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창30:25-43 |
---|---|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
신앙과 현실 창30:25-43
때로 육신적인 삶이 주님을 섬기는 데 제약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밥 먹지 않고도, 돈쓰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육신적인 필요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왜 우리의 사역을 재정적인 필요로부터 자유롭게 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왜 하나님의 일에 돈이 들게 하셨을까요? 왜 하나님의 사람들도 먹어야 하고 입어야 살 수 있게 하셨을까요? 정 먹어야 살고 입어야 산다면, 왜 광야에서처럼 직접 만나를 내려주시지 않으실까요? 왜 그리스도인들도 재산을 소유하고 직장을 다녀야 하며, 돈을 벌기 위해 수고해야만 할까요? 왜 우리가 이렇게 육신적인 것들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세상적인 일들로부터 벗어나, 늘 기도하고 찬송하며 말씀을 붙들고 살 수는 없을까요?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육신적인 삶, 직장과 사업과 소유 등은 우리가 올바른 신앙을 갖는 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올바른 신앙이란 이런 것들을 도외시하고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날마다 먹고 마시며 입고 살아야 하는 생활, 경쟁이 치열한 삶의 현장, 우리의 소유와 자녀들 …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믿음으로 감당해나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무시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며, 이런 것들에 빠져서 사는 것 역시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받아들이고 해결하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신앙으로 잘 조화시켜나가는 것이 올바르고 성숙된 신앙입니다.
가나안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야곱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에서 14년 동안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 동안에 그는 아내들의 자식 낳기 경쟁에 휘말려 시달렸으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날마다 힘들게 일해 왔습니다. 야곱의 이런 삶에는 하나님께 예배하며 헌신하는 일이란 전혀 없었습니다. 야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서원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니라”(28:20-22)
하란에서의 14년 동안 야곱에게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십일조를 드리며, 경건하게 사는 삶이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육신의 삶에 빠져 있었고, 그 속에서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올바른 삶이 아닙니다. 타향에서 야곱의 삶이 곤고하고 갈등의 연속이었던 것은 그가 육신에 빠져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정신없이 살아가던 야곱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외삼촌에게 처자식을 데리고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25-26절).
야곱은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곳이 고향이며 부모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의 족장들은 항상 그 땅을 사모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떠나온 고향이 그리웠을 것이지만, 가나안 땅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죽을 때 얼마든지 좋은 곳에 묻힐 수 있었지만, 가나안 땅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훌륭한 지위와 명예와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늘 가나안 땅을 사모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것들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들을 사모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일이 바쁘고 재정적으로 쪼들리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이 심합니까? 당신의 마음이, 당신의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당신이 하나님께 약속했던 것을 다시 기억하십시오. 지금 당신의 삶이 곤고하고 허무하다면, 그것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세상에 있는 것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하늘의 영광과 소망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살며,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에 빠져 있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어거스틴은 “내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참 평안이 없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신앙으로 현실의 삶을 잘 세워나가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첫 번째 원리는, 하나님 바라보는 믿음의 눈,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는 소망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 하나님께 있고, 나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을 주셨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자, 라반은 야곱을 붙잡았습니다. 그는 야곱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 주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을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27절) 야곱이 온 후로 라반의 재산은 크게 불어났습니다. 라반은 그것이 야곱 때문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라반은 믿음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교활하고 거짓되고 탐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라반은 이런 사람이었지만, 야곱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라반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야곱을 보내지 않고 더 붙잡아 두려고 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받습니다. 요셉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종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히자, 하나님께서는 요셉 때문에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요셉 때문에 애굽에 특별하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 당신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당신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특별하신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잠시 고난을 당하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을 잊지 않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십시오.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당신이 있는 곳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사람들이 그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신앙으로 현실의 삶을 바로 세워나가기 위해 당신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또 하나의 원리는, 당신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라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어디서나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특별하신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의 공력을 따라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나이다.
