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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전4:1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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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2005) 2016년 12월 30일(금) |
능력 있는 삶의 4대 정의
(고린도전서 4장 18-21절)
1. 겸손한 삶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세운 교회로서 은사가 많이 나타나 상당히 큰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은사를 자랑하고 교만해지면서 심지어는 영적인 아버지와 같았던 사도 바울까지 우습게 알고 대적했습니다(18절). 결국 겉으로는 은사와 능력이 많은 것 같지만 진짜 능력은 사라진 교인이 고린도 교인이었습니다.
자랑거리를 감추려고 하면 존경심이 더 들지만 억지로 자랑하려고 애쓰면 존경심이 더 없어집니다. 자랑이 심해지면 허풍쟁이가 되고 허풍쟁이보다 자랑이 더 심해지면 거짓말쟁이가 되고 거짓말쟁이보다 자랑이 더 심해지면 이단이 되고 이단보다 자랑이 더 심해지면 정신병자가 됩니다. 이단들을 보면 자기들이 진리와 은사와 치유와 문제 해결을 준다고 자랑합니다. 그래서 그런 단체에 가면 금방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습니다.
옛날의 만병통치 약장사들은 자기 약을 먹으면 다 낫는다고 했습니다. 그 약을 어리석은 손님들이 삽니다. 그처럼 겉모습만 보고 겉 자랑을 추구하고 축복과 문제해결에만 집착하면 만사형통이란 복 장사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또한 겉 자랑에 빠지면 많은 오해가 생깁니다. 그 대표적인 오해 중의 하나가 본문 20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는 말씀에 대한 해석입니다. 어떤 교인은 이 말씀을 오해해서 ‘말씀중심의 목회’는 헛된 것이고 ‘은사중심의 능력목회’가 참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문맥과 동떨어진 정반대의 해석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썼습니까? 고린도 교인들이 은사를 자랑하며 교회를 분열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은사를 가졌다! 어떤 체험을 했다!”는 말이 아닌 참된 내적인 생명의 능력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것입니다. 즉 “은사를 받았네! 계시를 받았네! 관상기도를 하니까 다 보이네!”라고 하면서 영성을 자랑하고 남을 판단하는 말만 많은 교인이 되지 말고 진짜 성도다운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는 메시지가 주는 참된 교훈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사랑하셨지만 외식으로 겉만 그럴듯한 자는 미워하셨습니다.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지 말고 겉 자랑을 조심하고 성도다운 깊이와 성숙함을 추구하십시오. 어떤 교인은 기도원 가서 체험 한번 했다고 신앙의 높은 고지를 점령하고 영성과 능력이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처럼 자신이 능력 있는 사람임을 나타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측은하게 보입니다. 영성과 능력을 자랑하는 것은 가장 능력이 없는 모습입니다. 교만할수록 능력과 기도응답은 사라지고 겸손할수록 능력과 기도응답은 주어집니다.
2. 책임적인 삶
사람이 겸손하게 되면 생기는 것이 책임의식과 충성입니다. 책임의식과 충성이란 자기에게 성실한 것입니다. 능력 있는 사람은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기에게는 철저하면서 핑계가 적지만 능력이 없는 사람은 책임감도 없고 핑계가 많습니다. 어느 날, 한 전도사가 심방 가서 기도가 잘 안 된다고 엉뚱한 말을 합니다. “이상하다! 기도가 안 된다! 혹시 집에 무슨 잘못된 일이나 회개할 일이 없습니까?”
이 세상에 회개할 일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 뻔한 얘기를 하면서 자기가 기도 잘 한다는 것을 보이려고 남을 그렇게 깎아내리는 것은 능력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기도생활을 하다 보면 기도가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새벽에 기도할 때도 어느 때는 기도 소리가 힘차게 나오지만 어느 때는 졸리기만 하고 기도가 잘 안 됩니다. 그때 참된 기도자는 어떻게 합니까? 그런 분위기를 탓하지 않고 꾸준히 기도의 탑을 쌓습니다. 그러면 내일은 은혜가 주어질 것이고 내일 주어지지 않으면 모레는 주어질 것입니다.
