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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고난

요한복음 이상호 목사............... 조회 수 989 추천 수 0 2016.12.09 23:40:09
.........
성경본문 : 요19:17-18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십자가의 고난


* 요한복음 19:17-18, 이사야 53:4-6, 마태 21:1-11(27:22-25)

* 찬송 : 141, 143, 311장                                          

14. 4. 13, 종려주일


오늘은 사순절 마지막 주간으로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입니다. 이 때 많은 군중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을 부르며 주님을 환영했기 때문에 교회는 이를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부활주일 이전의 한 주간을 고난주간으로 지킵니다. 이는 주님의 공생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로부터 시작되는 한 주간입니다.


이 시간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 고난은 과연 어떤 고난이었는가, 그리고 그 십자가의 고난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함께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십자가는 노예를 처참하게 죽이는 형틀입니다. 로마 시민권 자는 절대로 아무리 극악한 죄를 저질렀다 하여도 십자가에 죽이지 않습니다. 이방인이나 노예를 잔인하게 죽이는 사형 틀입니다.


십자가로 죄수를 처형하는 법은 죄수를 사형장으로 끌고 와서 먼저 옷을 벗기고, 죄수를 십자가 위에 눕히고, 십자가의 가로지른 나무에 끈으로 손을 묶고, 그 위에 못을 쳐서 박고 십자가의 세로 목에다가는 양발을 포개고 거기에다 대못을 박습니다.


그리고 눕혔던 십자가를 세워 구덩이에 밀쳐 던져 세웁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인간이 최대로 고통을 당하며 죽게 하는 극악한 고통으로 죽이는 사형법입니다. 십자가는 죄수의 생명이 다하는 때까지 가장 극심한 고통으로 사람을 말려 죽입니다.


십자가 보다 덜 고통스러운 사형 법은 산사람을 죽은 송장에다가 같이 묶어 놓아 죽이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피가 마르고, 목이 마르고, 뜨거운 햇볕에 땀이 마르고, 양손과 발에는 쇠 독이 올라서 손발이 뚱뚱 붓게 됩니다. 뜨거운 사막성 기후에서 대개 2-3일 걸리어 서서히 괴로움에 지쳐 죽는 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독일의 외과 의사인 리히터(Richter)는 십자가의 고통이 육체에 미치는 고통과 인간의 신체에 미치는 죽음의 상황을 의학적으로 정확하게 조사를 하였습니다.


1. 십자가에 못 박힌 신체의 부자연스러운 자세는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격렬한 고통이 옵니다. 체중이 세 개의 못에 매달려 있으니 얼마나 몸이 부자연스러우며 고통스러운가를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2. 심장으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신경과 힘줄, 핏줄로 가득 찬 손과 발을 뚫고 들어간 못은 견디기 어려운 아픔을 일으킵니다.


3. 뜨거운 햇살에 드러난 많은 상처 자리는 출혈이 되어 부패하기 시작하며 시시각각으로 전신의 고통을 가져옵니다. 물론 피비린내가 나는 곳에는 쇠파리가 몰려들고, 피를 빨아먹어도 쫓을 수 없는 그 괴로움의 고통은 상상할 수 있습니다.


4. 상처로 인하여 몸이 부은 부분에서는 다른 부분보다 동맥으로부터 많은 피가 흘러나오지만 정맥이 이를 다 흡수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머리나 위로 남게 되는 이 여분의 피로 인하여 뇌의 혈관은 억눌리고 부풀리게 됩니다.

이러한 혈액의 순환 장애는 죽음 그 자체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내적 흥분, 근육의 긴장, 불안감을 일으킵니다.


5. 육체적 고통과 함께 점차 심하여져 오는 영혼의 갈등과 번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합니다.


6. 이 모든 고통 외에도 전신에 파고드는 목마름의 고통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머리에는 가시관의 따가움, 야만스러운 군인들의 매질, 최후의 만찬 후에 한잠도 주무시지 못한 주님의 정신적, 육체적, 영적인 괴로움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의 고난은 삼중고였습니다.


1. 영적인 고난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기도하는 겟세마네동산의 마지막 기도는 차라리 영적인 절규였습니다.


성경은 주님의 모습을 마 26:39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사명이 클수록 영적인 곤고함과 영적인 아픔과 영적인 고난이 크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이 클수록 기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평신도보다는 직분자가 사명이 큽니다. 그러기에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감당하시기 위해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영적인 곤고함과 영적인 고난을 겪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영적인 고난입니다.


