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바울과 누가의 동역을 말하다

골로새서 양창천 목사............... 조회 수 1594 추천 수 0 2017.05.30 23:42:49
.........
성경본문 : 골4:14 
설교자 : 안창천 목사 
참고 : d3왕의사역 평신도제자훈련원 http://d3.or.kr 

바울과 누가의 동역을 말하다

골4:14

2015.2.1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누가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이 누가에게 복음을 전한 것에 주목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그가 누가와 동등한 관계에 있지 않고 갑을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의사였고 바울은 환자였기 때문에 바울과 누가는 요즘 화두인 갑을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제자로 삼았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환자의 입장에서 의사에게 복음을 전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또 그를 어떻게 제자를 삼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관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의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죄수의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심리하는 왕과 총독앞 앞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바울이 아굴라 부부에게 복음을 전해 제자삼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아굴라부부도 갑을관계에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그들이 고린도에서 사업상으로 만나 동업했기 때문에 대등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본토에서 사업하다가 왔기 때문에 사업자금이 있었고 기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기술만 있고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동등한 관계에 있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말씀으로 훈련해서 제자를 삼았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바울은 우월적인 관계나 대등한 관계에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가 성령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 충만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하면 나의 능력과 상대방의 신분을 뛰어넘게 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그에게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만한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었던 무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자기희생입니다. 그는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복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는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자는 결코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너무 이기적으로 변해 있기 때문에 자신은 희생하지 않고 입으로만 복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가 왜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전도를 하지 못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장로 사장은 회사원들에게 전도도 열심히 하고 교회로 나갈 것을 열심히 권유했는데 회사원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단체교섭을 시작하자 갑작스레 사업장을 폐쇄하였습니다. 희생적인 삶은 없고 입으로만 전도한 것입니다. 그렇게 전도하면 먹히겠습니까? 어떤 장로는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에 그 교회 성도가 주차했는데 주차권자가 여러 차례 연락해도 안 받자 견인한 일로 다툼이 벌어지자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가 구청에 민원을 넣어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을 없애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일로 세상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과 동일하게 살아가면 결코 그들을 감동시킬 수 없고 전도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얼마나 잘 싸우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지난주도 말씀을 드렸듯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원수를 용서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 다윗이 유대인들에게 메시아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는지 아십니까?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그토록 죽이려고 좇아다닐 때에 그를 죽일 기회가 세 번이나 있었지만 그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이 없다면 결코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고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이제 바울과 누가가 함께 동역한 의미가 각각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바울의 입장에서 누가와 동역한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누가를 만난 후 평생 그와 함께 동역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주로 두 사람이 세계선교를 위해 동역한 것만 생각했지, 바울이 누가와 동역한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들의 동역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가난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얼마나 가난했던지 성경은 그가 복음을 전할 때에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후 11:27)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는 곳마다 항상 의사 누가가 함께 하였습니다. 지금도 주치의를 대동하는 것은 엄청난 재벌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 시기를 AD 44년경으로 보고, 바울이 네로 황제의 박해로 순교당한 시기를 AD 67년으로 보면 그들은 약 23년간을 함께 한 것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진 재벌이라도 이토록 오랫동안 가는 곳마다 주치의를 대동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복음전도자 바울은 그가 가는 곳마다 주치의를 대동하고 다녔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빌 4:19).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의사 누가를 붙여주신 것은 그에게 의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병약함으로 곁에서 건강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욕심은 채워주시지 않지만 필요는 채워주십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회화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광야 4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을까요? 단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대대한 분이신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였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는데 광야에서 농사를 지어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들을 먹이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바울과 누가의 동역이 주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세계선교의 꿈을 안고 달려갈 때에 의사 누가가 그와 평생 함께 동역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의사 누가를 붙여주셔서 그의 사역에 동역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바울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면 예상치 못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저는 동신교회에 부임하면서 그들을 변화시켜서 그들과 함께 세계를 복음화 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지극히 소수의 사람과만 세계선교의 마지막 동역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일을 수없이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2년간 필리핀에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일을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저는 당시 마이너스 통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러분의 헌금으로 네 번이나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어려운 교회들을 돕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예측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바울과 누가의 만남을 보면서 다시 한번 주님께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을 깨닫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가아야 합니다.


