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역자 : 아브라함 카이퍼/정성구  | 출판사 : 크리스천다이제스트
판매가 : 20,000원18,000원 (10.0%, 2,000↓)
이 책은 카이퍼가 시편 73편 28절의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구절을 중심으로 명상한 경건 묵상록이다.이 책은 카이퍼가 설교와 강연에서 나타낸 그의 사상을 명상록 형태로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쓰여진 명저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의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인생과 세계에 대한 눈을 뜨게 할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을 제공해 준다. 아마 이것은 카이퍼의 성경 명상 자료 중 가장 대표적인 저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가.  보스턴의 에드워드 에버레트 목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책은 내게 신앙에 있어서 말할 수 없는 귀중한 한 가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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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챕트를 서너줄 정도로 짤막하게 요약했습니다.


저자 서문/아브라함 카이퍼


1.하나님께 가까이
하나님께 가까이 한다함은 그분께 아주 근접함으로 여러분의 눈이 보고 마음으로 깨달으며 자신의 귀로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러함으로 모든 분리의 요인들이 제거되는 것이다. 그것은 둘 중의 한 방법, 즉 여러분 자신이 마치 하늘로 끌려 올라가는 듯이 느끼거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여러분에게 특별한 고난을 안겨주는 고독한 중에, 또는 여러분에게 기쁨을 만끽하게 하는 가운데 함께 교제하는 것이다.


2.내가 만든 영혼들
신앙이 확고한 사람에게 있어서 ‘내가 지은 영혼들’(사57:16)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하나님께서 만드신 영혼을 향한 분노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유익한 자극은 죄로 인해서 끊임없이 영혼을 망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영혼을 사랑하며 그것을 아껴주려는 것이다.


3.하나님께 대해 부요치 않음
만일 여러분이 진실로 하나님께 복종하면, 돈이 여러분에게 지배를 받게 되며 돈이 여러분을 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만일 여러분이 물질에 치명적 영향력과 매력적인 힘에 대해서 자기 변호를 하려 한다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게 되며, 스스로 물질적 세력 안에서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주인이라 생각하게 된다.


4. 주의 날개 안에
우리의 신앙적 삶을 좌우하는 가장 깊은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어떻게 교제하느냐 하는 것이다. 아주 친한 두 사람이 함께 인생의 고난을 겪으며 서로 허물없이 대화하며 상호간의 비밀들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에 대해서 구약성경은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이것을 ‘주의 날개 안에 거한다’고 표현했다.


5.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실 때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왜 오랫동안 지체하시다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가? 큰소리를 내어 또박또박 기도하지 않고 조그만 소리로 속삭이고 분명치 않게 더듬더듬 드려진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가? 왜 기도의 응답이 지체되는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자신에게 여유를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겉으로 보기에는 무관심한 것 같지만 시련을 통해서 기도의 성장을 이루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마침내 기도의 분량이 채워지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보여 주신다.


6.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주여 내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성령의 내적 사역이 많을수록 우리와 하나님과의 거리는 없어진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가까이 계시는 성령의 임재를 느끼게 되고,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상대방의 귀에 들리는 것처럼 그것은 친밀한 속삭임으로 들린다. 하나님과의 의사소통, 즉 교제는 우리의 삶을 성화시켜주고 보호하는 능력이다.


7. 나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일반적으로 어린 아이는 칭찬은 쉽게 받아들이고 달콤하게 간직한다. 그러나 잘못을 지적받게 될 경우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불쾌하게 여기며 무시해 버린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받아들인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전 일생을 통하여 자아에 관한 자의식을 가르치신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신앙적으로 어른이 될 수 없다.


8.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나의 창조주 하나님
우리 인생에 있어 밤은 신비이며 미지의 문제로 남겨져 있다. 밤에는 생각, 느낌, 의지작용, 활동 모든 것이 정지상태로 들어간다. 이 삶의 절대 정지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외부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 잠이 들기 때문이다. 이때,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인식할 수 있다. 그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주 위대하신 분으로 인식된다.


9. 나는 부르짖으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반응이 없다! 우리가 아주 곤란할 때에 도움을 청하고 기다렸으나 여전히 회답이 오지 않을 때 희망이 변하여 절망에 빠지게 된다. 한동안 영혼이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하다가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게 될 때, 이 은밀한 교제는 한층 더 가깝고 부드러운 축복이 넘치게 되며, 영혼은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헤엄치게 된다.


10.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함으로 가장 고상한 의미에서 자신을 나타내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면전에서 그분과 만날 수 있는 특권 이외에 하나님과의 교제를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없다.


