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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6: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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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9671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로마서 16장 5-15절)
< 좋은 후원자의 중요성 >
2차 대전 전쟁 영웅이자 미국 34대 대통령인 아이젠하워는 육사 동기 164명 중 61등으로 졸업한 평범한 장교였습니다. 그는 47세 때까지 만년 소령으로 지냈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마셜 참모총장이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후원자가 되면서 초고속 승진을 했습니다. 52세이던 1942년에는 소장과 중장을 한꺼번에 달고 1943년에는 대장이 되었고 1944년에는 자신의 상관이었던 10살 많은 맥아더와 함께 별 5개의 원수로 승진했습니다.
인생에서 좋은 후원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목회에 성공한 목회자들을 보면 대개 좋은 목회자 후견인이나 평신도 후원자가 있었습니다. 현재의 모습이 초라해도 아이젠하워처럼 포기하지 마십시오. 열심히 자신을 준비시키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찬란한 비전을 이룰 좋은 동역자와 후원자를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서로 후원해주십시오. 기도하는 모세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되지 말고 모세의 팔을 받쳐주던 아론과 훌처럼 같이 기도해주는 존재가 되십시오. 배우자나 자녀가 실망스러워도 원칙적으로 ‘힘을 빼는 판단자’가 되기보다 ‘힘을 주는 후원자’가 되십시오. 남을 밟고 희망을 좇는(추구하는) 것은 희망을 쫓는(쫓아내는) 것입니다. 타인을 조용히 후원하며 헌신해야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입니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
사도 바울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동역자들의 후원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로마 교회는 그가 직접 개척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영향력 하에서 생긴 여러 작은 가정교회들로 이뤄졌습니다. 그 교회들은 사도 바울의 사역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로마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서 로마 교회가 어떤 교회였는지 대략 알 수 있습니다.
1. 선교하는 교회
에배네도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아시아의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 얻은 최초의 이방인 신자였습니다(5절). 왜 그가 아시아에서 유럽의 로마에까지 왔습니까? 당시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복음을 전하겠다고 대륙을 넘어 선교 사명을 품고 온 것입니다.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복음 전파에 헌신하니까 사도 바울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로마 교인들도 그를 통해 선교마인드를 도전받아 로마 교회는 복음과 물질을 나눠주는 선교하는 교회였을 것입니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영혼 구원과 성숙이란 ‘영혼 변화’에 두십시오. 교회도 영혼 변화를 위한 진지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이 영혼 변화를 위한 풀타임 목사나 선교사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가 가진 시간과 물질과 지위와 재능으로 영혼 변화에 활용하고 목사나 선교사를 잘 뒷받침하는 것도 중요한 선교입니다. 모든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고 모든 성도는 선교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교회성장에 크게 집착하지 않고 큰 교회가 부럽지도 않지만 영혼을 구원하고 변화시킨 사람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데 하나님께서 나만이 특징적으로 할 수 있는 어떤 일을 주심으로 큰 기쁨과 보람을 얻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그때를 기다리며 준비했습니다.
마침내 2000년부터 그 돌파구가 온라인 말씀사역으로 열렸고 2008년부터는 <온새기(온라인 새벽기도)>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고 2014년부터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월새기 영어판>을 통한 영혼구원과 세계선교의 비전을 향해 준비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비전은 저 혼자 이루지 못합니다. 기도와 물질과 인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비전의 동역후원자가 되면 세계선교도 멋지게 이뤄지고 자신에게도 기쁨과 보람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선교하는 교회와 선교하는 성도의 비전을 가지십시오.
2. 헌신적인 교회
신약성경에는 마리아란 이름을 가진 여인이 7명 나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믿음이 좋은 여인들이었습니다. 본문 6절에 나오는 마리아도 로마 교회를 위해 많이 수고했던 헌신적인 여인이었습니다. 본문 12절에 나오는 드루배나와 드루보사는 이름의 어근이 같은 것을 볼 때 쌍둥이 자매였을 것입니다. 그 이름은 귀족들이 많이 사용한 이름으로서 그들은 귀족 가문의 자매로 추정됩니다. 바울은 그들이 주 안에서 수고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들은 귀족의 부유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교회를 위해 열심히 헌신했습니다.
