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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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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6장 1절: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의(義)도 아담 타락 후 기준이 둘이 되어 버렸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의가 있는데 인간들이 주장을 하는 의가 하나 더 생긴 것입니다. 이 의는 선악과를 따먹고 저주를 받은 타락된 의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은 지금 이 의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방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모르고들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계속 선악과를 따먹고 있고, 인간들이 주장하는 의는 계속 그 선악과를 따먹으라는 의입니다.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생긴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취미로 삼고 따먹어야 의라고 인정을 해 주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게 세상 사람들의 삶의 목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들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먹는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생명과를 따먹고 나온 의라야 하나님께서는 인정을 해 주십니다.
그런데 본문에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하는 이 ‘너희 의’는 선악과를 따먹은 개념의 의를 가지고 기준 삼아 의를 행하는 것을 말함입니다. 물론 인간 자기가 의를 구분 못 하면 모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나온 일반 도덕적 개념적 의로 기준을 삼아서 하는 이것을 하나님의 의처럼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육적으로 세상적으로 무조건 상대를 좋게만 해 주면 하나님의 의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6장 1절: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지’ 하는 마음, ‘사람들에게 보이는 게 있어야지’ 하는 마음,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해 주어야지’ 하는 마음,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마음. 그 마음이 있으니까 보이는 것을 찾고, 불신자들이 좋다고 하는 것, 불신자들이 알아주는 것을 찾기 마련입니다.
종교적이던 일반적이던 보이는 의를 찾는 것, 세상에 속한 의를 찾는 것 이 전부는 일반 세상적 개념적인 의이기 때문에 이런 의를 행하고는 하늘의 아버지께로부터 상이 없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이왕이면 의를 행할 바에야 상 받는 의를 행하는 게 좋지 의를 행하고도 심판 받을 짓을 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서 인정을 해 주는 의, 하나님께서 인정을 해 줄 수 있는 의, 하나님께서 인정을 해 줄 수밖에 없는 의, 영원히 인정을 받는 의를 행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의의 사람이 되어야 되지 그렇지 아니하면 의행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의 값을 하려면 사람으로 태어나야 하지 짐승으로 태어나면 사람 짓을 못합니다. 사람의 값을 하려면 사람이 사람을 배워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사람이로되 사람의 값을 하려면 사람을 배워야 하듯이, 사람이 사람을 못 배우면 짐승의 짓을 하게 되듯이 먼저 사람이 하나님의 의의 사람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의행을 못합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예수 없는 의행이 나오고,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의행이 나와야 하는데 어째서 예수 없는 의행이 나오는 것인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행이 나오도록 먼저 우리의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의 영을 사죄 칭의 새 생명으로 살려 기본구원의 터를 닦아 놓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듣고 보고 읽고 깨달아 그 하나님의 의를 나의 마음속에 넣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그 날로 하나님의 의행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예수 믿기 전의 그 소원 목적과 취미와 간구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보통 어떻게 이해를 하는가 하니 선악과 따먹은 일반적 도덕적 개념으로 ‘사람이 모르게, 안 보게 해야지’ 하는 그 생각으로 했다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의이고, ‘인간 앞에 나타내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다면 사람에게 영광을 받는 것이니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의 상이 없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나타내지 않고 했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6장 2절~4절: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구제할 때에
1. 외식하는 구제.
외식하는 구제는 나팔을 분다. 왜?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세상에서 영광을 얻으려고!
예수 믿는 기독자들은 세상에서 불신 세상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기독교 종교계 안에서 영광을 얻고자 하는 것인가요? ‘저 교회의 저 성도는 저렇게 구제를 잘 하니 우리도 그렇게 하자’ 하며 그렇게 선행의 전도자가 되라고 하지요? 그렇게 하는 것은 외식이 아닌가요?
‘회당’ - 회당은 마을 사람들이 무슨 안건을 의논해 풀기 위해 모이는 곳입니다.
‘거리’ - 거리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
이런 데서 나팔을 불어 알리며 하는 구제는 외식으로서 이미 사람들로부터 상급을 다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 상을 줄게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눈으로 보면 다 알 수 있는 육신의 물질구제이니까 나팔을 불어가며 하게 되면 누구나 다 아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받기를 원하는 구제이고, 누구나 다 아는 구제인데 나팔을 불고 하면 선한 일을 잘 한다고 영광을 주고받습니다. 이런 구제는 이방 세상 사람들이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운 구제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구제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상이 없는 것입니다.
2. 은밀한 구제.