둘째로, 누가의 입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왜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바울과 함께 동행을 하게 되었을까요? 바울의 인격이 훌륭하거나 그의 외모가 탁월했기 때문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호감을 주는 외모를 갖지 있지 않았습니다. AD 165년 경에 쓰여진 위경에 보면 키는 작고 대머리였으며 안짱다리를 가졌으며 약간 매부리 코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의 사역 초기는 마가 요한의 일로 바나바와 다투고 갈라질 정도로 성질이 급하고 용서할 줄 모르는 자였습니다. 하여튼 사도 바울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 사람을 끌만한 매력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무엇 때문에 사도 바울과 평생을 함께 했을까요? 그것은 누가가 사도 바울이 가진 하나님의 꿈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는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바울과 함께 한 것입니다. 사실 누가는 바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세상에서 편안한 삶을 살 것인지, 세계선교를 위해 헌신할 것인지를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감히 세상의 편안함을 버리고 세계선교에 몸을 던진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구촌에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더처치에 승선하기 전, 이런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 아니면 힘든 길을 가야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을 물리치고 더처치에 승선한 것은 저와 함께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일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믿음에 주님의 위로와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누가가 바울과 단지 동역만 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했던 것처럼 이 사역에 끝까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바울과 함께 동역한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함께 한 자는 누가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디모데후서 4장 10-11절을 읽겠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그와 함께 하던 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그를 떠나갔지만 누가는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바울은 다혈질이었기 때문에 누가가 가까이서 수종들 때에 시험들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바울과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저 역시도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에 여러분을 시험할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때문에 그것을 참고 끝까지 동역한다면 그 상은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가가 바울의 세계선교에 동역함으로 그가 받은 복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누가는 뜻이 ‘빛나다. 총명하다’는 뜻인데 그의 이름값을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과 함께 동역하다가 바울이 순교하자, 에베소와 비두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84세를 일기로 하나님께로 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복음을 위해 바울과 동역한 누가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무엇보다도 그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바로, 하만, 가룟 유다, 헤롯, 데메드리오 등과 같은 자는 오히려 성경에 기록된 것때문에 사람들에게 영원히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세계선교에 동역한 자로 기록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누가는 나쁜 면이 하나도 소개되지 않는 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좋은 면만 기록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베드로도, 아브라함도, 다윗도, 모세도, 심지어 바울도 좋은 면만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누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부정적인 내용이 기록이 없습니다. 단지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골 4:14)라고만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보다 더 큰 복을 받은 것은 신약성경 27권 중 누가와 사도행전 두 권을 저술한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의 생애와 사역을 자세히 소개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기록한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또한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가 기록한 성경을 읽고서 영혼이 살찌고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많은 의사들이 감동을 받아 의료선교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행전인 사도행전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전도하고 교회를 세워나가야 할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도 그는 문서선교사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그는 이 일을 할 것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가 저술한 책이라도 영원히 읽혀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이 읽어도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가 기록한 성경은 읽는 자마다 구원을 얻고 사람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바울은 세계선교를 위해 많은 사람과 동역하지 않았습니다. 소수의 사람과 함께 했지만 네 번이나 선교여행을 했고 세상의 영적지도를 바꾸어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훈련의 능력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일에 동역하는 여러분을 마지막 날 면류관 쓰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 골로새서 바울과 누가의 동역을 말하다 골4:14  안창천 목사  2017-05-30 1594
14260 마가복음 세례요한의 죽음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다 막6:14-29  안창천 목사  2017-05-30 550
14259 마가복음 당신은 누구의 영향을 받고 있나요? 막5:1-20  안창천 목사  2017-05-30 449
14258 빌립보서 너도 갑질하잖아 빌2:1-11  안창천 목사  2017-05-30 540
14257 마가복음 사명으로 더욱 뜨거워지다 막1:1-11  안창천 목사  2017-05-30 497
14256 디모데후 신앙유산 딤후1:3-5  강종수 목사  2017-05-28 292
14255 마태복음 선한 사람은 쌓은 그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마12:33-37  김경형 목사  2017-05-28 1610
14254 요한계시 144,000인 계14:1-13  강종수 목사  2017-05-28 145
14253 마태복음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12:22-31  김경형 목사  2017-05-28 568
14252 열왕기상 버리지 못하는 죄악 왕상16:25-26  지희수 목사  2017-05-28 431
14251 고린도전 주안에 종 고전7:18-24  강승호 목사  2017-05-28 192
14250 요한복음 영광으로 하나되리라 요17:1-17  강승호 목사  2017-05-27 216
14249 사무엘하 다윗의 범죄 삼하11:1-5  전원준 목사  2017-05-27 507
14248 고린도전 가장 축복받은 사람 고전15:20-22  이한규 목사  2017-05-26 600
14247 시편 하나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시93:1-5  이한규 목사  2017-05-26 659
14246 고린도전 부활을 믿는 성도의 삶 고전15:12-19  이한규 목사  2017-05-26 658
14245 고린도전 은혜 받은 자에게 있는 것 고전15:3-10  이한규 목사  2017-05-26 546
14244 에배소서 영혼의 치료약 엡4:31-32  이한규 목사  2017-05-26 494
14243 신명기 대인관계 관련 십계명 신5:16-21  이한규 목사  2017-05-26 346
14242 신명기 주일성수의 축복과 개념 신5:12-15  이한규 목사  2017-05-26 655
14241 신명기 십계명의 3계명 말씀 신5:11  이한규 목사  2017-05-26 269
14240 마가복음 복음을 믿으라 막1:14-15  지희수 목사  2017-05-25 447
14239 창세기 하나님이일하시게하라 창37:5-11  강승호 목사  2017-05-24 593
14238 사사기 모압으로 내려가지 마라. 룻1:1-18  서한수 목사  2017-05-23 436
14237 요한계시 21세기의 계시와 믿음의 숙제 계3:17-19  허태수 목사  2017-05-22 141
14236 마가복음 시선의 높이가 믿음의 높이입니다. 막15:29-39  허태수 목사  2017-05-22 444
14235 누가복음 앞으로 어떻게 살면 되겠습니까? 눅10:25-37  허태수 목사  2017-05-22 278
14234 마가복음 전혀 다른 백부장의 시선(視線) 막15:29-39  허태수 목사  2017-05-22 288
14233 요한복음 혹시 그대가 이 사람 아닙니까? 요5:1-13  허태수 목사  2017-05-22 272
14232 요한계시 지금은 플루토스가 눈을 뜰 때 입니다 계3:17-19  허태수 목사  2017-05-22 254
14231 마가복음 내가 바라는 딱 한 가지 막10:46-52  허태수 목사  2017-05-22 428
14230 마가복음 감사는 우리 각자의 변화산이다. 막9:2-8  허태수 목사  2017-05-22 481
14229 신명기 기독교 가정교육 중심 신6:6-13  강종수 목사  2017-05-21 288
14228 마태복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마12:9-21  김경형 목사  2017-05-21 316
14227 마태복음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마12:1-8  김경형 목사  2017-05-21 236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