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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roungruong/60213003339 

통일사회의 사회적 이질성에 대비한 교회론의 정립 및 선교적 역할

 

이재용


I. 연구 동기와 목적


한반도의 남과 북은 반세기가 넘도록 여전히 정치적, 군사적으로 대치 중이며, 탈냉전 및 탈이념의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체제와 이념의 명목 하에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남북의 관계와 통일정책 역시 다양한 면에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그 관계와 통일정책의 변화가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민족적 숙원에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면서 세월은 벌써 60여년을 흘러왔고,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보다 더 큰 문제는 단순히 긴 시간동안 ‘떨어져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 있는 동안 ‘달라져 있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실제로 남과 북은 60년이라는 시간동안 모두 저마다의 사회적 변화를 겪어 왔다. 이러한 남과 북의 사회적 변화는 물리적 장벽을 넘어 더욱 공고한 사회문화적 장벽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이미 반세기가 넘는 시간적 격차에 의한 것이며, 동시에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비롯된 남북한 주민들의 인식과 생활세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이질감은 매우 심각한 것이어서 통일 이후에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될 전망이다. 이는 독일의 사례를 통하여 이미 증명된 바 있다. 독일은 헌법적, 체계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통일을 이루었지만, 통일 이후 동서독 주민들 간에 상호불신과 갈등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 예전의 사회주의 동독체제에 대한 동경(憧憬)이 동독 주민들에게서 관찰되고 있다. 결국 독일통일은 ‘외적통일’을 이루었지만 ‘내적통일’에까지는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우리의 경우도 이와 같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남과 북이 반세기동안의 분단으로 이렇게 상이한 ‘두 사회’를 만들어낼 동안, 한국 교회가 통일에 대비하여 준비한 자세는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감상주의적인 면이 없지 않다. 많은 교회 및 기독교 단체에서는 통일에 대한 논의를 지나치게 체제 및 정치적 문제로 치부하여 통일사회 준비 참여도가 미흡하였다. 또한 통일을 해당 교단의 ‘북한선교의 진입로’ 정도로 이해하여, 통일 후 북한사회를 복음화 하겠다는 막연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북한전문선교단체로 자부하고 있는 많은 기독교 선교기관에서도 남북의 분단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이나 해법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북한의 지하교회를 지원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겠다는 강한 열망만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한반도의 통일에 있어서 외적인 통일보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내적통일, 즉 사회적 통합이라고 판단하고, 현재 남한과 북한의 사회적 이질성 및 괴리를 관찰하고 이것이 통일 후 한국사회에 어떠한 갈등으로 발전하게 될지를 논증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갈등에 있어서 종교의 기능과 역할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모색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한국교회에 나타나는 교회론의 재정립을 통하여 남북의 사회적 이질성 극복을 위한 교회의 케리그마 및 선교적 역할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II. 남북한의 사회적 이질성 심화와 독일의 사례


1. 남북한 사회적 이질성의 심화 현상


2차 세계대전 이후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는, 반세기가 넘도록 남과 북의 지속적인 갈등과 긴장의 상태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불신과 갈등의 시대에도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일어났다. 특별히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있었던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의 정치적 긴장과 갈등을 완화시키고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사건이었다. 그 덕분에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난 10년 동안, 남북한은 역사상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였다. 바야흐로 통일시대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인 사건들과는 달리 사회문화적인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소(IPUS)의 2008 통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남한 국민들은 전체 응답자의 불과 51.6% 밖에는 되지 않았다. 또한 통일이 가능한 시기에 대한 질문에서 우리 국민들은 주로 ‘30년 이상’이 걸린다고 답변했다. 이는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답변과 통합할 시 무려 47.2%라는 엄청난 기록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토록 통일에 대한 의식이 약화된 데에는 어떠한 사회적 동기가 있었을까?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들이 나타난다. 먼저 남북의 통일정책들이 시대에 따라 변화해오면서 국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고, 북한의 군사적 도발 등으로 인한 신뢰형성의 장애와 위기의식의 고조 등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는 ‘남북사회의 이질성’이 있다. 즉 남북이 분단된 지 6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남과 북은 다른 체제와 사회라는 이질성의 심화과정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결국 최근 국민들의 통일의식이 약화되고 있는 것은 단지 몇몇 특정 정권의 대북정책의 실패나 군사적 긴장 등의 원인이라기보다, 남북사회의 이질성이 심화되고 있는 단계로 이해해야 한다.


