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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연기 전월산(轉月山) 260m.

일시/2007년 9월 10일 동행/최용우 이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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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제 무더운 여름도 지나가고...서서히 산을 한번 타볼까? 우선 몸을 푸는 의미에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전월산을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늘 지나다니면서 올라갈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위의 그림에서 빨강색으로 그은 선이 전월산을 다녀온 경로입니다. 위의 사진은 [중앙녹지공간]이라는 글씨의 [간]자가 있는 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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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남평야 중간에 세워져 있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안내판 이제 이름이 '세종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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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월산 지역은 한 눈에봐도 배산임수의 절경입니다. 왼쪽으로 '원수산'이 있는데(사진에는 안 보임) 원나라와의 전쟁을 치뤘다는 원수산과 전월산 사이에 '성재'라는 백제성터가 있습니다. 학이 알을품고있 듯 날개를 펼친 모습이라 해서 천하명당이랍니다. 보이는 산은 '전월산'입니다. 둥근 보름달이 뜨면 늘 저곳에 걸쳐서 쉬어갔죠..!! 그래서 '월산'입니다. 떠돌아다니는 말로는 만약 행정수도가 이곳으로 이전해 온다면 청와대가 들어설 자리라고 합니다.(한나라당의 반대로 행정수도 물건너 갔죠) 자난 여름 노무현 대통령이 내려와서 첫마을 기공식을 할 때... 그래도 이곳에 청와대를 지어서 일주일 중 반은 이곳에서 나머지는 서울에서...뭐 그런 말을 하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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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금강변을 따라가다 농로로 들어서 큰길이 나올 때까지 직진을 하면 만나는 연세교회입니다. 뒤쪽으로 원수산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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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연세초등학교 뒤쪽 양화리에 있는 양화침례교회입니다. 마당에 여러 가지 예쁜 꽃들이 가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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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양화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157호) -양화침례교회 뒤쪽 100미터 쯤에 있는 나무 -표지판에 이렇게 써 있다 (이 은행나무는 고려말 탐라정벌에 공을 세우고 공조전서를 지낸 임난수장군이 멸망한 고려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심은 것이다. 공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공주 금강변 삼기촌(현 양화리)에 은거하였는데, 이성계가 여러번 벼슬을 주어 불렀으나 끝까지 응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이때 심은 암수 한 쌍의 은행나무가 600여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나라에 큰 변이 생길 때마다 울었다고 한다. 1910년 한일합방과 6.25때 울었고,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이 나무를 베려고 하였으나 나무에서 소리가 나 베지 못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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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임난수장군 숭모각 -공민왕 23년 최영장군과 함께 탐라(現 제주)를 정벌하여 큰 공을 세운 고려충신 임난수 장군은 흥복도감 녹사, 낭장, 호군 등 11관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공조전서에 올랐으나,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충신은 한 하늘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하여 관직을 버리고 이곳 금강 월봉(月峰) 아래에 은둔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키며, 만년(晩年)을 보냈다고...안내판에 기록되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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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지나가는 동네사람들에게 전월산 올라가는 입구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가 '샘'있는 곳이라고 알려 줍니다. 샘을 들여다 보니 사용 안한지 오래 되어서 이끼가 가득합니다. 샘 옆에 차 두 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차를 거기에 주차한 다음 본격적으로 산을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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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어느 빈 집 담장 안에 배나무가 있는데 관리를 안해서인지 돌배가 되어부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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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 표지판이 양화리쪽 전월산 입구에 있는 단촐한(?) 표지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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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한시간이면 넉넉한 등산길...그래도 폼은 제대로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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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가을이 무르익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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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가을꽃 마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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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이 꽃도 역시 마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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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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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이름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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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이야...상당히 큰 당귀다...천연 당귀...캐갈까?...이것 참 귀한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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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천천히 해찰하며 한 30분 올라가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갑니다. 좀 쉬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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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장남평야...저 넓은 들판을 농사 안짓고 도시로 만든다고?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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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상려암에 오르니 동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금강과 남쪽으로 강까지 펼쳐진 너른 장남평야, 서북쪽의 원수산, 진의리와 양화리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멀리 닭벼슬처럼 보이는 계룡산도 희끗하게 보이네요. 