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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7:3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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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178464856 |
2013년 2월 10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27장 32절~34절
설교제목 : 쓸개 탄 포도주를 거절하신 예수
<영성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시인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그들은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을 만나서,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그들은 골고다 곧 '해골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서, 포도주에 쓸개를 타서, 예수께 드려서 마시게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맛을 보시고는,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다.(마태 27:32~34)】
<예수 이야기>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종교권력자들과 로마의 독재권력자들에게 체포되신 이후, 어떤 대접을 받으셨을까요? 욕설과 조롱, 침 뱉음과 따귀, 옷 벗김과 채찍, 구타와 폭행, 잠을 안 재우는 심문, 살을 잘라내고 피를 뽑아내는 고문 ……… 뭐 그런 대접(?)이었을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갈 힘조차 없었습니다. 탈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침내 십자가에 매달리기 직전, 누군가 예수에게 ‘쓸개 탄 포도주’를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여기서 ‘쓸개 탄 포도주’는 일종의 마취제였습니다. 고통이 너무 심하니까 잠깐이라도 그 고통을 잊게 해주는 약이었습니다. 얼떨결에 한 모금 마시고 난후, 예수는 왠일인지 그 ‘쓸개탄 포도주’를 거부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는 왜 마취약을 거절했을까요?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인생 이야기 : 마취, 도피, 쾌락>
인생의 고통이 너무 심할 때 인간은 누구나 도피처를 찾습니다. 일종의 마취약을 먹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술이라는 마취제를 찾고, 어떤 이들은 마약이라는 마취제를 찾고, 또 어떤 이들은 ‘사랑’이라든가 ‘여행’이라든가, ‘시골’이라든가, ‘취미’라든가 하는 …… 잠시잠간이라도 고통의 인생을 잊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납니다. 그래요. 잘 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잠시잠간이라도 이 고통의 순간들을 잊지 않고서 어떻게 잔혹한 삶의 나날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라도 해야지요!
그러나 너무나도 잔인한 언설(言說)이지만, “잠시 잊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잠시 잊었다가 다시 돌아오면, 문제의 상황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를 어찌해야할까요? 그래서 결론은 언제나 정면대결입니다.
<다시 예수 이야기>
십자가 처형을 앞두고 예수는 많은 시간 번민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산으로 들로 도피행각을 벌였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술과 놀음 따위로 방황하는 세월들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멀쩡한 청년이 아무런 죄도 없이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생겼는데, 그가 아무런 도피나 마취, 혹은 쾌락 없이 억울한 죽임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오랜 세월의 망설임과 방황 끝에 비로소 ‘십자가 처형’이라는 정면대결을 받아들이게 된 시점에서, 또 다시 유혹하는 ‘쓸개 탄 포도주’라는 마취제는 불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는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사탄의 유혹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얼떨결에 한 모금 맛 본 후에, 그 마취제를 토해내게 된 것입니다.
<다시 인생 이야기 : 산>
하느님을 섬기는 이로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구도자로서, 예수와 참 벗이 되고자 하는 우리 앞에는 거대한 산이 놓여져 있습니다. 결코 넘을 수 없는 산, 그래서 이미 오래 전에 많은 선지자들조차도 포기한 산, 그러나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산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넘어야할 산, 극복되어야만 하는 산, 넘어서건 넘지 못하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끝끝내 도전하고 또 도전해야 하는 산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산이 놓여져 있을까요? 제가 보았을 때, 딱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삶과 죽음’을 초탈하는 산입니다. 둘째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는 산입니다. 이 두 산, 운명적인 이 산들을 어떻게 해야 넘을 수 있을까요? …… 글쎄요. 이 어려운 물음에 누가 속 시원한 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예수의 행동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모범은, ‘정면대결’입니다. 그 거대한 산 앞에서 주눅들거나 도피하거나, 우회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정면대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면대결이라야 부활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피나 망각, 타협과 후퇴에는 고난의 십자가도 없지만 영광의 부활도 없습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쓸개 탄 포도주를 거절하신 예수’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축도>
하늘의 하느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쓸개 탄 포도주를 거절하신 예수|작성자 말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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