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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마26:36-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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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175597508 |
2013년 1월 13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26장 36절~46절
설교제목 : “무(無)의 길이 구원의 길이다”
<기도하는 시>
바람소리
*이성선
바람소리로 몸을 닦습니다.
하늘을 스쳐온 바람소리
별을 스쳐온 바람소리
바람소리로 몸을 닦습니다.
마음 가난할 때만 오는 소리
영혼이 아플 때만 오는 소리
바람소리는 이 몸에 와서
영혼의 신음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소리는 이 몸에 와서
흐느끼며 타오르는 불꽃을 봅니다.
바람소리가 오면 오, 바람소리가 오면
이 몸은 빈 구멍마다 열어놓고
당신을 맞습니다.
당신 모습으로 온 세상의 신음소리를 맞습니다.
당신의 신음소리와 나의 신음소리가
이 몸 안에서 만납니다.
하늘의 신음소리와 땅의 신음소리가
이 몸 안에서 만납니다.
하늘과 땅 사이 이 몸은 한 자루 피리
아름다운 영혼을 기다리며 우는 한 자루 피리
바람소리로 이 몸을 닦습니다.
별의 말씀으로 이 몸을 닦습니다.
하늘의 말씀으로 이 몸을 닦습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마지막이었습니다. 예수에게 남은 길은 딱 두 가지였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느냐, 아니면 도망쳐서 안락하게 사느냐. 용감하게 죽어서 고통속에서 부활하는 길을 선택해야할 것이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안락한 삶, 평안한 생(生) … 그 유혹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의 길을 과감하게 걸어가는 이가 몇 되겠습니까? 누구라도 고통은 싫은 것입니다. 내일이야 어찌 되건 말건, 오늘은 목숨을 부지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이 고뇌의 기로에서 예수는 번민에 휩싸였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산에 올라서 새벽 빛이 동터올 때까지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의 아들다운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 26:39) 예수께서 남기신 가장 빛나는 어록입니다. 이 성경에 예수께서 일깨워주시고자 한 하늘의 진리가 모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한 마디가 기독교 진리의 전체입니다. 핵심이며 본질입니다.
<책 이야기>
최근 『우리 동화 바로 읽기』(이재복 지음, 소년한길출판사)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 오늘 예수의 말씀을 적절하게 설명해줄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권정생 선생 이야기를 했습니다. 【권정생의 동화는 철저하게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다. 운명적으로 현실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영혼들이 그들의 해체된 생명을 다시 피워 부활하는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다. 이미 삶을 버리고 죽음의 길에 들어서 버린, 완전히 해체되어 권정생과 그 분신들은 날마다 죽으면서 날마다 새로 태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저자는 간디 이야기도 했습니다. 【간디가 자서전 끝머리에서 “나는 나 자신을 무(無)에까지 내려가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은 제 스스로를 동료 피조물 중의 맨 끝에 두지 않는 한 그에게 구원은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권정생은, 내가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히려 ‘나’를 죽이고 세상의 맨 끄트머리에 놓아두는 데서부터 시작한다고 본 것이다.】 저자는 권정생이 그의 동화 <어시장 이야기>에서 문어 할아버지의 입을 빌려서 언급한 어록에 들려주었습니다. 【“우리들이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려면 거추장스러운 우리 몸뚱이를 전부 아낌 없이 써야 한단다. 하느님이 맡기신 우리들의 임무를 다하여 내 몸을 남을 위해 바쳐 일하면, 저절로 영혼은 꽃처럼 곱게 피어난단다. …… 남을 위해서 내 몸을 쓰게 하려고 하느님은 우리들을 세상에 보낸 거야. 보이지 않는 영혼에다가 조기는 조기 모양의 옷을 입히고, 명태는 명태 모양의 옷을 입혀서 말야.”】
기독교 복음의 핵심, 예수 메시지의 본질로 들어간 권정생의 깊은 통찰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말숨 새기기>
“남을 위해서 내 몸을 쓰게 하려고 하느님은 우리들을 세상에 보낸 거야. 보이지 않는 영혼에다가 조기는 조기 모양의 옷을 입히고, 명태는 명태 모양의 옷을 입혀서 말야.”
깊은 깨달음을 얻게 하는 말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영혼에다가 생명의 옷을 입히셨습니다. 조기는 조기 모양의 옷을 입히고, 토끼는 토끼 모양의 옷을 입히고, 사람은 사람 모양의 옷을 입혀서 … 세상으로 보낸 것입니다. 무(無)에다가 유(有)의 옷을 입혀서 세상으로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有)는 세상을 위한 유였습니다. 나를 위한 유가 아니라 그대들을 위한 유, 즉 이기적인 유가 아니라 이타적인 유였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무에다가 유를 입혀서 세상에 보내셨으므로, 우리는 세상을 위하여 유를 사용하고, 다시금 완전한 무의 상태로서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으로 돌아갈 때, 유(有)의 상태로 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구원의 길이 못 됩니다. 왜냐하면 유는 세상을 섬기는 유여야지, 내 몫을 챙기는 유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섬기는 일에 나의 모든 유(有)를 사용하고, 마침내 자유로운 무(無)의 상태로서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 그것이 구원이며 자유이며 해방이며, 초탈이었습니다.
<설교의 결론>
이제 마지막 순간. 예수는 유(有)의 길과 무(無)의 길 앞에서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유의 길로 가면 살지만, 무의 길로 가면 죽습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유의 길은 매혹적입니다. 내일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오늘은 최대한 살아남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본능입니다. … 그러나 예수는 천길 낭떨어지에서 과감하게 발을 내딛는 용기를 내면서 -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 죽음의 길, 무(無)의 길, 십자가의 길, 부활의 길로 들어섭니다. 비로소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구원의 길을 예수께서 개척하신 것입니다. 인간구원의 길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무(無)의 길이 구원의 길이다”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축도>
하늘의 하느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무(無)의 길이 구원의 길이다”|작성자 말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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