날씨는 맑은 날인데 저 희뿌연 것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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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공민왕 23년 최영장군과 함께 탐라(現 제주)를 정벌하여 큰 공을 세운 고려충신 임난수 장군은 흥복도감 녹사, 낭장, 호군 등 11관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공조전서에 올랐으나,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충신은 한 하늘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하여 관직을 버리고 이곳 금강 월봉(月峰) 아래에 은둔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키며, 만년(晩年)을 보냈으며, 항상 이 바위에 올라 멀리 북쪽 고려를 쳐다보고, 나라를 걱정하였다하여 이 바위를 상여바위(想麗岩)라고 전해져 오고 있다합니다. 저 아낙은 멀리 들판을 바라보며 무엇을 걱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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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카메라 랜즈를 쭉 당겨 보니 저기 아래 내 차가 보인당^^ 올라올 때는 힘들게 올라왔는데 동네가 바로 발 밑에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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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조금 더 가면 고인돌처럼 생긴 며느리바위를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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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며느리바위에 대한 안내문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전월산 중턱에 있는 이 바위는 여인이 뒤돌아 보는 모습의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일명 "며느리 바위"라고 불린다. 아주 먼 옛날 이 마을에 장자소라는 연못이 있었다. 연못 옆에 유명한 부자가 살았는데, 욕심이 많고 인심이 고약하였다. 이 구두쇠 부자집의 이웃에 소문난 효녀인 마음씨 착한 며느리가 들어와 아랫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고 어려운 일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주었다. 어느날 이곳에 스님이 들러 시주하기를 권하자 인심 고약한 부자는 스님의 바랭이에 두엄을 한삽 떠서 넣어주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마음씨 착한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행동에 용서를 구하고 쌀 한 되박을 시주하였다. 스님은 며느리의 기특한 행동에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내일 모레 전월산에 올라가 정상까지 가보시오. 가는 도중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아니됩니다. 어떠한 소리가 나더라도 앞만 보며 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스님이 가르쳐준 날에 산을 오르는데 갑자기 하늘이 검게 변하고 천둥번개가 치면서 산아래 마을은 많은 비가 내리는 듯 했다. 며느리는 불안하고 시댁쪽이 걱정이 되어 뒤돌아보고 싶지만 스님이 한 말이 생각나서 한발한발 산 정산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하였다. 산 중턱에 올랐을 때 시댁쪽에서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려와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을은 온통 물속에 잠기어 바다가 되어 마을과 시댁은 보이 않았다. 바로 그 때 뒤돌아 보지 말라는 스님의 말을 거역하여 바위로 변해 그 자리에 우뚝솟아 있게 되었던 것이다. 훗날 사람들은 이 바위를 "며느리 바위"라고 부르며, 소원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이 바위 밑에 와서 촛불을 켜놓고 치성을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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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아이고 깜짝이야...산에 염소들이 돌아다니네요. 풀어놓고 기르는 것인지...우리를 탈출한 놈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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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드디어 전월산 정상입니다. 정상에 용샘이라는 샘이 있습니다. 안내표지판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옛날 금강 맑은 물에서 자란 이무기가 승천(昇天)을 하기 위하여 이곳 전월산 정상 용천까지 굴을 파고 올라와 백년을 기도하면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승천하게 된다는 고려 초엽 얘기가 전해온다. 용천에 올라온 이무기는 승천하기 전까지는 몸가짐을 깨끗이 하여 티끌이 하나없는 맑음이 있어야 하고, 용천 물밖으로 나와서는 안되며, 승천할 때 아이를 밴 여자가 보면 안된다는 옥황상제의 주문이 있었다. 승천 날에 임박한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피고 전월산이 온통 어둠에 휩싸였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천둥소리가 들러더니 "이무기는 승천하라!"는 옥황상제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하늘에서 줄줄기가 내려와 그 물줄기를 타고 한참 승천하는데 갑자기 물줄기가 멈추고 다시 땅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이무기는 이상해서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에서 노한 소리가 들려왔다. "천하에 바보같는 녀석아! 임신부를 주의하랬잖아. 건너마을 반곡의 임신부가 너를 쳐다보고 있지 않느냐!" 이무기는 소리를 듣는 순간 충격을 받고 이곳 용천으로 떨어져 버드나무가 되어 버렸다. 버드나무가 되어버린 이무기는 반곡을 바라보며 원망이라도 하듯이 무럭무럭 자라고 무성하게 자란 나무가 반곡을 쳐다보면 반곡 여인네들이 바람이 나고 양화리(陽化里)를 쳐다보면 양화리가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었다. 그래서 반곡 청년들은 밤이되면 전월산에 올라와서 몰래 버드나무를 베어버리고 또한 양화리 사람들은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감시를 하여왔다. 또한, 이 용샘은 고려충신 임난수(林蘭秀) 장군이 은둔하면서 상여암(想麗岩)을 오르내릴 때마다 이 샘물을 마셨다고 하며, 지금도 명주실에 돌을 달아 용샘에 넣으면 금강으로 나온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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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정말 금강까지 닿아 있을까? 들여다 보니 수심이 한 1미터는 되어 보이네요...실망... 맹꽁이가 사는 더러운 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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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이곳이 정상이라고? 전설과는 달리 너무 시시합니다. 분명히 정상이라는 푯말이 있는 것을 보니 정상이기는 한데... 푯말도 땅에 떨어져 뒹구네요. 곳곳에 미국 자라공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아까시 나무들이 우거진 것이 산이 엉망으로 망가져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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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어쨋든 정상 오른 기념사진 찰칵! 뭐... 두 번은 오르고 싶지 않은 산이네요. 나중에 청와대가 들어오면 산을 새롭게 정비할까요?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오르고..계속 직진하여 원수산을 거쳐 연세교회 앞쪽으로 내려가는 방법도 있는데, 차를 놓고 왔기 때문에 오른 길을 되돌아 다시 내려왔습니다. (등산 시간 1시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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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양화리에서 나와 다시 금강변 길로 들어서는 초입에 양화감리교회가 있습니다...없어질 교회라서 잠시 내려 사진이라도 찍어두려고 하는데...교회 목사님이신지 집사님이시니 왜 사진을 찍느냐고 화를 내네요. 그게 화낼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끝)

2007.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