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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시95: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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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찬송의 기쁨과 승리
본문: 시95:1- 6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9.11 테러로 쌍둥이 빌딩이 붕괴된 다음에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찾는 작업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비슷한 구조 작업을 하였습니다. 구조 대원들이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찾을 때 제일 먼저 소리를 찾습니다. 잔해 속에 만약에 생존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에게 의식이 있다면 비록 다리가 부러졌을지라도, 몸이 상했을지라도 뭔가 소리를 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잔해 속에서 “똑 똑똑 똑똑”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 잔해 속에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내 환경이 지금 건물이 무너져서 내가 그 잔해 사이에 깔려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누군가가 소리를 낼 수만 있다면, 기도하는 소리, 하나님께 부르짖는 소리가 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거기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소리를 냈습니다. 사실 기도할 기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찬양할 기분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일수록 기분에 좌우되지 않고 믿음으로, 내가 기분이 어떠하던지, 우울하든지 괴롭든지간에 더 힘써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분위기라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야지 내 기분에 좌우되서는 안됩니다. 우울하더라도 그럴 때일수록 더 박수 치고 기뻐하고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비록 무너진 건물 속에 있는 우리의 삶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구조 대원들은 소리를 찾아서 소리가 있는 곳부터 파기 시작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리를 내는 사람, 누군가가 부르짖는 사람부터 하나님께서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그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됩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시33:1)
6.25 사변으로 폐허가 된 서울이 유엔군 참전으로 다시 탈환하자 피난갔던 시민들이 돌아왔습니다. 어떤 사업가가 돌아와보니 그가 살던 가옥은 멀쩡하였으나 공장이나 시설이 모두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도무지 복구할 엄두도 나지를 않았습니다. 얼마나 피땀을 흘려가며 닦아 놓은 사업이었던가? 설사 사력을 다하여 복구를 한다해도 전쟁 중이라 언제 또다시 그런 참변이 있을지 모르는 형편이라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오직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밤 투신자살을 하려고 한강으로 나갔습니다. 투신할 곳을 찾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상히 여겨 찾아가 보니 비닐로 비바람을 가린 움막에서 거지가족이 돼지죽 같은 것을 앞에 놓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이상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 까닭을 물은 즉 그들은 예수믿는 사람으로 많은 생명이 죽어갔는데도 그들의 생명을 지켜 주시고 그날 저녁도 굶지 않게 먹을 것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큰 감동을 받은 그는 거지 가족에게 그의 바깥채가 비었으니 그곳에 와서 살면서 매일 찬송만 불러주면 먹고 살 것을 대주겠노라고 했습니다. 결국 거지가족은 그 사업가집으로 옮겨 들어가 찬송을 불렀으며 그 사업가의 가정도 예수를 믿게 되었고, 사업도 번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찬송을 많이 부르는 가정의 자녀들 중 잘못된 자녀가 없고, 찬송을 많이 부르는 교회 중 뜨겁지 않은 교회가 없습니다. 한국교회에 주일학교 학생 수가 줄어간다고 합니다. 만약 크리스천들이 더 많이 찬송을 불렀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찬송 중에 함께 계시며 우리가 찬송할 때 주님은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입으로 쉬지 않고 찬송함으로 승리의 삶을 살며 주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찬양은 모든 헌신 가운데 최고이며, 믿음의 진정한 증거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시69:30)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103:1, 2)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시147:1)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150:6) 하였습니다.
