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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신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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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920) |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십시오 (신명기 5장 11절)
< 청탁중개인에 속지 마십시오 >
이틀 전 인사 청탁으로 해임된 제주도 고위 소방공무원이 아내가 자기 몰래 청탁했고 자신도 청탁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낸 해임취소 소송이 법원에 의해 기각 당했습니다. 그때 브로커는 8300만원을 받았지만 그 돈은 실제 인사권자에게 한 푼도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청탁브로커가 돈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가로채는 일은 대부분의 청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뻔한 스토리입니다.
그 고위 소방공무원은 재판에서 하소연했습니다. “아내가 돈을 준 사실을 몰랐고 중개인이 돈을 줘야 승진할 수 있다고 기망해 가로챈 것입니다.” 그가 한 ‘기망하다’란 말은 ‘그물을 쳐서 속인다’는 말입니다. 그는 청탁 대가로 돈을 받은 공무원이 없고 청탁브로커에게 속기만 한 자신에게 해임은 너무 심한 징계라고 했지만 결국 소송에서 졌습니다. 욕심이 청탁을 낳고 청탁이 해임을 낳은 것입니다.
사람에게 청탁하지 말고 하나님께 직접 청탁하십시오. 하나님께 청탁할 때도 돈으로 청탁하지 마십시오. 치유나 합격이나 승진이나 소원성취를 조건으로 내세워 조건헌금을 하지 마십시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은 사심 없이 심을 때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이지 사심을 품고 심어도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헌금이 조건헌금이 되면 그것은 사심이 있는 청탁성 헌금이 됩니다. 하나님은 헌금의 변질을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역자의 생활유지와 교회유지와 거룩한 일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드리는 십일조도 기뻐하시고 복음전파와 선교를 위해 드리는 선교헌금도 기뻐하십니다. 또한 범사에 감사해서 드리는 감사헌금도 기뻐하시고 특별한 비전에 기여하고 싶어서 드리는 특별헌금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자기 목적달성을 위해 드리는 조건헌금은 그 깊은 속마음과 의도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청탁성 헌금으로 여기고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괘씸하게 여기고 더 진실하고 성숙한 믿음을 깨우치려고 기도응답을 늦추실 때도 많습니다.
조건헌금의 잘못에 대해 무지하면 기망하는 교주가 중환자에게 치유기도를 해주면서 “물질을 심어야 낫는다!”고 할 때 그 말에 속아 헌금을 바칩니다. 그러나 그런 조건헌금과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그때 바치는 사람은 회복의 기대감을 가지고 바친 것이고 받는 사람은 무엇을 해준다고 기망해서 받아 챙긴 것이지만 그런 조건헌금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십시오.
거짓 청탁중개인인 이단교주에게 속지 마십시오. 먼저 물질로 심어야 한다고 교묘하게 헌금을 유도하는 이단교주들의 말 작업에 속아 청탁성 조건헌금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분 나쁘시게 하는 불신적인 행동이기에 하나님은 그의 기도제목을 오히려 외면합니다. 혹시 그때 소원이 이뤄져도 그 소원성취는 사탄의 그물로 빠지는 소원성취일 뿐입니다. 헌금은 쓸 때도 잘 써야 하지만 낼 때도 잘 내야 합니다.
기복적인 조건헌금을 하지 말고 사심 없이 순수하게 헌금하십시오. 헌금하면 병이 낫고 합격한다는 이단교주의 말에 넘어가서 헌금하지 마십시오. 순수한 헌금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지만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조건헌금은 오히려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그저 순수하게 헌금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얻어서 합력하여 선이 이뤄짐을 믿고 헌금이 어떤 의도를 가진 조건헌금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악한 청탁브로커는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치유나 합격을 약속하고 돈을 뜯어내는 종교브로커입니다. 이단교주는 치유나 합격을 약속했다가 이뤄지지 않으면 “아니면 말고!” 하면서 교묘하게 빠져나갑니다. 약속대로 안 되어도 “네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하면 끝입니다. 즉 자기가 하나님께 청탁해 뭔가를 이뤄줄 것처럼 약속했다가 결과가 좋으면 자기가 하나님께 청탁해서 ‘내 덕으로’ 된 것이라고 하고 결과가 나쁘면 신도가 믿음이 없어서 ‘네 탓으로’ 안 된 것이라고 하니까 얼마나 악한 꽃놀이패 종교사기입니까?
< 함부로 약속하지 마십시오 >
자기가 청탁하면 된다고 함부로 약속하지 마십시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크게 깎이게 됩니다. 특히 교우들에게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더욱 하면 안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진 문패를 가슴에 단 존재로서 약속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쉽게 약속하지 말고 불의한 청탁은 최대한 삼가십시오. 교회생활에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행위는 돈을 벌어주겠다면서 교인을 다단계 판매의 자기 하위 단계 멤버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한때 다단계 판매로 얼마나 큰 갈등과 아픔과 시련을 당했습니까?
