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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38-48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여기 악한 자들은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이런 악한 자들을 대적지 말라는 것을 보면 이것도 기독자들이 당하는 하나의 고난이기도 합니다.

 

악한 자들을 대적하면 똑 같이 악한 자가 된다. 악한 자와 수준이 같아진다.

얻어지는 것이 없다. 깨닫는 것이 무엇이 있겠으며 득 될 것이 없다.

사단 마귀에게 승리를 안겨주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악한 자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서 도리어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능력이 없으신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능력이 없어서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실천해야 합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고 했으니까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 버려야지!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오른뺨을 칠 때에 왼뺨까지 돌려댄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설령 내가 잘못했더라도 뺨을 한 대만 맞아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데 아무 잘못도 없는데 오른뺨을 때릴 때 왼뺨까지 돌려댄다고 하는 것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는 일이겠느냐? 자기 속을 빼 놓은 사람이겠지? 아니면 그야말로 마음이 한없이 넓거나, 아니면 원수를 삼지 않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사랑이 풍부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뭔가 특수한 사람이거나.

 

예수님께서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운 채 얼굴에 침을 뱉고 치는 자들을 어떻게 무슨 마음을 가지고 이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진리성도의 얼굴은 복음의 얼굴인데, 복음의 얼굴은 육에 대한 자존심은 완전히 죽어야 되고, 반면에 복음의 자존심 얼굴은 세워야 된다는 말입니다.

 

또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 뺨까지 돌려대라는 말을 다른 각도로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죄 없는 성도의 뺨을 치는 것은 마귀 짓을 하는 것이니 곧, 마귀에게 이용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를 깨닫게 해 주려고 누가 보냈느냐? 하나님이 그를 보냈습니다. 그러니 날 깨닫게 해 주고 그는 심판을 받겠구나하고 생각하니 그가 불쌍하게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를 위하여 기도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입니다.

 

그도 앞으로 구원 얻을 믿음의 내 형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를 위하여 기도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입니다

 

원수는 하나님께 맡겨라.

성도에게 사랑할 권리는 주었습니다. 그러나 육의 사람에 대해 미워할 권리는 주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위해서 온 것이라면, 진리 때문에 맞는 것이라면 나의 자존심을 세울 필요가 뭐가 있겠느냐?

 

나의 죄 때문에 온 것이라면 맞아도 싸지 나의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는 없지 않는가!

 

고난당할 각오를 할 것.

급한 성질을 고치고 주님 성질을 닮을 것.

 

54042: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송사 또는 고소는 재판을 하자고 하는 법적인 용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보아 속옷은 성도의 옷입니다.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한다

 

세상이 생긴 이후 이런 송사도 있을까? 이런 괴상망측하고 추잡한 송사도 있을까? 글자 그대로 보면 그런 고소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재판을 해 줄 판사도 없거니와 이런 것을 가지고 고소를 당할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성도가 남의 속옷을 훔쳐서 입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런데 성도가 입은 속옷이 보통 옷이 아닌 모양입니다. 금은보석을 박았던지, 아니면 그 옷만 입으면 천국 신령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옷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탐이 나서 뺏으려고 하는 걸 보니까!

 

고소자가 생각하기를 예수 믿는 저것들은 오른뺨을 때려도 왼뺨까지 돌려대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니 옳지, 속옷을 한 번 벗겨 봐야지했는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성도는 속옷을 최고로 깨끗한 것을 입어야지 남의 눈에 안 보인다고 더러운 속옷을 입으면 마귀가 웃습니다. 자기 속옷과 똑 같다고!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어라라고 주님이 명령을 했으니 다 벗겨주고 나면 나는 알몸동이가 됩니다. 많은 사람이 보는 법정 가운데서 인간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얼굴이 똥 되는 것은 말이 아닙니다. 죄가 없더라도 그렇습니다. 속옷 겉옷을 다 주고 나니 그렇게 될 수밖에!

 

성도의 속옷은 성도의 인격, 신분을 보호하고 있는 제일 깨끗하고 거룩한 진리생명의 말씀으로 이것이 인격화되어 있지 아니하면 그 신행(信行)이 안 나옵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받은 마음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의의 마음을 헐뜯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수치와 모욕을 주고 했는데도 그 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참으로 고상한 뜻이 담긴 신행(神行)입니다.

 

이 뜻을 모르고 자기는 액면 글자 그대로 한다고 속옷도 벗어주고, 겉옷도 벗어준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뜻이 되겠습니까? 보통 보면 속옷은 안 주고 겉옷만 벗어주는 사람은 간혹 있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말씀의 실천이 되겠습니까?

 

이방 불신자들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합니다. 기독교와 별 다른 게 없습니다. 특히 처녀가 자기는 예수님 말씀대로 실천한다고 하며 속옷 겉옷을 다 벗어주면 예수님의 말씀의 뜻대로 행한 것입니까? 옷이 없는 사람에게 옷 다 벗어주고 아닌 말로 얼어 죽었다면 순교지?

