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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7:1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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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신윤식 목사 |
참고 : | 은석교회(대구시 국우동) http://www.onlycross.net/ |
제목 : (31강) 예수로 인한 실족
본문 : 눅7:18-23
2012-10-07
<본문>
18 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설교>
신자는 죄를 물리친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모인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 때문에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교회를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예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교회 나오는 것을 그만두기도 합니다. 이것을 대개는 실족이라고 말합니다.
23절에서도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바로 복과 상관없는 저주 아래 있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떻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즉 예수님 때문에 실족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지금 시대에서는 예수님을 직접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직접 대화할 수도 없고 예수님의 말씀을 실제로 듣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 때문에 실족하는 일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예수님 때문에 실족하는 일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면 23절에서 말하는 실족은 예수를 잘 믿다가 무슨 일로 인해서 실망을 하고 기독교를 떠나는 의미의 실족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 요한의 질문
예수님이 말씀한 실족의 의미는 옥에 갇혀 있던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을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 앞에 보면 예수님은 다 죽게 된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시고,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신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 일에 대한 소문은 당연히 온 유대와 사방에 퍼지게 됩니다. 그리고 요한의 제자들이 그 모든 일을 당시 옥에 갇혀 있던 세례 요한에게 알려줍니다. 예수님에 대한 말을 들은 요한은 제자 중 둘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19절)라는 질문을 하게 합니다. 질문의 의도는 ‘선지자가 오실 것이라고 예언한 메시야가 당신이 맞습니까? 혹시 당신이 메시야가 아니라면 우리가 다른 분이 메시아로 오실 것을 기다려야 합니까?’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에 대해 듣고 ‘예수님이 혹시 메시아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고 그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자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일을 이미 경험을 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줄 때 예수님이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고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음성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사실들이 요한복음에는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요한이 자신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고 외쳤는데 이것만으로도 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거하려고 하기보다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족을 하게 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마태도 동일합니다. 마태도 11장에서 누가와 동일한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예수님을 전하고 있고, 누가는 데오빌로라는 이방인을 대상으로 예수님을 전하고 있다는 차이를 생각해 보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하는 일을 조금은 다르게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기를 대망했던 사람들이지만 이방인은 메시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셔서 자신들이 소원하고 기대하는 구원의 세계를 실현해주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구원의 세계는 세리나 창기와 같은 죄인들과는 상관이 없는 세계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성실히 지키고 메시아를 기다리는 자신들에게 이루어질 세계일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인들을 가까이 하면서 그들의 모든 병을 고쳐주시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요한이 예수님께 ‘당신이 메시아가 맞는가?’라는 의미의 질문을 한 것을 보면 마태는 율법적 사고에 매달려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하고 결국 배척하게 되는 유대인을 두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하는 자들로 언급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이방인은 유대인들처럼 메시아를 대망하지도 않았고, 유대인의 전통인 율법과도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율법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예수님을 배척하는 일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방인의 경우에는 무엇 때문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하는 일이 있는 것일까요? 이것이 누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질문을 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내가 메시아다’라는 직접적인 답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침 그 때에 예수님이 질병과 고통과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쳐주시고 또 많은 맹인들을 보게 하셨는데 요한의 제자들이 보고 들은 그 일을 요한에게 알리라고 하십니다.
즉 그 일들이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일이 누군가에게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게 하는 증거가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예수에 대해 실망하고 떠나게 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은 하나같이 인간이 행할 수 없는 기적입니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일들을 예수님이 행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예수를 더욱 더 강하게 추종하고 따를 것이 분명한데 무엇 때문에 실망하고 떠난다는 것입니까?
이방인이 메시아를 모르고 예수가 누구신가를 모른다고 해도 질병과 악귀 들린 자를 고치고 맹인을 보게 하고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리는 예수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왜 실망을 한다는 것입니까?
◉ 실족하는 자 ◉
여러분께는 예수님으로 인한 실족이 없습니까? 다시 말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일에 대해 의문을 가지거나 실망한 적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없다’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그리고 믿음에 대해 얼마든지 실망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로 말미암아 실족하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먼서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그래야 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를 복이 있다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질병과 고통과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쳐주시고 또 많은 맹인들을 보게 하신 것은 단지 인간의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신 것을 보여주신 것을 아니라 눅 4:18,19절의 말씀대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시는 일들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주의 은혜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일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적을 경험해 보기를 원합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도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 낫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맹인이 눈을 뜨는 일들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예수님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임을 믿고 있긴 하지만 그것만이 믿음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즉 나를 천국 보내주는 구원자이신 예수님과 함께 나의 일을 도우시는 또 다른 예수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오직 구원자 예수님에게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만약 여러분의 삶에 고통과 아픔의 일들이 겹겹이 일어난다면 예수님을 믿는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 것 같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내게 함께 한다면 나라는 인간이, 그리고 나의 삶이 달라져야 할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분명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도 달라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삶도 예수를 믿는 내 마음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한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고통과 아픔의 일들을 겪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모든 흥미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몸을 이끌고 교회로 나오는 것이 예수로 말미암아 실족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금의 교회는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말로 교회를 나오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결과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복입니다. 하지만 현대인은 믿음과 복을 분리해서 생각합니다. 복을 자신의 믿음에 따라오는 결과로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복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뭐가 문제겠습니까? 하지만 현대인에게 복은 팔복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붙들려 있는 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들의 수능을 위해서 매일 새벽기도를 하고 많은 액수의 감사헌금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수능에 실패했을 때 다가오는 실망, 그리고 느껴지는 믿음의 무능력, 이 모든 것이 예수로 말미암은 실족인 것입니다.
◉ 실족하지 않는 자 ◉
그러면 예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깨닫고 예수님이 이루신 일에 마음을 두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일들이 지금 여러분에게 그대로 역사되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앞서 말한 대로 예수를 믿는데도 나도 나의 삶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믿지 않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은 모두 생명의 신비를 나타내며 전하고 있습니다. 질병에 걸리고 악귀로 인해 고통을 겪고 맹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인생은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갈 뿐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고침을 받았다는 것은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구출 된 것을 의미합니다. 단지 육신이 고침을 받은 것이 전부가 아니라 절망에서 새로운 희망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게 하시는 구원의 경륜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신자는 자신의 육신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죄의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구출하시고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 예수님의 구속에 마음을 두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것이고, 이런 신자를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음으로 무엇을 원하십니까? 병이 낫는 것입니까? 아니면 부자가 되고 자식이 성공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그러한 것은 이방인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원한다면 결국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헛된 망상이 실족으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습니까? 예수님이 이루신 은혜의 나라를 향한 소망 때문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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