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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올바른 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순전한신앙이야기 황부일목사............... 조회 수 703 추천 수 0 2016.10.29 16: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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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올바른 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고은교회   황부일목사

 

뿌리가 없는 나무는 없습니다. 뿌리는 그 나무의 원조요 밑바탕이요 줄기와 열매가 있게 하는 근원이요 또한 그 나무가 지속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기초입니다.

 

<신앙의 원뿌리>

 

사도바울은 로마교회를 향해 증거하기를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 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 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어 졌는데도 감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바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은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고 (롬 11:16-18) 했습니다

여기서 참 감람나무는 이스라엘을 말하고 돌 감람나무는 이방인들을 말하는데 참 감람나무 가지중에 얼마가 꺾여있고 거기에 돌 감람나무가 접목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감람나무 가지가 얼마 꺾인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유대인들로서 그리스도를 거스르고 넘어진 자들을 말합니다. 반면 돌 감람나무 얼마는 이방에 있어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어 교회된 자를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방에 있어 복음의 은혜로 교회되었는데 혹 자긍할까봐 경계하는 권면에서 그들의 원 뿌리가 어디인지를 증거해 줍니다. 여기서 접목된 감람나무의 뿌리는 하나님의 언약과 그 언약의 조상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업과 후손들을 언약하셨습니다. 그것은 언약의 후손중에 대적의 문을 얻을 자가 나오며 그를 통해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창 22:17-18)

 

사도바울은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증거했습니다. (갈 3:28)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음을 가지고 교회된 자들은 아브라함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연결되는 증거를 계속 볼 것 같으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 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신 것을 성경에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정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음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증거했습니다. (갈 3:6-9) 그러니까 우리 믿음의 뿌리되는 원조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언약하시는 언약의 씨와 그 후손을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그 언약을 믿음으로 여호와께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창 15:4-6)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그 언약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우리 믿음의 연결을 증거하기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려 하지 아니하고 믿음이 견고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롬 4:18-24)

 

그러니까 아브라함이나 우리나 복음의 언약을 믿는 한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아브라함은 오실 예수를 믿어 먼저 의롭다 함을 받고 모든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후손된 우리는 언약대로 오신 예수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갈대아 우르에서 구별되어 언약의 땅으로 옮겨짐을 받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는 바로 의롭게 됨을 얻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됨 인데 그것은 그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게 하심으로 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 (마 16:16-18) 그대로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면 그리스도를 주라 할 수 없다 했으니(고전 12:3) 믿음으로 의롭다 얻는 신앙은 구원의 믿음으로서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기로 작정된 교회된 자들을 부르시며 구별시키시는 역사속에 주시는 한 믿음으로 같이 합니다. 그 믿음을 대표적으로 먼저 받은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면서 의롭 다함을 받는 믿음의 선조들로서 뿌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방의 사람 중에 믿는 자가 참 감람나무 가지에 접목되어 한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으며 그 뿌리로부터 보전함을 받는 신앙이 바로 한 신앙의 뿌리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뿌리를 찾는다면 바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신앙에서부터임을 알고 그 신앙이 계속적으로 언약의 후손들에게 이어져 내려 온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한 역사적인 성령의 교통하심에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구원의 신앙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이고 한 줄기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증거 했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가운데 계시도다"(엡4:3-5)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나 지금이나 또 어떤 사람이었거나 한 성령이 주시는 믿음의 역사는 한 믿음일 수 밖에 없고 그렇게 하나 되게 하신 성령의 역사가 그리스도의 한몸된 교회를 이루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뿌리가 없는 신앙이고 잘못된 뿌리로된 신앙이 됩니다.