다음의 몇 가지 경우를 생각해볼 때 남북의 이질화는 꽤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다. 첫째로 역사적 인식의 경우, 남북한의 교육은 상당히 이질적인 요소가 많다. 교육 목적의 차이로부터 교육과정, 교육내용, 역사교육, 역사 교과서 등 모든 영역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영순은 남한의 역사교육이 민주주의 교육이념을 기초로 하여 학생의 개성을 존중하고 자율성과 다양성을 근간으로 하는 교육을 운영하고 있지만, 북한의 경우는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을 이념적 기초로 하여 집단주의 교육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남북한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서로 매우 상이한 구분의 역사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표 1. 남북한의 시대구분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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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남과 북은 동일한 역사를 가지고도 서로 상이한 역사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역사인식의 문제는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로 직결된다는 것을 고려해볼 때, 남북의 역사인식이 이토록 다르다는 것은 남북 간 의식의 차이와 정서적인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정영순은 이러한 상황에서의 통일은 상이한 역사의식에 의한 정체성의 차이로, 결국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 통일 후유증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면서 남북한 주민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두 번째로 언어의 이질화를 문제로 들 수 있다. 남북한은 모두 한글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쓰임새와 형태는 심하게 차이가 난다. 특별히 어휘의 경우 남북한의 언어정책이 다름에 따라 매우 큰 차이를 나타내며, 경우에 따라 남북 주민 간의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상이한 어휘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남북한의 어휘가 서로 다른 까닭은 먼저 남한의 ‘표준어’와 북한의 ‘문화어’가 각각 다른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형성된 점을 들 수 있고, 남북이 정책적으로 ‘국어순화’와 ‘말 다듬기’를 통해 신조어를 많이 만든 이유도 있다. 또한 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등의 어문 규정이 다르기 때문에 달라진 어휘도 있고, 마지막으로 다른 체제 하에서 발생한 신조어 역시 남북의 어휘 차이를 불러일으킨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가치관과 사회적 자아의 차이를 들 수 있다. 북한은 주체사상의 기치 아래 주체성과 절대성, 원칙과 사상, 혁명과 지배, 국가통제 및 목적 중시 등의 이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체제 하에서 발전해온 남한의 경우, 실용성과 융통성, 상대성과 경쟁, 개인주의와 자율성 등의 가치관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는 남북한 주민들의 대체적인 행동양식을 규정한다. 북한은 경직된 생활방식과 계급별로 패쇄적인 대인관계를 가지며, 명력과 복종이라는 상하구조 속에서 사회생활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남한은 복잡다양한 생활상과 대인관계의 범위와 내용 역시 복잡다단한 성격을 갖는다. 유영옥은 Loeinger의 자아발단 단계이론을 적용하여 북한은 제2과도기적 단계라고 평가했다. 즉 엄격하고 정형적인 행동양식을 보이는 동조자 단계(conformist stage)에서 개인의 자기비판과 행위의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의 경우 제6단계, 즉 개별성과 자율성을 중요시하고 자기실현에 몰두하는 단계로 진입하였다고 평가한다. 즉 남북의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차이는 행동양식과 사회적 자아의 차이를 야기하여, 이미 심각한 이질화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종교의 이질화는 심각한 지경이다. 북한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아래 김일성 숭배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민중의 아편’으로 치부하여 일체의 종교적 행위를 금지하였다. 그러나 남한은 세계에서도 대표적인 종교다원의 국가로서 모든 종교와 신앙의 전시장이 되고 있다. 즉 북한에서는 일원적이고 경직되고 패쇄적인 이념으로 사람의 정신세계를 묶어놓는 반면, 남한은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풍토 위에서 세계주의와 민족정체성 간의 갈등을 겪게 한다. 이 문제는 이후 본 논문의 3장에서 더욱 자세히 다루도록 한다.