11. 유일한 것
여러분의 영혼은 여러분 자신의 유일한 것이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치될 수 없다. 만일 잃어버리게 되면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아주 진지하게 우리에게 경고하신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12:4-5)


12.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을 좇아 인간을 지으심

참된 경건은 하나님의 위엄의 빛을 받고 꽃이 핀다. 그것은 하나님의 뜨거운 열기를 쬐고 자라며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로 목을 축인다. 이리하여 마침내 사람이 자기의 형제에 대해서 잘 알듯이 하나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잘 알게 되며 주의 장막 안에 그 영혼이 거하게 되고 그의 심령 성전 안에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내주하게 되는 것이다.


13.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현대에 증가 추세를 보이는 새로운 우상숭배는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신약시대의 사도들이 경계했던 우상 숭배와 전혀 다르다. 즉, 요즈음의 우상숭배는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을 숭배한다. 현대의 우상숭배는 휴머니티를 표방하고, 예술에 열성을 보이며, 고상한 삶의 형식에 대한 사랑과 충동을 느끼거나, 감각적인 쾌락과 부를 추구하거나 정열적인 자극을 좇는다. 즉 하나님을 원치 않는 모든 것이 우상숭배이다.


14. 하나님은 나의 태양
하나님을 해와 비교하는 것이 우리에게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우리는 태양을 어떤 신의 형상으로 숭배해야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태양은 자연과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만약 태양이 없다면 지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을 해로 비유하는 상상은 특히 햇빛이 온 세상 곳곳에 스며들 듯이 하나님의 숨겨져 있는 능력이 우리의 내적 자아에 스며드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15. 주의 날개 밑에
날개를 펴서 자기의 새끼가 아닌, 아무것이나 그 날개 죽지에 품으려는 어미닭은 없다. 어미닭은 자신이 부화시킨 자기 새끼를 알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병아리는 어미닭에게서 도움과 보호를 받는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 마땅히 거할 곳에 있는 사람은 환난 날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늘 아래에서 밤을 완전히 지나게 될 것이다.


16. 바람이 불 때
주 하나님께서는 매일 우리를 찾아오신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는 우리의 관심을 모으며 또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설득하시려는 하나님의 음성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기를 진동시키며 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분을 스쳐 지나가 여러분을 일깨우지 않은 나날은 헛된 것이다.


17. 하나님께서 발자취를 한정하심
불신자들은 대놓고 신앙에 대해서 조롱은 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갑자기 중한 병에 걸리게 되거나 재난을 당하게 되면 “오 하나님이여, 오 하나님이여” 그들은 갑자기 자신들이 오랫동안 무시해 왔던 하나님의 두렵고 알 수 없는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두려움에 떨게 된다.


18. 나의 방패
‘하나님은 나의 방패’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먼 곳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뜻이나 우리 쪽에서는 전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뜻이 아니다. 싸움을 할 때에 방패를 잡은 손은 스스로 방패를 어떻게 움직여야 칼을 막을 수 있는지를 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가까이 계시고 우리의 신앙이 그분을 붙들고 있다.


19. 임마누엘
임마누엘은 예수로 시작하였으나 하나님 자신이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는 사실로 끝난다. 임마누엘은 우리와 하나님을 화목케 했으므로 우리가 감히 다시 그분께 갈 수 있다. 동시에 사람의 본성을 취하신 신성은 우리가 다시 그분께 가까이 가게 해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분의 말씀, 그분의 생각을 드러내 주는 이 세상, 주님의 사역의 결과 우리에게 주어진 영생, 내적으로 우리를 새롭게 해주는 천국 능력의 공급인 것이다.


20. 주의 얼굴 빛에
얼굴 빛과 마음 상태 사이에는 서로 관련이 있다. 기쁠 때는 얼굴빛이 환해지고, 슬플 때는 얼굴 표정에 침침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비탄에 잠겨 있을 때는 얼굴 빛 자체가 어두워지게 된다. 하나님을 발견한 영혼, 이러한 발견 속에 행복을 느끼면서 은혜스럽고 조용하게 하나님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영혼은 부드럽게 물결치며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주는 하나님의 얼굴 빛을 발견하게 된다.


21. 주의 종을 찾으소서
한번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후 그것을 얕보고 마음대로 방종하다가 다시 그것을 얻으려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았다가 저버린 사람은 스스로 그분을 발견하지 못한다. 마침내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길 잃은 양이 두려워하며 우는 것처럼 울부짖게 된다. “오, 하나님이여, 당신의 종을 찾으소서!”


22.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인격적으로 별로 고상하지 못하고 정욕적인 기질이 있는 사람과 계속적으로 사귀는 것은 여러분 자신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 반면에 보다 더 높은 도덕 규범을 따르며 보다 신중한 생각과 거룩한 생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과 매일 교제를 가지는 것은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여러분에게 있어서 훌륭한 수호신과 같다.


