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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딤전6: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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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조준 목사 |
참고 : |
성도의 재물관
디모데전서 6:3-10, 17-19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표현하는 말로 '황금 만능의 시대'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돈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위력을 갖는 것이 돈이요, 또 돈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돈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가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돈이 있으면 어느 정도 남을 지배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왜 분주히 오가며 격심한 생존 경쟁을 벌입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재물욕과 소유욕과 물질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 중의 하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돈이 필요합니다.
돈 그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돈은 인생에 필요한 수단입니다. 스마일즈라는 사람은 "악의 근원은 돈 그 자체가 아니고 돈에 대한 사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는 데서부터 인간의 온갖 악이 발생합니다. 돈을 얼마만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돈을 벌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인생에는 목적도 중요하지만 그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과 방법과 과정이 사실 목적보다 더 중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단과 방법이 악하면 좋은 목적도 죽어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돈에는 깨끗한 돈이 있고 더러운 돈이 있습니다.
깨끗한 돈은 옳은 방법, 정당한 수단으로 번 돈이요, 더러운 돈은 그릇된 방법, 부정한 수단으로 번 돈입니다. 그래서 부정축재라는 말을 씁니다.
오늘 우리 한국 사회는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부패 사회로 전락했습니다. 부패 사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더러운 돈이 판을 치는 사회요,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돈을 버는 사회입니다. 결과만 중요시하다 보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권력과 금력이 결탁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부패는 극도에 달합니다. 우리 사회가 부패한 것은 소위 정경유착을 해서 돈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왜 한국 사회에서는 소위 재벌이란 사람이 존경을 받지 못합니까?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부정당한 방법으로 축재를 했기 때문에 '저 사람은 얼마나 해먹어서 저렇게 되었나?' 하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더구나 정치하는 사람 치고 돈을 많이 벌었다면 권력을 가지고 도둑질한 것에 예외가 없습니다. 어떻게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몇 천억의 재산을 가집니까? 부패의 극치입니다. 그러니까 그 밑에 있는 사람은 기회만 있으면 해먹느라고 눈이 벌겋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중장부 사회요, 상납제가 묵인된 사회요, 급행료를 달지 않으면 서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사회입니다. 정직과 성실을 말하는 자를 바보처럼 생각하는 사회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천하가 다 썩더라도 끝까지 썩어서는 안 된다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 사회의 소금이요, 정신적 지주요, 부패를 방지하는 정의의 방파제입니다. 법관이 그렇고, 교수가 그렇고, 의사가 그렇고, 은행가가 그렇고, 종교인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마저 돈에 넘어지는 것을 보면, 돈이 필요하면서도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됩니까?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자기 분수를 모르고, 분수를 잊어버린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를 망치는 것은 '구보자' 철학입니다. '구보자'가 무엇입니까? 돈은 없지만 우
선 먹구 보자, 사구 보자, 쓰구 보자, 놀구 보자, 가구 보자, 이런 미련 없이 쓰는 생활, 계획 없이 살아가는 태도, 준비가 없는 살림살이, 오늘만 살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이 '구보자' 철학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빚을 갚을 생각은 안하고 우선 차관을 얻구 보자, 회사 설비는 나중에 하고 우선 나부터 먹구 보자, 그래서 우리 나라의 빚이 천문학적 숫자로 늘어나고 결국 감당하지 못해서 IMF 사태가 생기게 되고 지금도 경제 위기의 불안을 시한폭탄처럼 안고 있는 게 아닙니까?