은밀한 구제는 나팔을 부는 것이 아니라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제를 하려면 오른손과 왼손이 같이 나가는 법인데 어떻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수 있느냐? 구제할 때마다 왼손을 묶어 놓고 하라는 말일까요, 구제할 때는 자기 자신도 모를 정도로 하라는 말일까요, 자기 이름은 빼고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하라는 말일까요, 직접 하지 말고 누굴 시켜서 하라는 말일까요, 밤에 가서 아무도 몰래 살짝 하라는 말일까요? 받는 사람도 알지 못하게!
무슨 은밀한 구제이기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느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슨 뜻으로 그 말씀을 하셨을까요? 은밀한 구제는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구제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구제요, 설령 알더라도 그것이 구제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구제입니다. 하나님만 알아보시는 구제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구제는 손은 손이로되 오른손과 왼손이 놓여진 방향이 다르듯이, 손은 손이로되 이쪽저쪽이 다르듯이, 오른손은 오른손이지 왼손이 될 수 없고 왼손은 왼손이지 오른손이 될 수 없듯이 구제의 본질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영적인 구제와 육적인 구제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영원한 진리구제는 꼭 필요한 것인데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이방 불신 세상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주고받는 이 구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상 받는 구제입니다. 물질구제보다 값진 구제입니다.
이방 불신 세상에서도 나팔을 불지 않고, 자기 이름을 내지 않고 물질구제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이런 사람들이 많은데 너희들은 예수 믿으면서 물질구제를 떠들면서 온 세상이 다 알도록 그렇게 하느냐?’ 하는 그런 차원의 말씀이 아닙니다. 진리구제는 세상이 모르는 은밀구제입니다. 이 구제를 위하여 동원된 것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상이 있습니다.
구제는 있어야 주지 없으면 못 줍니다. 구제는 다른 사람이 없는 줄 알아야 주고, 내가 나에게 없는 줄 알아야 받을 수 있습니다. 진리구제를 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주기 위해서는 나에게 부지런히 가득 채워야 합니다. 나에게 이것이 없으면 구제를 받아야 합니다. 나도 부지런히 가득 채우고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제를 물질구제로만 생각지 말라! 물질은 주기도 하고, 안 주기도 하며 지혜롭게 진리구제를 위하여 쓸 것입니다.
6장 5절: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 기도에 대하여.
기도의 대상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인간 나를 지으신 원인 동기 목적이 하나님께 있고, 우주만물의 창조와 섭리와 진행성도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아버지께 묻고 의논하고 지시를 받듯이 우리 성도들은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 외식기도
외식기도는
① 사람을 의식하면서 기도한다.
② 자기가 한 것을 자랑을 한다.
③ 세상사람, 육의 사람, 옛 사람이 다 듣기 좋도록 기도한다.
④ 회당에서 한다.
왜 회당에서 하나? 회당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니 그런 곳에서 기도를 하면 기도하는 자기를 다 쳐다보겠지. 그 곳에서 회당 사람들에게 축복기도하면 다 좋아하지. 자기 복 빌어 주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⑤ 큰 거리에 서서 한다.
큰 거리는 넓은 길목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많이 가고들 있습니다. 그 큰 길목에서 큰 소리로 기도합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에게 세상 소원 성취하는 축복을 해 주고 싶어서!
인간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원하는 축복들을 해 주는 이것은 회당기도요, 큰 길거리기도입니다. 주님이 원하시고 주시고자 하는 축복이 아니라 인간들이 원하는 축복기도입니다. 그들로부터 영광을 얻었으니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상급이 없는 기도입니다. 그런 신앙사상, 신앙정신, 그런 육의 기도, 그런 외식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6장 6절: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러면 어떻게 기도할 것이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골방은 방은 방이로되 자기 혼자만 사용하는 떨어져 있는 작은 방입니다. 골방에 들어가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자기 마음을 정립할 수 있고, 조용하고 편안한 방입니다.
여기 들어가서 왜 문을 닫으라고 하느냐? 문을 열어 놓으면 개소리, 사람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가 다 들어옵니다. 오만 잡된 소리가 다 들어옵니다. 쥐도 들어오고, 벌레도 들어오고. 시골 가면 문을 닫아 놓아도 노랑각시 벌레가 들어와서 냄새를 피우기도 하고, 지네도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문을 닫으라는 것입니다. 문을 닫아도 들어오는데 문을 열면 오죽 하겠습니까?
