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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왜 믿어야 하는가? (마19:26)
설교 : 유병의 목사
예수님의 사역을 세 가지로 분류하면 첫째는 전파하시는 일이요, 둘째로는 가르치시는 일, 그리고 셋째는 치유하시는 일입니다. 이모든 사역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든 진리를 가르치시던 수 없이 많이 기적을 나타내신 목적은 인간들로 하여금 믿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누구나 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이 보다 중요한 것은 바른 믿음입니다.
강남에 어떤 목사님의 서재 실에 난데없이 한 젊은이가 찾아왔습니다.
“ 목사님, 제가 기도원에서 한 달간 기도하고 내려왔습니다. 제가 지금 개척교회를 하려는데 1억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찾아가면 주실 것이라고 해서 왔습니다.” 목사님은 “당신에게 그렇게 계시하셨다면 나에게도 같은 계시를 해야 할 텐데 나는 그러한 계시를 받지 못했습니다. ” 그랬더니 이 젊은이가 “이 목사님 믿음이 형편없네요.” 그러고 돌아가더랍니다. 도대체 누구의 믿음이 형편이 없는 믿음인가요?
잘못된 지식은 무식만 못하듯이 잘못된 믿음을 불신앙보다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바른 믿음은 믿음의 바른 동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 바른 동기는 무엇입니까? 왜 예수를 믿느냐하는 것입니다.
(마19:26)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예수를 왜 믿어야 합니까? 사람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 인간의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의 힘은 실로 대단하기도 합니다. 씨름 장사의 체력과 정신력을 보기도 합니다. 재력 곧 물질의 힘도 막강합니다. 권력의 힘이 막강하지만 이 권력도 대개는 물질이나 돈 앞에는 거의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무한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인간능력의 한계를 인정할 때에 비로소 예수 앞에 나옵니다.
○과수원에 정전/ 예야 돈만 있으면 불도 켠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 아들이 대학을 들어갔지만 졸업을 하지 못한다. 돈을 버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산업전선에 뛰어 들어가 꽤 성공을 한다. 그는 평생 돈이면 다 된다는 원칙 속에 산다. 그런데 몇 해 전에 그 아버지는 말하였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있더라. 그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그것은 자식입니다. 하루에 2 천만 원을 쓰고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른바 오렌지 족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돈을 주지 않으면 칼로 찔러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가정을 세울 수 없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무엇이든지 다 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때 주님 앞에 나올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 헌신을 결단할 때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을 때입니다.
아마도 그날 그가 고기를 많이 잡았다면 예수를 만나지 못하였지도 모릅니다.
아기가 왜 엄마에게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의 인생을 맡기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인간의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한다고 해서 다 예수를 믿는 것은 아닙니다.
2. 인간의 생명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가 믿음으로 갈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안 됩니다.
전에 능력의 한계를 느꼈던 사람이 이제 주님 앞에 능력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과 멀어지기 시작하기도 합니다.
●눅17장에 열명의 문둥병자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함께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주님께 나왔습니다. 그들은 부정한 사람들이어서 민간에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 소리치며 나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기에 능력을 사모하며 주님께 나온 것입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한명을 제외하고 9명은 그냥 가버렸습니다. 능력의 한계를 알 때 믿음을 갖게 되지만 그 믿음이 성숙하려면 생명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 어떤 젊은이가 지방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가기위해 인천공항으로 달리다 교통사고가 났다 신랑신부는 물론 함께 탔던 친구들까지 현장에서 즉사하였다 부모들은 결혼식이 끝나고 집에도 돌아오기 전이다. 결혼식에 쓰던 음식이 몇 시간 후에 초상집 음식이 되고 말았다. 인생이 무엇인지 똑바로 아는 사람이 신앙을 갖게 되고 신앙이 성숙한다.
● 에노스(창4:26)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3. 인간의 의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능력의 한계가 있고 생명의 한계가 있음을 안다면 다 예수를 믿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모르고 인간의 생명의 한계를 몰라서 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안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종교도 다 사후의 세계를 약속하는데 구태여 예수를 믿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 데는 한 가지 동기가 더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義의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스스로 완전한 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사회학자이며 신학자인 ‘토니 캄폴로’ 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모든 사람은 죽을 때 자기가 못다 이룬 업적을 후회하면서 죽지 않고 대부분 바르게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죽는다.”
제가 목회하면서 죽어가는 사람도 많이 지켜보았지만 죽어가면서 ‘그때 이억을 더 벌수 있었는데’ 하면서 후회하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 죄송해요. 목사님께 큰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집사로 장로로 권사로 교회에 충성하지 못했습니다.” 잘못한 한 것을 후회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이요. 자신이 스스로 완전한 의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 임박해질수록 더욱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통감할 때 비로소 인간은 예수님 앞에 나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이는 나의 생각으로 지은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셨습니다. 이는 나의 손을 행한 죄 때문이요 안 갈대를 간 나의 죄 때문입니다. 주님은 옆구리를 찔리셨습니다. 이는 나의 몸으로 지은 죄를 인하여서입니다. 주님은 심장이 터졌습니다. 나의 마음으로 지은 죄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의 죄를 대속해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죽으신 분은 공자도 석가도 아니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누가 이 예수님 앞에 나갈까요?
나의 의로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뿐입니다. 사람은 능력에 한계, 생명에도 한계, 인간의 의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앞에 나옵니다. 이러한 동기에서만이 온전히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왜 믿으시나요?
"나의 달려갈 길과 주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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