23.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하나님은 영이시다. 이 말은 여러분 인간 존재를 모든 보이는 세계 그 위로 들어 올리며 여러분의 정신을 눈으로 볼 수 없는 더 높은 영역, 즉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감히 근접할 수 없는 빛 가운데로 들어 올려준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께서 영이시라면 그분은 이 모든 보이는 세상과 무관하며, 그분은 신들이 생겨나기 전에 이미 존재하셨던 것이며, 물질적인 것이 전혀 창조되지 않았던 영원한 시간이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24. 하나님을 아는 지식
기도의 행위는 무엇이 거룩한가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거룩함(holiness)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우리 생명 안에 거룩함이 들어오게 하는 행위이다. 즉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영원히 살기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그 자체로서 영원한 다른 한 생명을 부여받기 위해서인 것이다.


25.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
초대 기독교는 후대의 기독교보다 훨씬 좋았다. 초대 교회 때 사도들의 설교와 찬양 그리고 성찬식 거행에는 얼마나 큰 기쁨이 있었는가. 그던데 후 시대의 형식적 예배는 얼마나 삭망하고 무감동적인가. 초기에는 생명이 강물같이 흘렀다. 그런데 후에는 모래 위에 가늘게 흘러가는 물줄기를 제외하고는 물이 말라버린 강바닥 밖에 없었다. 아, 교리에 치우친 종교생활이 신자들을 이렇게도 무력하게 만든 것이다.


26. 예수 안에 계신 하나님 형상
세상은 영적인 세상과 보이는 세상 두 가지가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눈에는 영혼의 눈과 육신의 눈 두 가지가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시각도 영으로 직접 보는 것과 육안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보는 두 가지가 있다. 따라서 주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보는 것은 ‘영혼의 눈으로써 영적으로 보는 것’을 뜻한다.


27. 온전히

주님께서는 마음을 다하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신자들은 마음의 일부분만으로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자신들은 참으로 경건하며 의롭다고 착각하면서, 자신들이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마음의 나머지 부분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8. 내가 주를 본 즉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여러분도 높은 소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당신의 전 인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거기서 보게 되는 것이다.

 

29.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의지 위주의 신앙자들이 열심히 행했으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지 못하였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또 행하려고 하는 사람만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게 된다.

 

30.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감

만일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면, 이러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실생활과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영생은 내세에 누리는 생명이 아니고 현재에 누리는 것임을 다시한번 상기하라. 영생은 저수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물의 근원인 깊은 샘에서 오는 것이다.

 

31. 잔잔한 물가에서

의지의 작용은 독립적인 것이거나 생명에 추가되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모든 동맥에서 고동하는 영혼 자체의 강한 충동인 것이다. 잔잔한 물가에서. 이 의지의 행동은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매일 조용히 계속될 것이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매 순간 그리고 모든 경우에 말이다.


32.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한 순교자가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 죽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때에, 그는 분명 자기 스스로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위해 죽기로 한 이 의지작용은 분명 그 자신의 행동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죽을 각오로 한 그 자아(ego)는 그의 본성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 그렇게 하도록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33.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중심으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존자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하신 분에 대한 인간의 추론과 그분에 대한 우리의 모든 담화는 단지 진리의 일부를 더듬거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34.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함으로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과 같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나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의 의지를 변화시키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더욱 더 잘 닮게 해주기 때문이다.


35. 내가 사랑한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사랑이 항상 중대한 의미를 가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 영혼 사이의 가장 고차원적인 사랑을 예표로 보여주신 때문이다.


36. 너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분리시키는 모든 것을 제거하며 우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위하여 사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피조물 중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것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것이다.


37. 다하여
기독교에서 건전한 신앙, 흠 잡을 데 없는 행동, 많은 선한 사업이 필요한 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기독교의 정수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복된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황금빛 찬란히 빛나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이러한 교제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38. 네 마음을 다하여
사랑은 인간의 영혼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안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로 온다. 우리 마음은 그것을 흡수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 마음을 통하여 인간 영혼 속으로 들어와 영혼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상호적인 사랑의 삶을 각성시킨다. 그리고는 다시 영혼에서 마음으로 들어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끔 만든다.


39. 네 목숨(영혼)을 다하여
‘네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아주 두려운 것이며 또한 아주 포괄적인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사랑에서 솟아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으로부터 전혀 생명력이 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40. 네 뜻을 다하여
학문이 아무리 완전하고 박식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따로 떼어놓고 그분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 되거나 그분을 부인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학문이 아니라 죄악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온 뜻을 다하여 우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큰 계명을 거슬렸기 때문이다.