돈 벌어주겠다고 하면서 다단계에 가입시키거나 투자를 권유하지 마십시오. 돈 벌어주겠다고 하지 말고 차라리 그냥 돈을 주십시오. 돈 벌어주겠다는 마음이 진심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허언과 사기처럼 되어 인간관계를 망치고 교회를 어렵게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취직시켜주겠다는 약속도 하지 마십시오. 청탁은 하지도 말고 청탁해주겠다고는 더욱 하지 마십시오. 청탁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힙니다.
이단 교주들은 “병이 나으면 자기가 기도했기 때문이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끊임없이 거짓 치유선포를 합니다. 이단교주는 자기가 하나님께 청탁하면 마지막 때에 선택된 144000명에 속하고 병이 낫고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탕 발린 약속으로 영혼들을 미혹합니다. 그렇게 심령이 약한 사람을 미혹하지만 결국 그 약속은 대개 공수표로 끝납니다. 그렇게 약속이 허언이 되어도 “아니면 말고!” 하고 넘어가면서 수많은 영혼들을 짓밟고 세를 불려가는 것입니다. 그런 말에 미혹되어 농락당하면 얼마나 불행한 인생입니까?
청탁을 해주겠다는 약속도 하지 말고 그런 말에 속지도 마십시오. 약속을 내세워 금품을 취하는 것도 아주 나쁜 것이지만 자기가 청탁하면 뭔가를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약속하고 사람들에게 헛된 기대를 가지게 하는 것도 나쁜 것입니다. 그 청탁이 이뤄지면 자기 공이고 “아니면 말고!”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결과를 낳습니까? 더 나아가 누군가를 잘 안다고 하면서 청탁해주겠다고 접근하는 사람은 믿지 마십시오. 실제로 잘 알아도 그 안다는 사실을 이용해 불의한 청탁을 해주겠다는 것은 그 아는 사람을 사칭하는 것입니다.
그 안다고 하는 사람이 그렇게 자기를 사칭하고 다니는 것을 알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더 나아가 청탁하는 사람과 본의 아니게 엮이면 큰 피해를 입습니다. 그러므로 인맥을 과시하고 누구를 안다고 사칭하는 사람은 반드시 멀리하십시오. 그런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면 유명해지고 성공하는 것이 오히려 화를 키우는 셈이 됩니다. 그 사칭하는 사람이 몰래 자기 이름을 팔아서 언젠가는 큰일을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칭에 속지 마십시오. 잘 알지도 못하는데 잘 안다는 것도 사칭이지만 실제로 알아도 그 아는 것을 활용해 청탁하는 것도 사칭입니다. 진짜 친구는 친구관계를 청탁에 이용하지 않으려는 기본양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청탁하면 친구가 곤란해 할 것을 알기에 청탁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신자가 불신자에게 청탁하면 불신자에게 고개를 속이는 셈이고 결국 하나님도 고개를 숙이게 하는 셈이기에 성도는 불의한 청탁은 물론 불결한 청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사죄 청탁을 삼가십시오 >
어느 날, 누가 자신 있게 말합니다. “내가 A사의 인사과장과 친하니까 잘 말해서 취직시켜 줄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매우 주의하십시오. 얼마나 무서운 얘기입니까? 정말로 친하다면 그렇게 하면 더 안 됩니다. 친하면 더 보호해주어야 하기에 누군가 그런 청탁을 해도 친구를 위하는 사람은 그 청탁을 거절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자기가 먼저 나서서 취직시켜 주겠다고 하면 그것이 바로 사칭입니다. 진짜 친구라면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 청탁은 이뤄져도 문제입니다. 그 사실을 나중에 A사의 사장이 알면 그 인사과장은 바로 해임입니다. 사장도 안 하는 일을 불의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청탁은 청탁받은 사람의 목을 치는 위태한 행위입니다. 물론 지혜로운 사람은 친구의 청탁도 단호히 거절했겠지만 그렇게 거절해도 청탁에 연루된 것만으로도 도덕성에 큰 흠집이 납니다. 결국 청탁은 친구에게는 더욱 해서는 안 되는 행위입니다.
친구라면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어떻게 친구입니까? 결국 “내가 어떤 실력자와 친하니까 청탁해주겠다.”고 하는 사람의 말은 99%도 아닌 100% 거짓말입니다. 진짜 그 실력자와 잘 알아도 그저 ‘계산상으로 아는 사이’이지 ‘친구처럼 친한 사이’는 아닙니다. 친구란 ‘친구관계를 이용해 불의한 청탁을 하지 않는 사람’이고 더 나아가 ‘친구이기에 불의한 청탁을 할 때 들어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결국 청탁은 참된 친구라면 하지도 않겠지만 만약 한다면 친구의 사회적 목숨을 위태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인맥을 과시하며 청탁하는 사람을 멀리하십시오. 그런 사람과 가까이하면 언젠가는 화약고가 터지면서 같이 연루되어 큰 낭패를 당합니다. 진짜 인맥이 있으면 청탁하는 자가 수시로 접근하니까 귀찮아서 자기 인맥을 숨깁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치유를 과시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지 않습니다. 진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으면 자기 기도생활과 영성생활과 능력을 과시하지 않고 말합니다. “성도님! 사람을 바라보며 찾아다니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겸손한 회개기도를 앞세워 하나님께 직접 찾아가십시오.”