결국 남북은 심각한 차이를 나타내는 ‘두 국가, 두 국민’이 되어버렸다. 만일 이러한 남북의 이질성을 간과한다면, 통일을 준비하는 현재의 상황과 통일 이후의 상황 모두에 심각한 장애로 작용할 것이다. 이 우려를 실제로 역사에 보여준 사례는 독일의 통일을 들 수 있다.

 

2. 통일 이후의 사회적 문제들 - 독일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미 독일의 사례가 국내의 각 학술기관과 단체에서 다각도로 연구되고 발표될 정도로, 독일의 통일이 향후 한반도의 통일에 주는 시사점은 엄청나다. 그것은 먼저 독일과 한국의 분단 상황이 너무도 흡사하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바로 양 국가 모두가 강한 민족의식과 주변국에 의한 강제 분단의 기억, 그리고 양 분단국 간의 군사적 대립과 경제적인 성공(서독과 남한)과 실패(동독과 북한)라는 역사적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독일의 통일은 한반도에 있어서 특별히 참고해야 할 선례가 되는 동시에, 그 역기능을 최대한 피해야 하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사례로 손꼽힌다.


통일 된 독일은 1990년부터 2004년까지 매년 GNP의 4%를 동독 경제 재건에 투자했다. 이 돈은 매년 8500억 유로정도로서 체코 공화국의 1년 예산보다도 많은 돈이며, 14년간의 지출을 합치면 1조 2500억 유로(한화 2010년 7월 기준 약 1,924,662,500,000,000원)나 되는 천문학적인 예산이다. 그러나 독일은 통일 후 20년이 되도록 경제적, 사회적 분열과 실패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한 때는 세계 2위의 국가경쟁력을 보유했던 독일이 2002년에는 세계 15위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이렇게 엄청난 희생을 치렀지만 여전히 통일 독일에는 사회적인 분열과 갈등이 심각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동독인들은 서독인들을 거만하고 탐욕스러우며 돈만 아는 존재라고 치를 떨고 있고,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이 게으르고 일을 제대로 할 줄도 모르며 의존적인 인간들이라고 비웃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신조어가 바로 오시(Ossi, ‘시골뜨기 동독인’)와 베시(Wessi, ‘졸부 서독인’)라는 상호비하의 표현이다.


이러한 동서독의 사회적 분열은 자기 정체성에서 더욱 심화된다. 1990년 여론조사 결과, 동독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독일인’으로 대답한 답변이 61%였으나, 10년이 지난 2000년에는 77%의 동독지역 주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동독인’으로 대답하였다. 또한 1992년 독일의 <슈피겔>지에서는 조사 결과, 서독인의 69% 동독인의 79%가 통일 이후에야 동서독인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독일 내 사회의 이러한 분열과 반복은 지난 2009년 9월의 독일 총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총선에서 좌파당은 동독 지역의 주민들의 불만을 대변하며, 특히 동독과 서독의 임금 차이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투표 결과, 사민당은 참패하였으며 좌파당은 동독지역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11.9%라는 득표율을 얻어 독일 제4당이 되었다. 이러한 투표의 결과는 동독과 서독의 사회문화적인 갈등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것을 대변한다.