2. 육신적인 고난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십자가를 질 것을 결단했다고 하는 것은 육신적인 고난도 감당하겠다는 결단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채찍에 맞고 가시면류관을 씌울 때 거울을 보고 씌운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써야 더 어울릴까? 저렇게 써야 더 어울릴까? 마치 모자를 쓰듯이 멋을 내면서 쓴 가시면류관이 아닙니다. 가시에 찢겨 살이 찢기고 이마가 찢겨서 피가 얼굴을 흥건히 적실 정도의 고통이었습니다.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았습니다. 잠을 한 숨도 못 잤습니다. 먹을 것 하나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 길을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인간적인 한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넘어지고 쓰러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고난은 이와 같은 인간적인 한계에 달하는 육체적인 고난이었습니다.


3. 정신적인 고난이었습니다.


사실 육신적인 고난보다 더 이기기 힘든 고난이 정신적인 고난입니다. 육신적인 것이야말로 때울 수라도 있다고 하지만 정신적인 고난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에서도 사람들이 정신적인 고난을 견디지 못해서 얼마나 어려운 길로 가고 있습니까? 얼마나 엉뚱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얼마나 몸부림을 칩니까?


우리의 삶을 멍들게 하는 것은 정신적인 고난과 고통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참으로 정신적인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람이 배신당하는 것처럼 견디기 힘든 고통은 없습니다. 사람은 믿음관계가 깨어지게 되면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맙니다. 우리 사회의 뿌리는 믿음관계, 신뢰에 있습니다. 한 가정도, 부부관계도, 부모와 자녀관계도, 스승과 제자관계도 모두가 다 신뢰관계입니다.
국가 경제도 그렇습니다. 서로 신뢰관계 속에서 무역이 이루어집니다. 회사간에도 신뢰관계입니다. 개인간에도 모든 것이 신뢰입니다. 친구간에도 신뢰입니다. 이 신뢰가 금이 가고 깨지게 되면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가장 믿고 사랑했던 제자 가룟 유다에게서 배신을 당했습니다. 배신의 아픔은 배신을 당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오늘은 세계교회가 종려주일로 지킵니다. 종려주일이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환호한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환호하는 승리의 입성, 영광의 입성인 것 같지만 사실은 온갖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위한 입성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고난은 어떤 고난입니까?


첫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시는 고난

예수님은 본래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그가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빌 2:6-8).


둘째,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시는 고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찔리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성경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사 53: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째,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함을 입으시는 고난

예수님께서 당하신 모든 고통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 53:5)고 했습니다. 우리의 죄는 죽음으로써만 갚을 수 있습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습니다(히 9:22).


넷째, 우리의 평화를 위해 받으신 징계의 고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시기 위해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성경은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사 53: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우리의 건강을 위해 채찍에 맞으신 고난

아무리 권세가 있고, 명예가 있고, 물질과 아름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건강을 잃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입고 오셨기 때문에 이렇게 아픈 자들의 고통을 충분히 알고 계시며, 그들을 위해 치료의 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에게 용서와 부요와 자유와 평화와 건강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실천을 통해서 우리에게 겸손과 섬김과 봉사의 방법을 알게 한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 그 실천이 있어야겠습니다.


어느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선교하기 위하여 배를 타고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그 곳에서는 노예시장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흑인모자(母子)가 경매에 붙여졌는데, 어린 아들은 필요 없고 흑인엄마만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서 어머니만 팔리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 흑인 모자는 생이별을 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흑인엄마가 주인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애원을 합니다. "제발 내가 두 사람의 몫을 할테니 아들과 함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두 모자를 강제로 떼려고 하는데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주인이 칼을 들어 어린 아들을 향해 내려 찔렀습니다. 이 광경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던 선교사님이 자신의 손으로 그 칼을 막았습니다. 그 칼은 선교사님의 손에 찍히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생명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이 주인에게 다시 후한 값을 주고 두 모자를 샀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유롭게 살라고 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주인에게 후한 값을 쳐주었지만 이 흑인모자는 선교사님에게 도대체 계산할 수도 없는 생명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흑인모자는 갈 데도 없고 가봤자 또 잡혀서 노예로 팔려갈 것이 뻔했습니다. 그러니 선교사님을 따라 선교사님을 도와 은혜를 갚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선교사님을 따라 선교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이 흑인모자의 생명을 살려 주었을 뿐 아니라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 은혜가 백골난망(白骨難忘)이라 흑인 모자는 선교사님의 손과 발이 되어 아프리카의 선교사역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흑인 모자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화도 내고, 짜증도 부리고 원망하면서 불평합니다. 그 때 선교사님은 아무런 말없이, 손을 내밀어 아들을 살리려 대신 칼을 맞았던 그 손의 흉터를 보여주면, 그 흑인은 잘못했노라고 용서를 빌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는 양손양발에 십자가의 흔적이 있습니다. 이제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기억하며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우리가 되십시다. 오늘 노인잔치 한마당도 그러한 작은 실천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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