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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

로마서 이한규 목사............... 조회 수 650 추천 수 0 2016.11.16 23: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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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14:13-18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886)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 (로마서 14장 13-18절)


< 사람을 차별하지 마십시오 >

 며칠 전 미국에서 경찰이 총으로 흑인을 죽이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한 흑인이 백인 경찰 5명을 조준사격해서 죽였습니다. 차별이 상처를 낳고 상처가 폭력을 낳고 폭력이 보복을 낳은 것입니다. 요새 지구촌이 인종차별, 지역차별, 성차별, 계층차별, 종교차별 등 각종 차별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차이까지 차별로 여기는 병든 마음도 잘 극복해야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을 차별하지 않는 건강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차별은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행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진짜 높은 자는 낮은 자를 오히려 잘 차별하지 않습니다. 높은 위치에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남이 자신을 높여주니까 차별할 이유와 필요성이 적습니다. 결국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높든지 낮든지 교만한 자가 남을 차별하는 것입니다. 떼로는 높은 자보다 낮은 자가 자기를 높게 보이려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어떤 무리를 싸잡아 비하시킬 때가 더 많습니다.

 요새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많습니다. 부잣집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청년과 가난한 집에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청년은 출발부터 너무 달라서 경쟁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현실에 한탄만 하면 안 됩니다. 뒤편에서 출발했어도 얼마든지 역전인생이 가능하다고 여기고 인물의 길로 나서야 합니다. 단기간에 대박축복을 이루지 못해도 장기플랜을 가지고 후대의 길을 열어주겠다는 넉넉한 마음과 믿음으로 미래를 준비하면 됩니다.

 기독교는 가문의 축복을 인정합니다. 선대가 축복의 길을 잘 닦아 그의 후대가 앞선 출발지점에서 복과 풍요를 누리며 사는 것을 불공평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정의로 인정합니다. 물론 어느 사회든지 부모의 물질을 자녀에게 다 물려주게 하지 않습니다. 선진국의 경우에 약 40-60%의 상속세를 내게 하고 부모의 재산을 정당하게 후손에게 물려주게 합니다. 그 정도의 공공책무를 완수하고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거의 정의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선대의 땀의 흔적으로 생긴 차이까지 차별로 몰아가고 한탄하는 것은 오히려 정의롭지 못한 마음입니다. 선대 및 가문의 땀의 대가를 후대가 정당하고 적절하게 누리는 것은 결코 불의가 아닙니다. 선대의 땀을 제로로 만들고 당대는 무조건 똑같이 출발해야 한다는 완벽한 공산사회의 개념은 공평을 가장한 불의한 개념이고 이뤄질 수도 없는 개념입니다. 실제로 공산사회에 오히려 더 심한 신분상의 차별과 재산상의 차별이 존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역사상 어떤 공산국가도 지금까지 완벽한 공산사회를 이루지 못했고 이뤄질 수도 없습니다. 완벽한 공산사회는 ‘땀의 차이’나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에 오히려 불의한 사회입니다. 결국 물리적인 완벽한 공평은 오히려 가장 불의하고 불공평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완벽한 공산사회는 허구입니다. 가장 의로운 세계인 천국에도 질투의식과 비교의식을 낳지 않는 ‘상급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하물며 이 땅에서 어떻게 완벽한 공산사회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가문의 축복을 인정해주십시오. 부모의 차이로 인해서 생긴 인생 출발에서의 적절한 차이도 인정해주십시오. 그런 현실을 놓고 한탄만 하기보다는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내 자녀에게만은 조금 더 좋은 길을 열어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고 자신이 좋은 선대로서 노력하십시오. 그러면 단기간에 축복의 문이 활짝 열릴 때도 있지만 그런 단기간의 축복이 없어도 후대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축복의 길을 넓혔다고 생각하십시오.

 후대를 위해 재산을 많이 남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후대를 위해 남길 것이 재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가치관과 정신을 남겨주어야 하고 특히 바른 믿음을 남겨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렇게 선대가 바른 믿음을 남겨주면 후대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은혜 안에서 멋진 역전과 반전의 역사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그런 복된 가문과 복된 인물이 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인간적인 욕심이 아닙니다.

