유익이 아니고 화였다고 말합니다. 그 고백은
힘들어도 하나님과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함을 잘 암시합니다.
왜 시인은 두 민족 중에 거하면서 화를 당했습니까? 그들이 화평을
미워하는 호전적인 민족들로서 시인이 화평을 원하는 말을 해도 그들이 자꾸만 싸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6-7절). 화평을 원해도 자꾸 싸우려는
사람들은 지혜롭게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체질화된 싸움은 교만과 욕심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회는 화평이 넘치는 이 땅의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화평이 넘치게 될 때 교회로부터 힘을 얻어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 이한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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