41. 네 힘을 다하여
힘은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능력이다. 그것은 의지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능력, 자질, 수단과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 주어진 시간, 가진 힘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인 것이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 모든 능력들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책임감을 의식하며 우리가 그 능력들을 행사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으뜸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예수님은 명령하고 계신다.


42.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른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영생이다. 이 지식 자체가 영생이다. 이것은 아이가 어머니 아버지를 그냥 아는 것처럼, 중생을 통해 우리에게 그냥 오는 지식이다. 그것은 혈통을 통해, 즉 신적 유전을 통해 전해지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과 은밀히 동행하는 가운데서 꾸준히 증가하고, 기도 생활을 통해 원숙해지는 지식이다.


43.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자연으로부터 시작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에게 이르며, 최종적으로는 그리스도에게서 절정을 이룬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기 때문이다.(히3:1)


44. 둘째도 그와 같다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서 생명을 계시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신성하다. 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고 말씀하시고 나서, 주님은 이 큰 계명을 전혀 다른 계명으로 바꾸어서 말씀하신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며, 이 둘째 계명에 대해서 그것이 전적으로 첫째 계명과 같다고 선언하신다. 위엄이 있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자신의 이웃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이고 같은 계명인 것이다.


45.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신다. 그러나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께서 점점 더 분명하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의 휘장 뒤에서 그리고 그 휘장을 통해서 희미하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사람 속에서 좀 더 자신을 뚜렷하게 계시하신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골1:15) 그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지극히 선명하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46.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지적 훈련의 산물이 아니다.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빛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발견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나가는 작용들에 의해 하나님의 존재를 정말로 느끼지 않는 한,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가질 수 없다. 물론, 이 지식은 접촉하는 감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영적이고 직접적인 인식에 의해서 알 수 있다. 


47.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아버지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에만 내적 종교의 풍부함과 충만함이 다 드러난다. 왜냐하면 가족으로서 생활이 영위될 때,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가 시작되고, 마음을 털어놓는 일과 신뢰와 사랑으로 하나님을 굳게 붙드는 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48. 높은데 거하며 땅의 것들을 보는 자
높고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익한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내밀한 일을 알게 하시고, 피조물이 자기의 은밀한 영역으로 들어오도록 허락하시며, 하나님의 장막에 들어오도록 하시고, 피조물의 마음을 찾아가시고, 이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고 경배의 찬양을 드리는 자들만 이 놀라운 특권의 기쁨을 맛보도록 하시는 것은 은혜로, 순전히 은혜로 되는 일이다.


49.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여러분이 고난으로부터 구원 받을 것이냐 혹은 고난에 굴복하고 말 것이냐 하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고난에서 구원하신다면, 외적인 승리가 있다. 이런 외적인 승리는 사망과 역병, 비방과 분노, 사탄과 운명을 지배하시는 주님의 최고의 권세가 영광스럽게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때로 필요하다.


50.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자신의 죄에 대해 더 깊은 지식을 갖게 되면, 여러분은 자신이 하찮다고 느끼지만 매일 화해의 잔으로부터 새로운 한 모금을 마심으로 기운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죄인 하나에 대해 갖는 기쁨, 곧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에 대한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마음에 일어나게 된다. 결국 이것이 복음이다.


51. 내가 죄를 주께 인정하나이다
죄가 두려운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더 잘 알게 만드셨다.


52. 하나님이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 혹은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혹은 하나님에 관해 전혀 알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함부로 하였다. 그러나 죽은 뒤에 사람들은 즉시 이렇게 무시한 하나님 앞에 서서, 모든 것에 미치는 하나님의 임재에 두려움을 느끼고, 숨으려고 해 볼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벗어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53. 죽을 때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무덤 저편에 있는 것을 아는 것과 관련해서, 죽는 순간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통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많은 것들이 그때에는 사라진다. 그때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 생명에 들어가는 입구에 선다. 그 문 앞에서 바울은 이렇게 외쳤다.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빌1:21-23) 이와 같이 죽는 일은 죽음에 대항하여 자신의 생명을 방어하는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자기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기쁨이 넘치는 죽음이었다.


54. 금식과 기도에 열중하라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금식은 행하지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성경을 따라 사는 것을 믿음과 생활의 유일한 준칙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금식은 구약에서만 아니라 신약에서도 성경적인 생활의 규칙인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다. 바울은 기도 뿐만 아니라 금식에도 전념하라고 권한다.(고전7:5)


55. 우리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기도하려고 하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무엇을 구하는 자는 먼저 하나님께 가고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았을 때에만 자기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구할 수 있다.