문을 닫으면 아무도 못 들어옵니다. 세상이 못 들어오게 세상을 향한 문을 닫으라는 것입니다. 세상 쪽으로 나간 정신, 세상 쪽으로 나간 마음, 세상 쪽으로 나간 소원 목적, 세상 쪽으로 나간 취미와 간구성, 세상 염려 걱정 근심 그 문을 닫으라는 것입니다.
세상 쪽으로 향한 마음 문을 열어 놓으면 아무리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를 해도 그것은 골방기도가 아닙니다. 자기는 골방기도를 한다고, 하나님께 향한 은밀한 기도한다고 기도원 굴속이나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한다고 해도 세상 쪽을 위한 기도, 일을 위한 기도를 한다면 이는 골방기도가 아니고 말짱 헛 기도입니다. 마귀가 그 기도를 다 받아먹고는 마귀가 응답을 해 줍니다.
문 열린 기도는 몸은 골방에 앉았지만 마음은 세상 일 잘 되게, 육의 일 잘 되게 마음 정신이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신앙의 목적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골방기도는 세상 일, 눈에 보이는 일 쪽으로 향한 문을 닫고 천국 쪽으로 향한 문을 열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은밀’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 형적이 없는 것. ‘골방’은 다른 사람이 나를 못 보고, 다른 사람이 내 소리를 못 듣고, 내가 다른 사람을 못 보고, 내가 다른 사람의 소리를 못 듣고, 세상이 나를 못 보고, 내 소리를 못 듣고, 내가 세상을 못 보고, 세상소리 못 듣고.
골방에는 왜 들어가느냐?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께 아뢰이고, 또 아버지의 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 드릴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 골방기도를 하느냐? 은밀한 신령한 아버지의 것을 받고 싶어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즉, ‘이 마음을 보시고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신령하고 썩지 않고 영원한 효력성이 있는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큰 거리 어귀에서 하는 기도와는 질이 다른 기도입니다.
골방기도는 무엇이냐? 세상 방향으로 나간 문을 닫는 것이 골방기도요, 그 문을 열면 세상기도이고, 은밀한 것을 찾는 것이 골방기도입니다. 자기는 장소적으로 골방기도를 한다고 하나 세상성, 사건성, 눈에 보이는 것을 간구하고 있다면 이는 창녀요 기생이요 거지같은 기도요, 마귀가 기쁘고 좋아서 웃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6장 7절: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중언부언하지 말라’
말 한 마디만 해도 척하고 알아듣는 것인데 한 말을 또 하고, 한 말을 또 하고 하면 누가 듣기 좋겠느냐? 말하자면 쓸데없는 말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말이 많아도 내용은 세상을 달라는 그 말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철야기도 금식기도 100일기도를 해도 내용이 세상 것에 속한 것이라면 이는 중언부언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기도는 기도를 오래한다고 해서 ‘간절히’가 아니고 중언부언이라는 말입니다.
이방인의 기도는 그들의 신도 많기 때문에 이신 저신, 전문가 신을 불러야 하기 때문에 이유도 많고 변명도 많고 조건도 많고 말도 많습니다.
① 사람 수명을 맡은 신.
② 아들 딸 조절하는 신.
③ 사업을 맡은 신.
④ 재앙을 맡은 신.
⑤ 농사를 맡은 신.
⑥ 산에 가면 산신령.
⑦ 물로 가면 용왕 신.
웬 거지같은 잡신이 그리 많은지? 인간들이 자기 비위를 안 맞추어 주면 사람을 괴롭히고 해코자 하고 죽게 만드는 그런 엉터리 같은 신들을 왜 믿는지? 가만 보면 기독교인들도 성령인지 악령인지 분간을 못하고 몸 빼앗기고 사기 당하여 재산을 빼앗기고, 당하고도 당한 줄 모르고 자기가 좋아서 좇아다니고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장로 되는데 돈 천만 원, 목사안수 받는데 얼마?
6장 8절: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저희를 본받지 말라’
본받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나?
① 이룰 구원이 없고.
② 사망운동이고, 외식 거짓 이단 귀신운동이고.
③ 큰 심판이고.
④ 부끄러운 구원, 불탈 구원이고.
⑤ 예수를 열심히 믿은 효력이 없다.
6장 8절: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우리 아버지는 무에서 유로 인간과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에게 주신 분이시요, 하늘나라를 상속해 주신 분이시요, 이 세상은 우리의 이룰 구원을 위하여 섭리, 진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오감과 오각을 만드신 분이시요, 희로애락을 느끼게 하신 분으로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다 알고도 남음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향해 중언부언 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바보로 여기는 셈이 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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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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