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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5:2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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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5장 27절~32절: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은 십계명 중에 제 7계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는 도중에 하나님께서 인도자 모세를 불러 시내산에서 이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간음의 일반적인 뜻은 부부가 아닌 남녀가 성관계를 갖는 것을 말함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 속에는 신앙의 영적인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부부의 제도는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계명을 주시기 이전에 에덴동산에서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인으로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 ‘부부라, 부부는 한 몸이다’ 라는 뜻을 알게 하기 위하여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 곧, 아내를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합니다. 이 강한 명령의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주권적이며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궁극적인 뜻과, 부부가 그 뜻을 알고 잘 지켜 나가면 역시 궁극적인 존영의 축복이 있다는 것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① 우리가 갈 천국은 지극히 거룩한 곳이요.
② 우리가 갈 천국은 지극히 거룩한 아가페 사랑으로서 인격적 애정적 수수관계의 곳이요.
③ 부부는 깨끗하고 거룩한 그릇으로 깨끗한 자녀의 생산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구원역사가 역사 대대로 세상 마지막 그 날까지 가게 하시는 목적이 있고.
④ 간음으로 그릇들이 더러우면 그 죄로 인해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⑤ 간음으로 죄를 지은 자는 성화구원은 없고 하나님과 끊어지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⑥ 영원에 해당되는 자체적인 심판에 영원히 손해가 많습니다.
어느 한 쪽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둘이 헤어져 또 다른 사람과 시집 장가를 간다는 것은 간음이요, 또 제 삼자가 끼어들어 이혼케 하여 또 다른 곳으로 시집 장가가게 하는 것도 안 될 일이요, 음행한 연고 없이는 이혼은 안 될 일입니다.
시집 장가가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지 못하고 붙었다 헤어졌다, 또 다른 사람과 또 그렇게 하는 이것은 사람임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이유야 어쨌든 자기가 뿌린 것만큼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도덕성을 가진 인간은 자기가 뿌린 것은 자기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짐승들은 도덕성이 없기 때문에, 궁극적 구원이 없기 때문에 아무렇게 살아도 심판성이 없습니다.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
부부에게만 말한 것이 아니라 모든 남녀에게 다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마음에 품은 음욕은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은밀한 악한 마음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음흉한 이 악한 음욕을 주님은 다 아시고 말씀하심인데 그 마음을 품은 것부터가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하신 말씀을 가만히 깨달으면
① 행동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방지책이 들어 있고.
② ‘그 마음을 품은 것이 죄로구나’ 알게 해 회개케 하고.
③ 거룩 쪽으로 마음을 갖게 하고.
④ 인간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진리지식밖에 없습니다. 이방인들의 부부생활에는 일반적인 건전한 발전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떠난 음욕은 구원도 아니고 도덕성도 아니고, 사회적으로도 도덕성이 무너집니다. 다윗의 경우 그 후유증이 어떠했던가?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한 것인데 예수님의 머리에 여자가 향유를 붓고 입을 맞추고 눈물을 발등에 흘리고 여자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문지를 때 예수님의 마음이 이상스럽게 움직이지 않았을까? 주님은 어떤 상황이던 오직 우리의 구원염려입니다. 자나 깨나! 세상으로 눈이 좇아가서 그걸 붙잡으려고 거기서 멈추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음욕이 파고 들어올 새가 없고 허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잘 멈추어져서 마음이 동요되기 시작하는지 그만 이상스러운 생각이 머리통 속에 꼭 차게 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어떻게 남자들만 음욕을 품는 것처럼 말씀을 하실까? 여자들도 음욕을 품는데 그것을 모르실까? 여자들도 하는 말들이 결혼의 좋은 대상자를 만나려면 결혼을 하기 전에 많은 남자들을 만나 보아야 한다는데 여자들의 마음을 모르시고 남자들만 음욕을 품는 것처럼 말씀을 하셨을까?
① 예수님이 여자가 아니라서 여자의 마음을 모른다 그 말인가? 창조의 주님이!
② 여자들은 음욕을 마음대로 품어도 괜찮다 그 말인지?
