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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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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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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적인 개혁주의와 복음적 개혁주의》
고은교회 황부일목사
근간에 보면 중세 종교 개혁때 보다 더 많은 개혁주의자들이 여기저기서 개혁협회라는 모임까지 만들고 무리로 등장하여 개혁을 외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매우 고무적인 현상 같지만 실제로는 중세때 처럼 교회개혁은 안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살펴보면 교회개혁을
각자 기대하는 바로 혹은 공동체가 공감하는 방향으로 고치고 새롭게 하려는 인본적인
개혁주의자들이 거의 되기때문입니다.
<인본적인 개혁주의자들>
개혁이란 개념을 보면 묵은
기구 등을 원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합리적으로 하는 변혁이나 개조를말합니다.
교회에서 개혁이라는 개념은 언약대로 배풀어진 구원의 본질을 찾아 그 모습을 그대로 이루어 감에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 역사가 곧 개혁의 역사인데 그 흐름으로 왔다는 오늘날 시점에서 볼 때에 현 이땅의기독교 대부분의 상태는오히려 개혁은 역행되어 있고 교회된 모습은 거룩함을 잃고 점점 세속주의로 이교적으로 더욱 거꾸로 빠져가는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그러니까 개혁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기대하고 원하는 대로 제도나 의식이나 또는 기존의 여러 교회나 신앙상태를 어떤 의도하는 자들의 주도나 요구에 따르고 고치고 변형을 주고 하는 개혁이 대체적으로 교계를 주도하고 흘러가는 양상이 크게 나타나 진것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시대의 변화나 사람들의 기대의 수준에 기준을 두고 그저 바꾸고 새롭게 변화를 주는 것이 당연시 처럼 되었고 그렇게 바꾸는 것이 교회개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세상의 변화나 사회의 문화나 사조들의 흐름이나 요구를 받아들이고 대세를 따르도록 방향을 바꾸고 전격적으로 보수적인 것이나 기존의 탈과 틀을 벗어나는 것을 혁신적인 개혁으로 말합니다. 물론 그것도 개혁이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순 세상적이고 인본적인 개혁인 것입니다.
요즘 교회들이 대체적으로 그 모양으로 가고 있습니다. 주도자가 되는 목회자들은 그저 교회성장에 모든 목표를 맞추고 그 발전을 위해서 개혁하는 것입니다.
물론 드물게 요즘에도 역사적 정통개혁주의를 부르짖으며 그 중심으로 포럼을 갖고 세미나를 갖고 때론 그룹을 지어 신조공부도 시키고 바른 교회관을 세우려는 고무적인 일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도
주도하는 신학자나 목회자들을 보면 실제 지신들은 그 신학과 그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그런 신학의 입장을 어디서나 어떤 형편에서나 끝까지 지키기 위해 당당히 서 있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말이 정통 개혁주의자이지 교회는
교인들이 원하는대로으로 하고 십자가상도 그냥 있고 예배도 형편에 따라 가고 남이 하는 문화적 시스템도 그냥 따라 하고
은근히 건물짓는데 중심을 보이곤 합니다. 그러니까 역사적 개혁주의는 신학이라는 교과서적인 이론뿐이고 학술적 논쟁뿐이고 각교회에 살아있질 못합니다.
인본적인 개혁주의는 한마디로 하나님을 통한 인간적 목적에 기대하는 부류나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면서도 그것이 인간적인 주장이나 방법이 혼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아예 드러내놓고 개혁이라고 간판을 걸거나 개혁교단이라는 명칭을 가지며 개혁을 남달리 유별나게 강조하는 부류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좀 더 나을 수도 있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바른 참 교회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수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그래도 개혁을 주장하고 부르짖는 부류들이 그나마 괜찮을 것 같지만 사람들의 의도가 포함되고 또는 가미되는 이상 결국 다 인본적 개혁주의에 불과합니다.
단지 좀 보수적 개혁주의냐 진보개혁주의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교회를 사람이 개혁할 수 있다고 봅니까 ?