 

<신약시대이후 교회된 신앙의 뿌리>

 

에베소서2:20절을 보면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우심을 입은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이후부터 세워진 그리스도의 교회된 성도들의 신앙뿌리는 사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먼저 사도들이 교회가 되는 신앙을 가지고 그 신앙으로 누구든지 교회구원을 입는 신앙고백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니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6-1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는 뿌리 같은 반석은 하나님께서 혹은 성령께서 예수를 주라하는 은혜의 믿음을 주셔서 고백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베드로는 이후에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이렇게 증거 했는데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후1:1)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성령의 역사로 예수를 주로 먼저 고백하여 초대교회가 되고 또한 이후 먼저된 교회요 그리스도의 증인된 사역자로서 복음을 전하여 자신들과 동일한 믿음을 가진 자들을 함께 하나된 그리스도의 교회로 인정하며 더 거룩히 서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신앙의 뿌리가된 사도들의 신앙과 언약의 후손들의 신앙의 뿌리가된 그들의 신앙의 시조인 아브라함의 신앙은 같은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언약을 믿게 해준 신앙의 시조가 아브라함이고 이제 오신 메시야를 구주로 믿게 해주신 신앙의 시조는 사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와 같아야 우리는 진정한 신앙의 뿌리를 가진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개혁파 신앙이라고 있습니다. 중세 종교 개혁 시대때 칼빈의 신학 중심으로 세워진 복음에 합당한 신앙으로 회복을 강조하는 개혁 주의자들입니다.

 

당시 교회 이름은 가졌지만 신앙은 철학과 인간주의와 짬뽕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자리에 앉은 교황은 그야말로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던 것입니다. 여기서 올바른 구원의 신앙을 바로 찾고 성경에서 증거 하는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의 하나님 주권주의 신앙을 찾아가야 함을 복음적으로 세워 개혁으로 나온 칼빈의 신학을 정통중심으로 지금도 계속 오직 성경중심으로 돌아가야 함을 전통으로 세워가는 자들이 개혁파입니다. 그러니까 올바른 신앙의 뿌리를 찾아가자는 주의자들이 개혁파입니다. 원래 장로교회 뿌리가 칼빈이고 그가 세운 신앙이 장로교회 개혁신앙인데 오늘날 장로교회들은 대부분이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을 따르지 않고 찾지 않습니다. 간판만 장로교회이지 알미니안주의나 제2 제3의 신앙물결을 만든 오순절파식 신앙이나 시대에 걸맞게 흘러가는 인본주의적 신앙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직 성경중심이요 진리 복음에 합당한 신앙으로 뿌리를 가지고 굳게 서가는 장로교회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칼빈은 그냥 신학자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는 역사에 쓰임 받은 그릇이었습니다. 그가 세운 신학과 신앙은 그대로 성령께서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와 역사를 그를 통해 세우신 진리의 신학이고 진리의 신앙인 것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할 수 없는 아브라함부터 사도들과 교부시대때 어거스틴 듣으로 내려오는 진리의 신앙을 그 시대에 칼빈이 고백하고 또한 세워놓은 것입니다.

 

오늘날 뿌리 있는 신앙의 장로교회는 오래된 역사나 어떤 보수적인 전통을 이어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사람 칼빈이 세운 개혁신학을 바탕으로 복음적으로 더욱 그리스도의 교회로 바르게 세워가는 교회가 개혁파 장로교회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라고 모여 있는 자들 그 중에 가르친다는 목회자들과 일반교인들중 오래 신앙생활을 했던 자들이라해도 신앙의 뿌리를 제대로 아는 자는 아주 드뭅니다.

 

신앙의 뿌리라면 고작해야 몇 대로 내려온 신앙의 년조나 의식적 행위적으로 오래된 습관 같은 것으로 여길 뿐입니다.

 

<잘못된 신앙의 뿌리>

 

