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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cafe.naver.com/jesushakdang/1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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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도 제자들을 편애하셨나?
이현주 목사 / 동화작가
예수께서는 ..... 회당장에게 “걱정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하시고 .....
(마르코 복음 5,36-37)
“위 말씀은 마르코의 복음서 5장에 기록된 것입니다. 여기뿐만 아니라 산 위에서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하실 때(루가 9,28-36)나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실 때(마태오 26,27)에도 예수님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왜 열두 제자 중에서 유독 이들만이 예수님의 중요한 사건에 동참하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이런 태도 때문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부탁한 것 아닐까요?”
“자네가 알아둘 것이 있네. 예수님은 비상(非常)한 분이셨지만 그 비상함을 언제나 범상(凡常)함 속에 감추셨다네. 무슨 말이냐 하면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사셨다는 얘길세. 그래서 현상(現想)을 꿰뚫어 진상(眞相)을 보는 눈을 뜨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분은 목수 출신 예언자쯤으로 보였던 거지.
자네 질문은 왜 예수께서 특별한 경우에 따로 세 제자만 데리고 다니셨느냐는 거지? 그거야 누구나 경험하는 일 아닌가? 자네한테도 특별히 가까운 친구가 있겠지? 예수님도 그런 제자들이 있었던 걸세. 다른 모든 스승이 그러했듯이 예수께도 이른바 ‘측근’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시게. 그것이 자연스런 현상 아닌가? 모든 제자를 상대할 때도 있지만 몇 사람 측근만 데리고 일해야 할 때도 있는 거야. 그건 자네 말대로 경우에 따라서지.”
“그 세 사람이 왜 하필 베드로, 요한 야고보입니까?”
“자네는 왜 하필 자네인가? 그들이 ‘누구’였느냐는 건 문제의 핵심이 아닐세.
그건 그렇고, 자네 질문 속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께 두 아들을 높은 자리에 앉혀 달라고 부탁한 것이 평소 예수님이 그들을 따로 총애하셨기 때문이 아니냐고 했는데, 그건 결코 그렇지 않네. 제자의 어미가 예수께 그런 부탁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진리를 깨치지 못한 여인의 그릇된 욕심 때문이지.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는 얘길세.
사람들은 흔히 사람이 그렇게 한 게 아니라 ‘돈’이 그렇게 했다고들 말하는데 터무니없는 소릴세. 막말로 돈에 무슨 힘이 있는가? 그게 인쇄된 종이 아닌가? 돈에 힘이 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임시로 실어준 만큼만 있을 뿐이지. 그러니 돈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말은 인간의 비열한 책임 회피에 지나지 않네.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돈에 대한 탐욕이지.
따라서 예수님의 총애가 두 제자의 어미로 하여금 그런 부탁을 하게 했다고 말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길세.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하겠네. 자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을 남의 탓으로 또는 환경 탓으로 돌리려는 유혹을 늘 경계하시게. 군자(君子)는 위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 남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현주 <아, 그렇군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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