그렇다면 그누구도 인본적 개혁주의에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복음적 개혁주의>
복음적 개혁주의는 또 누가 이론하고 주장하는거냐고 물으실 것 같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개혁주의가 원래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올바른 개혁주의는 복음적일겁니다.
복음적으로돌아 가자는 주장의
중심들이니까요.
복음적 개혁주의는 인본적 개혁주의와 반대가 되는 하나님의 개혁을 그렇게 칭하면서 증거해보려 한 것입니다.
옛날이든 현재든 주님의 교회는 다 개혁교회입니다.왜냐하면 주께서 친히 간섭 섭리하셔서
하나님의 합당한 교회로 거룩히
변화시키시고 온전케 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교회만이 본질적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었고 또한 주께서 언약하신 교회모습으로 점점 합당하게 성령께서 변화 개혁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개혁이란 말이 딱 한번 나오는데 보면 구약의 모든 제사 제물과 제사의식법이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 할 때까지 맡겨준 것이니라고 말씀함이 나와있습니다. (히 9:10)
그러니까 여기서 개혁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단번에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고 또한 대제사장의 중보 역할로 구약의 수없는 제사제물방식은 사라지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깨끗함을 입고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은혜로 바뀌는 역사가 하나님의 언약속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역사로 실현되도록 변혁시키신 하나님의 개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경 말씀에서 나오는 개혁은 사람의 기대나 의도나 방법이나 역할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언약하시고 그대로 성취되도록 능력으로 개혁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교회구원의 역사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교회 개혁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자는 성령이신데 곧 개혁의 목적과 기준과 그 실제 능력은 다 그 분 말씀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는 역사와 믿음으로 중생케 되는 역사는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주도하신 구원의 개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의 교회가 된 것이고, 그리고 그 분의 교회된 모습으로 합당하게 실제 새롭게 되는 것이나 온전케 되는 점진적인 개혁의 역사도 주께서 하십니다. 때문에 진정한 교회개혁은 복음이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비밀로 정해지고 복음으로 언약된 교회구원이 복음의 능력따라 교회가 구별되고 그리스도의 교회된 모습으로 거룩해지고 바르게 서가는 참된 교회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중세때 교회개혁도 칼빈이 스스로가 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의 교회를 구별하시고 바르게 세워가시는 개혁의 역사를 하나님 섭리의 경륜을 따라 하시는 가운데 칼빈을 들어 쓰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적 개혁입니다.
교회개혁은 신앙의 지도자들이 기준하고 목적하고 그 모습이나 그 상태로 돌아가고 고쳐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다수의 교인들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고 고쳐가고 혁신해가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런것은 다 인본적인 개혁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교회 개혁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주관하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그분의 교회를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좀더 구체적으로 복음선포로 언약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하신 대로 불러 구별해내시고 또한 그렇게 부르심의 목적과 그 뜻을 따라 하나님께서 간섭하시어 온전케 해 오심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28:15절을 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고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야곱에게
약속하셨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시고 약속하신대로 하나님께로 돌아 가게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야곱은 언약의 땅으로 돌아 갈 수가 없습니다.
외삼촌이 와서 붙잡으러 오고 원한을 품었던 형에서는 막으로 오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으로 벗어납니다.
더우기 세겜에서는 스스로 형편따라 그곳에 살려고 머물러 버립니다.. 또 하나님께서 징계의 간섭으로 다시 약속의 곳으로 돌아 가게 하십니다.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이름이 얍복강에서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개혁되었다는
점입니다.
야곱은 간교한 옛사람의 이름입니다.그런 상태로는 언약의 기업된 하나님의 나라된 모습으로
돌아 갈 수가 없습니다.그런 그를
그대로 못 들어가게 하시고 새로운 이름의 상태로 하나님께서
개혁시켜 주신것입니다.그래서
야곱은 말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창48:15)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언약교회로 택하시고 부르시고 그대로 맞게 이루시는 개혁을 그분의 주권적인 역사로 이루시는 것입니다.이것이 교회개혁의 진실입니다.
<복음적인 교회개혁의 진실>
교회개혁의 진실은 이런 것입니다.
