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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후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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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종수 목사 |
참고 : | 2017. 3. 19 주일 밤 |
성경 : 고후1:17
제목 : 깨닫는 것과 순종
고후1: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아멘.
예수 믿으니까 천국은 가겠지요, 이렇게 말 할 때 이것을 신앙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생구원이 지상에 살 때는 확신할 수 없는 일인가? 영생하기 위한 부활의 몸은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영생 가능성을 분명히 역사적으로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확신하는 게 옳습니다. 알지 못하고 믿는다는 것은 미신입니다(행17:23).
믿는다는 말과 순종한다는 말의 차이를 알기 위해 [깨닫는 것과 순종]이란 주제로 믿음을 상고하려 합니다.
1. 구원은 확신(깨닫는 것) 되어야
개인의 어떤 신비적인 경험이나 감정적으로 확신되는 것이 구원을 확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언약을 믿음으로, 성령감화로 확신케 하는 겁니다.
1)구원은 깨달아 확신하는 것
개인의 영생구원은 죽기 전에 깨닫고 확신됩니다.
막7: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막8: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눅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신1:5 ‘모세가 요단 저쪽 모압 땅에서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느8: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구원의 확신은 굳은 의지로 믿는다기 보다 귀가 열리고 눈이 열려 깨달아 확신하는 것입니다. 신비롭게 하늘로부터 오는 지식입니다.
마16:16-17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요6: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요1:12-13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마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성령께서 이 구원의 언약을 성취하실 때 감동
구원의 방법은 예수 믿는 것인데 이를 가능케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언약을 성령께서 성취)
성령께서 성도에게 내주하시기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묻습니다.
고후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엡1:17-19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리고 문화생활에 대한 여러 교훈과 국가에 대해 또는 세금이나 이웃 가운데 정직한 삶에 대한 교훈 등은 이해되어야 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2. 순종은 다 못 깨달아도 신뢰를 가지고 행함
예수님의 대속하심을 믿어 죄를 사함 받는 것은 믿는 것이고 그 교훈대로 살아가며 신앙으로 승리하겠다는 처세는 순종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순종은 적어도 어린아이가 어른을 순종하듯이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를 때에도 아버지의 말씀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며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마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명시하신 말씀마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치 않겠다는 뜻입니다.
20세기 말에 신학적인 사유의 가장 큰 시험은 우리의 경험적 지식에 맞춰 성경을 믿겠다 하다가 오히려 아무런 하나님의 역사를 얻지 못하고 유렵에서부터 시작해 교회가 세속화 되고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고후13: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성경은 아직도 사람의 견해로 알 수 없는 것들로 충만합니다. 2천년을 연구해오고 있어도 다 알지는 못합니다. 창조의 기원과 유지, 그리고 선의로 역사하시는 목적과 섭리 등은 모두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이 내막을 사람이 일일이 알 수도 없고 알 길이 없습니다.
롬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심지어 알려고 하지 않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예수 재림 날짜의 경우입니다. 행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마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과 친척을 떠나 하나님이 가자하시는 말씀을 따를 때,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이스라엘 출애굽하여 광야 40년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큰 여리고성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매일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날에는 7바퀴 도는데 맨 나중에는 함성을 질러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식의 전쟁은 없습니다. 그런데 순종하며 돌았더니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순종의 결과였습니다.
시107:30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은 행동해보고 난 뒤 깨닫는 수가 많습니다.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주일성수, 십일조생활 등은 행동 후에 하나님의 뜻이 주석되는 것들입니다. 행해보지 않고는 그 뜻과 역사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천국도 기다림의 나라입니다. 믿고 확신하지만 실체는 아직 미경험의 나라입니다. 약간의 감동은 이 세상에서도 할 수야 있지만 그것도 모두가 다 그러한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순종하므로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것이며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다 못 깨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므로 순종하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이것은 미신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생각대로 오해하려 하다가 유럽교회가 망하고 한국교회도 지금 그러고 있습니다. 예, 예 하고 순종하던 시절이 지나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하나님은 말씀을 따라 순종하므로 살려고 하는 자들을 기뻐하시고 은총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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