우리는 버는 범위 안에서 써야 하고, 수입 안에서 지출해야 합니다. 이것이 건전한 경제 생활의 최대 원칙입니다. 쓰는 것이 버는 것을 능가하고,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파멸하고 맙니다. 개인 생활도 그렇고, 단체 생활도 그렇습니다. 버는 재주가 없으면 쓰는 재주도 없어야 합니다. 돈을 낭비하면 가난뱅이가 됩니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는 이제 영원히 가 버렸습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웨어벙크 교수가 한 말입니다. 세계 최대의 부강을 자랑하는 미국이 그러는데, 우리같이 넉넉지 못한 나라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낭비는 악덕이요, 절제
는 미덕입니다. 낭비는 망국의 길이요, 절제는 흥국의 길입니다. 우리 나라처럼 자원이 빈약한 나라에서는 더욱 절약이 필요합니다. 질소(質素) 검박(儉朴)하게 살고, 낭비와 사치를 망국의 원수로 생각하고 배격해야 합니다. 종이 한 장, 기름 한 방울, 쇠붙이 하나, 쌀알 한 톨, 나무조각 하나도 아껴 써야 합니다. 절약은 말만으로는 안됩니다. 절약을 하려면 극기와 용기의 덕이 필요합니다. 한번 소비 수준을 높인 다음에는 내려 끌기가 아주 힘이 듭니다. 낭비하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이기려면 내가 나하고 싸워서 이기는 극기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려운 때를 당하면 어려운 일을 이겨내는 슬기와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착실은 번영의 길이요, 부허(浮虛)는 패망의 길입니다. 낭비는 망국의 근본이요, 절제는 흥국의 대본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어떤 분은 속으로 이렇게 말씀하실 는지 모르겠습니다. '강단에서 무슨 돈 이야기를 그렇게 할까?' 여러분이 놀라 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사실 성경에는 돈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돈을 버는 데 대해서, 돈을 쓰는 데 대해서, 돈을 저축하는 일에 대해서, 헌금하는 일에 대해서, 투자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돈이 필요 없다고 말한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보아도 돈이 인간에게 궁극적인 평안과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말한 곳도 없습니다. 잠언 23장 4-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그렇습니다. 재물은 독수리처럼 날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 동안 IMF 사태를 겪으면서, 밖으로 볼 때는 돈이 많은 사람으로 사업을 크게 한다고 우리가 그 이름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알고 보니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어서, 그 빚을 갚을 형편이 못되어 파산 선고를 하고, 국민에게 그 빚을 떠 안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며칠 전에 그 동안 큰 재벌 회사의 회장으로 있던 분을 만났는데, 회사는 다 정리하고 지금 신학교에 입학해서 공부한 지가 1년 반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여기 말씀하는 것은 돈이 죄악이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더구나 돈을 가진 사람은 악하다고 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은 사랑하시고, 부한 사람은 미워하신다는 말도 물론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릇된 방법과 수단으로 모은 더러운 돈을 싫어하십니다. 자기만 알고 남의 어려움을 무시하는 부유한 사람들의 태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경건한 사람들 가운데는 부자가 많습니다. 아브라함도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욥이란 사람은 그 당시 소문난 부자였습니다. 다윗 왕도 부자였고, 솔로몬은 예수님이 그의 영화를 언급하실 정도로 부의 극치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몇 시간에 걸쳐서 성도의 인생관, 성도의 사명관, 성도의 직업관, 성도의 행복관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성도의 재물관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사도 바울이 한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더러 여러 가지로 거스르고 부딪쳐 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진해야 한다고 격려하면서, 그 당시에 있었던 소위 종교적인 사기꾼들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말씀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4-5절을 보세요.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영어성경 The Good News Bible을 보면 5절 하반절을 "저들은 종교를 부의 길로 생각하여"라고 번역했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실이 없습니까? 이것은 정말 비극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이단의 배후에는 반드시 돈의 세력과 관계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주신 말씀에서 특별히 돈의 문제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바울은 종교를 부의 길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면서 이단자들의 부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부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돈이 필요 없다고 역설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는 돈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일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세요.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돈을 싫어하는 분 계십니까? "
나는 돈 없어도 살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실 분이 계십니까? 지난번 미국 애틀란타에서 목회자 세미나를 하는데, 강사로 오신 목사님이 "나는 하나님 다음에는 돈이 좋아요"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 말씀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말씀이 맞아요. 우리는 다 돈을 좋아해요. 그런데 돈을 사랑하게 되면 문제가 됩니다.
7절 말씀을 보세요.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 들고 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빈손으로 오면서 꼭 잡으려고 손을
쥐고 옵니다. 돈도, 명예도, 권세도 다 잡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70, 80년 후에 갈 때는 젓가락 하나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야 깨닫습니다. 서반아 속담에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만일 수의에 주머니가 있다면 아마 다 집어넣고 갈 것입니다.
전에 세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이 그의 충성된 신하에게 "여보게, 내가 자네한테 특별한 부탁 하나가 있는데"라고 말을 꺼내자 신하는 긴장했습니다. "내가 이제 얼마 있지 않아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내 관은 좀 특별하게 만들어줘." 신하는 마음속으로 '금이나 상아로 관을 주문하시려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내 관은 양 옆에 구멍을 뚫어. 그리고 내 시신을 집어넣은 후 그 구멍으로 내 손을 내밀어. 그래서 온 국민으로 하여금 알렉산더 대왕도 가실 때는 빈손으로 가셨다는 사실을 보게 해 주게나." 그렇습니다. 사람은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가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다 놓고 갑니다. 이 진리를 일찍 깨달으면 그만큼 우리의 삶은 경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재물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재물 그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우리가 재물을 필요 이상으로 추구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우리를 온갖 시험과 죄에 빠지게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9절을 보세요.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언제부터 타락하기 시작했습니까?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적군을 다 정복하여 평정을 이루게 되고 여유를 얻게 되니까 타락이 시작된 것입니다. 다윗이 젊은 시절에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선은 오직 하나님께 향해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위해 살았습니다. (박조준 목사)
디모데전서 6:3-10, 17-19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표현하는 말로 '황금 만능의 시대'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돈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위력을 갖는 것이 돈이요, 또 돈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돈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가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돈이 있으면 어느 정도 남을 지배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왜 분주히 오가며 격심한 생존 경쟁을 벌입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재물욕과 소유욕과 물질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 중의 하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돈이 필요합니다.