56.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는 받는 자
하나님을 아는 자는 위로를 받고 하나님과 화목한다. 아버지를 아는 지식이 풍성해지면 평안과 영원한 안식을 준다. 반면에 사탄은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두려워 떤다. 사탄이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은 그를 떨게 만든다.


57.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리라
순전히 서로 얼굴을 봄으로써만 갖는 사귐은 인간적인 사귐이 아니다. 인격과 인격의 교제는 언제나 영에서 영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되어야한다.


58.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암탉은 위험이 가까이 오기 전까지는 제 병아리들이 눈 앞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둔다. 그러나 위험이 가까이 오면 즉시 암탉은 날개를 펼치고 새끼들에게 자기에게로 오라고 꼬꼬하고 소리치며 마지막 새끼가 날개 아래로 모이기까지 마음을 놓지 않는다. 그런데 그 때 병아리가 스스로 어미닭에게 피하지 않는다. 병아리는 스스로 위험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볼 때에야 비로소 어미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기 위해 어미에게로 달려가서 피한다.


59. 주께서 내게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오지 않는 것은 우리 기도가 사실은 입술로 범하는 죄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 편에서 응답하시지 않는 것은, 많은 경우에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죄악 된 성향 때문인 것이 분명하다.


60. 시대의 흐름이 주께 속하였도다
고통스런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환자는 기꺼이 수술을 받고 많은 돈을 의사에게 지불한다. 이는 철저한 수술만이 자기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 꼭 이와 같이 서 있다.


61. 현악기와 관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이 세상은 말 못하는 죽은 창조계가 아니라 살아있고 말을 하는 창조계이다. 창조계의 이 언어와 음악을 이해하는 귀를 가진 사람은 그 속에서, 자기 마음속의 경배의 음악과 언어에 완전히 일치하는 예배하는 시냇물 소리를 듣는다. 


62.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
살렘은 예루살렘의 준말이다.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라는 말은 첫째로 문자적인 의미로 광야에서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이번에는 여기서 머물다가 다음에는 저기서 머물렀고, 그러다가 마침내 시온산 꼭대기로 옮겨진 장막을 뜻하고,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거처는 예루살렘 성벽 안에 있다는 뜻이다.


63. 밤이 깊었다
회심 후에, 곧 우리 구주에게로 불려온 후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는 여기 이 세상에서 중간 상태에서 지낸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롬13:12). 그렇지만 아직 한 낮은 아니다. 한낮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온 영역에 비칠 때에만 온다. 그때까지 우리는, 사실 여전히 여명 속에서 걷고 있지만 한낮을 향하여 항상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빛 가운데서 행하지만 그 빛이 아직은 희미하다.


64. 세상에 하나님이 없다면
세상에서 불신앙을 막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하나님의 힘이 여러분의 마음을 분발하게 하실 때,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실 때, 여러분이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가 될 수 있다.


65. 나는 너희 중에 행하리라
개인은 우리 자신의 마음의 세계만을 다루는 것이다. 집단은 우리가 다 같이 경험하고, 확고한 유대에 의해 연결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겪는 모든 것이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교회에서, 국가에서 그리고 사업이나 직업에서 집단생활을 한다. 여러분이 가족과의 생생한 교제를 여러분만 은밀히 갖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러분의 가정생활, 교회생활, 그리고 사회생활에서도 하나님과의 이 교제가 여러분의 힘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이 교제는 이같이 표현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동행하시고 여러분이 하나남과 동행한다.


66. 하나님을 굳게 붙잡음
하나님께 매달린다는 것은 순간마다 여러분이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느끼고, 그래서 여러분이 항상 하나님을 기대하고, 영혼의 모든 힘을 써서 하나님을 굳게 붙잡아야 하겠다고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6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목소리를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목소리와 사람의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 이 차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주신 이후에는 이 방법이 바뀌었다. 우리에게는 성경이 하나님의 음성이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우리 이름을 부르시는 것을 듣지 못한다. 더 이상 우리는 들리는 음성을 통해 위로부터 비추는 빛을 받지 않는다.


68. 저들이 그로 샘이 되게 하시니
우리나라처럼 물이 풍부한 나라에서는 목마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성경에서, “의에 목마르다” 혹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한다”는 말이 보통 우리 가운데서 너무 약한 의미로 해석된다. 갈증으로 기진맥진하여 땅에 쓰러져 시내를 찾아 울부짖는 마음의 헐떡거림 속에(시42;1) 실제로 어떤 것이 있는지 전혀 모를 지라도, 그와 같은 목마름으로 간절하고 점점 더 절박하게 물을 찾는 것이 실질적 열정이 된다.


