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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마태복음 궁극이............... 조회 수 381 추천 수 0 2017.10.15 15:57:21
.........
성경본문 : 마18:12-14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81214: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이 비유 속에는 우리의 깨달을 바 이치가 많습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너희 생각대로 추측도 해 보고, 상상도 해 보고, 나타나 보이는 면도 생각을 해 보고 많은 깨달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양은 목자의 보호를 필히 받아야 합니다. 목자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그 양의 일생은 불행으로 끝나버립니다. 양을 보호하는 목자도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다

백이라는 숫자는 불변적인 숫자입니다.

꽉 찬 숫자입니다. 가득된 숫자입니다.

그래서 기분도 좋고 마음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세어보니 한 마리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게 어디로 갔을까? 행여나 하고 또 세어본 것입니다. 둘 넷 여섯 여덟 열...... 다 일으켜서 앞으로 나란히, 열중 쉬엇, 차렷, 차례로 번호를 시켜보아도 여전히 99입니다.

 

군인들이 점호를 취할 때 한 명 없어지면 부대 안이 온통 총 비상이 걸리고 난리가 납니다.

양이 목자를 따라오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이게 오다가 구덩이에 빠졌나, 꽃을 따러 다니다가 꽃에 취해 버렸나, 나비 따라 다니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졌나, 꿀 준다고 벌 따라 가다가 벌에 쏘여 죽었나? 하나를 키워 질적 생산적으로 A급으로 만들려면 얼마만한 활동과 시간과 노력과 세원이 흘러야 되는 일인데 물먹으러 가다가 뱀에 물렸나, 양의 가죽을 둘러 쓴 이리한테 홀려서 이리 밥이 되어 버렸나, 월요일 12시에 늘상 오는 길을 몰라서 어디 가서 헤매나?

 

양의 길은 어디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참 목자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 목자의 뒤로만 따라오는 것이 양의 길입니다. 목자의 뒤를 따라 통과하는 길이 어떻게 좁고 협착한지 좌우로 치우쳤다간 그만 나가떨어지는 길입니다. 그 길을 지나야 만이 생명과도 있고 푸른 초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길 잃은 양은 어디로 갔나? 따라오다가 저쪽에 가기 좋은 넓은 길이 있어서 그 곳으로 가다보니 초장은 없고 길만 운동장처럼 넓어지는데 거기 가보니 모두 큰상을 받는다고 큰 건물을 짓고 있는데 목이 갈하고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해도 먹을 것을 주지 않습니다. 양이 먹을 꼴이 없습니다.

 

물질세상에 속한 것을 구하는 신앙상태는 양이 길을 잃은 상태입니다. 자기의 신앙사상을 점검하면 압니다. 내가 지금 길을 잃고 헤매는 건지, 아닌지를!

 

그 아흔 아홉 마리는 산에 두고

 

참 이상합니다. 아흔 아홉 마리를 양 우리에 두고 문빗장을 단단히 걸고 이리나 늑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 놓고 길 잃은 양을 찾으러 가야 옳은 일인데 그냥 산에 두고 가면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이 어떻게 되겠느냐? 다 산짐승에게 잡히고 말지! 한 마리 찾으려다가 몽땅 다 잃게 됩니다.

 

그런데 무슨 뜻으로 산에 두고 간다고 그랬을까?

 

첫째 질문, 아흔 아홉 마리는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을 단단히 믿고 가는 그 마음일까?

 

둘째 질문, 아흔 아홉 마리도 귀중하지만 한 마리도 귀중하다. 자식 잃은 부모 마음 같아서 그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사랑의 마음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는 사람의 어떤 감정을 가지고 말할 것이 아니라 양을 키우고 인도하는 목자의 지혜로운 진리이치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만이 아흔 아홉 마리도 보존되고 한 마리도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다 두고 간다는 말은 하나님말씀 진리이치를 아는 차원, 높은 신앙의 봉우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지식성 도덕성 능력성, 신앙실력을 최고의 수준에 올려놓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만이 비 진리적 이질적 육적 세상적인 종교, 미신적 이방종교적인 그런 타락된 것에 유혹되거나 미혹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실력적으로 이것이 안된 신앙사상은 일반세상차원으로 길 잃은 상태의 신앙입니다. 성경 하나님말씀은 일반세상차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이치적으로 깨닫고 말씀의 도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주님의 교회요 양떼요 참 목자입니다.