버시란 이름은 ‘페르시아 여인’이란 뜻인데 페르시아 출신의 해방된 여종으로서 주님을 위해 많이 수고해서 교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나이든 독신녀로 추정됩니다. 그처럼 로마 교회에는 신분을 떠나 하나님과 교회를 헌신적으로 사랑했던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헌신적인 믿음과 사랑으로 점차 선한 영향력을 넓혀서 극심한 핍박을 이겨냈고 나중에는 황제도 변화시키고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헌신하는 만큼 축복하십니다. 인간사회에서도 헌신하는 사람이 자리나 위치나 축복에서 앞서게 됩니다.
3. 하나 되는 교회
본문 7절에 나오는 안드로니와 유니아는 사도 바울보다 먼저 회심했던 교회 초기 멤버로서 사도들의 존중을 받았지만 결코 교만하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8절에 나오는 암블리아는 황제 가문에 속한 성도였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란 다정한 표현을 쓴 것은 그에 대한 애정이 컸음을 보여줍니다. 사랑받는 사람 중에 교만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을 볼 때 암블리아는 자신의 높은 신분을 자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처럼 신분이 높았어도 겸손한 성도들이 많았기에 로마 교회는 하나가 되어 선한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본문 9절에 나오는 우르바노란 이름은 노예가 많이 쓰는 이름으로서 그는 노예였을 것입니다. 반면에 스다구란 이름은 귀족의 비문에 나오는 것으로 볼 때 황제의 가문에 속한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그처럼 로마 교회는 노예와 황실 사람들이 믿음 안에서 서로 빈부귀천이 없이 어울려 하나가 된 교회였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이 노예인 우르바노를 ‘우리의 동역자’라고 높여 표현한 것도 로마 교회가 차별이 없는 교회였음을 잘 보여줍니다.
교회가 하나 되려면 연약한 사람을 차별 없이 높여줄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어려울 때 연약한 사람과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을 잘 붙들어주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견고한 믿음을 주었습니까? 믿음이 약한 사람을 도우라는 뜻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교회에 먼저 오게 하셨습니까? 나중에 온 사람을 힘써 돌봐주고 양보하라는 뜻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물질을 주셨을까요? 선교와 구제에 더욱 힘쓰라는 뜻입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하나가 되기를 힘쓸 때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자기에게도 힘과 기쁨과 축복이 될 것입니다.
4. 작은 가정 교회
사도 바울은 시련을 극복한 믿음으로 인정받고 교회의 신임도 컸던 아벨레에게 문안인사를 했고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도 문안인사를 했습니다(10절). 아리스도불로는 헤롯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Agrippa) 왕의 형제로서 로마에 살면서 로마 황제 클라우디오의 친구 및 추종자로 살았습니다. 그는 교인은 아니었지만 그가 죽은 후 그의 가족 일부와 일꾼과 노예가 작은 가정 교회를 이뤄 예배를 드렸습니다.
본문 11절에 나오는 헤로디온은 헤롯 가문에 속한 유대계 교인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나깃수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노예로 있다가 해방된 교활한 부자로서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 때 권력자로 있다가 네로가 즉위한 직후 처형되었습니다. 그가 죽자 그의 재산과 노예들은 황제의 소유가 되었는데 황제 가문의 다른 노예와 구별하려고 ‘나깃수의 가족’으로 불렸습니다. 나깃수는 믿지 않았지만 그의 가족 일부와 노예들은 믿고 작은 가정 교회를 이뤘습니다.
본문 14절에 언급된 사람들은 아순그리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가정교회 구성원들이고 본문 15절에 언급된 사람들은 빌롤로고를 중심으로 형성된 가정교회 구성원들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노예나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로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그처럼 당시 로마에는 여러 작은 가정 교회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교회의 대형화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님을 암시합니다. 교회는 너무 커지면 교회의 본질을 잃기 쉽습니다.
큰 군중 교회는 비전 참여자와 방관자가 2대 8의 비율이어서 형식적으로 다니면서 긴밀한 교제에서 멀어져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작은 가정 교회는 비전 참여자와 방관자가 8대 2의 비율이어서 대부분의 성도들이 끈끈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인생을 방관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인생낭비가 되는지 모릅니다. 특히 교회에서 방관자로 지낸다는 것은 더욱 큰 인생낭비입니다. 책임적인 헌신과 봉사도 하고 비전을 함께 나누는 비전 동역자가 되려면 교회는 원칙적으로 작은 가정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5. 문안하는 교회
본문 13절에서 바울이 루포를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 언급한 것은 ‘특별히 구별된 자’란 뜻입니다. 그는 아버지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 일로 로마 교인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입은 자로 잘 알려졌을 것입니다.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인 구레네 시몬의 아내를 자기 어머니처럼 여겼습니다. 바울이 회심하고 가족들을 떠나 외롭게 지내며 잠시 루포의 집에 거했을 때 자기를 친아들처럼 돌봐주었기에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처럼 여겼을 것입니다. 그 가정의 위로와 사랑이 사도 바울의 삶과 사역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습니까?