열왕기상 12:25-33절에 보면 솔로몬의 잘못으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북왕국 초대왕은 여로보암이었는데 그는 우려하기를 북왕국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를 따라 예배하러 남유다 예루살렘으로 갈 것인데 그러면 백성들이 유다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 것이라는 지레 걱정에 따라 이에 계획하고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못 하도록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나는 벧엘에 또 하나는 단에 두고 백성들에게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 갈 것이 없다며 그 금송아지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한 신이라며 숭배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맘대로 제사장도 세우고 비슷한 기간에 절기도 맘대로 정하여 제사하게 했습니다. 이에대해 증거함을 보면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저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왕상14:16) 그러니까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우상에다 여호와 이름을 붙여 섬기게 한 것입니다. 혼합주의 신앙을 만든 자가 된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북왕국의 이 잘못 된 신앙의 흐름이 계속적으로 전통이 되어 내려가 앗수르에 의해 망한 이후에도 그리로 이전해온 다른 민족과 더불어 각자 여호와도 섬기고 자기 풍속의 신도 섬기며 혼합신앙을 그 열조들이 행함에 따라 그 자자손손으로 이어 오늘까지 그대로 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왕하 17:34-41)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로 지나가시다가 물 긷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의 말이 우리는 산에서 예배하고 유대인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한다고 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산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니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 때가 온다고 하셨을 때 (요 4:23-24) 사마리아 여인의 신앙 상태가 바로 여로보암 때부터 잘못 된 신앙의 뿌리가 그 때까지도 내려와 산당에서 예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잘못 된 신앙의 뿌리는 오늘날 너무 많습니다.

 

골로새서 2:8절에 보면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바울을 증거했습니다. 잘못된 인본주의의 신앙이 있음을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에 헬라사상을 곁들인 영지주의라는 종파가 생겼는데 사도바울은 그것을 경계시킨 것입니다. 이때도 벌써 철학과 인간 사상을 기독교에 끌어들이거나 접목하여 인본주의 중심의 혼합 신앙이 있었는데 오늘날은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카톨릭은 기독교가 로마에서 헬라주의와 뒤섞이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들의 신앙뿌리는 오랜 역사로 거쳐 내려오면서 잘못된 신앙뿌리요 그 나무인 것이 드러나면서 중세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를 따라 올바른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가는 하나님 간섭의 개혁의 역사였습니다. 진리의 신앙 뿌리를 다시 찾는 은혜의 섭리적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올바른 장로 교회로서 뿌리 있는 개혁파 신앙의 종파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카톨릭은 잘못된 인본주의 신앙에 오랬동안 바탕을 두고 점점 더 하나님을 이용 카톨릭이 세계 기독교를 통합하는데 목표하고 그대로 나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개신교들이 그 중에서도 개혁파 교회라는 장로 교회들이 카톨릭의 인본주의적인 신앙프로그램을 여과없이 수용하고 그대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카톨릭의 신앙의 과정으로 여기는 성지순례도 그대로 답습하는 장로교회들이 태반이고 영성훈련이니, 알파코스니, 관상기도니 하는 카톨릭의 신앙훈련 프로그램이나 과정을 그대로 따라 하는 개신 교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과학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신앙 자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신본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중심은 하나님중심이 아니라 인간중심입니다. 인본주의입니다. 이들의 신앙뿌리는 근본이 다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들은 그것도 인정해주고 서로 기독교라고 함께 하며 교통하고 있습니다.

 

다원주의 시대입니다. 기독교안에 모든 입장들을 다 인정하고 서로 공유까지 하려 합니다. 실로 신앙의 뿌리가 없거나 잘못된 교회들이 판치는 시대입니다.

 

유럽이나 서양의 기독교 역사를 보며 오늘날 그들의 대체적인 신앙 상태에서 잘못된 신앙의 뿌리 (어떤 바탕을 두고 계속 이어오는)를 보면 헬레니즘적인 것과 보이는 숭상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앙들에 반하는 기독교 정신을 보면 인권적이고 박애적이고 철학과 사상이 적용되어 내려오며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동양편을 보면 특히 대표적으로 우리나라를 보면 샤머니즘이 깃든 신앙들이 크게 번식하고 뿌리를 내려왔습니다. 백년 조금 넘는 우리 기독교 역사 속에 오늘날 까지 이어온 그 신앙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기복적인 것이 그 증거입니다. 보이는 교회들이 많고 어디를 가나 교인들이 있는데 대부분 보면 교회들은 예수를 통해 복을 빌고 대부분의 신앙생활을 그 복을 많이 받는 비결이나 방법으로 열심과 봉사와 헌금으로 요구되고 있고 교인들은 열심히 주를 부르고 찾지만 예수님 당시 많은 무리들의 기대처럼 썩을 것에 대한 기대와 해결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무리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 6:25-27)고 말씀하심이 그렇습니다.

