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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빌1:1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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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2119) |
4가지 성공적인 삶 (빌립보서 1장 19-21절)
< 천년 영향력의 비전 >
1991년 10월, 저는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C&MA) 출신 목회자로서 큰 꿈과 사명을 가지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때 수중에는 몇 십만 원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1992년에 인천에서 무조건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듣지 못한 교단을 내세우니까 사람들이 이단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의 처음 한국 명칭은 <기독교 연합 선교회>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한국에서는 이단들이 주로 ‘연합’이란 단어를 많이 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단 의심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결혼 전에 아내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까지 저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세상적으로는 의지할 곳도 없었고 의지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외로운 사막에 버려진 사람처럼 완전히 혼자였습니다.
그때부터 생존을 위한 사투가 벌어졌습니다. 수입이 필요해서 책을 썼고 신학교 강의도 4군데나 나갔습니다. 가끔 책도 번역했습니다. 사명 때문에 번역한 것이 아니라 재정이 필요해서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닥치는 대로 하루에 20시간 이상 땀을 흘리며 여러 사역을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그때 고생했기에 <미션퍼블릭>을 통한 문서선교 사역과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사역과 <네트영어> 사역이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경의 약 75%를 강해설교로 완성했습니다. A4 용지로는 약 1만 장, 보통 책으로 약 25000페이지, 원고지로는 약 9만 장의 분량입니다. 앞으로 7-8년 정도 지나면 성경 전체에 대한 강해설교 파일을 완성합니다. 기독교 역사상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신학교 도서관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가라는 찰스 스펄전 목사님과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설교 전집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방대한 설교를 남겼지만 설교되지 않은 성경본문도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완성하고 있는 강해설교는 성경의 모든 본문이 빠짐없이 다 강해되어 있습니다. 또한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사역의 참고용으로 요긴하게 여겨주는 것을 보면 기쁨과 보람도 큽니다.
최근에는 <월새기(월간 새벽기도)>를 발행하면서 기존에 썼던 강해의 완성도를 더욱 높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문서선교에 뜻이 있는 후원자를 만나면 <월새기 영어판>도 발행되어 세계선교의 비전을 문서로 뒷받침하는 멋진 역사를 이룰 것입니다. 몇몇 동역자 목사님은 저에 대해 ‘한국이 낳은 21세기의 토저(Tozer)’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토저 목사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기독교 선교연맹>이 낳은 20세기의 훌륭한 저술가 중의 하나입니다. 과분한 격려지만 정말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은가 하고 애쓰고 있습니다.
1996년에 신학대학에서 신학 영어를 가르치면서 <네트영어>를 개발했습니다. 그때에 너무 공부방법이 탁월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런 원리를 깨닫게 해주셨습니까? 제 생각 속에 역사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도 틈틈이 <네트영어 사전>을 만들면서 <네트영어>의 원리를 업데이트 하는데 <네트영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탄을 커지게 합니다. 때가 되면 <네트영어>도 론칭되어 영어로 고생하는 수많은 한국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고 선교를 위한 재정적인 뒷받침의 재료로도 활용될 것입니다.
현재의 모습은 부족해도 끊임없이 ‘천년 영향력’을 꿈꾸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C&MA, 미국성결교) 소속 목회자로서 고독하게 사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갔기에 주어진 열매입니다. 지금은 교인들뿐만 아니라 <온새기(온라인 새벽기도)> 식구와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식구들이 기도해주고 있고 많은 목사님들도 교파를 초월해서 저의 문서선교 사역을 성원해주고 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열심히 거룩한 비전을 향해 달린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열매를 주십니다.
< 4가지 성공적인 삶 >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큰 건물과 좋은 프로그램으로 멋지게 사역하는 목회자들도 많습니다. 그분들이 가끔 부러울 때도 있지만 크게 부럽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다 가는 길이 다르고 자기 달란트대로 쓰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만이 갈 수 있는 길이 따로 있습니다. 그 길을 가면서 앞으로 펼쳐갈 사역을 생각만 해도 기쁘고 흥분이 됩니다. 캘빈은 26세 때 쓴 엄청난 저서인 <기독교 강요> 한 권으로 현재까지 500년 이상 가는 영향력을 남겼습니다.