 

누구든지 처음에 교회 들어오는 사람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다 선악과를 따먹은 세상의 소원 목적과 취미와 추구성을 가졌고, 성격이 성질이 성분이 예수님과는 전부는 이질적이고, 생활 풍속 습관도 이방종교적이요 우상적이요 미신적이요, 그 신앙사상으로 뿌리를 박고 있어서 하나님의 의사를 반대하고 따르지 않고 마찰과 충돌과 대립성을 일으키는 요소가 많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물질적이며 육적이며 죄악적이며 사망적이며 세상적이며 마귀적인 성질을 띤 성분 성질들이 너무나도 많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교회에 들어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의사단일에 맞추는 것이 시급한 일입니다. 그래야 만이 바른 회개를 할 수 있고, 사람의 중심이 고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사성을 모르면 바른 신앙관을 모른 채 열심히 충성봉사만 하는 것이 영광이고 믿음인 줄로만 알고 평생동안 바른 신앙관을 못 찾고 진리신앙 노선에서 이탈된 신앙으로 살다가 성장도 못하고 예수 믿으면서 평생 주님과 대립성을 띤 신앙으로 살다가 심판 받을 짓만 하다가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교인들과 같은 짝이 나는 것입니다. 역시 외식운동을 재현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온 교회가 일년 열 두 달 매 달마다 짜 놓은 종교적인 행사를 치르느라 온 힘을 쓰게 되고, ‘이방종교가 저렇게 하니 우리 기독교는 또 어떻게 하자!’ 예수 믿기 전이나 믿은 후나, 오늘 들어온 교인이나 수십 년을 믿은 집사나 장로 목사나 소갈머리는 똑같고.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의 사람으로 인격이 바꾸어져야 하는데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나 중심사상이 구별이 없습니다. 주님의 신부인 교회가 신앙정조 관념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아가페사랑을 인간사랑으로 착각을 하여 세상을 향하여 어떻게 치마를 잘 걷어올리는지! 교역자는 신앙정조를 버리고 성도들을 어떻게 세상과 화목을 잘 시키는지 텍사스골목하고 똑같아! 기독교교회 안에 웬 무당들도 그리 많은지! 아합 왕의 영을 가진 자들이 이것을 다 수입을 한 것입니다.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둔다

 

우리 주님의 교육방법이 그랬었습니다.

 

평지에서는 각종 병자들을 고치셨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차원 높은 말씀을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평지의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예수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들이 있사오리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신앙차원을 천국 예루살렘에 들어갈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모세를 산으로 불러올려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참 목자 역시 주님과 같은 교육의 방법을 알고 따르는 것입니다.

 

질적 수준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어떻게 인도자가 될 수 있겠느냐?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간 것을 보면 한 마리가 왜 길을 잃었는지 그 이유를 아는 목자입니다. 이 목자는 잃은 그 하나를 찾아서 산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실력의 위치로, 하나님의 본질적 충만인 백으로 완성시킬 수 있는 목자인 것입니다. 이제는 모두 99점이 아니라 100점짜리의 양으로 실력적으로 만든다는 말입니다.

 

백 마리 중 하나가 없어졌습니다.

 

아흔 아홉도 많은데 그까짓 거 하나쯤이야한다면 그 삶은 영원히 결핍입니다. 불만이요 고통이요 슬픔입니다.

 

한 마리가 어디 갔을까하고 세어보고 또 세어보고. 관찰력이 있는 목자입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아흔 아홉부터 산에다 놀려놓을 줄 알아야 잃은 양 하나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올려놓는 이치를 모르면 백을 다 잃게 되는 것입니다.

 

1813, 14: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백 마리가 있었을 때의 기쁨과, 잃은 양 한 마리를 다시 찾아 넣은 기쁨과는 같을 리가 없습니다. 한 마리 찾아서 산으로 다시 끌고 올라가는 그 노력과, 백 마리 다 끌고 올라갈 때에 한 놈은 벼랑으로, 한 놈은 도로 밑으로, 한 놈은 옆으로, 한 놈은 가시밭으로, 한 놈은 돌짝밭으로, 한 놈은 물로 가고 하는 별별 놈을 다 잡아오는 그 실력! 목자의 실력이 100으로 올라가야 그 기쁨이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나에게 찾지 못한 한 이치가 무엇일까?