본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문안하라!”는 말은 “평안과 축복을 빌어주라!”는 말입니다. 서로 위로해주고 축복해주고 평안을 빌어주십시오. 사람의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믿는 사람의 가능성은 더욱 무한합니다. 복음이 사악했던 나깃수의 가정까지 변화시킨 것은 복음의 힘을 잘 보여줍니다.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분과 가문이나 과거의 전력에 관계없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는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출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힘써 위로해주고 축복해주십시오.
이단 교주와 참된 목자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입니까? 이단 교주는 영혼에 두려움을 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영혼에 두려움을 심는 작업이 성공하면 영혼 통제가 쉬워지고 자기 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단 교주는 혼령, 귀신, 종말, 심판, 지옥, 전쟁, 예언, 계시 등의 얘기로 영혼에 두려움을 심은 후 자기가 그 두려움을 없애줄 백기사처럼 선전합니다. 반면에 참된 목자는 두려움을 처음부터 덜어주기에 애쓰고 종말과 심판 등의 얘기를 해도 그 다음에는 진심으로 평안을 빌어주고 축복해주고 미래의 약속을 상기시켜 용기를 줍니다.
얼마 전에 한 사람이 옛날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수선했습니다. 새 옷을 2번이나 수선했는데 잘못되어서 다시 옛날 옷을 도로 찾아서 입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신비주의자가 말했습니다. “집사님! 옛날 옷이 버림받는 것이 서러워서 그 옷의 악령이 당신을 붙잡고 있네요!” 그런 식으로 겁을 덜컥 주고 악령을 쫓아낸다고 구마의식, 축사의식, 퇴치의식을 하는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일이 생길 때마다 악령 얘기를 하면서 스스로도 마치고 듣는 사람들도 미치게 하는 종교인들의 작업에 미혹되지 말고 마음을 빼앗기지도 마십시오.
사이비종교인이 영혼을 사로잡으려고 의도적으로 불어넣은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왕이나 대통령이나 판사도 꼭두각시 영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른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 사람은 어떤 악령도 자신을 해할 수 없음을 굳게 믿고 어둔 밤에 무덤이 있는 산길을 지나는 경우에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흑암 중에도 평안함을 잃지 않는 모습은 참된 성도의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입니다. 두려움을 자꾸 심으려는 사람을 멀리하고 평안을 빌어주는 사람을 가까이하십시오.
< 끝까지 충성하십시오 >
인생에서 좋은 교회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좋은 교회에서 서로 겸손히 섬겨주고 축복해주면 엄청난 일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오래 하면 때로는 교회와 교우에게 실망스러운 점도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큰 해를 끼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에 대해 너무 쉽게 실망하지 마십시오. 충성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면 하나님의 남다른 축복도 준비될 것입니다.
세상은 능력 있는 사람보다 충성하는 사람에 의해 아름다워집니다. 충성을 판가름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첫째, “오래 충성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둘째, “작은 일에도 충성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직분을 내려놓아도 충성해야 합니다. 셋째, “어려운 때 충성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충성하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때 충성하는 것이 진짜 충성입니다. 인생 승리의 비결은 간단합니다. 인내하고 충성하는 믿음이 인생 승리의 비결입니다.
바바라 월터스란 미국의 유명한 앵커우먼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이혼한 후 성공적인 재혼을 위해 남편 대상을 신중히 물색하며 컴퓨터에 자기 적성을 비롯한 모든 자료를 넣고 남편감 후보를 뽑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가장 좋은 남편 후보감은 바로 전 남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2대 신적기관인 가정과 교회에서는 환경을 바꿔도 소용없을 때가 많습니다. 사회에서도 기본적으로 인내해야 축복의 열매를 얻습니다. 타인의 변화보다 자신의 변화를 우선함으로 좋은 교회를 이뤄내는 좋은 성도가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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