게다가 독일의 사회적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최근에는 동독지역에서 과거 독일에 대한 향수(Ostalgia)가 나타나고 있다. 동독지역 TV에서는 '오스텔지아 쇼‘(Ostalgie-Show)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과거 동독의 일상적이었던 일들을 보도하고 있고, 2003년에는 ‘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이라는 영화를 통하여 독일의 통일 이후 사회적 분열과 갈등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게다가 서독은 독일의 동독 재건 사업에 지나치게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며 비판을 하고 있고, 서독의 많은 학생들은 동독의 명문대학 등으로 진학하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빌리 브란트와 함께 ‘동방정책’을 입안하고 주도했던 “에곤 바르”(Egon Bahr)는 당시 독일은 동서독 간의 정신적인 차이에 대해서 과소평가했다고 고백하며, 독일의 내적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0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의 통일 이후 이러한 사회적 분열과 갈등은 한반도에 강한 시사점을 남겨둔다. 독일통일은 통일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통일 이후 하나의 국가와 사회로 통합되는 것이 더욱 큰 과제임을 보여준다. 위에서 언급한 남북한의 사회적 이질성이 다각도에서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이러한 독일의 사회적 갈등과 분열은 통일 한국을 준비하는 우리에게도 깊은 우려를 안겨주게 된다.

 

II. 통일에 대비한 교회론의 재정립과 선교적 역할


1. 한반도 통일에 있어 교회의 기능


본 논문은 지금까지 남북의 사회적 이질성의 문제가 심각함을 사례를 통해 논증하고, 독일의 사례를 통하여 사회적 이질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제도적 통일이 얼마나 큰 희생을 불러일으키는지 대해서도 논의해보았다. 이러한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시도와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종교의 역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종교는 초인간적인 신앙체계를 통하여 집단의 목적과 정의를 세우고 도덕적 기초를 부여하여 사회질서 유지와 통제에 커다란 공헌을 하기 때문이다. 한스 큉은 그의 저서 세계윤리구상에서 세계의 분열과 분쟁 속에서 종교가 세계평화에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님을 지적하고, 사회분열의 상황에서 종교의 사명과 역할에 대하여 6가지의 윤리적 방향을 제시했다. 본 논문은 지금까지 한반도의 통일에 있어 남북의 사회문화적 격차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종교가 한민족 통합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가져보았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한국교회는 어떠한 방법을 통하여 남북의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을까? 특별히 한국교회의 교회론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어떠한 방식으로 응답을 해야 할까? 본장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이제 한국교회의 독특한 교회론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찰해보도록 한다.


한국교회의 교회론은 이제 성장제일주의의 교회론을 넘어서 선교적 교회론,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타문화권 선교의 교회론’을 가져야 한다. 이 말은 극단적으로 남과 북이 서로 다른 관점의 교회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남북의 분단현실에서 곧바로 민족공동체 개념으로 도약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사회문화적 분단과 이질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남북이 서로 다른 문화라는 것을 전제하는 교회론이다. 실제로 과거 많은 남북의 상이한 문화체계를 다룬 학술연구는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연구가 ‘민족통일’이라는 과제를 의식해서인지 연구의 결론을 서둘러 규범적으로 통합시켜버리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사회라는 인식은 나아가, 남과 북의 교회 역시 다른 성격의 교회라는 사회적 결과가 나타난다. 그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이점이 아니라,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들의 차이 때문이다. 현대 선교학은 이러한 사회적 구성원의 차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오늘날 현대의 선교학에서 문화연구의 중요성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별히 선교가 타문화권을 대상으로 할 때, 이제 더 이상 현지 문화를 무시한 일방적인 선교는 교회의 역사적 과오(식민주의적, 자문화중심주의적 선교)에 비추어볼 때, 더 이상 허용될 수 없게 되었다. 즉 선교대상의 사회문화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선교는 오히려 복음에 대한 반감을 양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선교는 선교대상 국가 또는 민족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철저한 사전 조사와 이해 및 수용의 자세를 요청한다. 만일 선교가 선교대상인 타문화권에 대한 올바른 사전 조사와 이해가 없이 진행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에 대하여는 매우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이미 사무엘 헌팅톤은 탈냉전시대에는 문화적 차이가 세계분쟁에 최대 요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여러 유수의 학자들이 현대의 전쟁에는 문명의 충돌과 함께 군사적 패권주의, 양국 사이의 경제적 불균형의 심화, 세계정치의 편파적인 형태, 배타적인 태도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결국 교회가 선교지의 해당 문화와 얼마나 깊은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탈냉전과 탈이념의 시대인 21세기에서, 문화가 얼마나 큰 사회통합과 분열의 변수로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다. 특별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60년째 대치중인 남한과 북한의 경우, 상이한 사회문화로 인한 갈등과 분열의 가능성은 깊은 우려를 갖게 만든다. 이러한 때에, 한국교회가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분명한 교회론을 정립하여 향후 한반도의 통일사회를 대비하고 나아가 주도하는데 앞장 설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가져본다.

