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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밖에 난 몰라(I only know LOVE)

고린도전 허태수 목사............... 조회 수 462 추천 수 0 2016.12.09 00: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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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13:1-8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6.6.22 

사랑 밖에 난 몰라(I only know LOVE)
고전13:1-8

물론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오늘 설교 제목은 가수 심수봉의 노래 제목입니다. 저는 오늘 이 제목으로 고린도 전서 13장을 설교 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남녀 간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사람 말고 신을 사랑한다던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래야 고상한 사랑이라는 것이죠. 한 가지를 더 보태자면 부모의 내리사랑도 진정한 사랑에 끼워 넣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성서적인 사랑이란 에로스적이거나 로멘틱 한 인간과 인간들 간의 사랑이 아니라 아낌없이 주는 아가페 사랑이 성서가 망하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에 대한 이런 견해나 믿음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맞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에로스적인 면 즉 자기애의 면만 보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에로스는 배제하고 무조건 이타적인 사랑만이 사랑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성서에서 사랑을 말 할 때도 무조건 이타적인 아가페 사랑만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사랑은 ‘아하바-아헵’인데 이건 남녀의 사랑과, 부모자식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고루 나타내는 말입니다. 신약성서에서는 ‘아가페’를 사랑이라고 배웠잖아요? 이게 단지 이타적인 사랑의 뜻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아하바’와 마찬가지로 ‘아가페’도 남녀, 부모 자식, 신과 인간의 사랑을 두루 포섭하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는 오래된 ‘아가페’와 ‘에로스’라는 사랑의 이분법적인 이해를 떠나서 ‘정서적 사랑’과 ‘윤리적 사랑’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가족, 애인과 같이 가깝고 친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을 정서적 사랑이라고 불렀습니다. 마5:46에서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했을 때 그게 바로 정서적 사랑이라는 겁니다. 윤리적 사랑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 같은 사랑이라는 겁니다. 가족이나 핏줄이나 애인이 아니어도 심지어 원수라도 사랑하는 사랑이 바로 윤리적 사랑이라는 거죠. 그렇다고 정서적 사랑은 천박하고 윤리적 사랑이 더 고상하고 이상적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틸리히는 사랑이 정적인 무엇이 아니라 힘이라고 여겼습니다. 에로스도 무엇인가를 향해 추구하는 힘이라는 거죠. 아가페도 역시 참되게 존재하려는 힘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틸리히는 사랑과 힘과 정의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하나라고 합니다.

정의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또한 힘이 없는 사랑도 사랑이 아니라는 겁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고, 어우러지게 하고, 세상을 움직이고 변화시키고,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정의의 힘이 진정한 사랑이지, 세상 사람과, 세상일을 팽개치고 존재하는 사랑은 없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이 ‘사랑의 찬가’라고 기억하는 고린도전서 13장 의 사랑을 말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으로 붙인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는 부르거나 들를라 치면 좀 울적하고 우울합니다. 신명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사랑을 노래하면서 이렇게 신명 없이 우울하게 노래하는 사랑은 참 기묘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란 들뜨는 거 아닙니까? 우선 고전 13장의 사랑과 심수봉의 사랑이 주는 기분부터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심수봉의 사랑노래는 맥 싸 가리가 없습니다. 축축 늘어지고 울적합니다. 그러나 13장 의 사랑 노래는 힘차고 건강합니다. 그런데 고전13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 사랑 노래, 조금은 달뜨고 흥분하여 신명이 절로 나는 이 노래를 경쾌하고 명랑한 사랑노래라고 여기지 않고 그 다음에 나오는 낱말들 즉, 오래 참고, 친절하고,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성내지 않는 것 등을 가르치는 윤리강령으로 바꿔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주는 흥과 기쁨과 설렘과 업그레이드 된 감정은 어디다 쳐 박아 놓고 회초리든 윤리선생님이 교단에 딱 버티고서 훈시하는 것과 같이 13장의 사랑을 말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면 13장은 생동감 넘치고 흥분이 일어나는 사랑의 실제가 주제일까요 아니면, 그렇게 사랑의 달뜬 삶을 포기하고 감정과 행위를 엄격하게 통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주제일까요?  이 노래에 곡을 붙이 유명한 복음성가도 있지만 역시 본문이 주는 사랑의 찬가다운 힘차고 흥분에 출렁거리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13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3절입니다. 여기서는 ‘내가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는 열광적 신앙으로 뜨거워진 사람들이 방언이나 예언에 열중했으며, 신비주의나 기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믿음을 내세우는 이들도 있었고, 재산을 내 놓거나, 자기 몸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그런 은사를 겉으로 드러내서 자랑하는 데만 마음이 있고 그 근본정신인 사랑을 드러내지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온갖 짖을 다 하는데도 서로가 행복하지 않고 분란만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다음에 이런 일을 한다고 해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걸 강조하기 위해 “내게 사랑이 없으면”이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사랑이 모든 덕목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그 모든 덕목과 실천의 뿌리가 되고, 근원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모든 행위가 사랑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 인간들이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하는 사랑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고상한 것을 추구하려는 것은 틀린 것이라는 겁니다.

