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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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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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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세족식은 인본적이다》
고은교회 황부일목사.
세족식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을 근거로 그렇게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 모습으로 행하는 행사를 말합니다. 이것은 카톨릭에 있어 매우 중요한 행사에 의식의 실제가 되었고 오늘날 개신교도 실제로 많이 하는 한 의식의 행사입니다.
특히 고난주간에는 교황이 세족식을 거행하고 온 세계 언론은 그것을 마치 훌륭하고 선한 기독교의 행위처럼 공개하며 알립니다.
그 뿐아니라 개신교도 그에 못지 않게 세족식을 거행합니다. 교회안에서라든가 아니면 특정 소외계층이나 장애인,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 양로원, 고아원이나 재소자들을 찾아 발씻겨 주는 행사나 의식을 행합니다.
그것이 섬기는 신앙생활의 표본인것처럼 되었습니다.
아예 연례행사처럼 된 교회나 교계, 단체도 많고 교회 수련회나 직분자 세미나에서도 빠지지 않고 청소년, 대학청년 수양회에서도 빠지지 않는 순서가 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외식에 불과한 세족식>
주일학교 교사가 아이들의 발을 씻겨 주고 교회 목사가 장로나 권사들의 발을 씻겨 주고 장로들이나 권사들은 교인들의 발을 씻겨 주는데 감동받았다는 자들이 종종 나옵니다.
이런 효과를 노리고 만든 행사이니 당연히 그런 감동의 교감이 생기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사나 의식은 실제 삶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해놓고 어떤 효과를 얻고자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왜 세족식을 합니까?
사실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에(마 25:40) 따르는 신앙생활이 안되는 자들이 하는 외식적 방법에 불과합니다. 신앙생활은 몇차례의 의식이나 행사가 아닙니다.
실제 삶이어야 합니다.
요즘에는 교인들이 자기 직장이나 소속된 사회에 나가서 자기가 교회에서 배운 세족식을 건의하고 실행하기도 하는데 실제 그들의 모습에는 그리스도의 증인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물론 거동이 안되는 가까운 분들을 돕고 함께하는 삶으로 씻겨주는 행위는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하는 세족식은 다 사람들 보기에 좋은일 하는 좋은사람으로 여김받으려는 외식적 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행사를 많이 합니다. 때론 영업하는 업체처럼 반짝 이벤트식 행사로 잘합니다. 교회들이 그저 크고자 하는 목적 아래 마케팅식 전략을 그대로 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행사는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더욱이 교회에서의 세족식은 유치한 일이고 무지한 행사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성경과 봉사는 삶의 실현이 되어야 합니다.
<세족식은 예수께서 하신 행위의 실제 의미를 모르는 어리석은 처사>
요한복음 13:1-15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때는 유월절 전날 예수님은 저녁식후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십니다. 베드로 차례가 되었을 때 베드로는 예수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며 거부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다는 아니고 하나는 깨끗이 씻김을 받지 못한 자가 있는데 그는 예수를 팔 가룟유다를 말합니다.
그는 처음부터 마귀라 했습니다.(요 6:7)
가룟유다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속죄함을 받는 여자의 후손이 아니라 뱀의 후손된 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는 상관이 없고 원수된 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발을 씻어 주시는 것은 먼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은, 그래서 몸이 깨끗한 자들에게만 관계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미 몸은 깨끗한데 왜 발은 씻겨주시고자 하신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모세가 시나이 반도에서 양을 몰고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나무는 타지 않고 불은 사라지지 않은 광경을 보고 가까이 갈 새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희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십니다.(출 3:1-5)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치기 전 들에서 칼을 빼든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만나는데 그때도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수 5:15)말씀 합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더러운 신발을 신은 채로 주앞에 나가면 안 된다는 간단한 말씀입니다.
전도서에 보면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찌어다.”라고 말씀했습니다.(전 5:1)
발은 우리 행동이나 행위를 비유,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모세나 여호수아나 그리고 주께 나갈 수 있게 된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대속의 중심으로 청결함을 입어 주께 나갈 수 있지만, 우리가 날마다 살면서 짓는 죄나 잘못된 행위 등은 늘 씻으며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발씻기는 행위의 요구는 거룩함을 위한 섬김>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씻기신후에 저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3:12-17)
이 말씀에 따라 사람들은 세족식을 합니다.