③ 여자는 수동적이고 남자는 능동적이라서 그런가?
④ 간음죄는 항상 남자부터 문제가 되기 때문인가? 꼭 남자들이 음욕을 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말씀을 하십니다.
⑤ 예수도 남자요, 예수님 앞에는 다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를 놓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가?
⑥ 여자들이 제자였다면 여자들보고도 그 말씀을 하셨을까? ‘남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라고!
남자인 제자들을 향해서 하신 이 말씀에는 특별한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 부부의 원칙
우리가 창세기 2장을 보면 남자를 지어 놓으시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지키고 다스리라고 했고, 여자는 이 일을 돕는 배필로 지었습니다. 1장에서는 남자 여자에게 모두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타락 후에는 여자의 소원은 남자에게 두었습니다.
어쨌든 성경 신앙사상으로 보는 남자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 진리로서 땅에 충만해지고 정복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이 일을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의 소원도 역시 충만해지고 정복하는 것이 잘 되는 소원입니다. 그런고로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이 같고 소원 목적도 같습니다.
남자가 이 일을 안 하게 되면 여자도 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명령수행이 안 됩니다. 남자가 딴 여자를 보고 음욕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주님의 뜻이라고 도와주겠습니까? 그러나 남자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때는 여자는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는 것이 여자의 본분이고 여자에게도 영광이 옵니다.
● 신앙사상의 원칙
주님은 신랑이요 신부는 교회로서 비유가 돼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명령대로 구원에 속한 일을 합니다. 즉 교회가 주님의 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수종을 들면 사랑을 받고 존영자가 되지만 교회가 세상에다 마음을 두게 되면 음녀입니다.
주님은 절대적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마음이 건너가서 그것을 붙잡고 기쁨을 삼고 마음이 빼앗기지 않았다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오직 교회만이 당신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에다가 음욕을 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음욕은 성도들이
① 사랑의 대상을 바꾸는 것.
② 세상의 것으로부터 기쁨을 얻겠다는 것입니다.
신앙 면으로 보면 오늘날 교회들이 세상과 벗이 되어 음행을 하고 있는데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말세의 현상은 교회들이 세상과 짝을 지은 행음인 것입니다.
5장 29절: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만일 네 오른 눈이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눈은 초점을 잘 맞추어 보라고 높은 곳에다 두 개나 박아 놓았습니다. 한 눈 가지고 한쪽만 보지 말고 이쪽 저쪽 양면을 잘 살피고, 위아래로도 잘 살피고, 앞으로도 잘 살피고, 큰 것과 작은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강한 것과 약한 것, 길이와 넓이 높이와 깊이, 임시의 것과 영원한 것 등을 잘 보고 가치 판단 평가를 잘 내리고 나중에 뒷말을 하지 말라고 눈알이 굴려지게 해서 두 개나 박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왼 눈 따로, 오른 눈 따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으로 범죄를 많이 합니다. 실족은 눈이 눈의 역할을 잘못하여 실수를 한 것입니다. 바르게 가다가, 바르게 보다가, 바르게 생각하다가 그만 실수를 하여 죄를 지은 것입니다.
눈이 있으니 보는 것이요, 볼 수밖에 없는 것인데 문제는 시감성입니다. 비록 육신의 눈으로 보았지만 영적 시감성으로 느끼느냐, 육적인 시감성으로 느끼느냐? 육적인 시감성으로 보면 하나님 앞에서 그만 죄요, 악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특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다’ 라는 말끝에 지금 이 말이 나왔습니다. 예쁜 여자를 보았을 때 왼쪽 눈을 감고 있었고 오른쪽 눈만 보았느냐?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을 가지고 지나가는 여자한테 윙크를 한 것인가? 다윗이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으로만 보았던 모양이지? 오른쪽 눈을 감고 왼쪽 눈으로만 보았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렇지? 여자를 볼 때 왼눈은 감고 오른쪽 눈으로만 보면 큰일 난다? 그리고 범죄해서 오른쪽 눈을 뽑아버리고 나면 나중에 왼쪽 눈은 범죄 안 하나? 그렇다면 두 눈이 없는 소경은 마음속으로 죄를 안 짓나? 오른쪽 눈을 뽑아도 왼눈이 또 범죄케 할 터이니 그러면 왼쪽 눈도 뽑아 버린다면 마음으로 죄를 안 짓겠느냐?