돈 그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돈은 인생에 필요한 수단입니다. 스마일즈라는 사람은 "악의 근원은 돈 그 자체가 아니고 돈에 대한 사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는 데서부터 인간의 온갖 악이 발생합니다. 돈을 얼마만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돈을 벌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인생에는 목적도 중요하지만 그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과 방법과 과정이 사실 목적보다 더 중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단과 방법이 악하면 좋은 목적도 죽어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돈에는 깨끗한 돈이 있고 더러운 돈이 있습니다.
깨끗한 돈은 옳은 방법, 정당한 수단으로 번 돈이요, 더러운 돈은 그릇된 방법, 부정한 수단으로 번 돈입니다. 그래서 부정축재라는 말을 씁니다.
오늘 우리 한국 사회는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부패 사회로 전락했습니다. 부패 사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더러운 돈이 판을 치는 사회요,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돈을 버는 사회입니다. 결과만 중요시하다 보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권력과 금력이 결탁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부패는 극도에 달합니다. 우리 사회가 부패한 것은 소위 정경유착을 해서 돈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왜 한국 사회에서는 소위 재벌이란 사람이 존경을 받지 못합니까?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부정당한 방법으로 축재를 했기 때문에 '저 사람은 얼마나 해먹어서 저렇게 되었나?' 하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더구나 정치하는 사람 치고 돈을 많이 벌었다면 권력을 가지고 도둑질한 것에 예외가 없습니다. 어떻게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몇 천억의 재산을 가집니까? 부패의 극치입니다. 그러니까 그 밑에 있는 사람은 기회만 있으면 해먹느라고 눈이 벌겋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중장부 사회요, 상납제가 묵인된 사회요, 급행료를 달지 않으면 서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사회입니다. 정직과 성실을 말하는 자를 바보처럼 생각하는 사회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천하가 다 썩더라도 끝까지 썩어서는 안 된다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 사회의 소금이요, 정신적 지주요, 부패를 방지하는 정의의 방파제입니다. 법관이 그렇고, 교수가 그렇고, 의사가 그렇고, 은행가가 그렇고, 종교인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마저 돈에 넘어지는 것을 보면, 돈이 필요하면서도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됩니까?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자기 분수를 모르고, 분수를 잊어버린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를 망치는 것은 '구보자' 철학입니다. '구보자'가 무엇입니까? 돈은 없지만 우
선 먹구 보자, 사구 보자, 쓰구 보자, 놀구 보자, 가구 보자, 이런 미련 없이 쓰는 생활, 계획 없이 살아가는 태도, 준비가 없는 살림살이, 오늘만 살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이 '구보자' 철학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빚을 갚을 생각은 안하고 우선 차관을 얻구 보자, 회사 설비는 나중에 하고 우선 나부터 먹구 보자, 그래서 우리 나라의 빚이 천문학적 숫자로 늘어나고 결국 감당하지 못해서 IMF 사태가 생기게 되고 지금도 경제 위기의 불안을 시한폭탄처럼 안고 있는 게 아닙니까?