라반은 하나님께서 야곱 때문에 자기에게 복을 주셨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라반은 야곱의 수고를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믿음 좋은 사람이어사가 아니라, 야곱의 공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속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사업이 잘 되고 있다면, 그것은 몰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서 직원들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정당한 것이겠습니까? 그것이 믿음 좋은 사업주의 태도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여 많은 헌금을 드리면서, 직원들에게는 수고한 대가를 주지 않는다면 직원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런 태도는 믿음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태도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직원들의 노고를 알아주고 함께 나눌 줄 아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라반은 하나님께서 야곱 때문에 자기에게 크게 복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야곱의 공력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14년 동안 성실하게 자기의 양떼를 돌보며 일한 것에 대해 한 번도 보너스를 준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야곱은 두 아내를 위해 14년을 봉사했습니다. 그러나 라반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었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30절) 야곱은 열심히 일했으며, 하나님께서 야곱 때문에 라반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라반도 야곱을 생각해주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우리는 함께 수고한 사람들의 노고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이므로 나 혼자 다 차지하겠다고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은 더욱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직장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 때문에 직장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어야 합니다. 신앙으로 현실의 삶을 바르게 세워나가는 또 하나의 원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형제를 섬기며, 그것을 형제와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더욱 큰 복을 주실 것입니다.
새로운 계약
라반은 야곱을 계속 붙잡아 두기 위해 이제부터 야곱에게 품삯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때 야곱은 품삯으로 좀 이상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31-32)
야곱은 양떼 중에서 검거나 점이 있거나 아롱진 것이 태어나면 그것을 품삯으로 달라고 했습니다. 양들은 주로 흰색입니다. 검거나 점이 있거나 아롱진 것들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야곱은 그런 것들을 품삯으로 달라고 요구했을까요?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교활하고 속이기를 잘하며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애매한 점이 있으면 꼬투리를 잡아서 우기고 빼앗을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확실한 조건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조건은 야곱에게 매우 불리했습니다. 양 떼 중에서 검거나 점이 있거나 아롱진 것이 태어나는 확률은 매우 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라반은 이 조건에 매우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당장 양 떼와 염소 떼 중에서 검거나 점이 있거나 아롱진 것들을 모두 골라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자기의 양 떼와 사흘 길을 격리시켜 자기 아들들에게 맡겼습니다. 야곱은 완전히 흰 것만 있는 양 떼와 염소 떼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검거나 점이 있거나 아롱진 것이 태어날 확률은 더 희박해졌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라반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정하며 지독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품삯을 정한 야곱은 나름대로 계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검은 것이나 점이 있는 것, 그리고 아롱진 것들이 태어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 떼에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37-39절) 야곱은 튼튼한 양이 새끼를 밸 때는 이 방법을 쓰고, 약한 양이 새끼를 밸 때는 그 가지들을 치워버렸습니다. 그래서 튼튼한 양들은 야곱의 것이 되고, 약한 양들은 라반의 것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해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43절)
야곱이 부자가 된 진짜 이유
야곱이 사용한 이 방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제로 이 방법을 사용하면 그런 결과가 나올까요? 그것은 실제로 증명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야곱이 이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야곱이 사용한 방법은 정당하지 못한 교활한 술책이었습니다. 야곱은 아직도 사기 근성을 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이러한 옛 본성이 다 없어지도록 징계와 연단을 더 받아야 했습니다.
야곱이 부자가 된 것은 그의 술책이 적중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야곱에게 나타나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28:13-15)
나중에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 야곱이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창31:10-12) 야곱이 부자가 된 것은 그의 술책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일이 잘 될 때, 그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갈등하는 일이 있습니까? 수고한 대가를 얻지 못하며 늘 손해를 보고 있습니까? 어떤 경우에도 당신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괴롭히거나 부당하게 대우하는 자들을 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당신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으로 현실을 조화시켜나갈 때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진리는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과 싸우거나 인간적인 술책을 사용하려 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어려운 일들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반드시 풍성한 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단지 이상적인 이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적용되며, 현실의 모든 문제를 올바르게 세워줍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체험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그것을 보여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믿음으로 살겠다고 서원한 것을 기억하고 이행하십시오. 당신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최선을 다하여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증명해 보이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하나님을 섬길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웃과 나누며 그들을 섬기도록 하십시오. 사람들과 싸우거나 인간적인 술책을 쓰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을 주시기로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어디서나 하나님 백성의 합당한 모습을 지켜야 합니다. 이런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복을 주실 것입니다. 당신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