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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9: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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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9장 9절: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 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 마태를 부르심.
예수님께서 마태를 부르시니 이유 없이, 항변 없이 즉시 그 말씀에 순종하여 따랐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불렀기에 마태는 순종하여 따랐을까요?
① 길목거리에서 세금 받는 것을 예수님께서 지나가면서 불렀는지?
②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서 불렀는지?
③ 사무실 밖에서 손짓, 아니면 눈짓으로 불렀는지?
④ 아니면 텔레파시로 불렀는지?
누군 줄 알고 부른다고 나가며, 따라 오란다고 끄덕끄덕 따라갈 수 있느냐?
과연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방, 특히 가버나움에서 역사를 하셨으니 마태가 소문을 들었거나, 가서 보았거나, 마음으로 사모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즉시 따를 리가 만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을 아시는지라 마태를 부르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마태는 세리입니다. 세리는 세금을 받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이 세금을 받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 당시 때도 싫어하는 유대인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리 세금을 많이 거두었더라도 유대나라는 로마의 속국인지라 그 세금은 전부 이방나라 로마로 옮겨져 로마황제를 위해서 쓰여집니다.
마태는 ‘누가 얼마를 내었고, 누가 세금을 안 내었고’ 하는 계산이 바쁩니다. 이런 마태를 왜 불렀느냐? 예수 당신을 위해서 불렀느냐, 마태를 위해서 불렀느냐? 마태가 돈이 많고 인물이 좋고 쓸모가 많아서 불러낸 것은 아닙니다.
마태가 로마황제 밑에서 그 직장에 충성할수록 선민 이스라엘이 피와 땀을 흘려 낸 그 세금이 어디에 쓰여지겠느냐? 사망운동에 쓰여집니다. 그리고 마태 자기의 궁극적 구원이 어떻게 되겠느냐? 마태는 그것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내가 무슨 운동에, 어떤 운동에 충성봉사하고 있느냐, 어떤 목적으로 살고 있느냐를 필히 심사를 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모르면 사망운동에 충성봉사하게 됩니다. 지나가시다가 불렀으니 인간 편에서 볼 때 만일 예수님의 그 부르심을 마태가 소홀히 여겼더라면 영원히 후회할뻔 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 부름을 등한시하고 우습게 여기고 중요치 않게 여겼더라면 영원히 후회를 할뻔 했습니다. 거짓 것들에게 불리워 갔더라면 어찌 되었겠느냐? 그러나 마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참말로 복중에 복입니다.
다 같은 이스라엘이지마는 일반 이스라엘이 있고, 바리새인과 같은 이스라엘이 있고, 사두개인 같은 이스라엘이 있고, 바리새인 중에 이스라엘이 있듯이 지금 예수 믿는 기독교인들도 일반 기독교인들이 있고 이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이 있고, 특수 기독교인들이 있고 특수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진리의 신앙노선으로 믿는 자들은 참 복된 자들입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는 어느 곳으로 지나가시던 하나님의 예정된 택자는 건지시고, 더 나아가서 일반 기독교인으로 살기를 원치 않으시고 특수한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셔서 특수한 진리의 신앙사상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9장 9절~11절: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바리새인들이 보는 죄인은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는 이방민족과 세금을 받는 세리들로 보았고 그들을 미워했고, 그리고 자기들처럼 율법을 엄숙하게 지키지 않는 자들이나, 장로들의 전통과 유전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죄인 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인은 선악과를 따먹고 저주받은 자들,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도 궁극적 성화구원을 이루고 있지 않는 자들을 통틀어서 말함입니다.
지금도 기독교인들 중에는 바리새교인들처럼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1. 교회 밖의 사람들을 죄인으로 여깁니다.
자기들은 하나님 말씀 따라서 예배의식을 지키고 일반 도덕적으로 선행을 하지 불신자들처럼 일반적으로 악한 일들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좋은 말만 가르치지 나쁘게 가르치나? 하지만 일반기준을 가지고 가르칩니다. 일반기준으로 보는 죄를 말합니다.