99에서 무엇이 모자라 100이 못 될까?

내가 하나 못 찾아 어느 부분에서 헤매고 있는 것일까? 내가 뭘 모르는 것일까?

99는 주님이 해 놓았다. 하나를 찾는 일은 네가 하라! 그것 하나 찾으면 100으로 올라간다.

 

도의 봉우리, 말씀의 봉우리로 올려놓는 것, 자라는 것, 채우는 것, 생각도 마음도 정신도 사상도 소원도 목적도 취미도 100처럼 온전케 되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천국에서 누가 크니이까?’

 

100으로 충만자 온전자가 되는 것이 큰 자입니다. 하나, 한 이치를 우습게 여기고 깔보면 평생 자기는 헤매이게 됩니다. 큰 자가 되어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보람이 있고, 따라다니던 보람이 있고, 예수 믿은 보람이 있고, 진리를 배운 보람이 있지 성경 한 이치 한 이치를 우습게 여기면 자기는 길 잃은 양처럼 하나님의 진리의 신앙본질에서 이탈된 상태로 영원히 자기의 온전케 되는 성장성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뜻도 아니고 성령의 뜻도 아니고 종의 뜻도 아니고 자기의 뜻도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소자 하나를 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에서 큰 자 되는 이치를 가르쳐 주었으니까! 기독교 하나의 종교인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진리의 보화를 찾는 간절성을 가져 보아라!

 

집 열쇠나 차 열쇠를 자기가 세수할 때 세면대 위에 딱 걸어 놓고는 어디다 둔지를 잊어버리고 찾느라고 아들에게 묻고 딸에게 묻고 온 방구석을 다 쑤시다가 찾으면 그렇게 기쁘고 마음이 놓이는가? 방안에 바퀴벌레나 거미가 기어 나왔다가 숨어버리면 그것을 찾느라고 책을 옮기고 이불을 옮기고 옷을 옮기다 찾아서 죽이면 그게 그렇게 마음이 놓이고 기쁘냐? 찾느라고 법석을 떨었는데 찾지 못하면 그게 그렇게 서운한가?

 

옛날에 못 먹고 못 살고 어려울 땐 그렇게 이도 많았고 빈대도 많았고 벼룩도 많았습니다. 온몸이 간지러워 어깨춤을 추고 석유호롱불 앞에서 속옷을 벗어서 잡다가 한 마리가 잡히면 그게 그렇게 기쁘냐? 못 찾으면 꺼림직하고! 또 간지러우면 이제는 성질이 나서 옷이 접혀진 솔마다 이빨로 꽉꽉 씹다가 그래도 안 되면 다다미 돌에다 놓고 방망이로 때립니다. 그래도 안 되면 뜨거운 불 위에다 쪼이면 뜨거워서 숨었던 것이 기어 나와서 죽는데 불 속에 이가 떨어지면 타서 배가 터지는 소리가 나지. 그러면 속이 확 풀려. 속이 확 풀리고 시원해서 좋은데 옷이 노릿노릿 타 버렸어. 그래, 그 놈들도 도망가는게 나의 뜻이 아니야!

 

옛날에는 아이를 잃어버려도 찾기가 어려워. 방송이 있나, 신문이 있나, 오고가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나이는 네 살 정도이고 얼굴은 둥글고 머리는 부스럼이 나고 윗도리가 까만 옷에다가 아랫도리는 타인 옷을 입고 검정고무신을 신은 아이를 못 보았습니까?’ 찾지 못한 엄마가 밤에도 울면서 아기이름을 부르며 찾는 그 심정. 50년이 지난 지금도 내 귀에 엄마의 그 소리가 쟁쟁합니다. 잃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요 애정의 대상자요 본질적인 하나님의 성품으로 자라나서 영원히 천국에서 상속받는 존영자 영광자 될 자를 비 진리적 육적 세상적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100에 하나라도 잃는 것을 원하지 않는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우리의 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도의 봉우리로 신앙차원이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한 이치를 잃으면 다 잃고, 한 이치를 찾으면 온전으로 보전됩니다. (계속)

 

*************************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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