 

다시 정리를 해서 기독교 안에 들어와서 계속적으로 뿌리를 내리며 이어가는 잘못된 신앙의 뿌리는 결국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통해 자기 개인 기대의 구원을 바라는 것과 또 하나는 예수를 통해 인본적으로 사회구원을 바라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번지며 이어가는 잘못된 신앙의 뿌리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 11:4)라고 지적했던 것처럼 잘못된 신앙의 뿌리는 인간기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예레미야 6:16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의 평강을 얻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옛적길은 단순한 과거지향을 말씀함이 아닙니다. 흔히 교계에서 말하는 보수적인 입장을 말힘도 아닙니다. 말씀 그대로 곧 선한 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원리이고 본질입니다. 그 뿌리를 바로 찾아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며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 열방이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인하여 자랑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렘 4:1-2) 그러니까 유다가 돌아가야 할 선한길, 바른 신앙의 뿌리 찾기는 오직 하나님께로 돌아감이요 하나님께로 돌아감은 내생각 내게 있는 가증한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진실하고 공의를 따라 살아감에 있는 것이였습니다.

 

바울은 증거하기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여 그 안에 뿌리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강조했습니다.(골 2:6-8)

 

잘못된 신앙들이 넘치고 인본주의 신앙이나 기복주의 신앙이 판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신앙을 따르고 이런 신앙의 무리속에 있다면 그건 분명 예수이름을 이용한 전부 자기 기대나 공동체의 기대로서 잘못된 신앙들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구원의 신앙의 근원적 뿌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행하고 오직 그리스도안에 뿌리를 박으라고 한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 수를 주로 받은 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을 은혜로 받은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을 가진 교회된 성도는 다른 신앙이나 풍조나 사조에 빠지면 안됩니다. 오직 참된 신앙의 뿌리인 예수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하고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의 통치를 따라 서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됨으로 연합되고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서가며 그리스도의 증인된 모습과 삶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 신앙이야 말로 참 뿌리를 가진 신앙의 사람이고 신앙의 어른이고 또한 교회 모습을 바르게 가지고 그리스도안에 든든히 서가는 참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증거했습니다.(딤전 3:15)

 

교회는 진리되신 그리스도가 본질적인 터고 또한 교회로 서가는 모습도 진리가 기둥이고 중심이고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의 뿌리를 가진 교회라면 교회의 근본이 진리일 것이며 또한 위로 나타나는 모습도 진리 중심이여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라고 증거한 것입니다.(고후 13:8)

 

성령으로 시작했는데 육체로 마치는 길로 가는 신앙들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입니다. (갈 3:3) 성령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인해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구원의 신앙을 가진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된 것인데 이것은 로마서 10:9-10을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증거함처럼 참 믿음의 고백으로 영생을 얻은 자입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시작된 참 구원의 신앙이 어떻게 육체로 마치는 잘못된 신앙으로 빠지게 된 것인지 그 요인을 보면 바로 다른 복음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1:6-8에 보면 다른 복음은 없는데 어떤 사람들이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킨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교회가 바로 이 다른복음에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에 의해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믿음과 중생의 은혜는 입었지만 아직 그리스도 안에 진리로, 복음으로 깊게 뿌리를 내린 신앙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복음에 쉽게 빠지고 올바른 신앙이 흔들리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 신앙을 갖는 잘못된 인본주의 신앙으로 빠지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도 사도바울이 증거하지 않은 다른 예수,다른 영, 다른 복음을 잘도 용납했다고 했는데 (고후11:4)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다른 복음은 진리의 복음을 사람 개인이나 다수들(공동체)의 기대에 맞게 변질시켜 신앙을 통해, 하나님을 통해 자기 욕망을 성취하려는 중심으로 가르치고 또한 그것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른 복음은 그래서 사람들이 선호하고 많이 찾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기대가, 소원이 은혜와 능력으로 된다고 믿게 하니까 말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기복적이고 이상적인 것을 말하고 추구하는 교회로 몰려가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런 신앙은 뿌리가 잘못되었거나 전혀 뿌리가 없는 신앙이기에 허탄할 수 밖에 없고 산 자 다운 이름만 가졌지 이교도와 같은 죽은자인 세상사람과 같을 뿐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와 고린도 교회가 다시 바르고 참된 신앙의 뿌리를 찾아 바로서고 진리의 신앙으로 깊이 내리기 위해 성령의 역사를 따라 복음 서신을 보낸 것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신앙으로 일심하고 합심하는 것만이 바르게 뿌리를 내린 교회요 신앙들이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신앙의 뿌리를 더욱깊게 내리기위해 오로지 복음의 합당한

신앙으로 일심하며 합력해야합니다.