고린도후 5:17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하신 말씀을 우린 잘 압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된 자들의 영원히 새롭게된 본질적인 상태의 모습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해 아래는 참된 새것이 없다 했습니다.(전1:9~10) 그리스도안에서 예정된 교회가 부름받고 믿음안에서 거룩히 교회됨으로 본질이 개혁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안에 새롭게 되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안에서의 주권의 역사입니다. 여기에는 누구도 본인도 보태거나 어떻게 해서 새롭게 된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새롭게 되었다는 것은 죄인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역사로 의롭게 되는 것이요, 어둠에서 빛의 자녀가 되는 것이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옮겨지는 것이요 이 세상에서 하나님나라됨으로 영원히 신분과 소속이 바뀐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새롭게 된 본질적인 교회개혁상태입니다.
그렇지만 교회된 우리 모습은 실제로 그렇지 못합니다. 아직육신에 거하며 육체의 소욕안에 살고 불의하고 어둠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고 말씀한 것입니다.
교회개혁의 진실이 여기있음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또한 이런 말씀이 교회개혁을 이룹니다.
본질적으로는 은혜로 새롭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새롭지 못한 교회된 자들에게 이미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새롭게된 모습을 따라 자라고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게 된 교회된자들이 실제로 의인다운 모습으로 살아 가며 의의열매를 나타내는 이것이 교회에 남겨진 교회개혁의 목표고 기준이고 의미입니다.그래서 의의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 영광이요 찬송이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빌1:11)
의의열매로 자라가며 변혁되는 모습이 이제 교회가 점진적으로
이루어 가야할 교회개혁의 진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육체의 소욕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요 우리를 의롭게 바르게 교육하고 하나님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선한일에 온전케 하는 복음의 능력에 있음을(딤후 3:15-17) 믿고 오로지 복음중심에 서고 복음에 사로잡히어 나가는 자가 복음적인 개혁주의자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이 순전하게 살아
있는 교회만이 주님이 주님의 참 교회됨으로 개혁해 가시는 은혜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헛된 것에서 복음만이 하나님께로 돌아 가게 한다고 증거한 것입니다.(행14:15)또한 복음사역의 목적이라 했습니다.
고은교회 황부일목사
근간에 보면 중세 종교 개혁때 보다 더 많은 개혁주의자들이 여기저기서 개혁협회라는 모임까지 만들고 무리로 등장하여 개혁을 외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매우 고무적인 현상 같지만 실제로는 중세때 처럼 교회개혁은 안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살펴보면 교회개혁을
각자 기대하는 바로 혹은 공동체가 공감하는 방향으로 고치고 새롭게 하려는 인본적인
개혁주의자들이 거의 되기때문입니다.
<인본적인 개혁주의자들>
개혁이란 개념을 보면 묵은
기구 등을 원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합리적으로 하는 변혁이나 개조를말합니다.
교회에서 개혁이라는 개념은 언약대로 배풀어진 구원의 본질을 찾아 그 모습을 그대로 이루어 감에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 역사가 곧 개혁의 역사인데 그 흐름으로 왔다는 오늘날 시점에서 볼 때에 현 이땅의기독교 대부분의 상태는오히려 개혁은 역행되어 있고 교회된 모습은 거룩함을 잃고 점점 세속주의로 이교적으로 더욱 거꾸로 빠져가는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그러니까 개혁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기대하고 원하는 대로 제도나 의식이나 또는 기존의 여러 교회나 신앙상태를 어떤 의도하는 자들의 주도나 요구에 따르고 고치고 변형을 주고 하는 개혁이 대체적으로 교계를 주도하고 흘러가는 양상이 크게 나타나 진것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시대의 변화나 사람들의 기대의 수준에 기준을 두고 그저 바꾸고 새롭게 변화를 주는 것이 당연시 처럼 되었고 그렇게 바꾸는 것이 교회개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세상의 변화나 사회의 문화나 사조들의 흐름이나 요구를 받아들이고 대세를 따르도록 방향을 바꾸고 전격적으로 보수적인 것이나 기존의 탈과 틀을 벗어나는 것을 혁신적인 개혁으로 말합니다. 물론 그것도 개혁이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순 세상적이고 인본적인 개혁인 것입니다.