시대는 가고 사람은 죽고 건물은 무너져도 문서는 반영구적으로 남습니다. 결국 역사의 최종 승리는 거룩한 문서가 차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최종 승리를 꿈꾸며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해 천년 영향력의 역사를 준비한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또한 그 비전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기독교에서 성공적인 삶이란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공적인 삶이란 어떤 삶을 말할까요?
1. 서로 기도해주는 삶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간절한 기도 때문에 힘을 얻었습니다(19절). 그처럼 서로를 위해 기도해줌으로 서로에게 힘을 주십시오. 살다 보면 어느 때는 어려운 문제가 신기하게 풀립니다. 그때 항상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 기도를 생각하면 어느새 시름이 덜어지고 불안이 사라지고 자신도 모르게 신비한 힘과 용기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서로 기도해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되고 기쁜 일 중의 하나는 누군가의 힘이 되어주고 위로자가 되어주는 일입니다. 기적은 홍해를 가르는 것이나 물 위를 걷는 것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제일 놀라운 기적은 욕심 덩어리인 사람이 자기 손을 모아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주고 손을 펴서 누군가를 후원해주는 기적입니다. 이제부터는 신기한 기적만 좋아하지 마시고 누군가의 위로자가 되어주는 놀라운 기적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람은 사랑과 격려를 많이 나눠준 사람입니다.
2. 부끄럽지 아니한 삶
사도 바울은 어떤 일에도 부끄럽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20절). 그처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말씀에 비추어볼 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불신자들이 보기에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요새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싫다는 것이 아니라 대개 교회와 교인의 모습이 싫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교회 안의 삶’과 ‘교회 밖의 삶’이 다른 것이 문제입니다.
기독교는 윤리의 종교가 아니지만 불신자보다 더 윤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하고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상식을 초월한 믿음과 상식 이하의 몰상식은 다른 것입니다. 특히 예언한다는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예언의 문제는 영혼의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큰 문제도 일으킵니다. 거짓 예언 때문에 가정이 깨지고 멀쩡한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해서 기독교의 좋은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거짓 예언에 대한 호기심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에 대해 가졌던 호기심만큼 파멸적인 호기심입니다.
3.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삶
사도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길 원한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고 했습니다(20-21절). 그 고백을 간단히 말하면 “내가 중생했다.”는 말입니다. 복된 삶을 원하면 중생하면 됩니다. 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하면 중생을 체험한 교인들이 많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고민이 무엇입니까? 중생하지 않은 교인이 의외로 많고 그리스도를 따르기보다 사람을 따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사마리아 성 사람들은 마술사 시몬을 신처럼 떠받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전도자 빌립 집사가 와서 복음을 전하며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자 사람들은 시몬을 버리고 빌립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에게 빠진 사람들 중에 중생한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성령도 없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처럼 기적이나 사람을 따라다니지 마십시오. 신령한 집회나 산만 좋아하고 따라다니면 영혼이 낭패를 겪습니다. 중요한 것은 중생입니다. 중생하기만 하면 자기 성품 그대로 하나님께서 멋지게 사용하십니다.
4.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
사도 바울은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그처럼 죽음을 각오했기에 기독교의 뼈대를 세우고 수많은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축복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러면 가정이 살고 교회도 살고 축복의 문도 열립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헌신도 잘해야 합니다. 헌신이 없으면 신앙도 자라지 않고 행복과 보람도 없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먹고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면 주님은 가장 큰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다짐했습니다. “널 기다리게 하지 않고 난 끝없이 기다릴게. 다른 여자와 절대 사귀지 않을게. 꿈속에서도 너를 만나고 자랑할게. 슬퍼도 너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할게. 조금씩 나은 모습을 보여주도록 힘쓸게. 네 앞에서 힘든 모습 보이지 않을게. 네 친구들을 귀하게 보고 어디 가자고 하면 두말없이 따라 나설게.” 예수님을 사랑할 때 그 이상으로 사랑하고 헌신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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