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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신9: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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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신명기(47) 사려 깊은 리더가 되십시오 (신명기 9장 9-15절)
< 산에서 속히 내려가십시오 >
이스라엘의 광야생활 중 하나님을 가장 진노하게 한 사건은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가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호렙산에 올라간 모세는 40일 동안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으며 금식기도를 한 후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일어나 호렙산에서 속히 내려가라고 했습니다(12절). 그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를 위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으러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것은 좋지만 산에서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산에 올라가 은혜 받은 후에는 부패한 세상으로 속히 내려가려고 하십시오. 저 높은 곳을 향하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저 낮은 곳을 향하는 것도 잘하십시오. 리더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리더가 저 높은 곳을 향하기만 하면 팔로워는 숨차게 됩니다. 너무 앞서지 마십시오. 리더는 앞서갈 때 팔로워가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약자에 대해 성급한 마음을 가지지 마십시오. 강함이란 앞으로 나아감이 아니라 리더십을 잃지 않으면서 약자의 속도에 기꺼이 보조를 맞추는 것입니다. 리더가 너무 앞서 달리면 영향력을 잃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때로는 기이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기이함이 무속인이 영혼을 두렵게 해서 사로잡는 기이함이 되지 않게 하십시오. 영성은 남에게 몰상식하게 보이지 않도록 성숙함이 뒷받침될 때 참된 영성입니다.
< 사려 깊은 리더가 되십시오 >
한 아빠가 안방에서 혼자 기도할 때 은사가 표출되었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줄 알고 마음껏 은사대로 한참 기도하는데 어느 순간에 인기척을 느꼈습니다. 건넌방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유치원생 자녀가 문을 빠끔히 열고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아이의 눈에는 아빠의 모습이 두렵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 두려움을 이해하고 아빠는 곧 기도를 그치고 부드러운 말을 해주면서 아이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얼마나 현명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아빠입니까?
만약 그때 “아이가 어떻게 보든지 무슨 상관인가? 내 영성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라고 하면서 계속 자녀가 이해할 수 없는 은사를 표출하면 그 자녀는 어떻게 될까요?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자란 자녀는 영성이 탁월해지기보다 오히려 정신이 병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미성숙한 자나 준비가 안 된 자에게 주어지는 두려운 환경이나 모습은 ‘영성의 확률’을 높이기보다 ‘속박의 확률’을 높입니다.
어떤 부모는 자녀의 영혼을 보호하려고 검증이 되지 않은 영성훈련 집회에는 자녀를 잘 보내지 않습니다. 이상한 강사가 와서 두려움을 주는 이상한 말을 해서 영혼과 정신이 이상하게 될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영성이 높은 진짜 표시 중의 하나는 영성이 낮은 자를 사려 깊게 이끌려는 자세입니다. 저 낮은 곳에 있는 팔로워의 수준은 무시한 채 저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기만 하는 리더가 되면 안 됩니다.
리더는 저 낮은 곳을 향하여 내려가 그곳에 있는 팔로워의 손을 붙잡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같이 보조를 맞추며 이끌어야 합니다. 개인의 영성 생활은 깊이 들어가도 되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약자를 위한 조화와 질서 및 절제와 절도를 앞세워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주일예배와 같은 전체 모임에서는 지나친 외적 은사의 표현을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신자나 믿음이 연약한 자에게 걸림돌을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왜 전체 교인이 모일 때는 은사의 표현을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까? 일반인과 너무 괴리감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믿음이 강하다는 성도들의 무감각한 발걸음에 믿음이 왜곡될 때도 얼마나 많습니까? 바른 리더는 저 높은 곳을 향하면서도 반대로 저 낮은 곳으로 내려가 상한 갈대를 고쳐주고 연기 나는 심지에 불을 붙여줍니다. 외적으로 너무 신령하게 보이려는 모습은 참된 소통을 막을 수 있습니다.
꽉 막혔다는 소리를 듣는 리더가 되지 말고 소통을 잘 이루는 리더가 되십시오. 말씀은 있는데 그 말씀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메시지들이 잘 전달되지 않는 이유는 진리의 한쪽 측면에만 치우쳐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위대한 2가지의 진리는 ‘말씀’과 ‘성육신’입니다. 말씀의 메시지(message)도 중요하지만 말씀이 성육신되는 실천과정인 소통(communication)도 중요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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