(빌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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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6 한국교회허와실 종교개혁500주년 맞이 개혁과제 Top50 cyw 2017-01-05 266
3095 순전한신앙이야기 이젠 거룩한 세월을 살아 가야지... 황부일목사 2016-12-29 270
3094 순전한신앙이야기 교회앞에서 망령되게 말하며 하대하며 욕하는 자들을 경계하라! 황부일목사 2016-12-15 278
3093 논문신학성경 통일사회의 사회적 이질성에 대비한 교회론의 정립 및 선교적 역할 file 이재용 2016-12-09 327
3092 논문신학성경 국악찬양, 어떻게 볼 것인가? 이재용 2016-12-09 354
3091 논문신학성경 속죄론의 발전과 현대적 의미 연구 이재용 2016-12-09 488
3090 순전한신앙이야기 교회에서 감사패와 공로패 증정은 불의한 일 황부일목사 2016-12-03 610
3089 더깊은신앙으로 지구별 마지막 전쟁 이현주 2016-11-30 195
3088 순전한신앙이야기 좁은 땅 좁은 마음들 황부일목사 2016-11-27 336
3087 순전한신앙이야기 성시화 운동은 기독교 이상주의 황부일목사 2016-11-07 288
3086 순전한신앙이야기 교회성장은 그리스도로 온전해져 감에 있다 황부일목사 2016-11-01 400
» 순전한신앙이야기 《올바른 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황부일목사 2016-10-29 703
3084 더깊은신앙으로 이현주의 최후의 심판(5) 존경하는 재판장 각하! 이현주 2016-10-11 484
3083 논문신학성경 칭의를 주시는 분은 반드시 성화를 이루신다 운영자 2016-10-01 506
3082 순전한신앙이야기 인본적인 개혁주의와 복음적인 개혁주의 황부일목사 2016-09-30 447
3081 더깊은신앙으로 예수도 제자들을 편애하셨나? 이현주 2016-09-28 454
3080 목회독서교육 [책 뒤안길] 박노자의 <대한민국 주식회사>로 본 박근혜 정권 file 김학현 목사 2016-09-24 473
3079 더깊은신앙으로 약은 청지기의 처세술 file 이현주 2016-09-18 625
3078 목회독서교육 [책 뒤안길] 유시민의 글쓰기 이론 <공감필법> file 김학현 목사 2016-09-08 579
3077 목회독서교육 [책 뒤안길] 진중권의 새 인문학 패러다임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 file 김학현 목사 2016-09-06 527
3076 목회독서교육 [책 뒤안길] 최병성 목사의 <길 위의 십자가> file 김학현 목사 2016-09-01 722
3075 순전한신앙이야기 "구원을 얻고 구원을 살아 가는 믿음에 대해" 황부일목사 2016-08-28 616
3074 목회독서교육 [책 뒤안길] 강수돌의 착한 경제학 책 <지구를 구하는 소비> file 김학현 목사 2016-08-24 522
3073 순전한신앙이야기 이시대 우리들의 심각한 예배문제 황부일목사 2016-08-20 537
3072 목회독서교육 [책 뒤안길] 정욱식의 실험 소설<말과 칼>통해 본 정권의 속내 file 김학현 목사 2016-08-06 411
3071 목회독서교육 [책 뒤안길] 세월호로 조명한 한국사회, <가만히 있는 자들의 비극> file 김학현 목사 2016-08-03 448
3070 순전한신앙이야기 "우리교회인가? 주의교회인가?" 황부일목사 2016-08-02 530
3069 순전한신앙이야기 교회안에있는 불의한 사조직 황부일목사 2016-07-15 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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