성경은 일반기준으로 보는 죄보다도 하나님께서 보는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악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사는 말하지 않고 자기 의사, 뜻에다가 성경구절을 붙이니 말입니다.
일반 도덕성적 기준에다 성경구절을 붙이니 얼른 들어서는 잘 모릅니다. 분별을 못하면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모르면 영원히 틀려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인간 타락된 기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고 있으니 이것이 악입니다.
2. 예배의식입니다.
그들의 의는 예배의식을 지켰느냐, 못 지켰느냐 입니다. 문제는 속 사람이 바꾸어져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회칠한 담 같고 평토장한 무덤 같다고 지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원 목적성은 가견적인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로마로부터 해방되는 것,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세계화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하나의 종교인을 만들고, 종교로 세계부흥을 만들자고 온 것은 아닙니다. 타락적이며 육적이며 물질적이며 임시적인 목적으로 사는 이 사람을 내적으로 질적으로 바꾸는 운동입니다. 천국으로 영원으로 질적으로 정신 사상을 소원 목적적인 삶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주님의 온전한 인격의 사람으로 바꾸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일반개념, 일반소원 목적으로 성경을 가지고 선악과를 먹이는 거짓 교회가 많은 것입니다.
9장 12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의원들이 많습니다. 동물의 병을 고치는 의원, 새들의 병을 고치는 의원, 사람의 신체의 병을 고치는 의원. 신체마다 부위마다 고치는 전문적 의원들, 사람의 심리상태를 보는 전문적 의원들 등 여러 종류의 의원들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사람의 영적 상태를 볼 줄 아는 의원들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십니다.
세상의 의원들은 영적인 측면에서 병들어 있거나, 그 영은 죽어 있거나 하는 그런 의원들이 많습니다. 기본구원을 얻어야 할 자들도 있고, 성화구원 면에서도 병들어 있는 자가 얼마든지 많이 있고, 세상풍속 습관에 찌들어 있고, 성질적인 면에서도 얼마든지 고칠 것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잘 받는다든지, 참지 못한다든지 하는 이것도 다 병적인 상태입니다.
하나의 기독교 종교인으로서 종교의식을 지킨다고 해서 그것이 사람이 다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내적인 면, 인격 면, 사상 면이 고쳐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이 영적 인격 면에서 온전자로 고쳐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바리새교인들은 율법이 가르치는 대로 의식을 다 지켰고, 그래서 의인이라고 예수님 앞에서도 자부를 했던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완전히 병들어 썩어 뭉그러지고 있는데도 전혀 모르고 얼마나 도도해졌는지!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세상기준, 불신기준 그대로 갖고나 있지는 않은지? 만일 세상기준으로 되어 있으면 자기는 고칠 것이 없는 양 다른 사람만 자꾸 쳐다보고 다른 사람만 지적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자기가 말씀 깨닫는 면은 별로 마음은 없고, 모르고 자꾸만 충성봉사하는 면으로만 생각이 가고, 믿음이 안 자라고, 신앙이 안 자라고 있다면 그 원인을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9장 13절: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너희는 가서 배우라’
무엇을? 긍휼을 배우라!
긍휼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사람이 긍휼을 배우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긍휼인데 주님을 바로 알고 바로 배우는 것이 축복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는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축복의 사람으로 바로 되는 주님을 배우지 않고 오늘날 제사를 강조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물질을 어떻게 어떻게 바쳐라.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하는 이것은 다 제사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제사강조에는 긍휼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니 주님과 같은 축복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하나의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척도에 맞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척도에서 보는 죄인을 부르러 온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고 역사를 하시는데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교회에서 하라는 것 다 잘 하고, 종교생활을 잘 하고 있다. 더 충성봉사를 잘 해야지’ 하는 사람을 주님이 진리와 생명역사로 부르시지 않으나 ‘나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바로 살아볼까’ 하는 사람에게는 진리와 생명역사로 주님께서는 지금도 그런 사람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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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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