예수께서 발을 씻겨 주심의 본을 따라 행하겠다고 교회들이 세족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그런 행사나 의식이 섬김이라고 합니다.
교회 섬김은 그런 행사가 아닙니다.
교회구원을 이루어감에 따라 구원의 유익을 위해 함께하고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배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께 나와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우편에 또 하나는 좌편에 앉혀달라고 요구하자 제자들이 분히 여길 때,
예수님은 “너희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시면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고(마 20:22-28)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섬김의 목적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내주심이 되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몸이 깨끗게 된 것입니다. 즉 죄 없이 정결케 의롭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깨끗해진 몸인데 발을 따로 씻기시는가? 그것은 이미 의롭게 된 교회지만 실제 모습은 옛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행하며 살기에, 실제 모습 또한 거룩케 온전케 해주시려는 은혜의 역사로서 발을 씻기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교회 모습을 이루어 가도록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런 섬김을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로서 믿음의 유익을 위해 함께하며 섬기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저희로 구원을 얻게하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고전 10:24, 33)
진짜 발을 씻겨 주는 것은 거룩함을 위한 섬김이 될 수 없습니다.
거룩함을 위한 섬김이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자라며 새롭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며, 세상과 죄의 옛 모습과 삶에서 구별되는 거룩성을 위해 복음을 증거하고 기도하고, 함께함에 선한 수고를 하며 의의 병기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한몸으로 교회된 여러 지체 형제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더욱 거룩함을 이루도록 서로 돕고 믿음의 유익과 덕을 끼침을 위해
서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세상된 모습에서 구습을 좇는 옛사람의 생활에서 새롭게 되고 하나님께로 함께 돌아 가도록 서미기는 것입니다.이것이 발을 씻겨주는 참 의미입니다.
에베소서 4:21~24절을 보면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바로 이런 교회된 모습이 새롭게 거룩히 이루워지도록
서로 기도하며 돌아보며 섬기는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고은교회 황부일목사.
세족식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을 근거로 그렇게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 모습으로 행하는 행사를 말합니다. 이것은 카톨릭에 있어 매우 중요한 행사에 의식의 실제가 되었고 오늘날 개신교도 실제로 많이 하는 한 의식의 행사입니다.
특히 고난주간에는 교황이 세족식을 거행하고 온 세계 언론은 그것을 마치 훌륭하고 선한 기독교의 행위처럼 공개하며 알립니다.
그 뿐아니라 개신교도 그에 못지 않게 세족식을 거행합니다. 교회안에서라든가 아니면 특정 소외계층이나 장애인,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 양로원, 고아원이나 재소자들을 찾아 발씻겨 주는 행사나 의식을 행합니다.
그것이 섬기는 신앙생활의 표본인것처럼 되었습니다.
아예 연례행사처럼 된 교회나 교계, 단체도 많고 교회 수련회나 직분자 세미나에서도 빠지지 않고 청소년, 대학청년 수양회에서도 빠지지 않는 순서가 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외식에 불과한 세족식>
주일학교 교사가 아이들의 발을 씻겨 주고 교회 목사가 장로나 권사들의 발을 씻겨 주고 장로들이나 권사들은 교인들의 발을 씻겨 주는데 감동받았다는 자들이 종종 나옵니다.
이런 효과를 노리고 만든 행사이니 당연히 그런 감동의 교감이 생기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사나 의식은 실제 삶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해놓고 어떤 효과를 얻고자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왜 세족식을 합니까?
사실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에(마 25:40) 따르는 신앙생활이 안되는 자들이 하는 외식적 방법에 불과합니다. 신앙생활은 몇차례의 의식이나 행사가 아닙니다.
실제 삶이어야 합니다.