69.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의 힘으로 살아간다. 약골들은 그만한 힘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출중한 소수의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다. 이 영웅들은 몇 세대 후에도 초인적인 업적을 이룬 사람들로, 거의 초인적인 영감이 필요한 노고를 통해서 전 인류에게 많은 복을 남긴 사람들로 존경을 받아 왔다. 때로 많은 장애가 그들 앞에 벽처럼 섰다. 다른 사람들은 그 벽 앞에서 철저히 절망하였지만 이들은 그 벽을 오르는 법을 알았고 뒤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길을 개척하는 법을 알았다.


70.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시인이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이라고 노래할 때 히브리어의 의미는 “언제나 중단 없이”라는 것이다. 내 영혼의 눈이 내 하나님에게서 결코 다른 데로 돌리지 않고 항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하나님께로 향한다. 하나님과 은밀한 교제 하는 가운데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이 일시적인 곳으로 모셔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곳으로 끌어올리도록 한다는 뜻이다.


71. 주께서 나를 보살피셨나이다
여러분 속에 영이 있는데, 그 영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살아간다. 영은 여러분의 생명의 호흡과 같고 마음속에 있는 내적 자아와 같다. 영은 여러분 몸 위에 그리고 몸에서 떨어져 존재하는 여러분 자신이다. 영은 여러분의 “아직 형체를 이루지 않은 본체”속에 불어 넣어 여러분을 사람이 되게 하는 것, 곧 여러분이 살아 활동하게 하고 사람의 자녀들 가운데서 한 인격체가 되게 만드는 것이다.


72. 아들을 보는 자는 다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가운데 해야 할 큰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이 같이 대답하셨다. “너희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은 나를 믿는 것이니라”(요6:29) 개역 개정성경은 “하나님게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73. 내 발이 평평한 곳에 섰나이다
‘내 발이 평평한 곳에 섰나이다.’라는 말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이것은 세상에서 번영하는 사람이 만족스러워서 외치는 말이다. 또 이것은 성공을 향한 싸움을 치열하게 해 온 사람이 긴장을 풀고 소리치는 말이다. 또 이것은 믿는 사람이 더 높은 평강 가운데서 조용히 하는 말이다.


74. 지극히 상쾌하게 하셨나이다
위에 있는 세상에서는,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 영광의 영역에는 죄가 없고, 따라서 구속도 없으며, 비참함이 없으므로 구원도 없다. 거기에는 의심에서 믿음으로, 약함에서 강함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애통함에서 위로함으로 바뀌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죄와 비참함 때문에 땅에서의 우리 삶에 계속해서 파괴와 소동, 변화, 회복, 향상을 가져오는 모든 것이 그 영원한 생명에서는 제외된다는 것이다.


75. 힘을 얻고 더 얻어
힘을 얻고 더 얻는다는 것은 자라고, 강해지고, 증가하는 것이다. 현재 상태 그대로 있거나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가고 전진하며, 믿음이 더 부요하고 더 충만하고 풍성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풍성해진 믿음 덕분에 경건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에서 더 부요하게 되는 것이다.


7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참으로 죄 없는 청결한 마음은 하나님의 자녀가 볼 때 값진 진주와 같아, 항상 하나님께 구할 만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는 그 마음을 결코 얻지 못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마음의 청결이란 하나님을 보는 수단이다.


77. 밤이 내가 내 심장으로 더불어 말하나이다
우리가 잠자는 것이나 기도하는 것이나 다 같이 이것을 공통점으로 지닌다. 즉 잠자는 사람이나 기도하는 사람이나 다 같이 눈을 감고 빛에서 물러나 어둠 가운데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이 눈을 감는 것은 주변에 보이는 것으로 인해 마음이 뺏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78.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신자에게는 다음 둘 중에 한 가지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누리고 있든지, 아니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갈망하고 기도하며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시25:5)고 말하는 것이다. 회심의 시간은 사람이 아직까지 소유하지 못한 것을 찾고 있는 것이며, 회심 후에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얻고자 구하는 것이다.


79.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시편43편에 나오는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라는 말을 너무 쉽게 입에 담는 것은 죄악적인 자기본위, 곧 탐욕스런 이기심이 될 것이다. 그것은 크신 하나님을 자신에게 국한시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다만 “나의”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도에서 범할 수 있는 이런 죄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데서 현저하게 극복된다.


80. 여호와께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이 점은 확실하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까이 계실 때, 한낮의 열기가 여러분을 거꾸러뜨리려 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그늘이 되시고, 하나님의 시원한 그늘이 여러분의 오른편을 가리심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그늘이 가져오는 시원함을 반드시 느끼는데, 영혼으로 느낄 것이다. 그 시원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여러분이 하나님께 가까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81. 여호와께서 네게 귀를 기울이시나니
여러분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 이와 같이 여러분은 하나님께 가까이 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로 풍성해질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영원히 속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보증해 주신다.