 

2. 남북의 교회론 - 탈근대주의적 교회론과 탈식민주의적 교회론


그렇다면 이제 남과 북이 서로 다른 교회론을 필요로 한다면, 그 교회론의 구체적인 본질과 모습은 무엇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남과 북의 사회적 성격을 살펴보아야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한과 북한은 서로 다른 세계관, 인식론, 가치체계 및 신념체계를 발전시켜왔다. 역사 인식과 언어의 차이, 가치관과 사회적 자아의 차이는 모두 일정한 사회적 문화관 또는 세계관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남한의 경우는 경제적이며 문화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북한의 경우는 공산주의적이며 주체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두 사회의 사회적 이질성은 남과 북의 교회 역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아래에서 형성되었으며 발전하리라는 짐작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남한이 근대주의적 국가관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최근 탈근대주의적 사회적 아노미를 겪고 있으며, 한국교회 역시 급속한 부흥 및 성장기를 지나 현재는 심각한 사회적 공신력의 추락 및 교세 및 교인의 감소라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3대 세습이라는 정권 이양의 과정 중에 놓여 있는 절박한 사회적 혼란의 시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사상으로 무장하여 여전히 국가 간의 교류 및 소통을 차단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형성되는 교회론의 개략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본 논문은 이를 탈근대주의 교회론 또는 이머징 처치(Emerging Church), 그리고 탈식민주의적 교회론으로 제시한다. 이는 전자의 경우 특별히 남한에 적합한 교회론으로 두고, 후자의 경우는 북한에 적합한 교회론으로 설정한다.


그렇다면 왜 남한의 교회론은 탈근대주의적 교회론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사회가 전체적으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으며 그 변화가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교회가 이제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윌리엄 이섬(William M. Easum)은 탈식민주의적 변화를 산업 시대에서 지각 변동 시대로의 변화라는 말로 풀이했다. 이섬은 “기존의 프로테스탄티즘은 산업 시대의 점증적이고 느린 변화 세계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다. 이것은 곧 탈근대주의 즉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들과 일맥상통하다. 즉 다양성이 강조되고, 획일화를 탈피하여 독특한 특성을 지니게 되고, 정신 및 영적인 경향성이 강조되는 현상들 말이다. 에디 깁스는 이러한 탈근대주의적 요청에 교회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그 구체적인 반응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1. 과거회귀에서 현실 참여로