노래방의 열풍을 보면서 언뜻 뇌리를 스치는 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찬송방'입니다. 자신의 음성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목청껏 부를 찬송방. 하늘을 감동케 할 만큼 열창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찬송방, 가슴속 찬송이 터져 나오도록 부를 찬송방을 만듭시다. 병들었던 영국 사회를 변화시켰던 존 웨슬리 형제는 일찍이 찬송의 능력을 소중히 여겼으며, 찬송하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기운차게 찬송하라. 맥빠진 사람처럼, 혹은 조는 사람처럼 하지 말고 음성을 높여서 힘차게 찬송하라. 당신이 사탄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의 음성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당신의 음성을 듣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도 말라." 생명의 찬양을! 병든 영국 사회를 건져낸 웨슬리의 찬양의 힘이 다시금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환난과 핍박을 견뎌낸 우리 선배 신앙인들의 승리의 찬송이 또다시 힘차게 불러져야 합니다. 이 시대의 어둠에 생명을 불어넣을 능력의 찬양으로 이 땅의 절망을 구원하라! 세속 음악들의 근본 사상이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질서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이런 음악이 번져나가다 보면 찬송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와 더불어 온 천하에 있는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즉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만을 찬양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술은 찬양을 하는데 쓰여져야 하며,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거역하고 입술을 불의의 도구로 사용한다고 해보십시오. 우리의 육신과 영혼은 어두움과 탄식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무디 목사님이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면서 전도 집회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집회에 한 소녀가 참석했는데, 이 소녀에게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을지, 자기는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소녀의 마음은 괴로웠습니다. 집회 마지막 날, 무디 목사님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 대해 설교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설교가 채 끝나지 않았는데, 소녀가 정면을 향해 달려 나오며 외쳤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부족한 모습 이대로 하나님은 받아 주시지요?”
달려오는 소녀를 안으면서 무디 목사님은 “돌아온 탕자를 아버지께서 그대로 받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매를 받으시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소녀는 그날 하나님이 자기를 받으시고 죄를 용서하셨다는 해방감에 눈물을 흘리며 찬양과 감격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찬양대의 에리사 해밀턴은 붓을 들어 작사를 시작했습니다.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하시사 날 받아 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 주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 다시 부르신 목적, 구원하신 목적도 우리가 그분을 찬송하게 하시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입술로, 몸으로, 악기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찬송가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찬송가 617장)
(1)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 맘과 정성 다하여
놀라우신 주님의 크신 능력 찬양하리라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 맘과 정성 다하여
주안에서 언제나 기뻐하리라 할렐루야
주안에서 언제나 기뻐하리라 할렐루야
(2) 주님을 경배합니다 내 맘과 정성 다하여
놀라우신 주님의 크신 능력 경배합니다
주님을 경배합니다 내 맘과 정성 다하여
주안에서 언제나 사랑하리라 할렐루야
주안에서 언제나 사랑하리라 할렐루야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송가 621장)
1)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온 맘과 정성 다하여 주 찬양 하라
2) 경배하라 내 영혼아 경배하라 내 영혼아
온 맘과 정성 다하여 주경배 하라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이며,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입니다. 인간적인 설득과 눈물로 호소하는 일 등 다른 모든 것들은 결과를 기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찬양할 때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응답하십니다. 그렇다면 찬송은 왜 항상 성공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찬송할 때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찬송은 믿음을 나타내는 언어이고, 믿음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병들었을 때 주님을 찬양하며 말하십시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없었도다",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열 번씩 이야기한다고 합시다. 여러분의 얼굴은 미소를 머금을 것입니다. 미소를 띠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환경이 변화할 것입니다. 주님을 많이 찬양하는 일은 당신을 치유합니다. 캐나다에서 여러 해 동안 유능한 목회자로 사역한 존 루키스 경이 있습니다. 그분은 구십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위해서 점점 더 활력 있는 삶을 보내고 계십니다. 나는 언젠가 루카스 형제에게 그 나이에도 그토록 활력 있고 힘찬 삶을 보낼 수 있는 비결이라도 혹 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이토록 좋은 건강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내가 주님을 항상 찬양하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주님을 찬송하는 것이 내가 주님으로부터 이렇게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는 비결입니다." 루카스 목사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주님을 찬미하십시오. 그 분은 매순간 우리를 축복하여 주십니다.(시146:2)
* 기도: 찬양가운데 거하시는 주님. 저희가 어떤 삶의 자리에 있든지 주님을 항상 찬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우리가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능히 역사하시는 주님을 항상 찬송하게 하소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수렁에서 저를 건져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것같이 지루하고 힘겨운 일상에서도 날마다 제게 새롭게 다가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새 마음으로 송축하게 하소서. 삶의 근원이요, 기쁨이 되는 찬양이 끝없이 이어지게 하소서. 영원히 찬양받으실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한태완 목사
* 갈릴리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daum.net/bigjoy)
교회에서 찬송소리가 멎는 순간부터는 인간의 소리가 높아질 것이요, 인간의 소리가 높아진 교회치고 그 잡음으로 시끄러워지지 않은 교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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