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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타락

창세기 이정원 목사............... 조회 수 343 추천 수 0 2017.03.03 20: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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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38:1-11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6.7.10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유다의 타락                             

창38:1-11


  구약의 이스라엘 사회에는 도피성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우연히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 그 사람은 이스라엘 곳곳에 마련되어 있던 도피성 중의 한 곳으로 도망치면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사람을 죽일 의도가 없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실수를 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정상을 참작하여 살 길을 열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 사람이 도망해 들어갔던 도피성에서 나갔을 때는 보호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죽은 사람의 친척이 그를 발견하고 죽인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살 수 있는 길은 도피성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제도였습니다.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가 어떤 죄를 범했다고 해도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 도피성은 또한 교회와도 비슷합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의 일원이 되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난다면, 그 사람은 이 특별한 은혜와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창38장에는 갑자기 유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셉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중간에 유다에 관한 내용이 끼어든 것입니다. 유다는 자기 집을 떠나 가나안 사람들에게로 가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두 아들이 죽게 되는 큰 불행을 당했습니다. 이 사실은 언약공동체, 즉 교회를 떠나면 큰 위험과 불행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교회를 떠난다는 것은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제들을 떠난 유다


  요셉이 팔려간 후 유다는 아버지 집을 떠나 가나안 사람들에게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유다가 형제들로부터 떠나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1절) 이 말씀은 유다가 자기 친구에게 놀러갔다는 뜻이 아니라, 그곳으로 이주해갔다는 뜻입니다. 유다는 형제들과의 관계를 끊고, 그의 친구 가나안 사람 히라에게로 가서 가나안 사람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2절) 유다가 가나안 여자를 아내로 삼은 것은 그가 신앙을 버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다가 왜 신앙을 버리고 형제들을 떠나갔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요셉을 팔아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과 형제들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요셉을 팔아버리자고 제안한 사람이 바로 유다였습니다. 유다와 형제들은 요셉을 팔아버리고, 요셉이 죽은 것으로 꾸며 아버지에게 알렸습니다. 아버지는 여러 날 동안 슬퍼하며 통곡했습니다. 아들들은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슬퍼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다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유다는 자기 형제들에게 회의와 환멸을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복잡하고 잘못된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세겜 부족을 몰살했으며, 맏형 르우벤은 작은 아버지의 첩인 빌하와 통간을 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악한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형제들은 서로 시기하고 경쟁하며 불신하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더 이상 이러한 형제들과 함께 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을 떠나 가나안 사람들에게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형제들을 떠나 가나안 사람들에게로 간 유다는 큰 불행과 비극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두 아들이 죽고, 마지막 남은 셋째 아들도 죽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유다는 자기의 며느리 다말을 창녀로 오인하여, 그녀에게서 쌍둥이 아들 베레스와 세라를 낳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유다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였습니다.


    유다의 실수


  유다가 형제들을 떠나 가나안 사람들에게로 가서 산 것은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그가 큰 비극을 당하게 된 것은 아버지 야곱의 가정을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 즉 언약의 공동체였습니다. 오늘로 치면 교회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의 공동체에 특별하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나 이 언약의 공동체에 속해있는 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떨어져 나가면 그러한 은혜와 보호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진리는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교회 안에 있으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떠나면 더 이상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와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물론 교회에도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시기와 싸움과 심지어는 부끄러운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교회 안에서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겨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떠나면 유다에게 일어난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아니 그보다 더 큰 화를 당하게 됩니다. 언약의 공동체에서 떨어져나간다는 것은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실망스런 일을 보았다 해도, 교회 안에서 형제에게 상처를 받았다 해도,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는 어리석은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유다는 형제들에게 실망하고, 언약의 공동체인 아버지의 집을 떠나갔습니다. 그렇게 하면 새로운 마음으로 자유롭게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큰 불행과 비극과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교회를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나안 여자와 결혼한 유다


  유다의 또 하나의 실수는 가나안 여자와 결혼한 것이었습니다.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2절) 유다는 자기만 가나안 여자와 결혼한 것이 아니라, 아들을 위해서도 가나안 여자를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그의 증조부 아브라함이나 할아버지 이삭, 그리고 아버지 야곱이 철저하게 피했던 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그의 종을 멀리 자기의 고향으로 보냈습니다. 그는 가나안 여자들 중에서는 절대로 이삭의 아내를 취하면 안 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가나안 여자들은 우상숭배와 성적인 죄악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여자가 집안에 들어오면 신앙의 전통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의 순결을 지키고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을 지키려면, 반드시 경건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야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삭도 야곱에게 가나안 여자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외삼촌의 집에 가서 그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라는 사람의 딸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왜 유다가 가나안 여자를 아내로 삼았을까요? 그것은 그가 신앙 공동체를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를 떠난 사람은 더 이상 신앙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과 기준을 따라 살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재미를 맘껏 볼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 때문에 큰 불행과 비극을 당하게 됩니다. 유다가 언약의 공동체를 떠나 가나안 여인과 결혼함으로써 어떤 비극을 당하게 되었는지 살펴봅시다.


