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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1290] 소금, 이웃, 깨끗한삶, 삶의깊이, 다윗의 유언, 내 안에...
만가지생각 최용우............... 조회 수 135 추천 수 0 2017.06.07 21:44:37[최용우 원고지 한장 칼럼-만가지 생각]
1281.소금
어떤 사람이 늘 히죽히죽 웃고 다녀서 “아침부터 날아가는 새 거시기를 봤나. 아침부터 실실 쪼개고 다녀?” “음 예수 믿으니 저절로 웃음이 나네 그려” 우리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싱거운 음식에 소금으로 간을 해야 맛있게 됩니다. 세상에 사는 맛을 보여 줍시다. 나의 얼굴을 통해서 보여줍시다. ‘별 싱거운 사람 다 보겠네.’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실실 쪼개고 다닙시다.
1282.이웃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는 말씀의 ‘이웃’이 옆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이 없으면 생명을 이어가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1283.깨끗한 삶
사람은 정신이 맑고 깨끗해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과 정신을 유지하려면 눈으로 보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데, 가장 먼저 끊어야 할 것은 ‘뉴스’입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뉴스’는 보지 마세요. 특히 댓글을 보는 순간 눈 버립니다. 얼른 화장실로 달려가서 물로 일곱 번 눈을 씻어야 합니다. 뉴스만 안 보고 살아도 정신을 청정지역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1284.삶의 깊이
조금 일찍 눈을 뜬 날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이 여자가 왜 내 옆에 누워있지? 생각해 보면 참 신비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30년 동안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긴긴 세월 한 몸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해 보니 이 알 수 없는 삶의 깊이가 참으로 깊고 오묘합니다.
1285.다윗의 유언
다윗왕이 죽으면서 그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첫 번째 유언은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성품 가운데 나약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고, 스무살 전후로 왕위에 올라야 했기에 비실비실하지 말고 모든 일을 힘 있고, 패기 있게 처리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약할 때 강함이 되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의자하면 누구든지 영적 대장부요 영적 거장이 될 수 있습니다.
1286.내 안에 거인이 있다.
영적 거인이 대장부입니다. 고졸 출신에 뚱땡이에다 소심한 남자 ‘엔소니 라빈스’는 우연한 기회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여 상상할수 없었던 큰 일을 이룬 다음에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우라>는 책을 썼습니다. 성도 안에는 엄청난 거인이 계십니다.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을 깨우고 의지하면 누구나 영적 거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 대장부가 될 수 있습니다.
1287.심지가 굳은 사람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대장부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해도 삶의 자세가 일관성 있는 사람, 잘 살아도 높아지지 않고, 못 살아도 낮아지지 않는 사람, 칭찬 받아도 우쭐하지 않고, 책망 받아도 낙심하지 않는 사람, 어떤 경우에도 바른 생각이 변치 않고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 이런 한결같은 사람은 융통성이 없어 보이지만 결국에는 정금같이 쓰임을 받을 때가옵니다.
1288.하늘을 바라보는 사람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대장부입니다. 왜 하루 중 한번은 반드시 밤이 옵니까? 누워서 하늘을 보라는 뜻입니다. 나의 삶도 언젠가는 그렇게 누워서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는 순간이 있음을 기억하라는 듯입니다. 이 땅의 물질 보다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고 사명 따라 사는 사람이 영적인 대장부입니다.
1289.숨겨져 있는 시간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을 부르는 과정을 보면 성경은 다짜고짜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했지만, 예수님의 공생애 3년 중에 적어도 1년 정도는 갈릴리 호숫가에 머무셨습니다. 어쩌면 어부들과 생사(生死)와 고락(苦樂)을 함께 하며 고기를 잡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이런 숨어있는 행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1290.인격적인 만남
성경에는 예수님과 갈릴리 어부들이 전혀 모르는 사이라는 기록이 없습니다. 아마도 갈릴리 어부들은 예수님의 낮아짐의 삶, 실천적인 삶, 행동하는 삶, 자기 수도의 삶, 영성수련의 삶을 가까이서 보고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부르실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가도 되겠다는 확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을 다 버리고 따라 나서는 ‘어른’은 없습니다. ⓒ최용우(무단전재및 재배포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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