2. 마케팅적 교회론에서 선교적 교회론으로

3. 관료적 계층구조에서 사도적 네트워크로

4. 집단적 가르침에서 개인적 멘토링으로

5. 대중적 설교가에서 내면적 영성가로

6. 보는 예배에서 느끼는 예배로

7. 기다리는 전도에서 찾아가는 전도로

8. 수동적인 교인에서 활동적인 신자로

9. 닫힌 공동체에서 열린 공동체로


이러한 교회론의 변화는 인식의 변화를 넘어 교회의 형태마저도 변해야 하는 중요한 도전이 된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미래교회와 미래신학이 근본적으로 고찰해야하는 교회론의 주요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한의 교회는 이와 같은 교회론의 재인식과 재구성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사회적 공신력 하락과 쇠퇴 등의 현상은 일시적이거나 현상적인 문제를 넘어선다. 이는 매우 구조적인 문제를 띠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교회론 자체의 수정이 요청되는 것이다. 노영상은 더 이상 교회성장 등의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목적과 방법만을 논하는 교회론은 한국교회에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성경을 통하여 재정립하고 그것이 오늘날의 상황에 적절하도록 재구성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탈근대주의적 사회의 변화는 교회의 변화를 요청하고 촉구한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이러한 사회적 담론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놓여있는 명실공이 탈근대주의적 사회가 되었다. 이는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의식 및 개혁운동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 그것은 근대주의적 또는 전근대주의적 교회론에 의해 교회세습 및 교회 내의 계층구조 등이 비단 교회의 윤리성을 넘어서 현대인에게 강한 영향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근본적인 교회론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탈근대주의적인 교회론으로의 체질개선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교회에는 왜 탈식민주의적 교회론이 필요한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북한은 강한 주체사상에 의해 체질화된 국민성과 국가의식을 가지고 있다. 북한사회가 분단 후 지금까지 주창해온 국가의 근본이념은 바로 주체사상이다. 북한사회에서 주체상은 북한주민 모두가 습득하고 체화해야 하는 사회적 규범이자 담화이다. 이 주체사상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사상”, 혹은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상”으로 규정된다. 김정일은 나아가 주체사상을 본격적으로 체계화하기 시작한다. 김정일은 인간의 본질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라는 3요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이 주체사상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북한의 주체사상적 맥락은 기독교를 제국주의적 종교 또는 미신으로 전락시키는 우려를 갖는다. 실제로 황장엽 씨와 같은 탈북인사들 역시 주선애 교수 같은 교계의 인사들과도 친분이 두터웠으나, 죽을 때까지도 주체사상으로 인해 신앙을 갖지 못하고 말았다. 북한의 주민들은 이미 주체사상에 주입되어 김일성 부자를 신과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타문화권처럼 공고하게 쌓여있는 이들의 사회문화적 장벽 앞에서 과연 복음은 어떤 모습으로 전파되어야 할까? 북한의 문화는 그 어느 공산사회의 경우보다 전체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문화의 양상 역시 북한 당국의 정치경제적 특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때문에 북한의 사회문화적 특징의 첫 번째는 단연 전체주의적인 독재모형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주체사상과 공산당의 유일사상체계가 모든 가치를 지배하는 획일적인 사회이다. 셋째로 북한사회는 집단주의 원칙에 근거한 통제적 조직사회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상황에서 교회론의 역할은 단순히 전통적인 교회론을 답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의 교회론은 보다 비서구적인 동시에 민족적인 성격을 띠어야 하며, 전통적이고 보수적이기 보다는 참여적인 메시지의 신학적 성격을 갖는 것이 좋다. 그리고 북미나 남한의 교회들이 그렇듯이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의 교회론 보다는, 보다 공동체적인 생활과 규범적인 삶을 제시하는 교회론이 적절하다. 이는 현재 북한의 사회문화에 적합한 복음의 형태를 구상하고 또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3. 한반도의 사회적 통합을 위한 교회의 선교적 역할과 기능


그렇다면 이렇게 새로운 교회론의 인식을 두고, 한국교회가 통일을 대비하여 할 수 있는 역할과 기능에는 무엇이 있을까? 본 논문은 간략하게나마 통일한국 사회를 맞이하는 교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1) 하나의, 보편적 교회로의 인식 전환

먼저 남한교회는 북한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수정해야 한다. 그것은 북한을 단순히 ‘빨갱이 집단’으로 매도하거나 ‘북녘에 있는 아사(餓死) 직전의 불쌍한 동포들’로 보는 시각을 바꾸어, 하나의 보편적인 교회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 교회의 표지는 북한의 교회를 인정하고, 고유의 사회문화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시도되어야 한다. 남한의 시각에서 북한정권을 규정하고 시작하는 선교는 그 출발점부터 이미 바른 교회론으로서 어긋나는 태도이다. 하나의 보편적인 교회론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기반한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한다.