이것 참 큰일 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다 뽑아도 죄를 짓지 말라는 보장이 없을 테니 눈 뽑히는 것도 고통이겠지만 범죄 한 눈 때문에 온 몸이 지옥에 던짐을 받을 터이니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오른 눈이 범죄케 할 때 당장 뽑아 버려야지 스스로 용서하면서 안 뽑거나, 또는 ‘내일 뽑아야지, 모레 뽑아야지’ 하다가 못 뽑고 온 몸이 지옥 맛을 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차라리 오른 눈을 뽑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낫지! 확실히 판단 평가적으로 그게 낫지 실족한 눈을 안 뽑고 있다가 계속 범죄 하여 온 몸이 고통스런 지옥 맛을 보는 것이 낫겠느냐?
그런데 왜 오른 눈만 써놨을까?
우리에게는 크게 말하면 육의 눈과 영의 눈이 있습니다.
① 육의 눈 - 이 세상 만물을 보는 눈. 눈으로 보고 좋아서 따라가는 눈.
② 영의 눈 - 신령천국을 느낌으로 보고 좋아서 따라가는 눈.
신령한 것, 영적인 것을 아는 눈과, 물질을 보고 따라가는 눈과 어느 눈이 자기의 주격적인 눈인가?
우리 인간은 희로애락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미녀들을 볼 때 ‘참 아름답다, 참 예쁘구나, 하지만 저것은 임시성이지. 아무리 예뻐 보았댔자 뼈다귀에 가죽을 입혀 물하고 피하고 버물여(주-섞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영원히 가는 아름다움이 있다’ 하고 그 생각 거기서 멈춰야지 더 이상 넘어가면 안 되지!
사람이 육모가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보여도 육으로, 육 위주로 살거나 도덕성이 문란하면 하나님 앞에는 모두 죄가 됩니다.
‘오른 눈이 너를 실족케 하면’
오른 눈 왼 눈, 오른 손 왼 손, 오른쪽 왼쪽. 성경에서 옳고 힘있고 강한 쪽을 표현할 때 ‘오른쪽이다’ 하는 그런 표현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오른 눈은 천국을 힘 있게 보는 눈, 무게 있게 보는 눈, 귀하게 보는 눈인데 중점적으로 보는 눈입니다.
이 눈이 실족케 되었으니 세상과 세상 것을 힘 있게 보고, 무게 있게 보고, 귀하게 보고, 중점적으로 보는 눈이 되어 버렸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나그네가 이룰 구원은 이루지 않고 세상과 세상 것을 왜 중점적으로 보고, 그것을 잡고 행복을 찾기 위해서 가느냐? 색깔과 외모, 외형만 보고, 이 임시적인 것을 붙잡고 누릴 목적으로 살려고 하는 그 마음 때문인데 이것은 음욕입니다. 사람이던 세상이던 그 쪽을 보는 눈은 음욕이고 간음입니다.
뽑아 버려라! 안 뽑으면 지옥 맛을 단단히 보게 된다. 그 쪽으로 보는 그 눈은 뽑아라. 차라리 한 쪽으로 보는 그 한 쪽 눈만 가지고 천국의 것, 신령한 것, 영의 것이 가치 평가적으로 귀한 줄을 알고 소원 목적적으로 그렇게 살다가 온 몸이 성화구원을 얻어서 한 쪽 눈을 잃고도 온 몸이 고스란히 그대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눈으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듯이 세상 것을 보고 쾌락과 향락을 누리며 그 목적적으로 살려는 것은 음욕이요 간음이니 그 쪽을 보는 눈은 아무리 보기 좋고 아름다워도 지옥 맛을 볼 것이니 뽑아버리라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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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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