 

속을 비판하고 헐뜯으면 행동으로 나타내라! 인격의 수치를 각오할 것.

 

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억지로 가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의사를 꺾는 것이요, 인권을 박탈하는 것이요, 억압과 강압으로 내려 누르는 것입니다. 참말로 마음 상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알몸으로 간다고 생각해 보라! 이것이 아무나 될 일일까? 아예 처음에 뺨을 때릴 때부터 아무나 못 참을 일입니다.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거든 십리까지 가라

 

오리보다 더 여유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너희들이 암만 내 마음을 상하도록 하여 넘어뜨리려 해도 소용없다, 그 정도 가지고 그러느냐? 하나를 강요하면 둘로 끌고 가라. 5리는 들어주고 6리부터는 네가 인도하라

 

우리는 주님의 인격을 배워야 되겠는데 우리는 여유 있는 마음이 없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부활을 보았다면 십자가를 기꺼이 메었겠지.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달라는 자가 무엇을 구하던지 있어서 척척 줄 수 있고, 10명이던 100명이던 달라는 대로 줄 수 있다고 한다면 마음부터가 얼마나 흐뭇하고 풍족한 마음인가? 그런데 거절하지 말고 주라했지만 없으면 못 주지 뭐!

 

이 말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달라할지 모르니

늘 미리 미리 준비를 해야 되겠고.

늘 가득 충만히 채워놓으라는 말입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나에게 구했는데 늘 나에게 없다고 한다면 주님의 명령에 거스르게 산 사람이고, 그 사람이 구하는 것을 주지 못했으니 그 사람과 관계성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는 신비스러운 보화가 잔뜩 들어 있습니다. 대신관계, 대인관계, 대사관계, 대물관계 그 속에 수많은 이치들이 또 잔뜩 들어 있습니다. 이런 이치들을 구하는 이에게 주지 못한다면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질이 있으면 나누어 쓰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물며 물질보다 천 배, 만 배나 귀중한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지 못한다면 그와 영원히 단절입니다. ‘주는 자가 복되다하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더 주고 싶어서 하는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하는 이것을 자꾸 물질에다 적용시키면 이치에 안 맞는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물질을 무엇이던 달라는 자에게 어떻게 줄 수 있겠습니까? 만물 백화점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달라는 대로 거절하지 않고 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능의 능력으로 백화점을 만들어서 한없이 주시든지, 아니면 백화점을 만들려면 돈을 죽자 사자 벌어야 되고, 평생을 벌어도 될는지 모르지만 짧은 시간 내에 이루려면 부정을 하고 부도덕한 수단으로 해야 될 것이고.

 

어쨌든 부자가 되었다고 가정을 할 때 공짜로 달라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겠느냐? 거지는 날마다 와서 달라고 할 것이고, 그러면 그 감당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께서 물 붓듯이 해 주셔야 합니다. 자고 나면 가득 생겨 있고, 자고 일어나면 또 채워져 있고 해야 됩니다.

 

그런 만화 같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이치에도 안 맞는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아라했는데 일은 하기 싫고 달라고만 할 터이니 결국은 거지근성을 못 벗어나고 거지로 죽을 수밖에 없고 거지로 사람이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것, 신령한 것은 자기가 물질가난 자이던, 물질부요 자이던 상관없이 자기만 부지런하면 하나님의 것을 주는 자로 수가 있습니다. 영원히 복된 것을 줄 수가 있고, 영원히 복된 것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영원한 관계성이 이루어집니다. 영원한 부요자로 가게 됩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이 주고 싶어 하시는 축복권 안에 드는 자입니다.

 

이런 신령한 뜻이 들어 있는 말씀을 인간 물질구제 차원으로 끌어내려서 이방 종교인들이나 타락한 이방인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뭐 특별한 것도 아닌 것을 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특별한 기독교 복음인 것처럼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깨달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 불쌍한 자, 병 고쳐주고 떡 먹여주고 한 것 전부를 일반해석으로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왼쪽에 있는 자들을 해석해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고,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왜 쓰여졌는지 그 이유를 밝혀야 할 것입니다. 밝히면 바로 될 것이고, 못 밝힌다면 기독교복음의 운동이 아니고 일반운동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일반운동임을 알았다면 하나님께 바쳐진 성도들의 헌금으로 거룩한 생명운동, 천국복음운동을 하는데 써야지 하나님의 것을 일반 사회운동에다 쓰지를 말아야 할 것입니다. 목적이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헌금이 로마로 빠져나가서 쓰여진다면 어떻게 복음운동이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54348: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레위기 1918절에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은 없고 원수를 갚지 말라는 말은 있습니다. 신명기 236절에는 모압 왕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케 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원수를 미워하는 것으로 굳어졌는지도 모릅니다. 또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를 갚으라고 했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으라고 해서 갚은 일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때는 원수를 갚아라, 어떤 때는 갚지 말라 하셨으니 우리로서는 참 궁금한 일입니다.