요즘 교회들이 대체적으로 그 모양으로 가고 있습니다. 주도자가 되는 목회자들은 그저 교회성장에 모든 목표를 맞추고 그 발전을 위해서 개혁하는 것입니다.
물론 드물게 요즘에도 역사적 정통개혁주의를 부르짖으며 그 중심으로 포럼을 갖고 세미나를 갖고 때론 그룹을 지어 신조공부도 시키고 바른 교회관을 세우려는 고무적인 일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도
주도하는 신학자나 목회자들을 보면 실제 지신들은 그 신학과 그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그런 신학의 입장을 어디서나 어떤 형편에서나 끝까지 지키기 위해 당당히 서 있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말이 정통 개혁주의자이지 교회는
교인들이 원하는대로으로 하고 십자가상도 그냥 있고 예배도 형편에 따라 가고 남이 하는 문화적 시스템도 그냥 따라 하고
은근히 건물짓는데 중심을 보이곤 합니다. 그러니까 역사적 개혁주의는 신학이라는 교과서적인 이론뿐이고 학술적 논쟁뿐이고 각교회에 살아있질 못합니다.
인본적인 개혁주의는 한마디로 하나님을 통한 인간적 목적에 기대하는 부류나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면서도 그것이 인간적인 주장이나 방법이 혼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아예 드러내놓고 개혁이라고 간판을 걸거나 개혁교단이라는 명칭을 가지며 개혁을 남달리 유별나게 강조하는 부류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좀 더 나을 수도 있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바른 참 교회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수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그래도 개혁을 주장하고 부르짖는 부류들이 그나마 괜찮을 것 같지만 사람들의 의도가 포함되고 또는 가미되는 이상 결국 다 인본적 개혁주의에 불과합니다.
단지 좀 보수적 개혁주의냐 진보개혁주의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교회를 사람이 개혁할 수 있다고 봅니까 ?
그렇다면 그누구도 인본적 개혁주의에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복음적 개혁주의>
복음적 개혁주의는 또 누가 이론하고 주장하는거냐고 물으실 것 같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개혁주의가 원래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올바른 개혁주의는 복음적일겁니다.
복음적으로돌아 가자는 주장의
중심들이니까요.
복음적 개혁주의는 인본적 개혁주의와 반대가 되는 하나님의 개혁을 그렇게 칭하면서 증거해보려 한 것입니다.
옛날이든 현재든 주님의 교회는 다 개혁교회입니다.왜냐하면 주께서 친히 간섭 섭리하셔서
하나님의 합당한 교회로 거룩히
변화시키시고 온전케 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교회만이 본질적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었고 또한 주께서 언약하신 교회모습으로 점점 합당하게 성령께서 변화 개혁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개혁이란 말이 딱 한번 나오는데 보면 구약의 모든 제사 제물과 제사의식법이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 할 때까지 맡겨준 것이니라고 말씀함이 나와있습니다. (히 9:10)
그러니까 여기서 개혁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단번에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고 또한 대제사장의 중보 역할로 구약의 수없는 제사제물방식은 사라지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깨끗함을 입고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은혜로 바뀌는 역사가 하나님의 언약속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역사로 실현되도록 변혁시키신 하나님의 개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경 말씀에서 나오는 개혁은 사람의 기대나 의도나 방법이나 역할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언약하시고 그대로 성취되도록 능력으로 개혁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교회구원의 역사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교회 개혁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자는 성령이신데 곧 개혁의 목적과 기준과 그 실제 능력은 다 그 분 말씀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는 역사와 믿음으로 중생케 되는 역사는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주도하신 구원의 개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의 교회가 된 것이고, 그리고 그 분의 교회된 모습으로 합당하게 실제 새롭게 되는 것이나 온전케 되는 점진적인 개혁의 역사도 주께서 하십니다. 때문에 진정한 교회개혁은 복음이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비밀로 정해지고 복음으로 언약된 교회구원이 복음의 능력따라 교회가 구별되고 그리스도의 교회된 모습으로 거룩해지고 바르게 서가는 참된 교회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중세때 교회개혁도 칼빈이 스스로가 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의 교회를 구별하시고 바르게 세워가시는 개혁의 역사를 하나님 섭리의 경륜을 따라 하시는 가운데 칼빈을 들어 쓰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적 개혁입니다.