4-7은 “사랑은~~하다”입니다. 15개의 덕목이 나오죠. 이건 사랑의 속성을 설명하려는 게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 ‘사랑은 인간의 행위’라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그만큼 사랑을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다는 거죠. 그러나 그건 사람이 하는 짓이라는 겁니다. 만약 바울이 사랑의 원리 같은 걸 서술하려고 했다면 한 줄로 했겠죠. 뭐 하러 이렇게 길게 많이 주절거리겠어요. 예를 들면 ‘사랑이란, 한 방향을 같이 보는 것이다’이러면 되는 걸 말입니다. 인간의 행동, 삶으로 사랑을 서술하려니 쉽지 않았던 겁니다. 그것은 15개가 아니라 30개 40로도 모자라는 거죠.

그러니까 13장의 사랑의 행동 하나하나를 독립해서 다뤄서는 안 됩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이런 덕목들 하나하나를 개개인에게 들이댄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중에 하나라도 걸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 거다, 이걸 누구에게 들이대면 그는 영영 사랑 밖으로 쫓겨나야 합니다. 교만을 고치기 전에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언제 하는 거예요? 누구하고도 사랑이 상관이 없어지잖아요. 바울은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바울은 앞에서 사랑이란 모든 인간 행위의 원동력이다, 즉 힘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 사랑이 이루려는 목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게 뭡니까?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덕목들을 관통하고 있는 겁니다. 사랑의 덕목을 다 지키지 못한다 할지라도,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삶을 사는 동안에, 그런 삶 속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고 있으며, 사랑의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 그는 오래 참을 수도 있고, 친절할 수도 있고, 겸손하기도 한 겁니다. 때로 고간이 있어도 모든 걸 견디고 믿으며 참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덕목들을 지켜서 사랑하게 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그리고 스스로 사랑을 하는 가운데 그런 덕목들을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8-13의 끝은 이렇죠. 앞에서는 사랑이 예언 방언 지식의 근원이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사랑만이 영원히 남는다고 합니다. 이런 논의의 배후에는 뭐가 깔려 있을까요? ‘과연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게 뭐냐?’러는 물음이 그리스철학입니다. 그리스철학은 영원히 불멸하는 게 뭐냐는 게 주제였습니다. 플라톤 이후 이 물음은 이원론으로 정립이 되죠. ‘육체적인 건 일시적이고 그림자 같고 천하고 썩는 것이다. 정신적인 것은 고귀하고 영원한 것이다.’ 당시대의 사람들, 로마에서 온 부자들과 권력자들, 세도가들이 구성원인 고린도교회도 이런 사고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사는 허접하게 여기고 고상한 것을 추구하다보니까 싸움질이 끝날 날이 없었던 겁니다. 인간사의 모든 건 다 썩는 거니까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겁니다. 그걸 바울이 나무라는 겁니다. 너희들의 추구하는 고매한 이상이 남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j로 사랑하는 것만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걸 증빙하기 위해 롬5:8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나타난 그 사랑은 관념적이거나 정신적인 것이 아니었어요. 몸에서 피를 흘리는 행위였어요. 이 그리스도의 사랑은 에로스이기도 하고 아가페이기도 한 겁니다. 이런 사랑만이 남는다는 겁니다. 이런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몸으로 사랑하는 거, 그게 사랑이고, 그게 남는 것이지 이상이나 정신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고상한 것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싸움질 하지 말고, 몸으로 사는 것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온 몸으로 사랑하며 살라는 겁니다. 아가페를 오해해서 에로스를 깔보지 말라는 겁니다. 영원한 것은 그대들이 추구하는 그 높은 이상의 무엇이 아니라 그대들의 몸으로 하는 사랑, 그대들의 삶속에서 오가는 사랑, 그것만이 남는다는 겁니다.  

인생에서 영원한 건 ‘사는 동안 하는 사랑뿐이다’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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