82.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중단은 대부분 우리의 죄 때문에 일어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버리셨기 때문에 황폐한 마음에서 다윗은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하고 기도한다.


83.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성령께서 단지 ‘하룻밤 묵기 위해 잠깐 들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영원히 거하신다는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우리의 지극히 즐거운 복이요 우리 위로자의 영광스런 부요이다.


84. 그에게 익숙하라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지혜가 명백히 나타나 있다. 자신의 슬픔과 세상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 계획과 생각과 지혜에 익숙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위로가 있다. 정말로 그는 고난의 잔이 자기를 비겨가지 않은 것에 감사드릴 수 있다.


85. 사람의 영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우리 마음속에 그릇된 것, 죄의 먼지가 아주 많이 있다. 이런 것이 마음속을 많이 덮고 있어서, 그 등불이 아무리 밝은 빛을 비추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더러운 먼지가 하나님의 입김에 날아가고 나면, 우리는 이 먼지 밑에 숨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빛이 마음속을 더 깊이 비추면 비출수록, 우리가 생명의 모든 끈으로 하나님과 묶여 있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우리의 모든 생활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영혼의 눈에 더 뚜렷이 영광스럽게 나타난다.


86.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영혼이 하나님께 가까이 감과 그리스도의 신비한 연합은 함께 간다. 모든 사도가 이 점을 강조하고 있고, 교회 생활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그들의 저서에서 그리스도와의 이 신비한 연합을 신앙의 깊은 경건에 필수적인 요소로 매번 언급한다.


87. 하나님의 영이 네 위에 계심이라
우리의 신앙고백과 생활, 열심에서 본질적인 요소는 언제나 세상이 견딜 수 없는 것, 곧 세상을 불쾌하게 만들고 그래서 반대를 일으키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주님의 이 복을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으려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베드로 사도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4)


88.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어머니는 아이들을 보지 않고도 음성으로 자녀들을 각각 안다. 그와 같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 영혼으로부터 이끌어내시는 아이로서의 독특한 목소리를 듣고 여러분을 아신다.


89. 세미한 소리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모든 경우에 항상 똑같은 것은 아니다. 삶의 가장 깊은 은밀한 것들을 건드리는 다른 모든 것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도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다.” 소위 실천적 종교라고 하는 시냇물에 떠내려간 사람들은 이런 것을 느끼지 못한다.


90. 주께서 내가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 곧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영적 생활의 결과이자 산물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것을 흉내낼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여러분 성격에 전적으로 맞는 형태를 저절로 갖추게 될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영적 생활이 자기가 어머니 품에 누워 있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것으로 생까한다.


91. 영원히 살아계시는 이를 예비하라
기도와 예배는 같은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찬미와 찬송, 감사와 영광을 드릴 수 있도록 우리 편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구하는 것이다.


92. 몸에는 지체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여러분의 머리가 이곳 저곳으로 움직이면 여러분의 발과 손, 눈, 귀가 머리와 함께 움직이듯이,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왕이신 그리스도 편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모든 움직임이 여러분 속에서도 일어나고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움직이도록 한다. 지체들은 반드시 몸을 따라가고 머리가 어디로 향하든지 그리로 몸이 가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왕이시다.


93.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사람은 누구나 기도해야 하고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를 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기술이라기보다 그것은 영혼의 지극히 명료한 의식과 절박함, 준비된 태도가 요구되는 거룩한 활동이며, 결코 기술이 될 수 없는, 기술이 되면 더 이상 기도가 되지 않는 거룩한 활동이다. 


94. 하늘에게 이루어 진 것 같이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는 것은 우리가 매일의 환경에서 내적으로 자신을 고양시켜 하나님의 위엄의 영역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포함한다. 성경의 언어에서 ‘마음을 드높인다.’ 곧 영혼과 의식을 하나님에게까지 높이고 지성소의 알현실에 나타나라는 말이 그것을 뜻한다.


95. 죄에 대하여 싸움
하나님의 자녀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좀 더 가가이 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사탄과 그의 활동에 맞서 싸우시는 전투에서 그리스도 아래에서 싸워야 한다. 그러면 즉시 두 가지 결과에 이르게 된다. 지금까지 패배해 왔던 자리에서 승리하게 되고, 그동안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였지만, 이제는 자신이 하나님께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된다.


96. 평안 가운데 살라
아삽이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쓰고, 대대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메아리쳤던, 영혼 깊은데서 울려나오는 말로 이같이 표현했을 때, 하나님을 찾은 그는 오늘날 우리보다 삶에서 더 많은 도움을 얻었다.