교회개혁은 신앙의 지도자들이 기준하고 목적하고 그 모습이나 그 상태로 돌아가고 고쳐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다수의 교인들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고 고쳐가고 혁신해가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런것은 다 인본적인 개혁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교회 개혁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주관하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그분의 교회를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좀더 구체적으로 복음선포로 언약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하신 대로 불러 구별해내시고 또한 그렇게 부르심의 목적과 그 뜻을 따라 하나님께서 간섭하시어 온전케 해 오심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28:15절을 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고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야곱에게
약속하셨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시고 약속하신대로 하나님께로 돌아 가게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야곱은 언약의 땅으로 돌아 갈 수가 없습니다.
외삼촌이 와서 붙잡으러 오고 원한을 품었던 형에서는 막으로 오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으로 벗어납니다.
더우기 세겜에서는 스스로 형편따라 그곳에 살려고 머물러 버립니다.. 또 하나님께서 징계의 간섭으로 다시 약속의 곳으로 돌아 가게 하십니다.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이름이 얍복강에서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개혁되었다는
점입니다.
야곱은 간교한 옛사람의 이름입니다.그런 상태로는 언약의 기업된 하나님의 나라된 모습으로
돌아 갈 수가 없습니다.그런 그를
그대로 못 들어가게 하시고 새로운 이름의 상태로 하나님께서
개혁시켜 주신것입니다.그래서
야곱은 말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창48:15)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언약교회로 택하시고 부르시고 그대로 맞게 이루시는 개혁을 그분의 주권적인 역사로 이루시는 것입니다.이것이 교회개혁의 진실입니다.
<복음적인 교회개혁의 진실>
교회개혁의 진실은 이런 것입니다.
고린도후 5:17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하신 말씀을 우린 잘 압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된 자들의 영원히 새롭게된 본질적인 상태의 모습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해 아래는 참된 새것이 없다 했습니다.(전1:9~10) 그리스도안에서 예정된 교회가 부름받고 믿음안에서 거룩히 교회됨으로 본질이 개혁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안에 새롭게 되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안에서의 주권의 역사입니다. 여기에는 누구도 본인도 보태거나 어떻게 해서 새롭게 된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새롭게 되었다는 것은 죄인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역사로 의롭게 되는 것이요, 어둠에서 빛의 자녀가 되는 것이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옮겨지는 것이요 이 세상에서 하나님나라됨으로 영원히 신분과 소속이 바뀐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새롭게 된 본질적인 교회개혁상태입니다.
그렇지만 교회된 우리 모습은 실제로 그렇지 못합니다. 아직육신에 거하며 육체의 소욕안에 살고 불의하고 어둠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고 말씀한 것입니다.
교회개혁의 진실이 여기있음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또한 이런 말씀이 교회개혁을 이룹니다.
본질적으로는 은혜로 새롭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새롭지 못한 교회된 자들에게 이미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새롭게된 모습을 따라 자라고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게 된 교회된자들이 실제로 의인다운 모습으로 살아 가며 의의열매를 나타내는 이것이 교회에 남겨진 교회개혁의 목표고 기준이고 의미입니다.그래서 의의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 영광이요 찬송이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빌1:11)
의의열매로 자라가며 변혁되는 모습이 이제 교회가 점진적으로
이루어 가야할 교회개혁의 진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육체의 소욕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요 우리를 의롭게 바르게 교육하고 하나님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선한일에 온전케 하는 복음의 능력에 있음을(딤후 3:15-17) 믿고 오로지 복음중심에 서고 복음에 사로잡히어 나가는 자가 복음적인 개혁주의자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이 순전하게 살아
있는 교회만이 주님이 주님의 참 교회됨으로 개혁해 가시는 은혜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헛된 것에서 복음만이 하나님께로 돌아 가게 한다고 증거한 것입니다.(행14:15)또한 복음사역의 목적이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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