우리는 버는 범위 안에서 써야 하고, 수입 안에서 지출해야 합니다. 이것이 건전한 경제 생활의 최대 원칙입니다. 쓰는 것이 버는 것을 능가하고,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파멸하고 맙니다. 개인 생활도 그렇고, 단체 생활도 그렇습니다. 버는 재주가 없으면 쓰는 재주도 없어야 합니다. 돈을 낭비하면 가난뱅이가 됩니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는 이제 영원히 가 버렸습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웨어벙크 교수가 한 말입니다. 세계 최대의 부강을 자랑하는 미국이 그러는데, 우리같이 넉넉지 못한 나라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낭비는 악덕이요, 절제
는 미덕입니다. 낭비는 망국의 길이요, 절제는 흥국의 길입니다. 우리 나라처럼 자원이 빈약한 나라에서는 더욱 절약이 필요합니다. 질소(質素) 검박(儉朴)하게 살고, 낭비와 사치를 망국의 원수로 생각하고 배격해야 합니다. 종이 한 장, 기름 한 방울, 쇠붙이 하나, 쌀알 한 톨, 나무조각 하나도 아껴 써야 합니다. 절약은 말만으로는 안됩니다. 절약을 하려면 극기와 용기의 덕이 필요합니다. 한번 소비 수준을 높인 다음에는 내려 끌기가 아주 힘이 듭니다. 낭비하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이기려면 내가 나하고 싸워서 이기는 극기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려운 때를 당하면 어려운 일을 이겨내는 슬기와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착실은 번영의 길이요, 부허(浮虛)는 패망의 길입니다. 낭비는 망국의 근본이요, 절제는 흥국의 대본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어떤 분은 속으로 이렇게 말씀하실 는지 모르겠습니다. '강단에서 무슨 돈 이야기를 그렇게 할까?' 여러분이 놀라 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사실 성경에는 돈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돈을 버는 데 대해서, 돈을 쓰는 데 대해서, 돈을 저축하는 일에 대해서, 헌금하는 일에 대해서, 투자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돈이 필요 없다고 말한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보아도 돈이 인간에게 궁극적인 평안과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말한 곳도 없습니다. 잠언 23장 4-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그렇습니다. 재물은 독수리처럼 날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 동안 IMF 사태를 겪으면서, 밖으로 볼 때는 돈이 많은 사람으로 사업을 크게 한다고 우리가 그 이름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알고 보니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어서, 그 빚을 갚을 형편이 못되어 파산 선고를 하고, 국민에게 그 빚을 떠 안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며칠 전에 그 동안 큰 재벌 회사의 회장으로 있던 분을 만났는데, 회사는 다 정리하고 지금 신학교에 입학해서 공부한 지가 1년 반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여기 말씀하는 것은 돈이 죄악이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더구나 돈을 가진 사람은 악하다고 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은 사랑하시고, 부한 사람은 미워하신다는 말도 물론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릇된 방법과 수단으로 모은 더러운 돈을 싫어하십니다. 자기만 알고 남의 어려움을 무시하는 부유한 사람들의 태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경건한 사람들 가운데는 부자가 많습니다. 아브라함도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욥이란 사람은 그 당시 소문난 부자였습니다. 다윗 왕도 부자였고, 솔로몬은 예수님이 그의 영화를 언급하실 정도로 부의 극치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몇 시간에 걸쳐서 성도의 인생관, 성도의 사명관, 성도의 직업관, 성도의 행복관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성도의 재물관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사도 바울이 한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더러 여러 가지로 거스르고 부딪쳐 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진해야 한다고 격려하면서, 그 당시에 있었던 소위 종교적인 사기꾼들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말씀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4-5절을 보세요.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영어성경 The Good News Bible을 보면 5절 하반절을 "저들은 종교를 부의 길로 생각하여"라고 번역했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실이 없습니까? 이것은 정말 비극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이단의 배후에는 반드시 돈의 세력과 관계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주신 말씀에서 특별히 돈의 문제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바울은 종교를 부의 길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면서 이단자들의 부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부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돈이 필요 없다고 역설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는 돈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일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세요.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돈을 싫어하는 분 계십니까? "
나는 돈 없어도 살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실 분이 계십니까? 지난번 미국 애틀란타에서 목회자 세미나를 하는데, 강사로 오신 목사님이 "나는 하나님 다음에는 돈이 좋아요"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 말씀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말씀이 맞아요. 우리는 다 돈을 좋아해요. 그런데 돈을 사랑하게 되면 문제가 됩니다.
7절 말씀을 보세요.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 들고 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빈손으로 오면서 꼭 잡으려고 손을
쥐고 옵니다. 돈도, 명예도, 권세도 다 잡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70, 80년 후에 갈 때는 젓가락 하나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야 깨닫습니다. 서반아 속담에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만일 수의에 주머니가 있다면 아마 다 집어넣고 갈 것입니다.
전에 세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이 그의 충성된 신하에게 "여보게, 내가 자네한테 특별한 부탁 하나가 있는데"라고 말을 꺼내자 신하는 긴장했습니다. "내가 이제 얼마 있지 않아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내 관은 좀 특별하게 만들어줘." 신하는 마음속으로 '금이나 상아로 관을 주문하시려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내 관은 양 옆에 구멍을 뚫어. 그리고 내 시신을 집어넣은 후 그 구멍으로 내 손을 내밀어. 그래서 온 국민으로 하여금 알렉산더 대왕도 가실 때는 빈손으로 가셨다는 사실을 보게 해 주게나." 그렇습니다. 사람은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가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다 놓고 갑니다. 이 진리를 일찍 깨달으면 그만큼 우리의 삶은 경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재물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재물 그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우리가 재물을 필요 이상으로 추구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우리를 온갖 시험과 죄에 빠지게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9절을 보세요.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언제부터 타락하기 시작했습니까?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적군을 다 정복하여 평정을 이루게 되고 여유를 얻게 되니까 타락이 시작된 것입니다. 다윗이 젊은 시절에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선은 오직 하나님께 향해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위해 살았습니다. (박조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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