다른 부탁은 혹시 할지라도 불의한 사죄 청탁만은 힘써 삼가십시오. 억울하면 정당하게 법 절차를 거쳐 변호하면 됩니다. 성도는 혹시 죄에 연루되어도 예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은 힘써 보호해야 합니다. 그런 태도에 반해서 되지도 않을 청탁약속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시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 “믿는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다니?”라고 하면서 불신자들에게서 깎여질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속이 많이 상하실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십시오 >
사람이 구속되거나 중병에 걸리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약한 심령이 됩니다. 그때 믿음과 침착함을 잃으면 지푸라기를 잡게 됩니다. 그때는 어느새 냄새를 맡고 사람과 하나님에게 청탁해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사람이 사방에서 접근합니다. 그들의 청탁약속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은 이단교주입니다. 사람이 다급해질 때 이단교주들은 헛된 약속을 내세워 지푸라기를 던집니다. 그때 썩은 동아줄과 같은 지푸라기를 잡으려고 발버둥 치면 문제는 더욱 커지고 영혼은 이단교주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자녀의 대학입시를 앞두고 불안해서 뭔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때 이단교주는 <입시특별기도회>를 열어 물질을 심으면 점수가 높게 나올 것처럼 기대하게 만듭니다. 자녀 입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입시특별기도회라는 기복적인 기도회는 폐단과 부작용이 많습니다. 그런 기도회에 참석했다가 시험점수가 못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속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속인 것이 아니라 입시특별기도회를 열어서 정성과 물질을 바치면 점수가 높게 나올 것처럼 기대하게 한 것부터 잘못한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신뢰를 찾으려면 입시특별기도회 같은 기도회를 주의해야 합니다. 80% 이상을 실족시킬 가능성이 큰 그런 기도회를 왜 합니까? 그런 기도회에 참여할 때는 원래 실력보다 더 점수가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도하기에 원래 실력대로만 점수가 나와도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지 않은 느낌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늘 더 높은 점수를 기대합니다. 기도하면 그 기대치가 올라갑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실력대로만 점수가 나와도 못 봤다는 느낌을 받기에 입시에서 자기 실력보다 더 잘 보았다고 느끼는 경우는 20%도 안 됩니다.
입시특별기도회를 통해 좋은 점수를 기대했다가 점수가 기대만큼 못 나오거나 자기 실력대로만 점수가 나와도 “왜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는가?”라고 실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입시특별기도회에 참석한 후 믿음과 기도에 대해 실망하고 하나님에 대한 무의식적인 상처와 불신이 생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결국 기복주의가 투영된 입시특별기도회는 부모도 실망하고 자녀도 실망하는 실망기도회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녀 입시를 위해 기도할 때는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자녀가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그러나 입시에 목을 매지 않고 하나님께 목을 매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실망하지 말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을 자녀가 알면 자녀는 부모의 믿음을 깊이 신뢰하고 존경하면서 든든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 부모가 믿는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높여지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복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깎지 않도록 힘쓰십시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이단교주나 이단교인의 제일 특징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교주가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복을 약속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지만 교인이 헛된 청탁약속을 하고 덕이 안 되는 언행을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면서 “오직 예수!”라고 하는 것도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입술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많이 언급한다고 해서 믿음과 영성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입술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해! 오직 예수야! 예수님 안에는 해답이 있어!”라고 끊임없이 말하면서 잘못된 언행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한다면 그는 영성이 깊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입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많이 언급하니까 죄가 아닌 줄 알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말만 있고 행동이 없는 모습을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즉 죄라는 뜻입니다.
자세히 보면 영성이 있다고 과시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컬을 때가 많습니다. 성숙한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성도는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기에 함부로 “오직 예수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라고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입으로 수없이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라고 멋지게 선포한 후 법정에 서버리면 예수님의 이름이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훼손됩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자기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깎일까봐 하나님의 이름을 결코 가볍게 언급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과 친밀하지도 않으면서 능력을 과시해 사람과 돈을 끌어 모으려는 이단교주는 하나님의 이름 훼손 여부는 관심도 없고 오직 자기 뜻만 이루면 되기에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란 말을 쉽게 내뱉으며 예수님의 이름을 사칭하고 예언을 사칭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자기 영화와 헛된 권세를 추구하는 사람은 대개 유력자의 이름을 사칭합니다. 그런 사칭이 고대에도 많았기에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성도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오직 예수야!”라고 동네방네 외치고 다닌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그런 부끄러운 언행을 보이는 사람은 제발 “예수!”라는 말을 덜 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듭니다. 가장 복된 모습은 자신이 성도임을 겸손하게 밝히면서 성도답게 사는 것입니다. 믿음을 너무 과시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과시한 만큼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깎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늘 하나님의 이름과 성도라는 이름을 소중하게 지키는데 최선을 다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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