 미국의 백인들은 선대들의 땀을 바탕으로 현재 비교적 우월적인 위치에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상류층에는 주로 백인들이 많지만 상류층 백인들보다는 오히려 저소득층의 교만한 백인들이 피해의식을 가지고 유색인들을 더 차별합니다. 또한 교만한 동양인이 흑인을 차별하고 반대로 교만한 흑인이 동양인을 차별합니다. 결국 일반적으로는 교만한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지만 그 외에는 대개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떤 집단을 비천하게 만들어 스스로 위안을 삼으려는 심리로 차별적이고 편견적인 언행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사람은 다 죄인이고 마음에 크고 작은 병이 있기에 차별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격과 덕성으로 그런 차별적인 마음을 어느 정도는 다스리며 삽니다. 또한 남의 눈을 의식해서 대개 차별적인 마음을 감추고 노출하지 않습니다. 인터넷에서 차별적인 댓글을 익명으로 마구 배설하듯이 써대는 사람도 사람들 앞에서는 대개 조심합니다. 그런 마음을 노출시켜서 인간성이 제로라는 평가를 누가 받고 싶겠습니까?

 반면에 상처가 많고, 가정과 인간관계가 안 좋고, 성숙한 배움이 없고, 공동체에서 소외된 교만한 사람들이 오히려 편견적인 언행을 노출할 때가 많습니다. 편견으로 어떤 집단을 소외시킴으로 자기 소외감과 피해의식을 해소하려는 자위적인 심리 때문입니다. 그 심리를 독재자들이나 정치가들이 정치적인 유익을 위해 이용할 때 국가와 민족과 지역이 갈등으로 쪼개지는 것입니다. 그런 정치책략에 이용당하는 존재로 의식 없이 산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 한 명, 신대원 2학년 때 신학생 한 명, 몇 년 전에 어떤 사람 한 명 등 총 3명이 노골적인 편견의 말을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그 3명이 모두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3명의 가정환경과 배경과 인성을 생각하면서 깨닫게 된 진리는 “사람은 자신의 소외감과 피해의식을 남을 향한 편견과 차별로 위장시킨다.”는 진리였습니다.

 자세히 사람을 살펴보십시오. 교만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인성이 고약하면서 지지리도 못난 사람이 대개 편견적이고 차별적인 언행을 보입니다. 왜 인물이 되어야 합니까? 인물은 사람을 차별하지도 않고 차별할 필요도 없습니다. 결국 교만한 못난이가 차별하고 높은 위치에 있는 자보다 오히려 낮은 위치에 있는 자가 사람을 더 차별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위치는 힘써 높이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마음은 힘써 낮추려고 해야 합니다. 자기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판단하는 모습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모습입니다.

<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 >

 본문 1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서로 비판하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은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고 서로 쉽게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13절). 특히 사도 바울은 음식 문제로 성도들이 서로 비판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주관적인 판단을 있겠지만 거룩한 음식이나 속된 음식이 따로 없다고 했습니다(14절). 물론 독이 든 음식이나 상한 음식과 같은 나쁜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하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가지고 거룩한 음식과 속된 음식을 구분해서 음식 먹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음식 문제로 사람을 판단해서 형제를 근심하게 하는 것은 사랑으로 행하지 않은 것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구원한 형제를 음식 문제로 망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15절). 그처럼 사도 바울은 판단하는 태도로 자신의 선한 주장이 선하게 여겨지기보다는 오히려 비방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라고 권면합니다(16절).

 로마서 2장 3절을 보면 “남을 판단하면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판단을 그토록 싫어하실까요? 왜 판단이 나쁜 것일까요? 판단은 자신을 높은 위치에 올려놓고 보는 것이기에 나쁜 것입니다. 성도는 모두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쁜 사람이나 좋은 사람이 사실상 큰 차이가 없습니다. 성도는 모두 다 더 배우고 더 자라가야 합니다. 남을 판단하면 그때부터 고의로 차별하지 않아도 그를 2류 인간처럼 여기는 나쁜 태도가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큰 나’도 없고 ‘작은 너’도 없습니다.

2. 불일치를 일치로 만드십시오

 본문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먹고 마시는 것으로 남을 판단하기보다 의과 평강과 희락을 추구하는 성령 충만한 삶이 천국의 삶이란 말씀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예배드릴 때 넘어지는 것과 같은 ‘신앙행위’로만 나타내려고 하지 말고 의와 평강과 희락을 힘써 추구하고 드리고 나누고 베풀 줄 아는 ‘생활행위’로도 나타내려고 하십시오.