 

원수도 여러 가지 뜻을 가진 원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국가적인 원수와 개인적인 원수가 있고, 이방인들이 보는 국가적인 원수와 개인적인 원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같은 민족인데 개인적인 원수를 갚으면 법이 살인죄로 잡아갑니다. 하지만 국가적인 원수를 죽인다면 오히려 잘 죽였다고 상을 주게 됩니다.

 

개인적인 원수는 11이지만 11을 벗어나면 원수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는 잘잘못이 없으니까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민족적인 국가적인 원수는 개인적이 아니라 전체적입니다. 전체적인 원수는 일반적으로 보면 지도자들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개인적인 원수는 행동을 가지고 따지나, 국가적 민족적 원수는 서로 근본이 다르다고 서로 해치고 싸우고 전쟁을 합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시대에 동족의 원수는 사랑하고, 이스라엘 국가적인 원수는 죽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족의 원수라도 재판의 공정성에서 역시 죽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원수를 죽이는 것도 볼 수 있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상대적인 면에서의 원수와 성분적인 면에서의 원수, 인간 편에서 보는 원수와 하나님 편에서 보는 원수. 원수가 많으니 무조건 다 몰아 붙여서 사랑할 수도 없고, 또 죽일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사실 신앙적인 면에서 본다면 같이 예수 믿는 형제들 속에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원수가 있고, 나의 속에도 있으니 말입니다.

 

먼저, 나의 이웃이 누구냐? 이웃이라! 지역적으로 보면 제일 가깝게 사는 사람들일 것이고, 신앙적으로 본다면 같은 성도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가 성도를 사랑치 못한 데서야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방인들도 저거들끼리(-자기들끼리)는 얼마든지 사랑을 하는데 성도가 성도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사랑치 않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성도라면 신앙 실력 면에서는 다를지라도 즉, 차이가 날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권(子權)이 같고, 천국에 들어가는 입국권(入國權)이 같습니다.

 

두 번째, 나의 이웃이 누구냐? 내가 현재 사는 지역 안에, 또는 어디를 가던 바로 나의 옆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이웃일 수 있습니다. 현재는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는 자인데 아직 믿는 자녀로서의 구속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 안 믿고 있는 이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전도의 방편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나의 전도의 방편으로 인해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있고, 믿기는 옛날부터 믿었지만 옳은 진리의 노선으로 다시 인도함을 받아 영생의 삶을 사는 이웃도 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이웃인지 이 세상에서나 신령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못 잊을 것입니다. 진리로 연관되어 놓으면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잊지를 못하시고 밤낮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무슨 급한 일이 일어날 때에는 이웃이 와서 돕기도 합니다.

 

단순히 핍박을 한다고 해서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몰라서 그렇지! 예수님 당시에 로마인들은 진리가 무엇인지 몰랐고, 예수도 몰랐습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종교지도자들도 진리이신 예수님을 몰랐으니 성경을 안 가진 이방인 그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원수를 갚는다고 하는 것은 무력으로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나쁘다고 공격만 할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진리이치를, 하나님의 옳음을 자꾸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주어 하나님의 것을 받게 하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어디에 있느냐? 우리의 원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 가까이 있습니다. 자타의 궁극적 구원을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이것이 내 속에 들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속에도 있지만 먼저 내 속의 것부터 발견하고 찾아야 합니다. 나를 영원히 넘어뜨리고, 나를 영원히 망하게 하고,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고 쪼그라뜨리고 망가지게 하는 것이 내 속에 얼마든지 들어 있습니다. 옛 사람의 주관성이 주격이 되어 신앙인척 진리인척 사랑인척 진실인척 거룩인 척 인간사랑으로 하나님의 진리사랑을 못 받게 하는 것이 성질적으로 많이 들어 있습니다. 사단 마귀가 그런 육적인 것을 가지고 사람을 넘어뜨리는 작전을 많이 씁니다.

 

성경에서 여러 가지 원수를 보여주고, 죽이는 것은 특별계시로서 우리 속에서 작용하는 원수를 다 보여주는 것이고, 그 원수를 죽이라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말씀을 왜 실천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그렇게 본을 보여 살으셨으니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고.

원수관을 바로 깨닫게 하여 나를 참 사람으로 만들어 주니 그래야 하고.

원수도 하나님의 선한 궁극적인 창조의 목적이 있으니 그래야 하고.

나로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편이 그에게 있으니 그래야 하고.

나의 영광스런 축복이 그에게 있으니 그래야 하고.

그로 통해서 내가 온전자로 만들어지니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54547: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너도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그렇게 살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를 선인과 악인에게 비췬다고 하는 것은, 또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린다고 하는 것은 일반 자연은총을 하나님께서 편견 없이 주시는 것처럼 너희들도 넓은 아량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저속하고 저질적으로 놀지 말라는 것입니다.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거룩하고 자비롭고 성숙되고 완전한 사랑을 가지라는 것입니다.(골로새서 128) 하나님의 진리인격으로 성숙해지라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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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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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12 마태복음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하면 천국에 마5:20-26  김경형 목사  2017-01-01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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