    아들들의 죽음


  유다는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를 떠나 가나안 사람들과 살면서, 가나안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거기서 세 명의 아들을 낳았으며, 큰 아들 엘을 결혼시켰습니다.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3-6절) 유다의 가정은 행복했고, 모든 일이 다 잘 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유다에게 큰 불행이 닥쳐오기 시작했습니다.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7절) 유다의 장자 엘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죽이실 만큼 악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유다의 아들이 그렇게 악한 자가 되었을까요? 유다가 하나님 백성에게서 떠나 세상적인 가치관과 방법으로 아들을 양육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또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엘이 아무리 악했다 해도 세겜 족속을 몰살시키고, 아버지의 첩과 통간을 하고,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린 야곱의 아들들만큼 악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의 아들들은 죽이지 않으셨는데 왜 유다의 아들은 죽이셨을까요?


  이것은 개인의 죄 보다는 그들이 속한 공동체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그렇게 무서운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아버지의 집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집은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큰 백성을 이루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야곱의 집은 구약시대의 교회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의 무서운 죄에도 불구하고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 안에서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이 공동체를 떠나 세상으로 나갔으며, 세상에는 그를 지켜줄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 안에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보호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맘대로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겠습니까? 이제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 맘대로, 세상적인 가치와 기준을 따라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죄를 짓는 생활이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생활이 될 것입니다. 한 동안 그는 세상 재미와 쾌락을 맘껏 누리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큰 불행과 화가 임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보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죽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형사취수


  유다의 불행은 장자 엘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차자 오난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장자 엘이 죽자, 유다는 차자 오난에게 형수에게로 들어가 형을 위해 아들을 낳게 하라고 명했습니다.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8절) 이것이 바로 형사취수제도입니다. 왜 이런 제도가 있었을까요? 이 제도는 대를 잇는 것, 그리고 상속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어버리면, 그 사람의 대는 거기서 끊어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아버지에게서 받게 될 유산도 영영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은 아들의 대를 잇게 하고 우산을 물려주기 원할 때, 그 동생으로 하여금 형수에게 가서 아들을 낳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형수가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은 죽은 형의 아들이 되어 형의 대를 잇게 되며, 형이 받을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단순히 상속의 문제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에게는 그보다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백성은 죽어도 살며,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부활에 대한 예표이며, 자신의 몸을 바쳐 죽은 자의 기업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사랑과 구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난은 형에게 아들이 생기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곧 자기에게 돌아올 몫이 대폭 삭감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9-10절) 오난의 행위는 유다가 신앙 공동체를 떠난 후 그 가족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오난을 죽이심으로 유다는 두 명의 아들을 잃게 되었습니다. 유다의 가정에 일어난 재앙은 성도가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갈 때 하나님의 은총을 잃어버리게 되고, 무서운 재난과 화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있으면 안전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교회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보호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어도 회개하고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죄도 회개하여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죄가 우리를 파멸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떠나가면 구원과 은혜와 사랑과 용서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얼마나 귀하고 복됩니까?


    영적으로 흑암에 빠진 유다


  이렇게 해서 유다는 세 아들 중에서 두 아들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셋째 아들 셀라가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도 죽었으므로, 이제는 셋째 아들 셀라가 형수에게 들어가서 아들을 낳게 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셀라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친정에 가서 수절하며 기다리라고 말했습니다.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비 집에 있어서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11절)


  유다는 자기의 마지막 남은 아들도 죽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셀라가 장성했을 때도 며느리 다말에게 보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다의 어두워진 영적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유다는 마치 다말이라는 여자가 유별나서, 그녀에게 들어가는 남자는 다 죽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유다의 두 아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죽이신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유다는 마땅히 죄를 두려워하고, 이제부터라도 셀라를 믿음으로 잘 양육하기를 힘써야 했을 것입니다. 유다가 이런 생각을 가졌더라면, 적어도 둘째 아들 오난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다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떠나 영적인 흑암 가운데 방황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가 하나님을 굳게 믿고 있었더라면 문제들을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떠난 인생은 소망이 없고, 오직 어두움에서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주신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 교회에는 성령께서 역사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보호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죄도 사함 받을 수 있는 사죄의 은총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교회 안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떠나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다 잃게 되고 맙니다.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축복과 은혜를 맘껏 힘입어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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