 공동체 생활에서 자신을 실망시키는 사람을 만나도 선한 결심과 선한 교제와 선한 봉사를 멈추지 마십시오. 옷이 더러운 사람과 어울림으로 자기 옷이 더러워져도 같이 어울리려는 삶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악한 영향을 계속 미치려는 교만한 사람만은 멀리하십시오. 그때도 그를 미워하지 말고 그가 잘되기를 빌어주십시오. 교육목적 및 거룩한 전략목적으로 사람을 멀리할 필요는 있지만 교만한 마음으로 사람을 차별하거나 멀리하지는 마십시오.

 어떤 사람을 보면서 “하나님이 저 사람도 사랑하실까?” 하는 교만한 생각을 버리십시오. 나 같은 죄인도 사랑하시는데 그를 사랑하시지 않겠습니까? 또한 “하나님께서 왜 저런 사람을 그냥 놔두실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지 마십시오. 더 이해하지 못할 일은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당장 지옥에 보내지 않고 오히려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나도 사랑하시고 남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삶을 따라 불일치 속에서도 늘 일치를 만들어내려고 힘쓰십시오.

3.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으십시오

 본문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 구절을 보면 성도는 2가지를 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과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이 2가지는 사실상 하나입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사람의 칭찬을 받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외적인 조건과 이익과 기분에 자주 바뀌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수정판이 없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폭넓게 사랑하지만 그때도 하나님의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의 강도와 친밀성은 변하지 않고 약화되지 않습니다. 그처럼 사랑의 폭을 넓히고 환경과 기분에 따라 사랑과 충성이 쉽게 변하지 않게 하십시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는 사랑이었습니다. 희생과 헌신이 없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희생과 헌신을 피하려고 할 때 무엇이 나옵니까? 여지없이 판단과 비판이 나옵니다. 결국 판단과 비판은 남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기보다는 남을 향해 희생과 헌신을 요구할 때 나오는 것입니다. 반면에 남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면 반드시 사람의 칭찬을 받게 되고 하나님은 그 모습을 예수님의 속성을 닮은 것으로 여기시고 무엇보다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물 >

 어느 날, 미국 미주리 주의 한 사형수가 18년 만에 사형 집행을 받을 때 목사가 그와 5일간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목사는 사형수가 예수님의 친구이자 자기 친구처럼 느껴졌습니다. 사형일 자정에 커튼이 올려지자 사형집행인 12명이 정면에 있던 목사를 쳐다보았습니다. 목사는 사형수가 누운 침상에서 약 60센티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 그때 목사는 마치 자신이 사형집행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사형수는 목사에게 미소를 짓고 목사 손에 있던 십자가를 쳐다보다가 곧 독극물 주사를 맞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현실이 꿈만 같았습니다.

 목사가 안내인을 따라 주차장으로 나왔을 때 목사는 바깥의 공기를 느끼며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얼마나 큰지 깨달았고 내쉬는 숨 한 모금과 눈에 보이는 장면 하나에도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는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때 누군가 돌을 던져 차의 앞 유리를 깼습니다. 목사가 잔악한 사형수와 함께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경찰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렇게 만든 사람은 잡아들일까요?” 목사가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놔두세요. 그들도 언젠가는 저를 이해하겠지요. 이 조각난 유리를 트로피처럼 여기겠습니다.”

 그때 목사를 사형수의 어머니가 미안해하며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목사가 곧 그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성도님! 당신의 아들은 마침내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는 가족과 사람들에게는 실패한 존재였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그가 제 손의 십자가를 볼 때 예수님께 자신을 의탁해서 예수님의 용서를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말을 할 때 목사는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였다는 마태복음 11장 19절 말씀이 너무 실감나게 느껴지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지금 너무나 소중한 분을 모시고 있구나!”

 사형수가 사형 당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런 일입니까? 그러나 언젠가 우리에게도 그런 죽음의 침상 순간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사랑했고 약자들을 힘써 돌보아주었습니다.” 그때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올 것입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제 나와 함께 영원한 영광의 세계로 들어가자!” 하나님은 자비를 준 사람들에게 자비를 내려주시고 더러운 사람을 받아준 사람을 누구보다 기쁘게 받아주실 것입니다.

 이제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의 의는 악한 죄인의 죄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습니다. 제 의는 감추시고 예수님만 따라 살게 하소서! 늘 작은 사람들 옆에 서는 담대함을 주시고 제 도움이 필요한 교회로 저를 보내주시고 비천한 사람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삶을 나타내도록 도와주세요.”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입니까? 그처럼 기도하는 분들의 미래는 찬란할 것입니다. 늘 의와 평강과 희락을 추구하면서 최선의 땀을 흘림으로 흙수저로 출발했어도 역전의 역사를 이루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인물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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