 

2) 지속적인 대북지원 강화

이와 더불어 한국교회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사회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북한선교를 ‘직접선교’ 또는 ‘교회설립’ 등으로 국한시키고는 했다. 이러한 운동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사회통합적 기능에 유익하지 않고 도리어 종교 간의 대립과 마찰, 그리고 교권주의와 교파간의 분쟁으로 흐를 수 있어 심히 우려가 된다. 이러한 단선적인 선교적 전략은 선교대상이 북한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의욕과 이기를 충족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때에 선교의 대상인 북한의 상황을 살펴보면, 사실 현재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교회의 역할은 다름 아닌 ‘인도적 차원의 지원’ 즉 디아코니아적인 사역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독일 적십자사는 북한을 방문한 후, 북한에서는 매달 1만 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는 하루 330명이 굶어서 죽는다는 뜻이다. 게다가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은 매우 열악하며, 매년 수해와 기근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의료수준은 최악이어서 X선을 촬영할 수 있는 의료장비 마저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밖에도 현재 북한의 처참한 ‘인간 이하의 상황’을 나열하라면 끝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 놓여있는 북한주민들에게 도움을 손길을 베푸는 것은 인간의 도리요 교회의 사명이며, 나아가 남북의 이질적인 사회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계기를 마련하는 선교적 전략이다. 교회는 북한사회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통해서 한민족의 생명을 살릴 수 있고, 복음의 입각한 실천을 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남북의 사회적 격차를 줄이며 동시에 북한 땅에 복음이 들어갈 수 있는 물꼬를 트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3)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한 기독교의 선포

북한사회가 분단 후 지금까지 주창해온 국가의 근본이념은 바로 주체사상이다. 북한사회에서 주체상은 북한주민 모두가 습득하고 체화해야 하는 사회적 규범이자 담화이다. 이 주체사상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사상”, 혹은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상”으로 규정된다. 김정일은 나아가 주체사상을 본격적으로 체계화하기 시작한다. 김정일은 인간의 본질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라는 3요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이 주체사상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주체사상은 더 나아가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한 우상화로 발전한다는데 선교적 장애가 있다. 결국 “사물의 모든 중앙에 인간을 둔다”라는 북한의 주체사상은 김일성 부자의 독재 통치 정당화를 위한 수단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체사상을 고집하는 북한 당국에 대하여, 한국교회는 사회적 차원의 회심을 선포해야 한다. 물론 그 방법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의 주체사상이 해체되지 않고서는 한반도의 사회문화적 통합을 기대하기 어렵고 동시에 복음 전파에도 커다란 차질이 빚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 있어 회심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범주를 넘어 사회적 차원을 포함한다. 즉 기독교의 회심은 단순히 종교를 바꾸는 정도의 차원을 넘어,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기대 속에서 만물의 갱신과 전 우주의 재정립(re-orientation)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통일과 사회문화적 통합을 향한 기독교의 선교적 의무는 민족 복음화와 함께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며, 그것은 특별히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폐쇄적인 국가 운영 및 국민 통제, 김일성 부자에 대한 우상화 작업, 잘못된 신념을 주입함으로서 북한 주민과 공동체를 비인간화하는 죄들을 낱낱이 고발하고 북한 당국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뜻한다.

 

III 결론

본 논문은 지금까지 남북의 사회문화적 이질성을 지적하고, 독일 사례를 통하여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게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사례를 통하여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남북의 이질성을 줄이고 한반도의 사회통합적 기능을 이루기 위해서 한국교회가 어떠한 교회론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는 교회론이 본질상 현학적인 지적 유희가 아니라 실천적이며 목회적이라는 본질적인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다. 비록 본 논문의 분량과 연구의 제한적 이해로 더욱 심도 있는 차원의 연구가 진행되지는 못했지만, 이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시대적 사명을 교회가 쉽게 놓치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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