기도할 때 기도가 잘 안 되면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잘못에 대해 남 탓으로 돌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환경 탓과 남 탓을 잘하는 능력 없는 사람이 교회에 많아지면 교회도 힘들어집니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자신을 겸손히 감추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 사실을 겸손히 인정하면 더 사람들의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파트타임 잡이 없습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이 지정해주신 자기 역할이 있습니다. 남보다 은사가 적고 배움이 짧고 재능과 자원도 없고 심지어는 잘못된 과거와 허물이 있어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를 통해 멋진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을 충실한 것입니다. 그런 책임의식을 가지고 자기 맡은 자리에 충실하면 결코 신앙생활에 실패가 없습니다.
3. 실천적인 삶
본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 말 자체에는 엄청난 파워가 있습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말은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치유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말은 나라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말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말이 적거나 많은 것이 큰 흠은 아닙니다. 그러나 말은 많은데 실천이 없는 것은 큰 흠이 됩니다.
어떤 교인은 너무 말만 앞서니까 한번은 그의 친구가 와서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말해서 유익을 주기보다 말을 안 해서 유익을 주는 방법도 생각해보게!” 중요한 것은 말한 것을 이루는 능력입니다. 실천보다 요구가 많고 헌신이 없이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삶처럼 부끄러운 삶은 없습니다. 남에게 단호히 무엇인가 요구할 결심만 하지 말고 단호히 자기가 먼저 십자가를 지려고 결심하십시오. 실천보다 요구가 많다면 복된 모습이 아닙니다.
마음이 높은 어떤 교인은 교회만 딱 들어서면 그 교회의 영성을 알 수 있고 사람을 딱 보면 그 안에 예수가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영성을 높게 여기니까 한 교회에 오래 정착하지 못합니다.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큰 인격적인 핸디캡의 표시일 수 있습니다. 그런 인격적인 핸디캡을 노출하면서 영성을 자랑한다면 얼마나 모순적인 삶입니까? 말로 영성이 높은 것처럼 행동하지 마십시오.
연약한 인간이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그래도 적절한 눈치와 상식과 교양이 있어야 합니다. “저 사람은 말만 잘하고 실천은 없어!”라는 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말로만 영성이 높다는 것을 내세우지 말고 말한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함으로 차원 높은 영성을 보여주십시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은 소리 없이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장 능력이 있고 가장 복된 사람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4. 사랑하는 삶
본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 할 때 그 능력은 ‘마술적인 힘’이 아닌 ‘십자가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말씀에 바로 이어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본문 21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이 말씀은 매가 아닌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겠다는 암시가 내포된 말씀입니다.
가장 위대한 능력 중의 하나는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의 단점을 찾으면 사람이 짐승이 되지만 남을 사랑하면 진짜 사람이 된다. 상처를 오래 기억하면 짐승이 되지만 상처를 잊으려고 노력하면 사람이 된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려면 무엇보다 사랑해야 합니다. 성도의 삶이 ‘믿음 따로, 구원 따로, 생활 따로’의 삶이 되면 안 됩니다. 자기 문제점을 모르면 할 수 없지만 알면서 고치지 않는 것은 높은 마음의 표시일 수 있습니다.
문제점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다 그런 거지, 뭐 그런 거야. 다 그러 길래 미안 미안해.” 또한 그런 분들이 제일 많이 인용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41절 말씀입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그러나 고쳐야할 것이 있다면 고치고 끊어야 할 것이 있다면 끊고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어야 할 때는 과감히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십시오.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경건한 감정을 가진 것으로 끝나지 마십시오. 감정은 거룩한 다짐으로 발전하고 그 다음에는 사랑의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은 액세서리지만 실천하는 사랑은 진짜 보석입니다. 고린도교회는 화려한 신앙생활은 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높았습니다. 그처럼 고린도 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 및 말로 사도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사도 바울은 변함없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사랑하는 자녀처럼 여겼습니다. 그런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면 늘 희망이 있습니다. 사람은 다 부족합니다. 그래도 사랑과 기대를 포기하지 말고 그의 장점을 생각하고 인정해주면 계속 사랑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조금 더 인내하고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겸손해서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최선을 다해 협조하고 부정보다는 긍정을 말하십시오. 그처럼 어떤 경우에도 사랑과 선행을 포기하지 않음으로 행복을 만들어가는 참된 능력자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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