97. 마음이 미혹되어 그를 떠났느니라
세상이나 주위의 환경, 우리의 일, 그 밖의 유사한 것들이 대체로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다른 길로 끌어낸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영혼에서 나오는 말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하게 하려면 매일의 일과 오락 가운데에서도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98.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
목회자나 선교사 간호사가 하는 일은 ‘성직’이라 부르고, 정원사나 청소부, 상인, 근로자, 운전사가 하는 일은 성별된 일이 아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견한 생활에 해를 끼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잘못된 생각이다. 목회자나 선교사가 하는 일은 거룩한 일로 더 분주하게 지낼 수밖에 없는 ‘보기 드문 특권’을 누리는 일이다. 그러나 그 특권에 대해 장차 하나님 앞에서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일을 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있기를 노력하는 일은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자신을 극복하는 일이 필요한 성직이다. 장차 하나님 앞에서 훨씬 크게 인정받을 것이다.


99. 여호와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자연에서 밝게 빛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신성이 하는 일은 여러분의 모든 생각을 확장시키고 발전시키며 향상시켜서 여러분 자신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영역을 볼 수 잇도록 하는 것이다. 곧 하찮은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신적인 위대한 것으로 여러분을 들어올리는 것이다.


100.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하나님께서 마음을 감찰하실 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가장 깊은 곳에서는 여러분의 마음이 여전히 주를 향하고 사탄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시지 않느냐고 호소하는 것이다.


101.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중세 시대에는 사람들이 지혜롭게든 혹은 지혜롭지 못하게든 간에 모든 일에 사탄을 끌어들임으로써 사탄을 지나치게 강조하였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오히려 반대의 극단으로 기울어 그 악한자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 악한자의 존재에 대한 이런 부인과 함께, 믿음의 문제에서는 자유에 대한 허영심이 우리 주님의 복음에 대해 특이한 수작을 부린다.


102. 원컨데 주는 하늘을 가르시고
믿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열려있다. 그래서 이 열린 하늘로부터 세상의 어둠과 마음의 어둠속으로 빛과 사랑과 생명으로 타오르는 부드럽고 복된 빛이 비친다. 이 빛의 비췸을 받은 사람은 이미 지금 하나님의 성도들 가운데서 “위에서 행하고”있는 것이며, 자신의 세상 여정을 마치면 자기도 그 충만한 영광에 들어갈 시간이 가까이 오는 것을 즐거운 미소로 바라본다.


103. 모든 성도와 함께
마음이 고양된 분위기와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충동 가운데에서라도 여러분은 주님을 개인의 하나님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강력한 신앙심에서 쉽게 범하는 죄악적인 오용이다.


10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복을 비는 인사말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거듭 삼위일체 하나님을 확인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교제가 계속해서 여러분을 향할 것이고, 여러분이 하나님께 가까이 하도록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하실 것과 여러분이 이 복된 교제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죄뿐이라는 것을 거듭 확인하게 한다.


105.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여러분만 홀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사랑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은 훨씬 더 여러분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물러나는 순간마다 질투심으로 괴로워하시는 분이시다.


106. 시대의 표적들
우리 구주께서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길에서도 계속해서 세상을 보셨고, 십자가 위에서도 여전히 자기들이 무엇을 행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용서를 위하여 기도하셨듯이 여러분도 하나님을 떠나 방황해온 사람들을 항상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고 그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것이다.


107. 내가 어렸을 때
어린 아이는 거룩한 역사를 배워야 하고, 거룩한 진리를 알며, 거룩한 노래를 부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어린 아이의 마음에서 신비한 세계에 대한 본능적인 의식이 모든 것을 보시며 전지하시고 편재하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직접 느끼는 데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108. 그와 함께 거하리니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냥 보내시지 않는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뒤로 밀어 넣은 마음의 구석으로부터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나와 여러분의 마음을 다시 얻으려고 하시는데, 마침내 여러분이 싸우기를 포기하고 온 마음을 하나님께 열어드리고,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여러분에게 거처를 정하셨다는 것을 기쁘게 경험하게까지 하신다.


109.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영혼이 이 세상을 떠나는 가운데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는’ 특권을 누릴 때, 은혜의 새롭게 함이 특별히 더 풍성하다. 임종시에는 과거에 맛보았던 것보다 더 귀한 복을 누리게 된다. 많은 사람이 단지 굳건한 믿음과 더욱 분명한 마음 가운데서 잠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복을 미리 맛보는 가운데서 잠들기도 했다.


110.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 과연 영혼의 모든 열정과 갈망을 다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마시는 것은 어떤 장소, 어떤 사람들, 어떤 제사장이나 제단에 매여 있지 않다. 언제라도 어느 곳이든지 우리에게 시온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사실에 달렸다. 즉, 여러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고,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그분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히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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