요즘에는 교인들이 자기 직장이나 소속된 사회에 나가서 자기가 교회에서 배운 세족식을 건의하고 실행하기도 하는데 실제 그들의 모습에는 그리스도의 증인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물론 거동이 안되는 가까운 분들을 돕고 함께하는 삶으로 씻겨주는 행위는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하는 세족식은 다 사람들 보기에 좋은일 하는 좋은사람으로 여김받으려는 외식적 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행사를 많이 합니다. 때론 영업하는 업체처럼 반짝 이벤트식 행사로 잘합니다. 교회들이 그저 크고자 하는 목적 아래 마케팅식 전략을 그대로 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행사는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더욱이 교회에서의 세족식은 유치한 일이고 무지한 행사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성경과 봉사는 삶의 실현이 되어야 합니다.
<세족식은 예수께서 하신 행위의 실제 의미를 모르는 어리석은 처사>
요한복음 13:1-15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때는 유월절 전날 예수님은 저녁식후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십니다. 베드로 차례가 되었을 때 베드로는 예수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며 거부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다는 아니고 하나는 깨끗이 씻김을 받지 못한 자가 있는데 그는 예수를 팔 가룟유다를 말합니다.
그는 처음부터 마귀라 했습니다.(요 6:7)
가룟유다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속죄함을 받는 여자의 후손이 아니라 뱀의 후손된 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는 상관이 없고 원수된 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발을 씻어 주시는 것은 먼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은, 그래서 몸이 깨끗한 자들에게만 관계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미 몸은 깨끗한데 왜 발은 씻겨주시고자 하신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모세가 시나이 반도에서 양을 몰고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나무는 타지 않고 불은 사라지지 않은 광경을 보고 가까이 갈 새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희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십니다.(출 3:1-5)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치기 전 들에서 칼을 빼든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만나는데 그때도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수 5:15)말씀 합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더러운 신발을 신은 채로 주앞에 나가면 안 된다는 간단한 말씀입니다.
전도서에 보면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찌어다.”라고 말씀했습니다.(전 5:1)
발은 우리 행동이나 행위를 비유,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모세나 여호수아나 그리고 주께 나갈 수 있게 된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대속의 중심으로 청결함을 입어 주께 나갈 수 있지만, 우리가 날마다 살면서 짓는 죄나 잘못된 행위 등은 늘 씻으며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발씻기는 행위의 요구는 거룩함을 위한 섬김>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씻기신후에 저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3:12-17)
이 말씀에 따라 사람들은 세족식을 합니다.
예수께서 발을 씻겨 주심의 본을 따라 행하겠다고 교회들이 세족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그런 행사나 의식이 섬김이라고 합니다.
교회 섬김은 그런 행사가 아닙니다.
교회구원을 이루어감에 따라 구원의 유익을 위해 함께하고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배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께 나와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우편에 또 하나는 좌편에 앉혀달라고 요구하자 제자들이 분히 여길 때,
예수님은 “너희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시면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고(마 20:22-28)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섬김의 목적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내주심이 되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몸이 깨끗게 된 것입니다. 즉 죄 없이 정결케 의롭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깨끗해진 몸인데 발을 따로 씻기시는가? 그것은 이미 의롭게 된 교회지만 실제 모습은 옛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행하며 살기에, 실제 모습 또한 거룩케 온전케 해주시려는 은혜의 역사로서 발을 씻기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교회 모습을 이루어 가도록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런 섬김을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로서 믿음의 유익을 위해 함께하며 섬기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저희로 구원을 얻게하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고전 10:24, 33)
진짜 발을 씻겨 주는 것은 거룩함을 위한 섬김이 될 수 없습니다.
거룩함을 위한 섬김이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자라며 새롭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며, 세상과 죄의 옛 모습과 삶에서 구별되는 거룩성을 위해 복음을 증거하고 기도하고, 함께함에 선한 수고를 하며 의의 병기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한몸으로 교회된 여러 지체 형제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더욱 거룩함을 이루도록 서로 돕고 믿음의 유익과 덕을 끼침을 위해
서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세상된 모습에서 구습을 좇는 옛사람의 생활에서 새롭게 되고 하나님께로 함께 돌아 가도록 서미기는 것입니다.이것이 발을 씻겨주는 참 의미입니다.
에베소서 4:21~24절을 보면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바로 이런 교회된 모습이 새롭게 거룩히 이루워지도록
서로 기도하며 돌아보며 섬기는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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